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13
#312.
습격받다 (2)
“해치웠나?”
전희천은 긴장된 눈으로 폭발한 차량을 바라보았다. 이쪽으로도 유탄이 조금 튀기는 했지만, 몸을 숙이는 것으로 무리 없이 피해낼 수 있었다.
폭탄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뒤쪽 차들이 옆으로 빠졌고, 털털거리던 방진훈의 G클래스는 깔끔하게 멈춰 섰다.
사실 멈췄다기보다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저 안에서 살아날 확률은 없겠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이들은 무인이다. 그리고 그 무인 중에서도 특별히 경계해야 하는 이들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총회 내에서 회주를 밀어낼 만큼의 세력을 키워낸 방진훈과, 그 방진훈보다 더 위험하다는 강진호. 그 두 사람이라면 저 안에서도 살아날 수 있었다.
“차 돌려!”
전희천이 목소리를 높였다.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자신들보다 강한 이들을 상대하는데, 방심이란 있을 수 없었다.
차들이 중앙선을 넘으며 급격하게 유턴을 한다. 빠른 속도로 다시 방진훈의 차에 접근한 전희천이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고는 차 쪽으로 집어 던졌다.
콰앙!
바닥으로 날아든 수류탄이 터지면서 차가 들썩였다.
“갈겨!”
투투투투투투!
남은 탄창을 모조리 비워 버리겠다는 기세로 기관총들이 불을 뿜었다.
‘시간이?’
전희천이 슬쩍 시계를 바라보았다. 경찰 쪽에 손을 대 잠시 봉쇄해둔 도로가 다시 뚫릴 시간이 다 되어간다. 적당히 정리를 하고는 저 차와 시체가 되었을 두 사람을 정리해야 한다.
“그만!”
차가 완전히 벌집이 되고 나서야 전희천은 손을 들어 올렸다.
“무인은 얼어 죽을.”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대 주먹과 칼로 싸운단 말인가. 무인이니 뭐니 하며 거들먹거리는 것들의 입에 총구를 틀어박고 갈겨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 그 소원을 성취한 것이다.
그것도 한반도 내에서 ‘절대’라는 호칭을 붙여도 좋을 두 무인에게 말이다.
스스로가 무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전희천은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해치웠다!’
수단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이대로라면 한국을 좌지우지했을 무인 둘을 그의 손으로 죽인 것이 아닌가. 회장도 이 공은 확실하게 알아줄 것이다. 그 사실이 전희천을 들뜨게 했다.
“안쪽 확인해!”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쯤이면 통구이가 되었을 텐데요?”
“숯 덩어리가 되었더라도 확인해!”
“예.”
차에서 내린 이들이 조심스레 방진훈의 차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불에 타 검게 그을려 버린 차체로 볼 때, 무인이 아니라 불사신이라 하더라도 저 안에서 살아 돌아올 확률은 없어 보이지만, 그들의 동작은 신중하기 짝이 없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철칙이었다.
“……여기 없습니다.”
“뭐?”
전희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새끼들아! 차 안에 있던 것들이 어디 갔단 말이야! 제대로 찾아봐!”
“티, 팀장님! 여기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전희천의 얼굴에 당혹이 어렸다.
“구멍?”
“예. 뒤쪽으로 구멍이 나 있는데요. 여기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전희천의 얼굴이 조금 멍해졌다.
‘구멍이라고?’
그럼 수류탄이 날아드는 그 짧은 시간에 차 뒤쪽으로 구멍을 뚫고 빠져나갔다는 말인가? 시속 150㎞로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말도 안 돼.”
그럼 그들은 지금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현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강진호라는 자는 결코 당하고도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사냥개.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야성을 가지고 있는 사냥개.
그것이 이현수의 강진호에 대한 평가였다. 죽거나, 혹은 팔다리가 잘려 나가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먼저 도주할 타입이 아니었다.
그럼 왜 강진호가 보이지 않는 건가.
가능성은 두 가지.
하나는 강진호와 방진훈이 차를 빠져나갈 때 과한 부상을 입어 전투를 지속할 수 없을 경우.
가장 타당한 추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전희천의 눈을 피해서 완벽하게 도주할 수 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주변에 있다.’
모공이 쭈뼛하고 서는 느낌이었다. 전희천이 막 ‘주변을 경계하라’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낮은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니, 등 뒤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 목소리는 그의 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말끝을 타고 오는 싸늘하고도 더운 공기가 귓불을 스치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낮은 목소리.
마치 지옥에서 마귀가 속삭이는 것처럼 낮으면서도 살짝 들떠 있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전희천은 전신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등 뒤에 마귀가 서 있다.
대책을 강구할 필요는 없었다. 쓸데없이 긴장하여 대치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미처 무언가를 하려 시도하기도 전에 그의 두 발목에 불로 지진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아아아아악!”
직감적으로 지금 그의 아킬레스건이 둘 다 잘려 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전희천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다. 아킬레스건이 잘려 나간 이상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놈에게서 달아날 방법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사실이 전희천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었다.
