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48
#347.
복수하다 (2)
“와, 살아 있었어.”
“…….”
“으하하핫! 유민아, 얘 좀 봐라. 얘 살아 있었어. 나는 죽은 줄 알았는데.”
“…….”
“뭐해, 인마. 가서 술 꺼내와. 친구가 살아 돌아왔으니 파티를 열어야지! 나 오늘 너무 기뻐서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실 테니까 말리지 마라.”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과장 하나 보탤 것도 없이 어쩌면 최연하와 같이 거기에 갇혀 있던 때보다 빠져나온 이후가 한 세 배는 더 힘든 느낌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그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고,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강진호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었으니까.
“진호야.”
박유민이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냥 화를 내.’
주영기의 비꼼도 사람을 움찔하게 만들지만, 박유민의 시선은 그보다 열 배는 더 사람을 몰아가는 효과가 있었다. 강진호는 마치 기세에서 밀린 장수처럼 뒤로 찔끔 물러나고 말았다.
“미안하다.”
“아냐. 네가 미안할 건 없어.”
박유민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연락할 수 없던 이유가 있는 거지?”
“어.”
“연락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고, 그게 잘 해결이 됐으니까 돌아온 거고? 그렇지?”
“정확하다.”
박유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응?”
강진호가 뭔가 반문하려는 순간, 주영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항의했다.
“되긴 뭐가 돼, 인마!”
주영기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모습이었다.
“친구라는 새끼가 갑자기 연락도 없이 며칠이나 잠적을 타다가 나타났는데 화도 안 나냐? 씨발, 내가 살다 살다 남자 걱정을 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그건 그렇지.”
박유민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럼 사과라도 받아야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왜?”
주영기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자 박유민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너는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아무 연락 없이 하루 정도 술 먹고 뻗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지만, 진호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어?”
“너, 정말 진호가 연락할 수 있는데도 연락을 안 할 사람으로 보이냐?”
“그건 아니지.”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고, 사실은 사실이었다. 주영기가 생각을 해봐도 강진호는 그런 일로 주변 사람을 걱정시킬 인간이 못 됐다.
요즘 들어 조금 뺀질뺀질해져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고 가게에 안 나오는 일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하루에 몇 번씩 전화를 해서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확인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던 강진호였다.
“그런 진호가 갑자기 며칠이나 연락을 못했으면, 왜 연락을 안 했냐고 화를 낼 게 아니라, 얼마나 힘든 일이 있었으면 연락도 제대로 못했는지 걱정을 해줘야지. 그게 맞는 거 아냐?”
“……와, 박유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지만, 어디 사람이 상식적으로만 살 수가 있겠는가. 그게 되면 누구나 다 예수님이지.
저런 말을 담담하게 하는 걸 보면 진짜 이놈도 정상은 아니었다.
“나, 나만 쓰레긴가?”
“쓰레기라는 건 아냐. 다만, 생각이 좀 짧다는 거지.”
“그,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건데?”
“정석적으로는 ‘진호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오래 연락을 못한 거니? 혹시 나쁜 일이라도 있었니? 걱정되는구나’가 가장 맞는 발언 아닐까?”
“국어책에 나올 것 같은 말 하지 마, 새끼야!”
국어책의 ‘국’ 자만 들어도 잠이 쏟아지는 주영기로서는 버텨낼 수가 없는 공격이었다.
주영기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본 박유민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큰일 있던 건 아니지?”
“음…….”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그냥 ‘별일 없었다’라 말하고 넘겨 버리는 것은 간단하지만, 박유민이 이렇게 나오니 그리 말하는 것이 기만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해서는 안 될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까지 대답을 꼬박꼬박 잘하던 강진호가 갑자기 대답을 망설이자,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 짐작한다는 듯이 말했다.
“뭘 했는지 물어본 게 아니야. 고생했구나.”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고생할 때가 있네.”
박유민이 웃었다.
“그래도 잘 해결하고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이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고생할 정도였으면 보통 일은 아니었겠네. 그래서…… 몸은 괜찮아?”
“어, 멀쩡하다.”
“그래, 그럼 됐어. 그런데 나 하나 더 물어도 되냐?”
“뭐?”
“너 최연하 씨랑 같이 있었냐?”
“…….”
강진호는 오늘 여러 번 말문이 막힌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자니 오해가 생길 것 같고, 그렇지 않다고 하자니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그럼 어떤 일이 있어서 최연하와 함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 말해야 하지 않는가.
‘이거, 이상한데?’
아까부터 괜찮다고, 말 안 해도 된다고 하고는 있는데, 슬금슬금 한 번씩 던지는 질문이 자꾸 핵심을 파고들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툭툭, 잽처럼 던지고 있는데, 얻어맞는 쪽은 뼈와 살이 분리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같이 있긴 했는데,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방향은 아냐.”
“그런 쪽으로 생각 안 했는데? 왜 갑자기 변명하고 그래? 정말 뭐가 있던 사람처럼.”
“……응?”
뭔가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빠져드는 늪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강진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본 박유민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됐어, 인마. 장난친 거야.”
“……너, 성격이 좀 나빠진 것 같은데?”
