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5
#34.
도움 받다 (3)
교무실 분위기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강진호입니다.”
강진호는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굳은 얼굴의 김성주 선생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넌 왜 왔어!”
“부르셔서요.”
“됐으니까 가 있어! 누가 너 보고 오래?”
공익현 선생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불렀습니다.”
“공 선생님, 이건 선생들 일입니다.”
“당사자 말도 들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이봐요!”
공익현은 김성주의 말을 무시하고 강진호를 향해 물었다.
“강진호.”
“예.”
“교통사고를 당했었지.”
“예.”
강진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 등교했나?”
“예?”
“퇴원하고 나서 언제 등교했냐고 묻고 있잖아.”
강진호는 문제가 뭔지 알았다.
강진호가 등교한 것은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다. 현대의 교육을 대부분 잊어버린 강진호는 그날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제자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김성주는 그날 강진호가 학교에 오지 않은 것으로 처리하고 병가를 내버렸다.
정책상 질병이나 사고로 등교하지 못한 경우 지난 시험 결과의 80%를 성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진호가 등교하여 치른 시험 결과보다 예전 시험 80%의 점수가 훨씬 높았기에 선택한 일이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건 성적 조작이다.
강진호는 분명 시험을 쳤고 점수를 받았다. 한데 그것을 조작하여 더 높은 점수로 대체해 넣은 것이다.
강진호는 문제가 뭔지 알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거짓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강진호인데다가 이미 목격자가 많은 이상 거짓말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입니다.”
교무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당사자의 입으로 확인하니 그 느낌이 또 달랐던 것이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라……. 그럼 분명 영어와 물리, 그리고 한문이었겠지?”
“예.”
“세 시험 모두 친 것이 확실한가?”
“예.”
공익현 선생은 고개를 돌려 김성주 선생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군요.”
김성주가 인상을 썼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제가 그렇다고 말을 했지 않습니까? 뭘 새삼스럽게 확인까지 하고 그러십니까?”
“김 선생님, 의도가 뭐였든 간에 이건 성적 조작입니다. 김성주 선생님이 성적을 조작한 덕분에 몇 십 명의 아이들이 석차에서 피해를 봤어요!”
“아니, 그건…….”
“강진호 말고는 제자도 아닙니까? 강진호를 감싸고도시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본 것 아닙니까!”
김성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사고를 당한 강진호가 안타까워서 벌인 일이지만, 저렇게 따지고 들어오면 반박할 말이 없었다. 공익현의 말도 틀리지 않았으니까. 아니, 그의 말이 정론이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됐습니다.”
교장이 말을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상황은 알았습니다. 여기서 더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것 같군요. 내일 이 시간에 교무 회의를 열고 김성주 선생님과 강진호 학생의 처분에 대해서 논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교칙과 학칙은 지켜지라고 있는 겁니다! 김성주 선생님이 무슨 의도로 한 일인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학생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첫 번째 사명이라면, 룰을 지키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학교의 임무입니다!”
“……예.”
김성주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강진호는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이 왜 지금 다시 수면 위로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최명길 이사장이 수를 쓴 모양이었다.
“그럼 가봐도 되겠습니까?”
강진호의 말에 교장이 예상밖이라는 듯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보통의 학생은 새파랗게 질릴 터인데, 강진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이사장이 찾아오고 경찰이 찾아와 연행까지 해가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강진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무덤덤한 건지, 강단이 좋은 건지…….’
교장은 살짝 인상을 썼다.
“나가보거라.”
“예.”
강진호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처분을 받는다는 사실이 걱정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학교를 나가라고 한다 해도 강진호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일로 상심에 빠질 부모님을 보는 것이고, 이제야 안정되어 가던 그의 삶이 다시금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명길…….”
강진호의 입에서 이사장 최명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현대로 돌아오기 전에는 자신과 엮일 일이 전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지금은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암초가 되고 있었다.
강진호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우선은 기다린다.
지금 움직였다가는 그뿐 아니라 김성주 선생마저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지켜보지.”
얼마나 일을 크게 벌일 것인지.
만약 그 일이 강진호의 심기를 거스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최명길 역시 방문을 받게 될 것이다.
강진호가 아닌…….
적천마존이 어둠을 틈 타 그에게 다가갈 것이다.
강진호는 낮게 가라앉은 눈을 빛내며 천천히 교실로 돌아갔다.
* * *
“조사는 다 했나?”
조규민은 긴장한 눈으로 황정후 회장을 바라보았다.
황정후 회장이 복귀한 지 이제 겨우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황정후는 급격하게 회사를 정상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일 년 반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재경 그룹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황정후는 황정후.
