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31
#330.
선언하다 (5)
‘방심했나?’
강진호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주변에 이만큼의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었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그의 실수였다.
예전이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지금 명백하게 벌어진 일이다.
‘누구지?’
현재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영남회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다.
하지만 일전에 일본의 인자들을 상대했을 때 느꼈듯이, 그가 익힌 무학과 궤를 달리하는 무학을 익힌 일본의 무인들은 그 기운이 달랐다.
지금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인자들을 상대했을 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것 같은 이질감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이거나 중국에서 온 이들이라는 건데…….
중국에서 굳이 이만한 사람을 보내서 자신을 도모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영남회인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미 대답을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익숙하군.’
영남회와 부딪친 게 벌써 몇 번이던가.
무인은 어떤 무학을 익혔느냐에 따라 풍기는 기운이 다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현대의 무인들은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같은 단체 안에 있다 해도 익히는 무학이 제각각이던 과거와는 다르게, 현대의 무인들은 익히는 무학이 꽤나 통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타입의 무인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공존했는데, 현대의 무인들은 소속이 같으면 익히는 무학도 대동소이한 느낌이었다.
통제의 용이성과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무공을 가르치는 합리성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지금 강진호는 이들에게서 영남회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저 사람들, 다 뭐예요?”
포위망이 좁아지며 무인들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하자 최연하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인적이 드문 강변이었다. 강변 자전거도로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에 강진호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자전거를 세우고 만 것이다.
그러니 이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리가 없었다.
하나같이 검은색 양복을 갖춰 입은 이들이 어둠 속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광경은 최연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서웠다.
“가, 강진호 씨?”
최연하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러자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머리 잡지 말아요.”
“네?”
“머리만 안 잡으면 다 괜찮을 테니까, 허리나 꽉 잡아요. 알았어요?”
“……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진호가 그렇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험난한 연예계에서 눈칫밥만 십 년 넘게 먹은 자신이다.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성격 참 급하네.”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연대를 해보자고 찾아온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이리 인간들을 바리바리 보내서 자신을 잡아보려 하는 것인가.
좋게 말하자면 행동력이 무척이나 뛰어나고, 나쁘게 말하자면 성격이 너무 급하다. 지금까지야 그 급한 성격이 좋은 쪽으로만 작용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갔겠지만, 거꾸로 그 급한 성격 탓에 강진호와 척을 진 것도 사실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주위를 둘러싼 이들을 모조리 피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지만…….
강진호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파들파들 떨면서 그의 허리를 꽉 잡고 있는 최연하를 보니 그도 못할 짓이었다. 그녀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상관없지만, 일반인이 강진호가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본다면 아마 심각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흠.’
순간, 강진호가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언제부터 자신이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 받을 충격에 대해서 신경을 썼더라?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뒤에 타고 있는 최연하가 충격을 받든 말든 원래 그의 방식대로 상황을 해결했을 것이다.
덤벼드는 이들에게는 공평한 죽음을.
그것이 강진호의 방식이자, 적천마존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피를 보는 상황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알 수가 없군.’
이것이 과연 강진호가 타인을 예전보다 좀 더 가깝게 느끼고 배려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인지, 그게 아니면 강진호가 최연하를 단순한 타인이라 느끼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살짝 머리가 복잡해진 강진호가 나직하게 신음을 발하자 등 뒤의 최연하가 그 기미를 느끼고는 목소리를 냈다.
“경찰 부를까요?”
경찰이라…….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궁금하기는 하다.
이 상황에 경찰을 부르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써두었을 확률이 높겠지만, 만약에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저들은 어쩔 것인가.
‘도망이라도 친다면 정말 우스운 일이겠지.’
손가락 하나도로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 몰려온다는 이유로 도망을 치는 무인들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무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였다. 관과 무림이 서로 관여하지 않던 과거의 중원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경찰들은 이들의 존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뇨. 괜찮아요.”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뒷수습을 온전히 강진호와 최연하가 감당해야 한다. 물론 강진호는 고생을 사서 하는 취미는 없었다.
그의 취미는…….
“꽉 잡아요.”
“예?”
예나 지금이나 자전거였다.
콰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특수 제작된 페달을 힘껏 밟자 금동이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튀어나간다. 그리고 그 가공할 속도에 최연하 역시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 댔다.
자전거로 바이크도 내지 못할 가속도를 내며 튕기듯 앞으로 돌진한다.
“헛!”
“씨발, 뭐야!”
자전거를 탄 강진호가 정면으로 돌진해 오자 앞쪽에서 조여오던 무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강진호가 누구인지 충분할 만큼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강진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을 들은 후였다.
