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09
#308.
조언하다 (3)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규민은 솔직하게 말을 했다.
“가족들에 대한 부분은 회장님에게는 역린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런 부분을 건드린다면 강진호 씨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단순히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무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개인의 사생활이 아닙니까.”
“그렇죠.”
“게다가…….”
조규민은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 강진호가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듯했다.
“회장님은 본인의 삶을 확고히 하신 분입니다. 좋게 말하면 주관이 뚜렷하신 분이고, 나쁘게 말하면 굳이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죠.”
“으음.”
강진호가 침음을 흘렸다.
“반백 년 동안 기업을 운영하면서 성공의 성공을 거듭해 오신 분이 이제 와 굳이 다른 이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실까요? 그렇다고 복귀하신 이후로 실패를 맛보신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괜히 그런 부분에 대해 말을 했다가는 회장님의 역린을 건드리는 게 아닐까 좀 걱정이 되네요.”
강진호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나이가 들고 사고가 굳게 되면 타인의 말을 긍정하는 법을 잊게 된다. 내가 무언가 잘못을 했는가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황정후는 강진호가 보기에 열린 사람이었고, 타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황정후에게 있어서 가족이라는 것은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가족이기 때문에 타인의 조언을 들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을 한 게 없다는 것도 문제지.’
강진호가 보기에, 아니, 세상 사람 누가 보더라도 황정후와 자식들 간의 일은 황정후의 자식들이 잘못한 것이 맞았다. 오늘내일하는 아버지를 병원에 방치해 두고 접근할 수 있는 사람마저 제한한 것은 불효를 넘어 범죄 수준이다.
권력이, 재력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지만, 제 아버지를 그런 꼴로 만들어가며 권력을 탐한 이들에게 옹호의 여지를 주려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강진호도 그 부분은 이해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가까운 시일 내에 자리를 한 번 만들어주세요. 제가 한 번 찾아가 보겠습니다.”
조규민이 우려된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새삼스러운데.’
강진호가 황정후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도 매우 특별한 일이지만, 그걸 넘어 황정후의 집까지 찾아가 보겠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동안 강진호는 의식적으로 황정후와 거리를 벌려왔으니까.
“강진호 씨.”
“예.”
“제 의견이 필요하지 않으시다면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말씀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막 대답을 하려던 찰나, 스테이크가 나와 대화가 잠시 끊겼다. 조규민은 웨이터가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굳이 그 집안에 신경을 쓰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
“솔직히 말해서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 아시겠지만, 황정후 회장님은 강진호 씨를 재경의 후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피자집을 지원한다든가 하는 일은 모두 그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성과만 있으면…… 아니, 대체재가 없는 이상 그 최소한의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 가만히만 있으면 재경은 강진호 씨의 손에 떨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다른 길을 만들어주시려 하는 겁니까?”
강진호는 대답을 고심했다.
그리고 조규민 역시 아직 할 말을 다 한 것 같지 않았다.
“또한 제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그건 황정후 회장님의 개인사라는 겁니다. 명분조차 황정후 회장님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죄를 지은 이들을 용서해 주라고 할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아는 강진호 씨는 은원이 분명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죄를 지은 이들에게는 더없이 단호하신 분이지요. 그런 강진호 씨의 성향을 생각해 봤을 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강진호는 말없이 물을 들이켰다.
가만히 물 잔을 내려놓은 강진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질문이 길어서 어디부터 대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강진호가 살짝 헛기침을 했다. 자신의 행동의 어디에 당위성이 있는지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자였으니까.
“우선 저는 재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강진호 씨.”
“없는 건 없는 거죠. 없는 관심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규민이 입맛을 다셨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대한민국의 3대재벌이다. 자산으로 치자면 5대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을 앉은 자리에서 날름 삼킬 수 있는 기회가 떨어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숨이라도 걸어볼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조금만 움직이면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경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겸양을 떨고 자신을 숨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몇 년간 강진호를 지켜보고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강진호는 지금 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황정후가 자신에게 재경을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한다면, 그 유언장을 찢어버릴 사람이었다.
