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40
#339.
모험하다 (4)
우르르릉!
세상이 떨린다.
강진호의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아직 안 돼!’
지금 붕괴하기 시작하면 대응할 수가 없다. 아직 이 모든 토사와 암석들을 밀어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내력이 모이지 않았다. 지금 이곳이 붕괴한다면 남는 것은 깔끔한 죽음뿐이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강진호가 최연하를 끌어안았다.
‘발버둥이라도 친다.’
이대로 토사가 무너진다면 최연하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헛된 발악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순순히 죽음을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두 번의 삶을 살아본 강진호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삶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되레 새로운 삶을 살면 살수록 생은 절박하고 환희로웠다.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자신은 아직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복잡한 상념과 불안 속에서 긴장하던 강진호가 서서히 진정되어 가는 떨림을 느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아니야.’
다행히 붕괴까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
최연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자 강진호가 그녀의 몸에서 자신의 몸을 떼어냈다.
‘고정되었나?’
지금까지는 혹시 뒤틀려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으로 터널 천장의 파편을 떠받치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등을 떼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장이 내려앉지 않는 걸 보니 고정이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확보한 공간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다. 이대로 몸을 기댄다면 그 자신은 한결 편안해지겠지만, 가뜩이나 체력이 떨어져 있는 최연하가 더 힘들어진다.
그때, 최연하가 손을 뻗어 강진호의 목을 감싸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강진호가 의문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겼다고는 하나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그녀의 손길에 당겨질 강진호가 아니었다.
“기……대요.”
“……예?”
“힘……드니……까.”
강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니.
처음 그가 보았던 최연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최연하라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 확고한 열정을 가진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도구 이상으로 보지 않는 여자였다.
처음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도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가 처음 보았던 최연하와 지금의 최연하는 무엇이 다를까?
단순히 조금 더 친해지고, 조금 더 알았다고 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마저 달라지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새삼 깨달음을 얻는 강진호였다.
사람의 마음은 알아가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저 단순한 인상과 겉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내면을 알기 위해서는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친인만을 가까이 하는 강진호는 어쩌면 세상의 반쪽만을 보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어서요…….”
“괜찮습니다.”
“……말하기 힘들어요. 어서.”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이내 팔에 힘을 뺐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냐.’
최연하의 체력이 먼저 떨어지느냐, 강진호가 회복을 먼저 하느냐의 문제다. 이대로 몸을 기대지 않고 최연하의 체력이 최대한 느리게 소모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최대한 편한 자세로 빠르게 강진호가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연하는 포기할 기색이 없어 보였다. 강진호가 몸을 기대지 않는다면 말을 하고 설득하느라 더 많은 체력을 소모할 기세였다.
가만히 최연하의 위에 엎드린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꼴이 우습군.’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안일하고,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신에게 말이다.
이 세상은 그가 대부분의 삶을 살아온 중원에 비한다면 너무도 안전한 세상이다. 길을 걸음에 있어서 타인의 공격을 의식할 필요가 없고, 한밤중에 그의 방을 방문하는 암살자를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를 죽이고자 눈이 시뻘개져 있는 수만의 정파인도 없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안심했다. 그렇기에 방심했다.
세상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무학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강진호의 가장 뼈아픈 실책이었다. 조금만 운이 나빴더라면 그는 지금쯤 토사 속에서 질식해 죽었을 것이다.
자신의 안일함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를 공격해 온 자들에 대한 분노로 강진호의 이성이 들끓어 올랐다.
‘가만두지 않아.’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결코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건드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줄 것이다. 중원인들이 느끼던 공포를 고스란히 알게 해 줄 것이다.
그때, 최연하가 손을 뻗어 강진호의 등을 끌어안았다.
“……어.”
당황한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최연하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추……워.”
강진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체온이 떨어진다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다. 냉정하게 봐서 이곳의 온도는 결코 낮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기를 느낀다는 것은…….
강진호가 얼굴을 굳히며 최연하를 끌어안았다.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했다.
“따뜻해…….”
멍하게 말을 하고는 천천히 잠에 빠져드는 최연하를 보며 강진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살아 나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 번의 생을 통틀어 가장 간절한 삶에 대한 의지를 느끼면서 강진호는 눈을 감고 운공을 시작했다. 지금은 힘을 회복해야 할 때였다.
* * *
“터뜨려요?”
조규민의 눈빛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진훈은 그 여러 가지 중에서 정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조규민이 ‘이 새끼, 미친놈 아니야?’라는 눈빛으로 방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방진훈은 떳떳했다.
