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15
#314.
습격받다 (4)
“정리 끝났습니다.”
도로가로 이동한 강진호와 방진훈은 재빠르게 출동한 총회의 인물들이 내민 커피를 마셨다.
사람이 수도 없이 죽어간 곳 옆에서 태연하게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이들에게는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 새끼는?”
“총회로 후송했습니다.”
“……그 새끼, 독종이더라.”
“예?”
“씨발, 통장 비밀번호를 죽어도 말 안 하잖아. 이 새끼가 어차피 골로 갈 건데, 그전에 지가 날려 먹은 차 값 좀 보상해 주고 가면 될 것 아니냐고!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천태훈이 조금은 멍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 양반이…….’
지금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나 마찬가진데, 차가 눈에 들어오는가?
물론 들어는 오겠지. 그게 한두 푼도 아니고.
천태훈은 한심함과 동정을 반쯤 섞어 눈빛으로 버무렸다.
방진훈 이사쯤 되는 무인이라면 협회에서 받는 연봉도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벌여놓은 일로도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돈에 관심이 없는 무인이 많아서 그렇지, 막상 돈을 벌려고 하면 벌 곳이 수두룩한 게 또 무인이 아니던가.
하지만 방진훈의 재정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천태훈은 눈빛에서 동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동안 회주와 반목하면서 세력을 쌓기 위해 방진훈이 쓴 돈은 어마어마했다.
모으는 족족 모조리 써 대다 보니 지금까지도 단칸방 월세에 살고 있는 방진훈이 아니던가.
그래도 얼마 전에 큰맘 먹고 차를 뽑으면서 돈 많이 버는 영세민에서 카푸어로 전직을 한 것인데, 그 차를 이리 날려먹었으니 그 분노가 오죽하겠는가.
“……법인으로 차 한 대 뽑으시면 될 것 아닙니까?”
“야, 씨!”
방진훈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내가 회주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안 그래도 눈총 받고 있는 처진데, 회주 되자마자 법인 차 바꾸고 타고 다니면 영감들이 ‘아이고, 우리 회주님. 폼 나시네요’ 하겠다, 이 새끼야!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회원으로서는 몰라도 인간으로는 동정합니다.”
천태훈이 고개를 젓자 방진훈이 은근히 목소리를 냈다.
“야, 저거…… 보험 처리 될 것 같냐?”
“사건 현장이 사라지고 있는 판인데, 뭔 놈의 보험 처리입니까?”
“……조작은 안 되고?”
“블랙박스라도 내시게요? 아주 신나 하겠네요. 보험 처리는 해줄 겁니다. 그 영상 풀겠다고 동의하시면요.”
방진훈이 입맛을 다셨다.
“제발 체통 좀 지키세요. 지금은 회주님 아니십니까. 지금 영남회가 회주를 노린 상황이란 말입니다.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고, 총까지 사용된 거예요. 근 10년 내에 이리 큰일은 없었단 말입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그깟 차가 문제입니까?”
“니 차 아니라고 막말하지 마, 인마!”
“……답도 없네, 진짜.”
천태훈이 머리를 감쌌다.
원래 진중한 면이 더 강하던 사람인데, 회주 자리를 손에 넣더니 목표가 사라졌는지 평소에는 잘 감추던 어방함이 자꾸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 주변에 다른 이들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실 겁니까?”
“뭘?”
“대처를 해야죠. 대응도 해야 하구요. 이렇게 얻어맞고 그냥 가만히 계실 겁니까?”
“아니. 뭐, 대응은 해야지.”
방진훈이 그렇게 말하며 강진호를 힐끔 돌아보았다.
대응책을 고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뜻이었다. 천태훈 역시 강진호를 돌아보고 말았다.
‘으…….’
방진훈의 지시에 따라 가져온 생수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강진호는 말끔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말끔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절로 오그라든다.
지금이야 멀쩡한 모습이 되었다지만, 그가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를 생각하면…….
‘진짜 차라리 귀신을 보는 게 낫지.’
이제는 같은 편이자 그가 모셔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그의 영혼 깊이 각인되어 있는 강진호에 대한 공포는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저 시야에 강진호를 담았을 뿐인데도 전신의 관절에서 윤활유가 사라진 듯이 몸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저…….”
가만히 천태훈이 운을 떼자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
강진호는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평범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강진호가 전투하는 모습만을 봐온 천태훈에게 그 모습은 너무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부담은 덜하니까, 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대응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대응이라…….”
강진호가 고민하는 듯 턱을 괴었다.
‘그림 나오네.’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지만, 이 밤에 그런 것이 갑자기 나올 리가 있는가. 덕분에 총회의 유니폼이자 작업복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 검정 슈트를 대충 어림잡아 사이즈를 맞춰 챙겨왔는데…….
‘핏 미쳤네.’
물론 총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핏이 좋다.
운동을 하는 이들이고, 무공을 익히는 이들이다 보니 일반인들에 비해서 쫙 벌어진 어깨와 군살 없는 몸매, 그리고 큰 키를 자랑하지 않는가.
