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37
#336.
모험하다 (1)
“어디라고 했습니까?”
“……여깁니다.”
조규민이 떨리는 손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그 지점을 확인한 방진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쪽으로 갈 일이 있나?”
“모르죠. 이유는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힌 곳이 여깁니다. 그런데…….”
“그런데?”
조규민은 말없이 손을 뻗어 리모컨을 잡고는 TV를 켰다.
“보세요.”
TV 속에서는 중계 카메라가 형편없이 무너진 터널을 비추고 있었다.
“저게 왜요?”
방진훈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자, 조규민이 지도 옆의 터널을 가리켰다.
“설마?”
방진훈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조규민이 손을 벌벌 떨었다.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아닐 거라고 믿고는 있는데…….”
조규민의 목소리도 떨려 나오고 있었다.
“이게……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조규민은 말을 끝까지 맺지 않았다. 하지만 방진훈은 조규민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필이면 강진호가 저곳에 있었고, 하필이면 강진호가 저 아래에 깔렸다는 우연이 연속적으로 벌어질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방진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봅시다.”
조규민이 멍한 얼굴로 방진훈을 올려다보았다.
“가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조규민이 그 사실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강진호도 사람이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할지라도 저 아래에 깔려서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상황이라면, 희망적인 관측은 불가능하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런 상황만큼은 고려하고 싶지 않은 것이 조규민의 솔직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머리는 점점 상황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저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과연 강진호가 지금까지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당하지 않았다면?
“조규민 씨.”
방진훈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은 나중에 해요. 일단은 확인부텁니다.”
“……예.”
조규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진훈의 말이 맞았다. 믿고 싶지 않다면, 직접 가서 그곳에 강진호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없어.’
조규민이 이를 악물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개판이네.”
우글우글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며 방진훈이 고개를 저었다. 소방차부터 시작해서 경찰차와 취재 차량 등 좁은 길에 수많은 차들이 몰려 있고, 사람도 끝도 없이 많았다.
이런 와중에 뭔가를 조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터널 쪽으로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라인이 쳐져 있었다. 카메라와 보는 눈이 이리 많은데 저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길.”
방진훈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무심히도 흘러가고 있었다. 실종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생존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예?”
조규민이 굳은 얼굴로 방진훈을 잡아끌었다. 기자들 뒤쪽에 세워진 천막으로 향한 조규민이 경찰들의 제지를 받았다.
“이쪽으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죠?”
“책임자는 왜요? 기자회견은 이따 따로 할 테니까, 물러나세요.”
“책임자 불러주세요.”
“아니, 이 양반이…….”
조규민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경찰에게 내밀었다.
“재경에서 왔습니다. 이 터널 쪽이 우리 측 건설사와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혹여나 부실의 의혹이 있었는지 자체 조사해야 합니다. 책임자 불러주세요.”
“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적은 없었다. 경찰이 머뭇거리자 조규민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감당 못하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지금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오세요. 그게 아니라면 여기 책임자가 어디의 누군지만 말해주면 됩니다. 그럼 이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아, 예. 지금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서둘러 주세요.”
경찰이 안으로 향하자 조규민이 그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는 굳은 얼굴로 버티고 섰다.
‘장난 아니네, 이 사람.’
방진훈이 조금 놀란 눈으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인데도 방금 경찰을 압박하는 그의 기세는 방진훈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 강진호가 데리고 있는 사람이니 보통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봐야 일반인이 아닌가.
무공을 익히면서 일반인은 모두 나약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방진훈은 조규민이란 남자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강단은 웬만한 무인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처리해도 됩니까?”
“누군지만 알면 됩니다.”
조규민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책임자가 누군지만 알면 회장님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갈 길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안쪽을 잠시만 조사해 보면 알겠죠.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일이 벌어졌는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조규민이 짜증 어린 얼굴로 방진훈을 돌아보았다.
“우연히 부실공사로 무너진 터널 안에 강진호 씨가 있었을 확률이 있습니까?”
“……없겠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 터널은 무너진 게 아니라 무너뜨려진 겁니다. 누군가 강진호 씨를 이 안으로 몰아넣었든가, 유인해서 폭파시킨 거겠죠.”
방진훈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조규민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찾아야 할 것은 폭파의 흔적입니다. 저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지만, 방진훈 씨는 무인이시니 눈이 저와는 다르겠죠. 보고 이상한 점이 있으면 확인해 주십시오.”
“아…… 예.”
방향을 정하고 나자 머리가 빠릿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조규민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확인을 해보기로 하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상황을 예측하고 어떤 식으로 움직이며, 어떤 것을 확인해야 할지 결정한 모양이었다.