“예. 제가 생각하기에 두 사람을 모두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그 수밖에는 없습니다.”
“아니요. 잠시만요, 방진훈 씨.”
조규민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머리를 집고 눈을 감았다. 한참 동안 스스로를 진정시킨 조규민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좀 머리가 복잡하거든요. 좋은 의견이라는 것 잘 알았으니까…….”
“농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니!”
조규민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예요? 거길 폭파시켜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요? 네! 아주 제대로 화력 쏟아부으면 그 위쪽에 토사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겠네요. 그리고 우리는 진공청소기나 집게를 들고 강진호 씨를 한 점, 한 점 수거하면 되겠구요!”
“거, 진정하십시오.”
“지금 진정하게…….”
“진정하라구요.”
방진훈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조규민이 이를 악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흥분했네요.”
“흥분할 만합니다. 듣기에는 황당하게 들린다는 걸 이해하니까요.”
“예.”
“그런데 진짜 그냥 던지는 말이 아닙니다.”
조규민의 얼굴이 조금 진지해졌다.
“생각이 있다는 겁니까?”
“지금 강진호 씨가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동반자 때문일 겁니다. 혼자라면 토사의 압력을 밀어내며 흙 속에서 헤엄칠 사람이죠.”
“……웃으면 되나요?”
“농담 아니라니까. 거참! 거기에 공간이 생길 수가 없잖아요. 딱 거기만 무너진 천장들이 착착 맞아떨어져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닐 텐데. 아마 천장에서 떨어진 파편 같은 걸 짊어져서 공간을 만들었을 겁니다. 운 좋게 좌우에서 토사가 밀려 들어오지 않았겠죠.”
“으음…….”
조규민의 얼굴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자세가 안 나오는 상황이든 뭐든 지금 그 상황에서 토사를 밀어 올리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압력을 순간적으로 해소해 주는 겁니다. 그럼 남은 건 그 안에서 해결할 거예요.”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계시는 거죠?”
“네.”
“압력을 해소하는 건 좋지만, 어떻게 폭발을 일으킨다고 해도 그 충격이 그쪽으로 고스란히 간다는 건 생각 안 하십니까?”
“그거에 죽겠어요?”
“……예?”
조규민이 조금 멍해졌다.
“냉정하게 상황을 보세요, 조규민 씨. 지금 거기에 갇혀 있는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라 강진호 씨라구요. 그 정도 충격으로 죽을 사람 같아요?”
“아니, 잠깐만.”
조규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 말하면 할 말이 없다. 강진호가 죽는다는 것은 아직도 상상이 잘 가지 않으니까.
“우리가 해야 할 건 강진호 씨가 활약할 판을 깔아주는 겁니다. 어차피 그 인간이 못하는 거면 우리도 못해요. 그러니 순간적으로 토사들을 들썩이게 해서 압력을 해소해 주자구요. 그럼 알아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뭐라고 해야 할까…….”
조규민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신박한 개소리네요.”
누가 들어도 방진훈이 약을 팔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그 약이 왠지 한 번 먹어보고 싶은 약이라는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씨발, 왜 혹하냐고.’
강진호라면 그 작은 틈을 비집고 기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강진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다. 상대를 믿기 때문에 상대를 위기에 빠뜨린다니, 이건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미치겠네, 진짜.”
조규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약 한 번 팔아보자면서요!”
“예?”
조규민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폭파 전문가한테 물어봐야죠. 어떻게 하면 중앙 쪽에 가장 부담을 주지 않고 터널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수 있는가를요.”
“하?”
방진훈이 피식 웃더니, 조규민을 따라 일어났다.
“해보시는 건가요?”
“내 분명히 말하는데…….”
조규민이 씹어 먹을 듯한 기세로 방진훈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 시도로 인해서 강진호 씨가 죽는 일이 생기면, 내가 반드시 당신 모가지 따버릴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야.”
이글거리는 조규민의 눈빛이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방진훈은 손가락 하나로도 가볍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조규민의 협박을 들으면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규민이 강진호의 구출에 얼마나 진심을 쏟고 있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좀 부럽기도 하군.’
방진훈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의 부하들 중 누가 조규민처럼 진심으로 걱정하고 진심으로 분노해 줄 것인가.
터널 안에 깔려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복도 많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무섭기도 하네.’
최근 조규민이 보여준 모습이라면 그가 진심으로 나왔을 때 방진훈도 안전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강진호조차 저런 식으로 당하지 않았는가. 무인이 아니라고 해서 무인을 상대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심을 실어 대답했다.
“반드시 구해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