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43
#342.
탈출하다 (2)
강진호의 눈이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빛났다.
극한으로 끌어 올려진 수라기가 육체를 치달린다.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고, 뜨거운 열기가 배 속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강진호는 일그러진 눈으로 위를 노려보았다. 들썩이는 충격에 그들이 자리한 공간을 확보해 주고 있던 바위가 위쪽으로 살짝 떠올라 있었다.
으득!
수라기를 머금은 강진호의 우수가 지체 없이 바위를 향해 광속으로 뻗어진다.
콰앙!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며 파편을 뿜어냈다.
강진호는 다른 팔로 최연하를 바짝 끌어당기며 파편을 쏟아내는 바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머리 위로 흙더미가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돌이킬 방법은 없다. 지금 포기한다면 저 흙더미는 강진호가 있던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거기에 휘말린다면 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최연하는 확실히 죽는다. 이제는 나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아직 위로 솟구치고 있는 흙더미를 보며 강진호가 눈을 빛냈다.
우수가 붉은 내공을 잔뜩 머금은 채 흙더미 사이로 파고든다.
응축해 밀어 넣은 내력을 일순 방출한다. 내력이 뿜어져 나오며 흙더미를 사방으로 밀어냈다. 위로 치솟는 흙더미의 결속력이 약해진 순간, 최대한 밀고 들어가야 한다.
파낸 흙더미 사이로 강진호의 몸이 파고들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다 보니 몸으로 흙이 쏘아지는 것처럼 부딛쳐 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한순간, 단 한순간이다.
위로 들썩이며 솟아오른 흙더미가 아래로 다시 내리꽂히는 순간, 압력은 극도로 증가할 것이다. 결속은 약해지겠지만, 중력과 함께 아래로 쏟아치는 흙의 무게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지금 미리 최대한 뚫어놓지 않으면 압사당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 번!
콰아아앙!
수라기가 손끝에서 터져 나가며 머리 위의 공간을 완전히 비어냈다. 강진호는 발등을 박차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큭!’
흙더미를 밀어내는 것보다 한 사람을 잡은 채 허공으로 몸을 띄우는 것에 더 많은 내력이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과거, 그가 적천마존이라 불릴 때라면 허공답보쯤이야 쉽게 시전했을 텐데, 지금은 부운약표(浮雲躍飄)를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허덕이고 있었다.
강진호의 눈이 최연하의 얼굴로 향했다. 축 늘어진 최연하의 머리를 보니 이미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아무리 강진호가 내기로 그녀를 보호했다고는 하나 약해진 몸에 방금과 같은 충격이 가해졌을 텐데, 멀쩡할 리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호흡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강진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위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쿠쿠쿠!
치솟던 흙더미가 잠시 멈춘다 싶더니,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며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흙의 비, 아니, 흙의 포구가 강진호를 덮쳐들기 시작한다.
이 압력에 저항할 수 없다면 생매장당하는 것 외에 다른 결과가 있을 리 없다.
강진호가 울부짖으며 손을 뻗어 올렸다.
콰아아앙!
다시 한 번의 폭음이 터지고,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던 흙더미가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머리 바로 위로 새로 생겨난, 관 같은 공간으로 강진호가 박차 올랐다.
떨어지는 흙더미를 박차며 위로 또 위로 오른다. 남은 한 손이 허공의 흙을 움켜쥐고, 다리가 헤엄을 치듯 허우적댄다. 겉으로 본다면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만, 모양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큭!”
순간적으로 밀어낸 흙더미들이 다시 강진호를 향해 슬금슬금 밀려든다. 마치 퍼낸 자리에 다시 물이 차오르듯이 만들어낸 공간이 순식간에 흙으로 잠식되어 간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죽음처럼 말이다.
“으아아!”
강진호가 괴성을 지르면서 다시 기운을 뿜어냈다. 수라기가 격하게 뿜어져 나오며 밀려 들어오는 흙들을 다시 쳐낸다.
욱신!
그리고 동시에 아랫배에서 마치 달군 쇠꼬챙이를 쑤셔 넣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벌써?’
진기가 바닥나고 있었다.
아무리 제대로 내력을 모으지 못했다지만, 아직 반도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벌써 내력 부족에 시달릴 줄이야.
강진호가 본능적으로 최연하를 바짝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흙더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저항하고 항거해도 자꾸만 그를 고통 속으로 끌고 가던 운명처럼 그를 덮치는 흙더미들은 무자비했고, 또한 강력했다.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흙더미들은 그를 조여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저기에 휘말리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빠져나갈 힘을 잃어버릴 것이다.
처음부터 그 혼자 압력을 몸으로 받아내며 흙더미를 헤치고 나갔다면 어떻게 빠져나가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내력을 이만큼이나 소진했다면 저 무게를 팔다리로 헤치고 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최연하를 두고 그 혼자 빠져나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해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강진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미혹을 걷어내며 강진호가 눈을 빛냈다.
설명은 길었지만, 이 모든 것이 찰나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일순 결합이 풀리며 떠오르던 흙더미들이 몇 배의 힘을 담고서 강진호를 향해 내려 박히고 있었다.
‘저항하지 마.’