방진훈도 어디에서 머리가 딸린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조규민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비능률적으로 움직였는지 알 것 같았다.
최단 시간에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로비와 권력을 활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무인으로서는 비웃음을 살지 모르겠지만, 실무자로서는 더없이 유능했다.
“저기 오네요.”
조규민의 요청에 확인을 위해서 현장에 파견된 실무자가 허겁지겁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가죠.”
조규민이 얼굴을 굳히고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와, 이거…….”
방진훈이 혀를 내둘렀다.
소방차에 비치되어 있는 소방복으로 갈아입은 둘이 안쪽을 누비기 시작했다.
비상 대책 위원회를 맡은 경찰청장이 띠꺼운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지만, 그 태도는 조규민이 내민 휴대폰으로 인해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휴대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황정후 회장의 다급한 목소리는 웬만한 권력자라면 심장이 멎을 만큼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색이 되어버린 청장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들어오긴 했는데…….
‘암담하네.’
그냥 산이 아래로 푹 꺼져 버린 것이라면 흔적을 찾기가 용이할 테지만, 산이 무너지며 표면이 흘러내려 버렸는지 현장은 거의 산사태가 난 몰골이었다.
이곳에서 산이 무너지기 전의 흔적을 찾아낸다는 것은 아무리 방진훈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원래 터널이 이런 식으로 무너집니까?”
“아니, 내가 터널이 무너진 걸 봤어야 알 거 아닙니까?”
암담함이 신경질이 되어 튀어나왔다.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러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인 흔적은 필요 없어요.”
하지만 조규민은 방진훈의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했다.
“이상한 것만 찾으면 됩니다. 여기에 없어야 할 것이요.”
“없어야 할 것이라면?”
조규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폭발을 시켰겠죠. 그럼 폭약이라든가, 도화선이라든가 그런 게 있었을 겁니다. 웬만큼은 회수를 했겠지만, 다 회수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아!”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지.’
강진호의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 터널이 폭파되었는지, 아니면 무너진 것인지만 확인해 보면 된다. 그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남아 있는 폭발물이나 도화선이 될 것이다.
“……그런데요.”
“네.”
“여기서 그런 걸 찾는 게 쉬워 보이지는 않는데요?”
“그러니까 방진훈 씨에게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예.”
방진훈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빌어먹을, 무인이 무슨 슈퍼맨인 줄 아나.’
저 인간은 강진호와 함께 지내다 보니 무인에 대한 관념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다.
무인이라는 존재는 그저 좀 감각이 좋고, 남들보다 강한 것에 불과한 건데, 저 인간은 무인을 무슨 치트키 보듯 하고 있었다.
“일단 잠시만요.”
“예?”
“이런 식으로 눈으로는 못 찾겠습니다. 제가 한 번 어떻게 해볼 테니 기다려 봐요.”
“예.”
방진훈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가부좌를 틀었다. 조규민은 방진훈이 뭘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그는 무인들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방해라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5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방진훈이 눈을 뜨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기, 조규민 씨.”
“예?”
“제가 지금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열기 같은 것을 찾으려 했거든요?”
“열기요?”
“네. 화약이나 도화선이 아직 남아 있으면 한 번 터졌던 거니까 다른 곳보다는 뜨거울 것 아니에요?”
조규민은 눈을 감아버렸다.
이 사람에게 중학생이 배워야 할 과학 원리를 처음부터 설명하기에는 낭비해야 할 시간이 너무 많았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죠.”
“아니, 그게 아니라…….”
“예?”
방진훈이 살짝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밑에 있어요.”
“……네?”
“열기가 밑에 있다구요. 이 붕괴된 터널 아래쪽에서 사람의 체온이 느껴진다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조규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있다구요?”
“네.”
“그걸 느낄 수 있어요?”
“총회 회주 자리는 고스톱 쳐서 딴 줄 아는 겁니까? 내가 이래 봬도 한국에서는 손꼽히는 무인이에요. 아무리 토사로 덮여 있다고 하지만 그걸 못 느낄 정도는 아니라구요.”
“……그럼?”
방진훈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아래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요.”
조규민이 눈을 감아버렸다.
‘빌어먹을.’
최악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결코 아니길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 아래에…….”
조규민이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토사와 암석들을 보고는 자신의 팔을 움켜잡았다.
‘이걸 드러내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를 실감한 조규민이 휘청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머리가 멍해진다.
구해내야 한다. 살아 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단…….”
방진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책 회의라도 열어봅시다. 이건 전문가의 힘이 필요해요.”
방진훈이 조규민의 어깨를 잡았지만, 조규민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강진호 씨…….’
바닥을 움켜잡은 조규민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