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20
#319.
방문하다 (4)
“안 해요.”
“자, 잠깐만요, 최연하 씨!”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최연하는 아미를 찌푸렸다. 원체 아름다운 얼굴이라 그런지 인상을 쓴 모습마저 매력 있어 보였다.
“내가 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감독님?”
“최연하 씨, 얼마 전까지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본다고 했잖아요. 지금 한창 달릴 때라며?”
“달릴 이유가 없어졌어요.”
“최연하 씨, 그러지 말고…… 이거, 진짜 좋다니까. 시나리오가 끝내줘. 최연하 씨가 중심만 잡아주면 이거 정말 천만 관객 들어온다니까.”
최연하가 코웃음을 쳤다.
“천만 관객 동원하고 싶으시면 저 말고 잘나가는 남자 배우를 찾아보세요. 여자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가 천만 넘었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에이, 그럼 우리가 그 첫 번째가 되면 되잖아요.”
“감독님.”
최연하가 선글라스를 쓰고 뒤를 돌아보았다.
“최연하 씨만 같이해 주면 된다니까. 이번 영화만 성공하면 최연하 씨도 이제는 국민 배우로 방점 찍는 거야. 알잖아, 이만한 제작비 투자해서 여자 주인공 원톱으로 밀어줄 영화 잘 없다는 거. 이번 기회 놓치면…….”
“저기요, 감독님.”
“응?”
최연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감독님은 그게 도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럼.”
“그게 도박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인 건 아세요?”
“도, 도박?”
“네, 도박이요. 지금까지 없던 종류의 뭔가를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칭송해 줄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희망에 차서 하는 도박이요.”
“아니…… 최연하 씨.”
“죄송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서 뽀송뽀송한 이십 대 남자나 하나 물어보세요. 혹시 알아요, 대박 날지?”
“이, 이봐, 최연하 씨! 야! 최연하!”
감독이 뭐라고 말하든 최연하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러고는 액셀을 꽉 밟았다.
‘지겨워 죽겠네, 진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저만한 급이 되는 감독과는 트러블을 만들지 않는 게 좋다는 것쯤은 최연하도 알고 있었다.
충무로라는 곳은 뒷담화가 일상이 되어 있는 곳이라 어떤 배우가 조금이라도 얄미운 짓을 하면 온 동네 술안주가 되기 마련이고, 정말 아무 문제없이 조용히 집에서만 놀고먹는 남배우는 게이 소리를 들어야 하고, 나와서 술 한잔씩 하고 다니면 끼 부린다고 욕먹는 게 이 바닥이었다.
오늘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최연하가 결국은 그 썩은 속을 드러냈다고 말이 돌겠지.
‘알 게 뭐야.’
최연하는 인상을 쓰며 액셀을 꽉 밟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화기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 또 왜!”
한껏 짜증을 부린 최연하가 전화를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누나, 어디예요?]“집에 가는 길이다.”
[누나, 차기작 하기로 했잖아요. 지금 대표님 난리 나셨어요.]“그래서 어쩌라고?”
[아니, 어쩌라는 게 아니구요. 차기작 안 하실 거냐구요…….]“당분간 연락하지 말라 그래.”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전해져 왔다.
“야, 끊어.”
[자, 잠시만요, 누나.]“왜?”
[대표님이 정말 딱 한 작품만 더 하자 그랬거든요. 이번에 드라마에서도 연기 잘했다고 반응이 워낙 좋으니까, 영화든 드라마든 딱 하나만 더하면 올해…….]“내가 알아서 해.”
최연하는 전화기를 꺼버리고는 보조석에 처박았다.
‘속 편하지.’
스타라는 것은 그런 자리다.
올라갈 때는 한없이 어렵게 올라가지만, 내려갈 때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가파르게 추락한다. 영화를 많이 찍고 드라마에 많이 나오면 이미지의 소비가 많아서 떨어지는 게 스타다. 그렇다고 많이 나오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대로 대중에게서 멀어졌다며 추락한다.
그리고 그녀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톱 자리에 있던 스타들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 주변인들이다.
‘그러니 이러겠지.’
예전 같았으면 빨리 작품 하나 더 하자고 설치지 않았을 것이다. 최연하가 충분히 휴식을 할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이번 드라마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니, 드라마는 반응이 좋았겠지.
드라마는 반응이 좋았는데, 최연하에게는 이렇다 할 CF 제의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가 이번 드라마로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는 증거다.
“짜증나.”
차창을 내린 최연하가 얼굴로 쏘아지는 바람을 맞으며 열을 식혔다.
“이대로는 안 끝나.”
아무 작품이나 잡아서 어떻게든 불을 끄겠다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다가는 정말 내리막을 타게 될 것이다. 그때는 잡을 수 있는 동아줄도 없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배우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용납할 생각도 없었다.
한참이나 차를 몰았지만 복잡한 머릿속은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왜 여기야!”
최연하가 핸들을 쿵, 하고 내려쳤다. 갑자기 울린 클랙슨에 사람들이 차를 돌아보았다. 최연하는 선탠으로 가려진 유리 너머로 자신의 얼굴이 보일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진정하자.’
짜증을 낸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최연하는 가까운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주차를 하고 돌아 나온 최연하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저 망할 인테리어의 피자집을 바라보았다.
‘짜증 나.’
열이 극도로 뻗쳐 있는 상황에서 향한 곳이 이곳이라는 것이 그녀를 더욱 진정하지 못하게 했다. 이제는 그녀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야 하는 곳이 아닌가.
그녀와 다르게 강세아는 드라마 데뷔가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딱히 엄청 튄 것은 아니지만, 되레 그 점이 더 인정을 받았다.
