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33
#332.
사고 나다 (2)
“불안한데.”
“뭐가?”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하는 와중에 박유민이 떨떠름한 얼굴로 창 박을 바라보았다.
“너, 이 새끼. 형 차가 이래 보여도 잘 굴러간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하는 거냐.”
“그런 거 말고!”
박유민이 한숨을 쉬었다.
물론 조금 불안하기는 하다. 이 차가 굴러간다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의 발전을 증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니까. 해외에야 올드 카가 많다지만, 그 올드 카치고 내부 부품이 출시 모델인 경우는 잘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차가 굴러간다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자동차 정비 업계와 자동차 생산 업계가 얼마나 발전을 해왔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차 안 바꾸냐?”
“잘 굴러간다고!”
“너랑 강진호는 다른 의미로 조금 비슷한 것 같다.”
“그거 욕이지?”
박유민이 고개를 저었다.
차가 비싸든 싸든 신경 안 쓴다는 측면에서 두 사람은 참으로 닮아 있었다. 차가 가지는 다른 기능은 철저히 배제하고 드라이빙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으로 차를 모니까.
‘나도 차 한 대 살까?’
이제는 주변 남자들이 다들 차를 몰고 다니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이 있으니 차 한 대 굴리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다.
‘에이, 차는 무슨 차야.’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게다가 조금 지나서 숙소 생활을 다시 하게 되면 차를 굴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진짜 연습은 하고 있냐?”
“응.”
“내가 듣기로는 그게 그냥 짬짬이 연습한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프로 게이머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애들도 막상 프로 게이머가 되면 게임을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힘들게 연습해야 한다며?”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그렇지 않을까?”
“응?”
“자기 일을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되겠어? 다들 돈 벌어야 하니까 이 악물고 하는 거지.”
“난 지금 피자집 재밌는데?”
“……너, 꼭 이 피자집 물려받아라.”
“됐어, 인마. 형이 어딜 봐서 이런 일이나 하게 생겼냐?”
‘너 엄청 어울려.’
처음에는 박유민 역시 주영기가 앞치마를 두르고 돌아다니는 것이 혐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주영기는 앞치마가 굉장히 잘 어울렸다.
험악하게 생긴 얼굴의 연예인이 앞치마를 두르면 형용할 수 없는 귀여움이 발생하듯이 말이다. 평소의 험악함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 말을 대놓고 하면 주영기가 화를 내겠지.
박유민은 현명하게도 굳이 분란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강진호는 좀 이상한 놈이거든.”
“응?”
주영기가 뜬금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더라도 그놈이 하면 뭔가 재미있어 보인단 말이야. 너나 나나 강진호가 아니었으면 피자집 서빙 같은 걸 해보려고 했겠냐?”
“……그건 그래.”
“주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재주가 있는 놈이야. 문제는 그놈은 그러다 엎어져도 몇 번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반면에 우리는 그런 게 없다는 거지. 특히 너는 그게 심하잖아.”
“너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나야, 인마… 지금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지금 네가 버는 만큼을 어디 가서 벌겠냐? 나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시기이고, 너는 지금 빨리 수확을 해야 하는 시기이잖아.”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프로 게이머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들과는 인생의 곡선이 다르다. 지금 박유민이 보내고 있는 시간의 밀도는 다른 이들의 몇 배에 달할지도 모른다.
“진호 돕는 것도 좋다. 같이 노는 것도 재밌지. 나도 요즘 출근하는 게 재밌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지. 네 삶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잖아. 나야 지금 당장 이거 안 한다고 해도 딱히 할 게 없지만, 너는 그게 아니잖아.”
“알아.”
주영기가 슬쩍 박유민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듣기 좋지 않은 말이 분명함에도 박유민의 얼굴에는 조금의 언짢음도 보이지 않았다.
‘고민이라도 좀 해라, 이 호구 자식아.’
주영기는 강진호에게 커다란 은혜를 입었다. 어쩌면 목숨을 구원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은혜를 말이다. 하지만 박유민은 그런 것도 아닌데 강진호에 대한 고마움은 주영기 이상으로 깊은 듯싶었다.
‘아마 강진호를 돕다가 자기 인생이 망가진다고 해도 후회도 안 하겠지.’
‘뭐, 어쩔 수 없네’라는 식으로 웃고 말 것이다.
주영기를 한숨짓게 하는 것은 박유민의 그런 태도였다. 강진호와 얽힌 일이라면 미련 한 줌 없이 모든 걸 다 가져다 바칠 수 있는, 그런 태도 말이다.
그건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받은 만큼 돌려주고, 준 만큼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은 스무 살짜리도 알 수 있는 진리이니까.
그저 박유민의 천성이 그런 것이다.
“나도 알아.”
“응?”
“계속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는 건 나도 알지. 그거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야.”
“그럼 왜?”
“그냥…….”
박유민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다들 그러잖아. 당시에는 정말 형제보다 더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취업하고 뭐하고 하다 보면 1년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어진다고.”
