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42
#341.
탈출하다 (1)
우르르릉.
진동은 크고 거대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커다란 진동은 거짓말처럼 일순 멈췄다.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위로 살짝 들어 올린 강진호가 이내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렸다.
‘신호로군.’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조규민이 무언가를 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능력을 믿고 그의 진정성을 믿으니까.
하지만 조규민의 입장에서는 강진호가 자신이 도우러 왔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1차로 신호를 보낸 것이다.
만약 강진호가 이것이 조규민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해도 이곳이 붕괴되고 있다는 느낌은 받을 것이고, 그렇다면 무언가 대책을 세울 테니까.
강진호는 낮게 심호흡을 했다.
‘무지막지하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뭔가 해주기를 바란 것은 사실이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최연하를 대동하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강진호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 진동이 의미하는 바가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터뜨릴 셈이군.’
생각해 보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순간적으로 토사와 암석들의 결합을 느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충격이 덮치기는 하겠지만, 강진호라면 그 충격을 해소할 수 있을 테니까.
게임으로 따지자면 방어력은 충분한데, 공격력, 그중에서도 힘이 모자라서 장애물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는 범위 공격을 강진호와 같이 맞춰서 길을 터주는 상황이라 해야 할까?
“현명하긴 한데…….”
답도 없이 과격한 방법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평소의 조규민이라면 사용하지 않았을 방법이다. 그만큼 조규민이 지금 급해져 있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강진호는 가만히 조규민이 보내올 기회를 기다렸다. 그 기회를 살리느냐가 지금 강진호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으음…….”
하지만 신호는 아래쪽에서 먼저 나왔다.
최연하가 진동 때문에 잠에서 깼는지 눈을 뜨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힘이 너무 없는지 고개가 아닌 눈동자만 힘겹게 흔들리고 있었다.
“놀랄 것 없어요.”
목소리가 들려오자 최연하의 눈동자가 강진호 쪽을 향했다. 잘 보이지 않는지 눈을 몇 번이고 찌푸린다.
“가만히 있어요.”
“……방금.”
입을 열자마자 입술이 쩌억 갈라지며 피가 새어 나온다. 강진호는 최연하의 갈라진 입술을 살짝 눌러 지혈했다.
“말하지 말고 있어요.”
최연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렇게는 싫어요.”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최연하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 죽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최연하가 살짝 웃음을 띠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처연하기 짝이 없었다.
강진호는 그런 표정을 보며 자신이 최연하에게 너무 무심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따지자면 강진호가 해야 하는 최선은 최연하가 죽기 전에 기운을 모아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 3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빛 한 점 없는 곳에서 방치되어 있는 최연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모두가 강진호처럼 해결책만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불안함을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다.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군.’
자신이 하는 말이 그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 생각한 것 같다. 강진호 입장에서는 진실만을 말한 것이지만, 그녀는 그리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은 이대로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 감고 입을 닫은 채 죽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안 죽는다니까.”
강진호가 살짝 답답함을 느꼈다.
사람을 협박하고 공포를 안겨줄 때는 기름이라도 칠한 것처럼 잘 돌아가던 입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보듬어야 할 때는 갓 한국말을 배운 외국인처럼 어색해진다.
무슨 단어를 어떻게 써야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걸까?
최연하의 시선이 어지럽다.
“……강진……호 씨.”
“예.”
“손…… 좀 잡아줘요.”
“네?”
“나 조금 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진호는 최연하의 손을 꽉 잡았다. 그뿐 아니라 최연하의 몸을 바짝 끌어안았다. 최연하가 살짝 놀란 듯 움찔했지만, 그의 몸을 밀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미안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
“이 말은 해야…… 좀 편해질 것 같……아서.”
목소리가 작다.
작게 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녀는 목소리를 낼 기력조차 없는 것이다.
‘위험하네.’
강진호가 가만히 그녀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의 몸이 살짝 떨린다.
강진호가 그녀의 몸에 기운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녀가 기운을 차리는 것보다 한 줌의 기운이라도 더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지만, 이대로라면 탈출 때의 충격으로 최연하가 쇼크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아…….”
뱃속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밀고 들어오는 느낌에 최연하가 신음을 흘렸다. 생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뭘…… 한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설명할 시간 없어요. 잘 들어요.”
“……네?”
“이제 나갈 겁니다.”
