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36
#335.
사고 나다 (5)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식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둠이라는 것은 제대로 된 어둠이 아니다. 밤이 되고 해가 사라져도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어둠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정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은 제 기능을 잃고 아무것도 식별하지 못하게 된다.
최연하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이 멀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주변을 식별하려고 해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의 눈에 흐릿한 형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툭.
그리고 그 흐릿한 형체에서 최연하의 얼굴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이거?’
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로 떨어진 것은 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득했다. 그리고 시각을 잃으면서 예민해진 후각이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향기.
‘피?’
눈가로 떨어진 액체에서 피비린내가 풍겨온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최연하가 입을 벌렸다.
피가 흘러내린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고, 터널이 무너질 때, 이곳에 있던 이는 그녀와 강진호밖에 없었다.
“가, 강진호 씨!”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건 최연하의 생각일 뿐이고, 잠겨 있는 목에서는 제대로 소리가 흘러나오지 못했다. 쉰 듯 탁해져 버린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을 뿐이다.
“괜찮아요?”
정신이 번쩍 든다.
다행히도 그녀는 이 사고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떨어진 피로 판단해 볼 때, 강진호는 상처를 입은 것이 확실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최연하는 자꾸만 멍해지는 정신을 애써 다잡았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전신에 격통이 몰려온다. 그리고 터널이 무너지는 것을 그녀의 눈으로 보았다.
그런 상황을 모두 종합해 보면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너무도 명백했다.
최연하가 손을 뻗어 올렸다. 손을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몸이 비명을 질러 댔지만, 그녀는 손끝이 거칠게 움직이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며 잘 보이지 않는 위를 더듬었다.
“으…….”
손에 뭔가 뜨거운 것이 잡힌다 싶더니,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강진호 씨!”
강진호가 그녀의 몸 위에 있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위쪽에 엎드려 팔과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진호 씨!”
“……조용.”
반쯤 갈라진 목소리로 강진호가 대답했다.
낮고 작은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힘겨움이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소리 지르지 말아요. 머리가 울리니까.”
최연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둠 속에서 그녀의 움직임이 강진호에게 보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그녀는 강진호의 지시에 따르는 것에 필사적이었다.
‘무서워.’
혼란이 잦아들자 공포가 밀려왔다.
이성이 현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빛 한 점 없는 어둠은 그들이 터널 속에 완전히 갇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터널이 무너지는 와중에 즉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구출될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 즉사한 것만 못한 상황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천천히 굶어 죽거나 탈수로 죽어갈 수도 있었다.
어둠이 뿌옇게 흐려진다.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최연하는 강진호의 얼굴을 더듬었다.
“피, 피가…….”
“별거 아니에요.”
“피가 났어요.”
강진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손끝으로 강진호의 움직임을 느낀 최연하가 이를 악물었다.
‘정신 차려야 해.’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저주의 말을 퍼부어 댄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았으면, 열 번이고 백번이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자꾸 눈물이 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것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불안은 전염되는 것이니까.
“괜찮죠?”
“네.”
“정말 괜찮은 거죠? 많이 다친 건 아니죠?”
강진호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재미있는 여자네.’
보통 일반적인 여자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아마 지금쯤 패닉에 빠져서 정신 줄을 놓아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의식을 차리자마자 남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강철 같은 멘탈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강진호의 눈에는 그녀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무섭고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도 그 기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생각보다 마음이 강한 여자였다.
‘그건 그렇고…….’
강진호가 천천히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터널이 무너졌을 때까지는 의식이 있었지만, 잠시 의식을 잃은 모양이다.
‘좋지는 않군.’
아무래도 다리 한쪽은 걸레짝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감각이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상체를 지탱하고 있는 왼팔도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터널이 붕괴하는 와중에 실린 무게와 압력을 버텨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힘을 모조리 소진할 정도로 기운을 뿜어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강진호는 오징어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공간은 만들었다.’
무너지는 암석과 모래를 밀어내고 순간적으로 지지대를 만들어서 압력이 모조리 실리는 것은 막았지만, 그 와중에 절반 정도 되는 무게는 몸으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그 압력에 팔이 부러지고, 살이 터져 나간 것이다.
다리 한쪽은 무너지는 바위에 깔려 버린 것 같았다.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한 강진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방심했어.’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강하다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을.’
오만했다.
그를 노리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이 몰려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오만이 아니라 자신이라 여긴 강진호였다.
