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38
#337.
모험하다 (2)
“터널 아래에 있다고?”
“예.”
“확실한가?”
“그런 것 같습니다.”
황정후 회장이 휘청이자 조규민이 그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
황정후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황정후 회장이 작정하고 고함을 지르자 회의실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그 방진훈마저도 일순 움찔할 정도였다.
“왜 거기에 강진호가 들어가 있냐, 이 말이야!”
조규민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지금 중요한 것은 강진호 씨를 어떻게 그곳에서 구해내느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황정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조규민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상으로 역정을 내지는 않았다.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해서 겨우 자신을 진정시킨 황정후가 칼날 같은 눈으로 조규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중요한 것은 강진호를 살리는 일이겠지. 잘잘못 같은 건 지금 따질 때가 아니야.”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라.’
순간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한 황정후이지만, 산전수전을 겪어온 거목답게 스스로를 회복하는 속도도 빨랐다.
“대책은?”
“아직 확실한 대책 같은 것은 없습니다.”
“대책도 세우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냐!”
“송구하지만…….”
조규민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제1회의실에서 토목, 발파, 인명 구조의 전문가들이 구조 대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일의 전문가가 아니니 대책을 논의해 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그쪽에서 수립한 최선의 구조 대책을 바탕으로 가장 빠르고 확실한 구조를 실시하겠습니다.”
황정후가 죽일 듯한 눈으로 조규민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모든 권한을 주겠다.”
“감사합니다.”
“필요하다면 내 이름을 팔아라. 재경을 팔아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가 책임지겠다. 이 일로 인해서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진다고 해도 모두 감수한다.”
“회, 회장님!”
백영기 이사가 기겁을 하여 소리쳤다.
“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시끄럽다!”
황정후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어차피 침대에서 누워 다 잃어버릴 것들이었어. 그깟 것들이 뭐가 중요하다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지 못하고 아껴야 한단 말이야. 죽을 때 무덤에 싸 짊어지고 갈 일도 없으면서!”
백영기는 황정후의 기세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스위치가 들어가 버린 황정후는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 필요하다면 내가 움직여 줄 테니, 나를 장기 말로 쓰란 말이야. 무슨 소린지 알겠어?”
“예, 회장님.”
조규민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황정후의 말을 받았다.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바로 보고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일단 알았어.”
황정후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백영기가 서둘러 황정후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빌어먹을.”
웬만해서는 욕을 입에 담지 않는 황정후이지만, 지금은 절로 욕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담배를 빠는 그의 모습에서는 평소와는 달리 여유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별일을 다 겪는군.”
창밖을 바라보는 황정후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황정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백영기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과거 베트남에서 건설 대금을 떼여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도 황정후가 저런 얼굴을 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수없이 황정후가 화난 모습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황정후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은 나름 분노를 자제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황정후를 모셔온 백영기조차도 처음 보는 황정후의 진짜 분노가 지금 조규민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말로는…….”
조규민이 어디선가 구해온 터널의 단면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진훈 씨가 예상한 구역이 여기입니다. 이쯤에 강진호 씨가 있다는 말인데, 여길 파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열흘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열흘?”
황정후가 주먹을 꽉 쥐었다.
금방이라도 테이블을 내려칠 듯하던 그 손이 허공에서 부르르 떨리다가 겨우겨우 제자리를 찾아 내려선다.
“열흘? 사람을 저기에 가둬놓고 열흘이라고? 이게 얼마나 된다고 열흘이나 걸린단 말이야! 순 엉터리들만 모여 있는 것 아냐?”
이미 수많은 터널 공사를 시행하고 진척을 봐온 황정후다. 그런 황정후에게 이 짧은 터널을 뚫고 들어가는 데 열흘이 걸린다는 말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일반적으로 터널을 뚫는 일이라면 이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한 번 무너졌던 터널을 다시 뚫는 일입니다. 토사를 모두 걷어내지 않고는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더욱이 현실적으로 토사를 모두 걷어내고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조규민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터널을 뚫을 때 사용하는 발파의 경우는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현재 터널 속에 공간이 있다고 해도 매우 취약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소견이며, 약한 발파의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다고 합니다.”
황정후가 손을 벌벌 떨었다.
현실감이 지독스럽게 몰려온다. 사람이 저 안에 있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구해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2차 붕괴가 일어날 것이고, 그럼 안에 있는 사람은 끝이다. 수톤의 토사가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는 공간 안으로 밀려 들어갈 것이다.
그 안에서는 강진호가 아니라 강진호 할아버지라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열흘이 최선인가?”
황정후는 결단이 빠른 남자였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시간을 줄이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들의 말로는 그렇습니다.”
“길어, 너무 길어. 저 안에서 사람이 열흘을 버틴다고? 물도 없이?”