아이돌이 아니라 신인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으며 캐스팅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그녀의 귀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그 밉살스런 강세아의 오빠가 있는 곳이니 당연히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그녀의 손은 이미 피자집의 문을 열고 있었다.
“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영기가 의외라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예요?”
“……들어오자마자 ‘뭐예요’라뇨?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인데. 이 가게는 손님 이런 식으로 받아요?”
“아, 손님?”
주영기가 허리를 쭉 펴더니, 구십 도로 허리를 다시 꺾었다.
“어섭셔!”
“쳇.”
최연하는 주영기가 영 밉살스럽다는 듯이 짜증을 내고는 한쪽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은요?”
“네네. 여기 있습니다, 손님!”
메뉴판을 건성으로 살핀 최연하가 다시 주영기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피자 잘하는 거랑 파스타 잘하는 거, 음료 잘하는 걸로 가져다주세요.”
“저희 가게는 다 잘합니다.”
“그럼 아무거나 가져오면 되겠네요.”
주영기가 키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진호야, 여기 피자 아무거나, 파스타 아무거나, 그리고 음료 아무거나.”
“저 인간이!”
최연하가 도끼눈을 뜨고 주영기를 노려보았다.
“어휴, 무서워라.”
“주방장이나 잠깐 나오라고 해요.”
“주방장 피자 구워야 하는데요?”
“안에 있는 언니한테 만들라고 하면 되잖아요. 내가 여기 피자 먹으러 왔겠어요?”
“……피자집에 피자 먹으러 오지, 그럼 왜 옵니까?”
“여기 손님 대접이 영 별로네. SNS에 올려야겠다.”
“당장 주방장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오겠습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리죠.”
주영기가 피식 웃었다. 까칠하게 굴기는 했지만, 그것도 몇 번 본 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다 싶으니 딱히 띠껍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전에는 나름 착한 척하지 않았어요?”
“착한 척해서 볼 이득도 없는데 뭐 하러요? 나 원래 이런 여자예요.”
“네네, 차라리 그게 낫네요.”
“나아요?”
“네.”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고 주영기가 주방으로 향했다.
휴대폰을 만지작대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호가 밖으로 나왔다. 언짢은 표정으로 슬금슬금 나오는 강진호를 보며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영화하란 이야기 안 할 테니까 얼굴 좀 펴요.”
“네?”
“그런 말 하러 온 거 아니라구요. 포기했어요. 두 손, 두 발 다 들었으니까.”
“아!”
강진호가 안심했다는 얼굴로 최연하의 건너편에 앉았다.
‘반가운 티라도 좀 내라, 이 인간아.’
톱스타가 친히 만나러 와주셨는데 보험 외판원이라도 만난 얼굴로 도망갈 눈치만 슬슬 보고 있으니, 열이 안 뻗치겠는가.
“왜 부르셨죠?”
“얼굴 보려구요.”
“얼굴은 왜?”
“잘생겨서요.”
“…….”
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화면으로는 못 보게 됐으니까, 실물로라도 봐야죠. 왜? 안 돼요?”
“여긴 영업집입니다.”
“알아요. 전에는 피자 시키면 사진도 찍어주고 그러더만. 나 사진 한 방 찍어도 돼요?”
“이제는 안 하는데요.”
“전에 피자 먹고 사진 안 찍었으니까, 이번에 찍어줘요. 아니면 손님 차별한다고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닐 거야.”
강진호가 난감해하자 옆 테이블을 치우고 돌아가던 박유민이 슬쩍 강진호를 도와주었다.
“그때 돈 안 받았다, 진호야.”
순간, 강진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는데요?”
“……하여간 이 집, 내가 언젠가는 폭파시켜 버릴 거야.”
한국 내의 어디를 가도 최연하가 이런 대접을 받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부모라 해도 그녀를 이리 막 대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이 인간들은 매일 강진호를 보고 살다 보니 미적 감각이 이상해진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연예인이나 배우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미인은 기본적으로 남자들에게 대접을 받기 마련인데, 이건 뭐…….
“됐어요! 안 찍어요!”
강진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내일 뭐해요?”
“쉽니다.”
주영기가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사장 놈. 또 쉰다, 또!”
박유민이 강진호를 변호했다.
“아니, 원래 쉬는 날이잖아.”
“원래 쉬는 날은 쉬는 날이라서 쉬고! 안 쉬는 날은 일이 있어서 쉬고!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주 5일제였냐!”
“……영기야, 원래 주 5일제야.”
“아, 그래?”
최연하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저 인간과 대화를 하면 무식이 옮을 것 같다. 최대한 말을 섞지 않는 것이 답이었다.
“그래서 내일 쉰다, 이거죠?”
“네.”
“그럼 나랑 놀아요.”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내일은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
최연하가 미간을 좁혔다.
“강진호 씨, 강진호 씨는 제가 아무나 잡고 놀아달라고 하는, 그런 사람 같아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여기서 화를 내면 다음부터는 머리에 꽃을 꽂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최연하였다.
‘진정하자.’
일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이 사람은 선택을 한 것뿐이다. 그 선택으로 인해 최연하의 기회가 한 번 날아갔다 하더라도 최연하가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열 받아.’
꼬투리를 잡으라고 그녀 안의 악마가 쿡쿡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약속 있어요?”
“아뇨. 약속은 아닙니다.”
“그럼 혼자 가요?”
“네.”
“호오?”
최연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강진호와 최연하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하지만 의외로 강진호는 순순히 대답을 했다.
“그러시죠.”
“네?”
“사람이야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네?”
최연하는 뭔가 실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예감에 몸을 살짝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