“그야 뭐…….”
“언젠가는 우리도 그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그래서 지금은 그냥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춰보고 싶은 거야. 내 인생도 중요하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 그런데 조금 덜 벌고, 지금처럼 좀 더 지내고 싶은 거야. 그냥 진호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말이야.”
“으음…….”
주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도 그런 생각은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이 시간을 지속하고 싶다. 누구 하나가 빠져 버리는 순간, 더는 이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할 테니까. 아직 젊은 놈들이니까 생각할 수 있는 치기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뭐가 불안하다는 건데?”
“음, 그건 잘 모르겠어. 이상하게 뭔가 안절부절못하게 되네.”
“싱겁기는.”
주영기가 라이트로 밝혀진 도로를 바라보았다.
‘지금처럼 조금만 더 말이야.’
* * *
“진입하나?”
“그런 것 같습니다.”
“대답은 조용히.”
“……여기는 3㎞나 떨어져 있습니다. 강진호 놈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여기서 말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게 사람입니까? 동물도 이 소리는 못 듣습니다.”
“그래서?”
이현수의 가라앉은 눈을 본 조명수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미친놈이 진짜.’
이현수의 눈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평소의 이현수는 뭐라고 해야 할까, 가라앉아 있는 호수와 같은 타입이었다.
잔잔하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호수.
하지만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음이 어쩐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함과 으스스함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호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현수는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호수 안의 물이 격하게 일렁이는 것처럼 광포하기 짝이 없었다.
조명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현수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건, 세 살 아이도 알 것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아니 다행이군.’
처음 이 계획을 들었을 때, 조명수는 이현수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보편적인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 동원 가능한 것은 야구방망이나 칼, 해외로 나간다면 총 정도.
얼마 전, 강진호를 잡기 위해서 소총 세례를 한 것도 제대로 미친 짓이지만, 이현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거, 정말 괜찮을까?’
효과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겠지만, 뒷수습이 가능한가가 문제였다.
“이거, 정말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는 겁니까?”
“너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어.”
“……그야 그렇지만요.”
“문제가 생기지 않게 처리하는 것은 나와 회장님이 할 일이다. 너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해.”
조명수가 입을 다물었다.
‘말이야 쉽지만.’
뉴스를 타고 끝날 일이 아니다. 잘 가던 차를 기관총으로 쏴서 폭파시켜 사람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차를 치우고 흔적만 지우면 목격자가 없는 이상 숨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현수가 하려는 짓은 그들만으로 수습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분명 언론이 개떼처럼 달려들고, 정치적으로도 난리가 날 일인데,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다소의 잡음은 무시한다.”
“하지만…….”
“그럼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 쪽발이 새끼들이 활개 치는 꼴을 네 눈으로 보든가.”
“그건 안 되죠.”
조명수도 한국인인 이상 일본에 대한 적의는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었다. 더구나 무인계의 일본에 대한 적의는 드러난 세계의 그것보다 뿌리 깊었다.
일제강점기에 동원되어 죽은 일반인보다 일본에 항거하다 죽은 무인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일본의 무인들은 한국의 무인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박멸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해수 구제 사업이 실제로는 각 산에 살던 호랑이가 아니라 심산유곡에서 무예를 연구하던 무인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구상된 일이라는 건 역사의 숨겨진 비밀이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야.’
이대로 강진호가 계속 살아 움직이게 된다면, 그들은 총회와 강진호를 견제하느라 일본 놈들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딱히 원한은 없지만, 강진호는 나라를 위해서도 지금 죽어줘야 했다.
“들어간다.”
이현수의 눈이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강진호를 쫓았다.
“누릅니까?”
“기다려!”
입구 쪽에 설치된 CCTV에서 전송되는 화면을 보면서 이현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면 반드시 눈치채겠지.’
강진호에게 인기척을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과학이라는 게 있다, 이 야만인 새끼야.’
아무리 강진호가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CCTV를 통해서 자신을 감시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자전거가 들어간 속도를 감안하여 터널 가장 깊은 곳에 강진호가 도달했다 짐작한 이현수가 소리쳤다.
“눌러!”
콰아아아아앙!
그 소리는 마치 천둥이 치는 소리와도 같았다. 귀가 순간 멍해질 만큼 거대한 소리였다.
강진호가 눈을 부릅뜨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너진다.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터널의 천장이 쩌억쩌억 갈라지더니, 바윗덩어리와 토사 무더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진호의 눈에는 그 광경이 너무도 선명하고 느릿하게 보였다.
‘붕괴?’
터널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강진호는 손을 뻗어서 최연하를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상황을 파악한 최연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무너지는 터널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늦어!’
지금 아무리 달린다고 하더라도 터널이 무너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강진호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터널이 터져 나가라 소리를 지른 강진호가 최연하를 움켜잡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터널은 무심하게도 무너졌다.
완벽하게 무너져 버린 터널의 잔해 사이로 시커먼 먼지의 연기구름이 쉴 새 없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