‘물욕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지금 가진 돈으로도 평생 먹고사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따져 보자면 지금 강진호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벌어도 운전대조차 잡을 수 없는 차를 두 대나 굴리고 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벌면 벌수록 부족한 것이 아닌가.
삶의 퀄리티가 충족된다고 해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돌아가겠는가.
있는 자, 돈의 힘을 맛본 자는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돈으로 얻어낸 우월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돈에 집착하고,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다.
심지어 그 황정후마저도 돈이라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이야 초연할 수 있다지만, 막상 재경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그럴 일은 없어요.”
“강진호 씨…….”
조규민이 안타깝다는 듯 강진호를 불렀다.
조규민은 아마 이 부분에 있어서는 평생 강진호를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미 재경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부를 경험해 본 사람이었다.
‘다를 게 없어.’
돈이 인간에게 쓸모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강진호도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필요한 돈은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그 돈을 얻는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쌓을 수 있었다.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강진호였다.
“예. 뭐, 회사야 그렇다 칩시다.”
조규민은 일단 이 문제를 접기로 했다. 이건 가치관의 문제였다.
강진호가 재경을 이어받기를 바란다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그 가치관을 변화시키든가, 아니면 정말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덫을 놓아서 강진호가 억지로라도 재경을 물려받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쉽지는 않은 일이고, 둘 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넘어가는 것이 좋다.
“재경이야 그렇다 치고, 굳이 황정후 회장님과 자제분들을 다시 이으려는 이유가 뭡니까?”
“이으려 한다고는 안 했는데요.”
“하시는 행동이 그러니까요.”
“뭐라고 해야 할까…….”
강진호는 여전히 설명을 하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누가 잘못을 했고, 누가 잘했고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뇨, 강진호 씨. 그건 중요합니다. 강진호 씨도 잘 아실 텐데요.”
“그럼 정정하죠. 누가 잘못했는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관계가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음…….”
조규민이 볼을 긁었다.
강진호가 하는 주장도 일견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의 대답에는 핵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
“강진호 씨, 저는 관계를 어떻게 진전시켜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왜 진전시켜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겁니다.”
조규민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지십니까?”
“…….”
“강진호 씨, 지금 강진호 씨의 눈으로 본다면 불쌍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강진호 씨만큼 돈이 없고, 강진호 씨만큼 편히 살지 못한다고 동정을 받아야 한다면, 대한민국의 99%는 강진호 씨의 동정을 받아야 합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가만히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정점에 섰던 이들입니다. 강진호 씨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권력을 휘두르고, 법을 남용하고, 호화롭게 살아온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강진호 씨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면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을 겁니다. 막말로!”
조규민이 답답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람들이 뭐가 불쌍합니까? 그 사람들은 자기 잘못으로 그리된 사람들입니다. 처신을 조금만 잘했어도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이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나간 겁니다. 진심으로 조언드리건대, 순간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조규민은 강진호가 황민수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조규민은 그들과 직접적으로 얽힌 당사자니까. 그들이 조규민을 적당히 쓰고 버리려고 한 탓에 인생이 꼬일 뻔한 이가 바로 조규민이 아닌가. 그런데 그의 인생을 구제해 준 강진호가 원수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이고 있다 생각하니 화가 날 만도 했다.
“……말이 너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용서…….”
“아뇨.”
강진호가 조규민의 말을 잘랐다.
“맞는 말입니다.”
“그럼?”
“다만, 한 가지는 잘못 아셨네요.”
“네?”
강진호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저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어린 아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내가 재경에서 받는 것이 원래는 저들에게 돌아가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변덕 때문이죠. 다만, 거기서 끝난 겁니다.”
“그럼…….”
“제가 착해 보이십니까?”
조규민은 바로 ‘아뇨’라고 대답하려다 입을 꾹 닫았다.
‘하기야 이 사람이 그럴 리가 없지.’
성심 보육원의 아이들에게는 천사 같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 외에 자신과 관계없는 이들에게는 칼날보다 더 냉정한 사람이 강진호였다. 그런 강진호가 새삼스레 그동안은 신경도 쓰지 않던 황정후의 아들들을 동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가 신경을 쓰는 것은 그들이 아닙니다.”
한모금 물을 마신 강진호가 나직하게 말했다.
“황정후 회장님이지요.”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