최연하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둠 속이라 그의 얼굴이 보일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밖에서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쪽을 터뜨려서 탈출로를 확보할 거예요.”
“예?”
최연하의 눈이 흔들린다.
여기서 빠져나간다고? 터뜨려서?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소리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은 최연하가 손을 뻗어 강진호의 얼굴을 더듬었다.
혹시나 강진호가 어둠 속에서 버티다 못해서 착란을 일으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강진호 씨, 진정……하세요.”
“제정신입니다.”
강진호는 담담하게 말했다.
“황당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지금 빠져나갈 겁니다.”
“아니, 잠시만…….”
“설명할 시간 없어요.”
강진호의 눈이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났다. 그 눈빛을 본 최연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강진호 씨…….”
강진호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마 빠져나가다 죽을 수도 있을 겁니다.”
“…….”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확실하게 죽어요. 알죠?”
최연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의 체력도 이제 한계에 달해 있었다. 티는 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서서히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안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괜찮아요.”
최연하가 결연한 눈으로 말했다.
“이대로 있는 것보다는 낫겠죠.”
강진호가 가만히 웃었다.
강한 여자다.
보통 사람이라면 정해져 있는 확실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더 빨리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보통은 기적적으로 누군가 구해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까.
결단력이 강한 건지, 아니면 강진호를 그만큼 믿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연하는 한 점의 두려움도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것인지, 맞잡은 손에서는 떨림이 느껴진다. 두렵고 힘들고 무섭지만, 강진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강진호는 눈을 감았다.
‘빠져나간다.’
어떻게든 최연하를 안전하게 이곳에서 빼내는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 다른 일은 그다음이다.
강진호의 감각이 점점 더 예리해졌다. 명검을 조심스레 갈아내듯이 강진호는 감각을 곤두세웠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조금만 놓쳐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최선의 최선을 거듭해도 확실하게 탈출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강진호는 단 한 점의 후회도 남기지 않기 위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고, 모든 세포가 활짝 열린 듯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지금보다 강했을 때조차 이만큼이나 한곳에 집중을 해본 적이 있던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강진호의 정신은 맑게 깨어 있었다.
‘살려 나간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미처 최연하와 마지막 각오를 다질 틈도 없이 그 일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온다.’
전조 같은 것은 없었다.
다이너마이트의 심지가 타들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강진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야 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알 수 있었다.
그건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극한의 수준에 이르러 무를 겨루는 무인이 보지 않고도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듯, 극한으로 치밀어 오른 감각은 이제 곧 일어날 거대한 폭발을 선명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우우웅.
강진호가 최연하에게서 손을 떼고 양팔을 벌릴 수 있는 최대한 벌려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상황의 긴박함을 말해주었다.
‘강하게 한 번 올 거야.’
터널에 들어오기 전 보던 대로라면 지금 강진호의 위로는 작은 산 하나가 내려앉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폭발물로 그만한 흙더미를 들썩이게 하려면 얼마나 거대한 폭발이 일어야 할 것인가.
터지는 순간의 압력은 보통이 아닐 것이 빤했다. 강진호는 끌어 올릴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끌어냈다. 수라기와 합쳐진 무명공이 그의 의지를 따라 손끝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최연하의 육체를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휘감았다.
“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육체 주위를 무언가가 휘감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지, 최연하가 놀란 음성을 냈다.
그도 잠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최연하가 강진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걸로 충분하다.
강진호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강진호는 정신을 한곳으로 모았다.
이제 곧…….
쿠우우우우우우웅!
순간, 몸이 바스러지는 것 같은 충격이 그를 덮쳤다.
정신이 멍해진다.
대비하지 않았다면 의식을 놓아버리는 게 너무도 당연할 만큼 거대하기 짝이 없는 충격이었다. 입과 코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끅.”
최대한 감각을 민감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육체 주변을 기로 보호하지 않은 대가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어디냐?’
강진호의 눈이 뱀처럼 영활하게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그뿐.
아무리 폭발이 있었다고 한들 활로가 확연히 나타날 정도는 아니었다. 빛이 들어온다든가, 눈으로 보이는 확연한 지점을 포착해 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가야 할 곳은 한 곳!
붉게 변해 살기를 뚝뚝 흘리는 눈이 위로 향한다. 강진호의 한 팔이 최연하를 감싸고, 다른 한 팔이 위로 향한다.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고함을 토해낸 강진호의 육체가 머리 위를 뒤덮은 암석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