그의 세 아들 역시 놀고먹은 것은 아니다. 그들도 회사를 지켜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들이 경영할 때와는 회사의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신뢰할 수 있는 리더가 있다는 것만으로 사원들의 태도부터 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게 카리스마인가?’
황정후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건만, 그가 복귀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백신이라도 주입된 양 회사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예.”
조규민은 손에 든 보고서를 황정후에게 내밀었다.
“아직도 이렇게 보고서를 내나?”
“무슨 말씀이신지?”
“컴퓨터는 폼으로 가져다 놓았나? 전자 보고 시스템을 갖추어놓아도 젊은 놈들이 더 이용을 안 하니 원…….”
조규민은 살짝 놀란 눈으로 황정후를 바라보았다.
황정후의 나이는 칠순에 달한다.
한국에 컴퓨터가 보급된 시기를 생각해 본다면 황정후는 쉰 즈음에 컴퓨터를 익혔다는 말이 된다.
보통 그 나이 때 정상에 오른 회장이나 사장들은 옛 방식을 고수하지, 새로운 방식을 배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보고서도 서면으로 작성해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황정후는 그저 그런 노인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변화를 갈망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기업인이었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흠…….”
황정후는 보고서를 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이게 다인가?”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게 전부입니다.”
“……평범하군.”
조규민도 그것이 의문이었다.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강진호라는 학생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등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황정후 회장이 이 평범한 학생에게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란 거창한 말까지 해가며.
“기타 특이한 점은 없던가?”
“특이한 점이라고 하시면?”
“행동이라든가, 뭐, 분위기라든가……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조규민은 살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최근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쓰여 있군.”
“그런데 그 교통사고 전후로 사람의 성격이 변한 것 같다는 말이 많습니다.”
“성격이 변해?”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나 교통사고 이후 말수가 조금 줄고 음울해진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과거의 모습이 나오고 있으니, 큰 사고 후 잠시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맞기는 한데…….”
“한데?”
조규민은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감이 이상합니다.”
“감이라고?”
황정후는 재미있다는 듯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서류 조사 외에도 직접 사람을 보기 위해 미행을 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저는 되레 제가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행은 자네가 했는데, 자네가 감시를 당했다고?”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알겠네.”
황정후는 두 번째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동명 재단?”
“예. 강진호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소유 재단입니다.”
“그 이사장이라는 작자가 강진호를 건드리고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손자와 문제가 있던 모양입니다. 단순히 강진호만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강진호의 부모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도 압박을 넣어 잘리게 만들었습니다. 강진호의 부모는 최근 회사를 옮긴 상태인데, 다시 이사장이 손을 쓰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그래?”
황정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규민은 어쩐지 그 미소가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다.
“잘 조사했군.”
“감사합니다.”
황정후의 칭찬이다.
조규민은 가슴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황정후와 함께 시대를 살아온 그의 수족들이 왜 황정후에게 그리 충성을 바치는지.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 칭찬 한마디가 지금 조규민의 가슴을 격동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내가 원한 게 바로 이런 거야. 이걸로 점수를 조금 딸 수 있게 되었군.”
“…….”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조규민은 일단 고개를 숙였다.
“동명 재단에 대해서는 조사를 했나?”
“일단 급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보고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관련 자료는 일단 수집해 두었습니다.”
“탄탄한가?”
“재정적으로는 탄탄합니다. 문제는 재정만 탄탄하다는 겁니다. 워낙에 비리가 많은 곳이라 적당히 건드려 주면 알아서 붕괴할 겁니다.”
황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황정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세나.”
“예?”
조규민은 얼떨떨한 얼굴로 황정후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어딜 가자는 말인가.
“회장님, 어디로 가자는 말씀이신지?”
“답답하군.”
황정후는 손을 들어 조규민의 머리를 툭툭, 쳤다.
“젊은 놈이 머리 회전이 이렇게 느려서야. 동명 고등학교지, 어디긴 어디겠나?”
“지금 말입니까?”
“세상에는 미뤄둘수록 손해인 것이 있지.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야. 촉이 오는군.”
“모시겠습니다.”
조규민은 황정후의 앞으로 나섰다.
회장실 문이 열리고 황정후가 걸어 나오자 비서를 비롯하여 주변을 지키던 사원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황정후는 전용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낡았어.’
회사도 이런 가식적인 예의들도 다 낡았다.
나이가 들었지만, 황정후는 이런 것들에 염증을 느꼈다.
‘급해서는 안 돼. 서두르다 쌓아버린 모래성이야. 천천히 조금씩 토대를 넓혀가야 해.’
그러니 지금은 가장 중요한 토대를 쌓아야 할 시간이었다.
강진호.
그의 존재가 재경 그룹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황정후는 그리 확신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