그 인간들의 패션 센스가 워낙 괴악해서 입고 싶은 대로 입혀두면 무간지옥이 되어서 그렇지, 슈트를 입혀놓으면 각이 사는 것이 무인이라는 족속들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깔끔한 핏에 익숙해져 있는 천태훈도 감탄하게 나올 만큼 각이 나오는 사람이었다. 강진호라면 두려움과 공포를 우선적으로 떠올릴 천태훈이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길 만큼 말이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지금 패션쇼를 하러 온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짓거린가. 천태훈이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의 잡념을 날려 버렸다.
“일단은 생각을 좀 해보죠.”
“……일단은 말입니까?”
“지금 당장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열 받는다고 우리도 수류탄 들고 영남회로 난입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그건 그렇습니다. 다만…….”
말을 끌자 강진호가 말 해보라는 듯이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경계는 강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선을 넘은 그들입니다. 이제부터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겠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마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금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저 선을 놈은 놈들의 공격을 무작정 방어하는 입장이 되어버립니다. 평소라면 방어전을 치르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천태훈이 말을 끊고 이제는 검은 고철이 되어버린 방진훈의 G클래스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피해만 커질 것 같은 느낌이라…….”
“음.”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족분들도 조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놈들이라면…….”
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천태훈은 급하게 입을 닫았다.
‘또라이 같은 새끼.’
무슨 인간이 스위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간순간 저렇게 극단적으로 감정이 변하면 상대하는 사람더러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이쪽 경계도 강화해 주세요. 책임자는 제 쪽으로 바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구요.”
이쪽이 어디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천태훈은 강진호의 압력에 눌려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씨발.”
방진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태훈아.”
“예, 회주님.”
“밖에서 지내는 애들 일단 총회 쪽으로 다 들어오라 그래. 숙소 충분하지?”
“그야 그렇습니다만…….”
“괜히 밖에 있다가 저 새끼들이 이 악물고 들어오면 답 없다. 반발이 좀 있더라도 일단 애들 다 총회 안으로 들어와서 지내라고 해.”
“애들은 몰라도 이사님들 쪽은 말을 안 들을 텐데요.”
“그 영감들은 죽어도 돼.”
“……그런 말은 좀 조용히 하세요, 제발 좀!”
“영감들이야 알아서 하겠지. 지들 목숨 하나 못 지킬 거면 그 돈 받을 자격이 없지. 그런 양반들은 냅두고 일단은 애들부터 지켜. 괜히 휘말렸다가는 좋은 꼴 못 본다.”
방진훈은 냉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강진호 씨, 강진호 씨 쪽은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새끼들이 노리는 건 강진호 씨 같은데요. 이건 그냥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김석일, 그 양반은 집요하기로 유명하거든요. 전초전이 이 정도면, 앞으로는 또 무슨 방법을 쓸지 상상이 안 가요. 일이 좀 정리될 때까지는 가족분들이랑 같이 피해 있는 것도 괜찮을 듯싶은데요.”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아뇨, 강진호 씨. 이건 그리 만만히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만만히?”
강진호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을 본 방진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강진호의 미소에 얼마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그의 머리는 몰라도 몸은 실감하고 있었다.
‘생각 이상인 것 같은데…….’
강진호가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지금의 반응은 그런 방진훈의 생각 이상으로 격했다.
“만만히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건 제가 해야 할 일인 것뿐이죠.”
“예. 뭐, 그럼…… 더 이상은 말 않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강진호가 도로를 청소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는 말했다.
“오늘 얼굴 익히는 것은 물 건너간 것 같네요. 돌아가 봐도 될까요?”
“예. 다음에 다시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한 일은 잘 처리해 주시길.”
“걱정 마십시오.”
천태훈이 극도의 공경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흔들며 천천히 걸어갔다.
“……괜찮을까요?”
“뭐가?”
“가족들이 위험하다는데, 너무 태연한 것 아니냐, 이 말이죠.”
“그게 아냐, 인마.”
방진훈이 혀를 찼다.
“그럼요?”
“태연하지 않으니까 저러는 거야.”
“그럼 우리 측의 보호를 받는 게 낫잖아요.”
“못 믿는 거지.”
“……저희를요? 아직 신뢰가 없는 겁니까?”
“아니, 너희 실력을.”
“…….”
방진훈이 자조적인 어조로 말했다.
“저 사람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존재거든. 그런데 너희한테 맡기려니 불안한 거지. 그러니 이제는 자기가 직접 움직이겠다는 거야.”
“경호를 강화하라고 해달랬는데…….”
“그건 그냥 무인 경보 장치 같은 거야. 막아달라는 게 아니라 발견하면 연락하라잖아.”
“아…….”
천태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김석일이 민간인을 건드릴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지금 반쯤 미친 것 같은데요.”
“그러니 걱정이라는 거지.”
방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잘못하면 피바람 분다.’
오늘 있었던 일에서 다시 한 번 증명됐다. 강진호는 자신을 노리는 이들에게는 자비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강진호의 가족이 영남회의 습격을 받아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진짜 끝이야.’
그럼 한국의 무인계는 영남회와 총회의 충돌이 아니라, 강진호라는 마귀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방진훈의 생각에 단순히 영남회가 괴멸하는 수준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인력 뺄 수 있으면 모조리 저쪽 가족으로 붙여.”
“회주님, 그건 좀 힘듭니다만.”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야. 어디를 보호해야 하는지 잘 판단해.”
“……알겠습니다.”
방진훈이 가라앉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건 전쟁뿐이군.’
선전포고는 잘 받았다.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