황정후가 빠르게 지도를 짚었다.
“소방 호수를 통해서 이 안으로 물을 공급할 수는 없나? 위에서 분사를 해도 아래로 흘러 들어갈 것 아닌가? 물이라도 있으면 열흘을 버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텐데?”
“그 방법 역시 고려해 봤습니다만…… 불안한 지반에 물이 유입될 경우, 지반이 내려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고?”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그럼!”
황정후가 노호성을 질렀다.
“흙이 무너지지 않게 열흘 동안 조심조심 파 들어가면서 그 안의 사람이 버텨주기만을 바라야 한다는 말이야?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자들이 내놓은 의견이 이 세 살짜리도 내놓을 수 있는 답뿐이라, 이 말이냐?”
조규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 얼간이 같은 것들!”
황정후가 재떨이를 잡아 집어 던졌다. 사람을 향하지는 않았지만, 벽에 부딪친 유리 재떨이가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튕겨나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똑똑히 틀어박혔다.
“찾아내. 이딴 병신 같은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서 꺼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란 말이다! 너희가 못하겠으면 공모를 하든지, 해외의 석학에게 의뢰를 하든지! 무슨 수를 쓰든 간에 세 시간 이내에 새 방법을 마련해서 내 앞으로 가져와. 그렇지 못할 시에는 너희 모두 끝장인 줄 알아! 알겠어? 이 쓸모없는 것들아!”
분노를 있는 대로 뿜어내는 황정후 앞에서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회, 회장님, 이 이상 흥분하시면 건강에 좋지 않으십니다.”
“지금 건강이 문제야!”
“회장님!”
백영기를 똑바로 바라보던 황정후가 등을 등받이에 털썩 소리가 나도록 기대고는 얼굴을 감쌌다.
“빌어먹을.”
황정후의 낮은 욕지기가 고요할 대로 고요해진 방 안을 천천히 떠돌았다.
“장난 아니시네요.”
“예.”
“저렇게까지 화를 내실 줄이야. 자식이 거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저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자식 이상으로 생각하시니까요.”
방진훈이 입을 다물었다.
‘이 인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야.’
황정후가 폭발 직전의 폭탄 같다면, 이 인간은 얼음장이 되어버렸다. 싸늘하게 굳은 얼굴의 조규민은 자칫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았다.
평소의 유들유들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찾고 있습니다.”
“……아래쪽을 통해 파고 들어가는 건 어떻습니까?”
“만화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미 그쪽의 지반 상태는 최악 중의 최악입니다. 지탱 못할 겁니다.”
“그래도…….”
“지탱 가능한 수준으로 보강을 해가며 들어가면 시간이 더 걸립니다.”
방진훈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방법을 고려하면 고려할수록 이게 얼마나 답이 없는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간단히 생각하면 그냥 파고 들어가서 구해내면 그만이지만, 한 번 무너져 버린 터널 안에서 겨우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금의 충격이라도 더 가해질 경우에는 2차 붕괴가 일어나며, 토사가 비어 있는 공간으로 밀려 들어간다.
‘생매장이지.’
강진호는 칼로 찔러도, 총으로 쏴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강진호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쪽에서 되레 묻고 싶습니다. 총회 쪽에서 무인들을 활용하여 구출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그게…….”
방진훈이 고개를 떨궜다.
“쉽지 않습니다. 사실 저희는 그냥 힘센 사람일 뿐이라. 충격을 주지 않고 빠르게 땅을 팔 수는 있겠지만, 그래봐야 얼마나 단축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거기에 무인들을 투입하는 게 영…….”
방진훈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며 조규민의 눈이 더 차가워졌다.
“나라에서는?”
“그 아래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모릅니다. 그런 건 조사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일단은 이쪽에서 조사를 한다고 해놓고 주변 출입을 통제해 뒀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재건축 비용을 이쪽에서 댄다고 하니까 얼싸 좋다구나 받더군요. 개 같은 새끼들.”
조규민이 이를 갈았다.
이쪽이고 저쪽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강진호 씨의 가족들은요?”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지금 자제분이 터널 아래에 깔려 있는데, 아마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저희가 알아서 잘 꺼내볼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할까요?”
시니컬한 조규민의 말에 방진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자식이 그 안에서 말라 죽어 가는 걸 알면 부모는 더 말라 죽습니다. 차라리 실종되어 있다고 하는 게 낫겠죠.”
“뭐, 그건 알아서 하십시오.”
방진훈은 그래도 부모에게는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지금 이런 일로 조규민과 날을 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우선…….”
뭔가 말을 하려던 방진훈이 울리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 개새끼.”
휴대폰 액정에 뜬 김석일이라는 세 글자를 본 방진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전화를 받았다.
“나다. 이 개 같은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