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50
#349.
복수하다 (4)
병원을 빠져나온 강진호는 정문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속이 답답할 때 담배를 피운다고 속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속이 답답하면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은 어째서일까?
진정 효과라고는 전혀 없는 이 담배를 진정제나 되는 양 피워 대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그런 우스운 일을 한다.
그리고 강진호의 앞으로 또 하나의 우스운 사람이 걸어왔다.
찰칵!
강진호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준 방진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병원 앞은 금연입니다, 강진호 씨! 거, 상식 있게 삽시다.”
“……불은 제가 안 붙였는데요.”
“쯧쯧, 사람하고는.”
방진훈이 피식 웃더니 강진호를 옆으로 잡아끌었다.
“저 앞에 흡연 구역 있으니, 빨리 이동합시다. 길빵하는 몰염치한 사람 되지 말고.”
이게 길빵입니다, 이게.
강진호는 불이 붙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비벼 끄고는 방진훈을 따라서 흡연 구역으로 갔다. 널따란 벤치에 앉은 강진호가 미묘한 표정으로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리 다시 얼굴 보게 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까딱하면 유해 발굴단 되는 줄 알았거든요.”
농담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방진훈은 정말 재미있다는 듯 낄낄대며 웃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무능해서 죄송합니다. 거꾸로 제가 거기에 갇혔고, 강진호 씨가 밖에 있었으면 하루 만에 꺼내주셨을 텐데, 제가 힘이 없어서 오래 고생시켜 드렸네요.”
“아닙니다.”
방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하튼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어요. 아시죠?”
“예.”
강진호도 그리 생각했다.
만약 그 터널이 무너지는 순간에 자신이 버텨내는 힘이 조금만 약했다면 강진호와 최연하는 흙더미와 바윗덩어리 속에 속절없이 파묻혔을 것이다.
그랬으면 죽었다.
알짤 없이 즉사했을 것이다. 아니면 일반인보다 몇 배는 뛰어난 생명력을 가진 대가로 공기도 없이 배 속으로 흙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갔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갔다.
“놈들은요?”
“영남회 놈들은 아직 강진호 씨가 탈출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근처에서 사람을 아주 빼버린 것 같더라구요.”
“감시도 안 하고요?”
“죽었다고 확신한 것 같습니다. 괜히 알짱대다가 엮이면 골치 아프다고 생각했겠죠. 만약에 강진호 씨가 밑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2차 폭파를 노렸을 겁니다. 대충 수류탄 하나 구해 와서 집어 던지는 것만으로 확실하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걸 보면 빤한 거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실 겁니까?”
“어쩔 거냐고 물으신 겁니까?”
방진훈이 입을 꾹 다물었다.
‘멍청한 질문이었네.’
무엇을 할지는 이제 너무 빤한 일이었다.
강진호의 성격에 이렇게 당하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과 별다른 연관이 없는 전투에서도 사람을 학살하고 다니던 이가 강진호다.
그런데 이렇게 제대로 얻어맞고 나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참은 것도 용한 지경이었다.
몸을 대충 수습하는 동시에 영남회로 쳐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이틀이나 얌전히 있지 않았는가.
“영남회의 뒤통수를 칠 방법이 여럿 있는데, 기다려 달라고 하면 그러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강진호가 대답 없이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아마 지금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안대라도 준비해야 하려나.’
이번 싸움에서 강진호가 미쳐 날뛸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리는 방진훈이었다. 그나마 이 인간이 일상과 싸움을 구분할 줄 알아서 다행이었다.
벌써부터 살기를 풀풀 뿜어내고 있었다면, 이리 편히 대화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가시죠.”
“예.”
담배를 비벼 끈 강진호가 방진훈을 따라 나섰다.
이곳은 이야기를 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니다. 주차장으로 방진훈을 따라나선 강진호가 방진훈의 새 차에 올랐다.
“새로 뽑으셨나 보네요.”
“눈물과 함께 전 차를 보냈죠.”