“사람이 사회 물을 먹으면 그렇게 되는 거다. 그리고 나 원래 성격 안 좋았어. 기억 안 나냐? 네가 나 도와줬는데, 내가 너 배신하고 물 먹인 거?”
“뼈에 새겨놓고 있지. 언젠가는 복수할 거다.”
“나도 기다리고 있다. 다시 물 먹여주지.”
“지랄들 한다.”
주영기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뭐, 오늘부터 다시 일하는 거지?”
“그러고 싶기는 한데…….”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면회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서. 밤에 가려고 했는데, 병원은 밤에는 면회가 안 된다고 해서 말이야.”
“면회?”
“응. 병원에 좀.”
주영기가 도통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박유민은 다 이해한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다녀와.”
“음, 미안하다.”
“아냐. 정리 잘하고, 오늘은 우리끼리 일할 테니까. 출근하지 마.”
“저녁 전까지는 올게.”
“출근하지 말라니까.”
박유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 하나 없어서 안 돌아갈 가게가 아냐, 이제. 네가 잘도 빼먹고 다닌 덕에 우리끼리도 알아서 잘 돌리게 됐으니까, 너는 그냥 네 일이나 잘 봐. 네가 정리 덜 하고 여기서 돌아다니면, 우리가 더 불편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왕 빼먹는 김에 하루만 더 빼자. 내일도 출근하기 좀 힘들 것 같다.”
“그래. 정리 잘하고 와.”
“아니, 왜 그걸 니들 둘이…….”
발언권을 주장하려던 주영기가 박유민의 한심하다는 시선에 움찔하고 말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됐지?’
사회에서나 군대에서나 어딜 가서도 목소리 크기 하나는 밀리지 않던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자신이 이리도 발언권이 없어질 줄이야.
“그래, 그럼 가볼게.”
강진호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주영기의 입이 툭 튀어 나왔다.
“그래. 니가 다 해먹어라.”
“뭘 또?”
“아니다. 내 생각 같은 게 뭔 의미가 있겠냐. 니가 더 똑똑하고, 니가 더 대단해서, 니가 다 알아서 할 건데. 나는 그냥 니가 하자는 대로만 하련다.”
“저, 씨…….”
박유민이 가슴을 쳤다.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소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어떻게 저 몸뚱아리에서 저런 말이 나온단 말인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주영기를 바라보던 박유민이 유화책을 펼쳤다.
“진호 있으면 또 가게 문 오래 열어야 하잖아.”
“어?”
“오늘 좀 일찍 닫고 한잔하러 가자. 다 같이.”
“콜!”
술이라는 소리에 희희낙락해서 대걸레를 빨러 가는 주영기를 보며 박유민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한 건지, 순박한 건지.’
그래도 좋은 친구라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 * *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의사의 설명을 듣는 강진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몸은 괜찮다고 했는데요?”
“육체적으로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살짝 영양이 부족해서 탈진 상태에 빠진 것뿐입니다. 이제 거의 회복이 되었을 겁니다. 문제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입니다.”
“정신이요?”
“예.”
의사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정확히 그 사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라우마가 강했던 모양입니다.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주변에 다가가면 경계하고, 사람이 주변에 없으면 무서워합니다.”
“으음…….”
“의학적으로 딱 ‘이 증세다’ 하고 진단을 내릴 정도는 아닙니다. 사고 직후에는 이런 경우가 꽤나 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약물치료를 통해서 억지로라도 회복을 시도해 봐야 할 겁니다.”
“그럼 입원이 길어지나요?”
“아뇨. 통원도 가능합니다. 다만, 환자분이 혼자서 사는 분이니만큼 통원보다는 입원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혼자 있다 보면 우울 증세나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트라우마라…….’
이런 부분은 강진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최연하의 몸이 다치지 않게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였으니까. 다만, 의사로부터 직접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찝찝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예. 일단 감사합니다, 선생님.”
“예, 그럼.”
진료실을 나온 강진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VIP들을 위한 1인실이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다. 최상층에 올라 VIP 병동으로 향했다.
“음?”
예전에 온 병원하고는 다르게 이 병원 VIP 병동은 애초에 병동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문이 닫혀 있어 비밀번호를 눌러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었다.
당황한 강진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인터폰을 발견하고는 호출 벨을 눌렀다.
[예. 병동입니다.]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자 강진호가 어색하게 말했다.
“면회객인데요. 들어갈 수 있습니까?”
[어느 병실을 찾아오셨습니까?]“2103호 환자요.”
이름이 언급되는 것도 우려한다는 듯이 환자 이름이 아니라 병실을 물어보는 간호사였다.
[성함을 말씀해 주시면 안쪽으로 연락을 넣어 면회 여부를 타진해 보겠습니다.]“강진호인데요.”
[예, 강진호 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인터폰이 끊기자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엄청 깐깐하네.’
병원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예전에 황정후의 병실에 침입했을 때는…….
‘아, 그때는 창문으로 들어갔구나.’
20층이 넘는 곳에서 창문으로 안으로 들어갔으니, 병동을 통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겪어보지 못했구나.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간호사가 나와 미소를 지었다.
“강진호 님?”
“예.”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참 이상한 체계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강진호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