강진호의 몸이 느슨하게 풀렸다.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면 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면 된다. 강진호의 우수가 물가에 흐늘거리는 해초처럼 부드럽게 흙더미 사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또 부드럽게, 하지만 결코 느리지는 않게.
그의 우수가 흙을 밀어내고 가볍게 쳐낸다. 억지로 힘으로 부수는 것이 아니다. 아래로 떨어지는 흙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가볍게 좌우로 밀어낸다.
그러자 지금까지는 그를 집어삼키겠다는 기세로 내리꽂히던 흙더미들이 부드럽게 그의 좌우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거다!’
강진호는 두 눈을 빛내며 발등을 찼다.
어기충소까지는 무리더라도 부운약표 정도는 충분히 펼칠 수 있었다. 중간중간 타이밍이 맞으면 떨어지는 돌덩어리에 발을 대 몸을 솟구쳐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대로만! 이대로만!
강진호의 눈이 간절함을 머금은 그 순간!
그건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다.
처음에는 제대로 인식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거대한 어둠이 머리 위를 덮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지금까지 보던 흙더미들과는 전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눈이 확인하기 전에 몸이 확인했다.
머리 위를 덮쳐드는 거대한 존재감에 강진호의 몸이 일순 굳었다.
바위.
대체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밖으로 꺼내놓으면 사람 여럿이 둘러싸도 채 다 감싸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바위였다. 터널과 지표 사이의 흙더미 사이에 얌전히 묻혀 있던 그것이 강진호가 토사를 파냄에 따라 아래로 추락하고 있던 것이다.
압도적인 무게로 바위가 강진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강진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받아낼 수 있는가.
불가능!
그럼 피할 수 있는가.
강진호가 이를 악물었다. 좌우의 흙을 밀어내지 않고 자연스레 흘린 덕분에 그는 지금 흙더미에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받아낼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강진호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렇다면 부술 수밖에!
피처럼 붉은 빛을 뿜어내는 기운이 강진호의 우수로 몰려들었다. 몸에 남아 있는 기운을 단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끌어 올린다.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끌어 올리다 보니 입가에서 선홍빛의 피가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오는 물줄기처럼 울컥울컥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마지막 모든 힘을 모은 강진호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위를 향해 우수를 내질렀다.
* * *
쿠우우우웅!
조규민은 초조한 얼굴로 폭발을 지켜보았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폭발시킨 부분이 제대로 들썩이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흙먼지의 구름뿐이었다. 폭발과 동시에 바닥이 들썩이면서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른 것이다.
“제발!”
자신도 모르게 간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그와 방진훈뿐이었다. 폭발을 시키는 동시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이 정도로 괜찮은가?’
흙먼지 사이로 안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은 그 흙먼지 이상으로는 흙이 튀어 오르지 않았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폭발을 시키는 동시에 흙이 솟구치듯 튀어 오르는 광경을 예상한 조규민은 상상에 미치지 못하는 충격을 보며 불안함에 휩싸였다.
저 정도로는 잠시 들썩이는 것 이상의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 빤했다. 그렇다면 강진호가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그곳을 빠져나와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강진호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을 데리고 저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조규민은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왜!’
나오지 않는다.
한 번 터뜨려 주기만 하면 마치 슈퍼맨처럼 흙더미를 박차고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한 강진호의 모습이 어디도 보이지 않았다.
“아…….”
흙먼지가 가라앉는다.
바람이 불어오고 흙먼지가 바람에 휩쓸려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조규민의 눈동자가 흩날리는 먼지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안 나와?”
조규민이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옆에 서 있는 방진훈을 돌아보았다. 방진훈도 어두운 얼굴로 흙더미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단 한순간을 노리고 시작된 일이다.
흙의 압력이 사라지는 그 단 한순간을 귀신같이 파고들어 밀고 올라오지 못한다면, 되레 들썩인 토사가 2차 붕괴되면서 그들이 있던 공간으로 파고들고 만다.
그럼 생매장이다.
그 모든 가능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강진호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위험을 묵인한 조규민이다.
그런데…….
“이 개자식아!”
조규민이 방진훈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된다며! 나올 수 있다고 했잖아!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아? 나는 지금 내 손으로 강진호 씨를 파묻어 버렸다고! 이런 씨발!”
조규민의 울부짖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조규민이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방진훈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손짓 한 번으로 조규민을 날려 버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사내가 얼마나 타는 듯한 심정으로 화를 내고 있는지 알기에 차마 받아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이거 어쩔 거냐고?”
“아니…….”
막 변명을 하려던 방진훈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처음에는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두 번째에도 똑같았다.
“저, 저기!”
방진훈의 목소리에 조규민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뭐, 뭐요?”
“저, 저기! 저기 보라구요!”
방진훈이 소리치고 가리킨 곳.
대체 뭘 말하는가 싶은 조규민이 고개를 빼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어!”
조규민의 눈에도 확실히 들어왔다. 흙더미의 한가운데가 슬쩍 꿈틀대는 모습이 말이다. 살짝 들썩이는 흙더미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으아아아아아! 강진호 씨이이이!”
조규민이 전력을 다해 움직임이 있던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