이현수가 진심을 담아서 한 당부는 그들에게 신중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압박을 해 들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압박을 받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강진호가 자전거를 탄 채로 돌진하기 시작하니, 불안함이 당혹감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왔다고는 하나 포위망을 구성한 이상 동시에 강진호를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은 많아야 서넛이었다.
촤아아아앗.
급속도로 굴려진 바퀴가 바닥과 마찰하며 기이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는 자전거를 보며 전방을 막아선 이들이 순간 갈등에 빠져들었다.
막아야 한다.
이현수의 설명을 바탕으로 해보면, 그들만으로 강진호를 막아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대로 강진호를 보내주는 것도 자살행위다.
분노한 이현수, 분노한 김석일이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가끔은 적보다 무서운 아군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죽여!”
챙! 챙!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오는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로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강진호는 여전히 가라앉은 눈으로 앞으로 돌진했다.
“으아아앗!”
달려드는 자전거의 압박에 이기지 못한 이들이 되레 강진호를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다. 강진호가 다리에 힘을 주어 페달을 밟았다.
끼익! 끼이이익!
본디 빠르게 달리기 위해 태어난 자전거임에도 강진호의 힘을 버티지 못해 이곳저곳이 박살 난 금동이다. 보강에 보강을 거듭했음에도 강진호가 조금 과격하게 페달을 밟아대자 전신에서 비명 같은 소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읏차!”
강진호가 바닥을 박차며 허공으로 자전거를 띄워 올렸다.
“꺄아아아아아악!”
몸이 붕 뜨는 느낌에 살짝 눈을 뜬 최연하가 자신이 지금 허공을 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강진호의 허리를 죽어라 움켜잡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
그리고 강진호에게 달려들던 이들은 다들 제자리에 멈춰 서서 그들의 한참 위로 날아가는 자전거를 보며 입을 벌렸다.
인간은 상식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토끼를 잡는 사람이 토끼가 어느 순간 하늘을 날아 도망갈 것을 가정하겠는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무리 노련한 사냥꾼도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결과였다.
강진호가 위험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 이들이지만, 자전거는 바닥에 붙어서 달리는 것이다. 더 빠를 수는 있어도, 하늘을 날 수는 없다.
그 상식이 허를 찔렸다.
원래라면 허공에 떠오른 자전거를 공격해야 했지만, 순간 당황한 그들은 그저 입을 쩍 벌리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말았다.
하늘로 솟아오른 자전거가 달을 등지고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쿵! 쿵!
바닥에 떨어지자 강진호가 자전거를 빙글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
가라앉은 강진호의 눈을 마주한 이들이 몸을 움찔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강진호가 지금 그들에게서 달아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강진호의 눈빛은 달아나는 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 속에 갇혀 있다고 해서 범이 다른 생물이 되지는 않듯이, 강진호는 지금 달아나고 있으면서도 눈빛만으로도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우릴 보낸 거야?’
자전거라는 변수 없이 그들이 강진호를 포위했다면, 과연 계획대로 강진호를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토끼는 아무리 모여도 토끼다. 아무리 많은 수가 모인다고 해도 범 한 마리를 감당할 수 없는 법이다.
그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가서 전해.”
“…….”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내가 곧 찾아갈 거라고 말이야.”
강진호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나도 더는 참기가 힘드니까. 곧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거야. 약속하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조금 더 즐겨두라고.
이제 너희에게 그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강진호는 가만히 그들을 노려보다가 자전거를 빙글 돌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남겨진 이들은 무인들이다. 그들이 마음먹고 쫓는다면 자전거보다 느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감히 강진호를 쫓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쪽으로 몰면 되는 거 맞나?”
“그래. 저쪽으로 가면 터널이니까.”
“으, 씨발. 소름 돋아. 눈빛 봤어?”
“……말하지마. 오줌 쌀 거 같으니까.”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너스레를 떤 이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외도를 봤을 때를 생각나게 하더군. 그때도 소름이 돋았는데, 사실 저놈에 비하면 외도는 그냥 노숙자지.”
몸을 살짝 떤 이가 강진호가 향하는 곳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짐승은 몰아서 죽여야 하는 법이지, 힘으로 죽이는 게 아니야. 달아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천천히 함정으로 기어 들어가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지.”
“목표물이 예상하던 방향으로 갔다고 연락해.”
“오케이.”
사내가 가만히 달빛을 받아 움직이는 강진호를 보았다.
‘못 죽이면 우리가 죽게 될 거야. 그것도 더없이 잔인하게.’
상처 입은 짐승은 그만큼 위험한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