하지만 강한 상대를 반드시 무공으로 대처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오더라도 자신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다.
“으…….”
입에서 절로 신음이 나왔다.
“괘, 괜찮아요?”
걱정 어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최연하를 보자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폐를 끼쳤군.’
괜히 최연하를 휘말려들게 만든 것이다. 자신과 함께 집으로 향하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 최연하가 아닌가. 그런 사람을 이 꼴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자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런 와중에 최연하가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가슴 한구석이 뜨끔해 온다.
“조금만 참아요. 구조대가 곧 올 거예요.”
‘구조대라…….’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진입하기 전에 본 터널은 산봉우리를 뚫어 만든 형태였다. 그만한 곳이 무너졌으니 이곳까지 파고들어 오는 데만 해도 족히 보름은 걸릴 것이다.
한 번 무너진 토사는 취약하기 마련이고, 급하게 파고들다가는 2차 붕괴가 일어난다. 그럼 구조대나 그들이나 모두 끝이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느냐, 이 말이지.’
새벽인데다 주변에 인적이 없었다. 그들이 이쪽으로 향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영남회 쪽이 유일할 텐데, 그들이 인도주의적 마인드로 강진호의 위험을 제보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구조를 바라는 것은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이곳에 물이 없다는 것이다.
건물이 붕괴되었을 때, 안쪽에 갇혔다가 구조된 이들은 빗물을 받아 마시거나 파괴된 수도관에서 흘러나온 물로 수분을 섭취해서 살아남았다.
물이 없다면 삼 일도 버티지 못하는 게 인간 아니던가.
강진호야 삼 일이 아니라 한 달도 버틸 수 있겠지만, 최연하는 삼 일을 버티기가 어려웠다.
태평하게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어떻게든 자력으로 빠져나가야 해.’
그러지 못한다면 강진호는 자신의 아래에서 최연하가 탈수로 죽어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단 한순간의 방심으로 받는 형벌치고는 지나치게 가혹했다.
“내 말 듣고 있어요?”
“예.”
“미안한데요…….”
“네?”
최연하가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흐느낌을 막아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힘든 것 아니면 무슨 말이라도 좀 해줘요. 나 지금 너무 무서워서…….”
“아!”
강진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무서울 것이다.
강진호 자신도 이 상황이 암담하게 느껴지는데, 그녀는 오죽하겠는가.
터널이 무너져서 어둠 속에 갇혔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트라우마로 미쳐 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강진호는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금방 나가게 될 테니까.”
“진……짜요?”
“예.”
아직은 확신이 없지만, 굳이 확신을 가지고 할 필요도 없는 말이다. 금방 나가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니까. 몸을 가지고 나가든 영혼만 빠져나가든 말이다.
“그러니 일단은 좀 쉬어요.”
“……지금까지 잤어요.”
“그래도.”
강진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깨어 있으면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말을 하면 수분이 빠져나가요. 그러니 지금은 그냥 한숨 자요.”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긴장 풀고 눈 감아요.”
“……예.”
파르르 떨리는 눈이 감긴다. 강진호는 눈을 감는 최연하를 보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 책임이다.’
그녀가 여기에 갇히게 된 것은 자신의 책임이었다. 어떤 것으로도 면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그러니 강진호는 어떻게든 그녀를 안전하게 이곳에서 탈출시킬 의무가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다.
“잠이 안 와요.”
“가만히 있어요.”
“……저기요, 강진호 씨.”
“네.”
최연하의 입술이 달싹였다.
뭔가 몇 번이고 망설이는 듯하던 최연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리…… 살 수 있는 거죠?”
이 말을 묻기 위해서 최연하가 얼마나 고심을 했는지가 절절히 느껴지고 있었다.
강진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살 수 있어요.”
“……정말요?”
“예.”
강진호는 평소라면 결코 붙이지 않을 뒷말을 붙였다.
“절 믿어요.”
최연하가 눈을 떴다.
가만히 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강진호의 얼굴이 보일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연하는 마치 강진호의 얼굴이 보인다는 듯이 빤히 위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다시 눈을 감았다.
“믿을게요.”
강진호는 대답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수혈을 눌렀다.
가만히 잠에 빠져드는 최연하를 확인한 강진호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살아 나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살아 나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건드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똑똑히 깨닫게 될 것이다. 분노한 강진호의 육체를 타고 붉은 기운이 슬며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