바닥으로 쓰러진 전희천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에 음영이 진 얼굴을 한 사내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차에서 불꽃이 일렁일 때마다 사내의 얼굴로 비춰오는 그림자도 함께 일렁이고 있었다.
우습게도 전희천은 그 순간 저 사내에게는 저런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어둠 속에서 사람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저리 잘 어울리는 사람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사내의 시선이 천천히 전희천의 손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아주 느릿하게 바닥을 짚고 있는 전희천의 손을 짓밟기 시작했다.
“끄윽!”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하는 그를 보며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미있는 짓을 했군.”
그 목소리는 유쾌함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전희천을 안심시켜 주지는 못했다. 그 유쾌함이 결코 그에게 호의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 살짜리 아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
사내, 강진호는 전희천의 손에서 발을 떼고는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에 제압당한 전희천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들이 들어왔다.
“금방 끝내고 돌아올 테니까.”
낮은 선언을 남기고 강진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절망하는 전희천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구둣발?’
콰득!
그 순간, 그의 입으로 구둣발이 가공할 속도로 틀어박혔다.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전희천이 입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지만, 손과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으으으…….”
신음하는 전희천을 보며 구둣발의 주인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죽는 줄 알았잖아, 이 개새끼야.”
방진훈은 증오를 가득 담은 눈으로 전희천을 노려보았다. 강진호가 그를 살려두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는 두 손으로 전희천을 찢어 죽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순간적으로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방향으로 다가오는 죽음에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수류탄이 터지는 찰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그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숨이 막히고 목 주변에 고통이 느껴진다 싶더니, 어느새 하늘 위였다. 강진호가 그의 목을 움켜잡고 차 뒤편의 유리와 천장이 이어지는 부분을 꿰뚫고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다.
강진호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죽었다.
수류탄을 정면으로 맞았더라면 아무리 그의 단련된 육체라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겨우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부상을 입은 채 저 차 안에 방치되었다면 잘 구워진 숯 덩어리가 되었을 테고, 빠져나왔다 한들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씨발, 내가 오늘 여기 안 왔으면…….’
강진호를 데리러 가지 않고 홀로 퇴근하는 자신을 이들이 노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이 개새끼!”
분을 참지 못한 방진훈이 바닥에서 신음하는 전희천을 몇 번이고 걷어찼다.
정정당당한 승부로 그의 목을 따갔다면 방진훈은 죽으면서도 억울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무인이 취할 방식이 아니었다.
“양아치 새끼들.”
과거의 로망에 집착하는 옛 사람으로 남을 생각은 없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는 것 아닌가.
“김석일이 이러라고 시켰냐, 이 씨발 놈아.”
이 순간, 방진훈은 김석일에게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예우를 모조리 시궁창에 처박았다. 이런 방식으로 정적을 제거하려 드는 이에게 예우는 뭔 놈의 예우.
“미친 놈들, 진짜.”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기관총과 수류탄을 이용한 테러라니. 그것도 국도 한복판에서!
이건 정말 막 나가기로 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준비해야 돼.’
지금까지 영남회와의 결전에 대한 대비는 상대가 정상적인 방식으로 나올 것이라는 전제하에 준비되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극단이라는 것이 방진훈의 예상 이상이었다.
강진호의 말이 맞았다.
김석일은 지금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 놈은 무슨 짓을 저지를 줄 모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안일한 방식으로는 김석일의 페이스에 휘말릴 뿐이었다.
‘나 혼자라면 말이지.’
방진훈이 경탄이 담긴 눈으로 강진호의 등을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함께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었다. 강진호가 있었기에 안전할 수 있었다. 그도 나름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강진호는 정말 말 그대로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모든 위기를 벗어나 버렸다.
당황해서 비명을 지르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그가 창피하도록 말이다.
“너희, 잘못 건드렸어. 사람을 봐가면서 일을 저질렀어야지.”
방진훈이 바닥에서 신음하는 전희천을 발끝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특히 너는 좆 된 거야, 이제. 저 양반이 살려둔 게 뭘 의미하는지 아냐? 나 같으면 당장 혀 깨문다.”
전희천의 몸이 벌벌 떨렸다.
‘혀 깨문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방진훈은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을린 그의 옷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 피를 보지 않고는 끝나지 않을 듯싶었다. 그가 지금까지 봐온 강진호는 자신을 목표로 한 자들에게는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도망쳐 봐.”
방진훈의 차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당황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안 거지?’
― 일이 틀어졌다면 결코 상대하려 하지 마라.
― 정상적인 방법으로 상대할 수 없기에 이런 방식을 쓰는 것이다.
―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고 싶다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그 순간 도망쳐라.
그들이 이현수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귀신같이 그들의 의도를 알아챘다. 무의식중에 그들의 무게중심이 뒤로 살짝 쏠린 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난 그런 것도 좋아하지.”
강진호가 가만히 이를 드러냈다.
“도망쳐 봐. 혹시 모르잖아? 한 사람쯤은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말이야.”
달빛과 화염이 일렁이는 어두운 밤.
강진호는 마치 사신처럼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