방진훈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새끼들, 일단 개같이 패놓은 다음에 제가 꼭 차 값 받아낼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두요.”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좌석에 앉자 방진훈이 조용히 차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도로 위에 올라설 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방진훈이 차가 궤도에 오르자 입을 열었다.
“화나시는 심정은 이해하는데,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예.”
“이제 남은 것은 전면전밖에 없습니다. 이미 다른 길로 풀기에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졌어요.”
“저도 압니다.”
“그런데 전면전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노출이 된다는 게 문제란 말입니다. 언론이고 뭐고 다 찍어 누를 수는 있습니다. 총회와 영남회 전력의 반은 그쪽을 장악하는 데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시대가 시대라 일반인들의 눈을 완전히 피해내는 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음…….”
방진훈이 한숨을 쉬었다.
“애새끼들이 생긴 것도 다 조폭같이 생겨서는, 버스라도 대절해서 몇 놈 이동하다 보면 조폭들이 항쟁하는 줄 알고 경찰에 신고가 들어간단 말입니다. 야유회 가다가 경찰 기동대에 포위당한 적도 있습니다. 다들 험악하게 생겨 가지고는.”
방진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이 자꾸만 입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강진호는 초인적인 인내로 말을 씹어먹었다.
“그래서 이게 영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준비할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대로 무작정 싸움을 벌이는 것은 강진호 씨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강진호가 방진훈의 말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대답했다.
“시기를 잡는 것은 좋은 일이죠.”
“……네?”
“조건을 따지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다 보면 계속 일이 미뤄지게 되기 마련이죠.”
“으으음.”
방진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강진호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게 전해졌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완벽한 시기와 조건이 갖추어지는 순간은 안 옵니다. 그런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결국 적기를 놓치게 되는 거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을 그 시기로 만드는 겁니다.”
“말은 쉽지만…….”
“무엇보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방진훈은 차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최근 들어 처음 봤을 때보다 웃는 일이 잦아진 강진호이지만, 지금 강진호가 드러내 보이는 웃음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저런 미소를 짓는 강진호를 볼 때마다 방진훈은 마치 자신이 악마와 손을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죠.”
무엇이 식는다는 건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분노.
강진호는 지금 자신의 분노가 식기 전에 그들을 단죄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리는 건 무리군.’
애초부터 기대도 안 하던 일이다. 그래도 혹시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게 어렵다는 것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총회에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네?”
“외부적인 일은 조규민 씨가 알아서 해줄 겁니다.”
“……아!”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쪽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재경이라면 다르지.’
외부적인 재경의 힘과 내부적인 총회의 힘이 합쳐진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조규민이 과연 재경의 힘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이번 일을 보면 알 수 있지.’
조규민은 강진호 구출 작전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별로 상관도 없는 터널 붕괴 사고를 재경의 책임으로 돌려 버리고 권력과 딜을 해서 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사상자가 없는 사고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식었고,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정부에 터널 공사를 반값으로 이쪽에서 맡는 대신에 주변 통제권을 얻겠다고 한 것이다.
예산이 줄어드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던 정부 쪽에서 재경에게 전력을 다해서 협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그 정도로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일도 아니겠지.’
“내부적으로는 몰라도 외부적으로는 확실한 사람이거든요.”
“……내부적은 왜요?”
나름 조규민이 무척이나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방진훈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능해.”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진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꺼내 조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영남회에 쳐들어가기 위해서 사람들이 이동해야 하고, 영남회와 붙으면 그 주변이 전쟁터가 될 거다, 이 말씀이시죠?”
“그렇죠.”
“그런데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키지 않게 은폐해야 한다고요?”
“예.”
“그걸 하자고요?”
“예.”
방진훈의 말에 조규민은 웃고 말았다.
하늘을 날자는 것도 말로야 쉽다. 양팔을 전력으로 휘둘러서 양력을 얻어내면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다만, 그걸 실제로 행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닌가!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가능이나 합니까? 영남회는 어디에 있는데요?”
“영남에요.”
“……거참, 좋은 정보네요.”
조규민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젖혀 버리자, 방진훈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나름 무도관이라 산골짜기에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다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게 좀 있는 거죠. 산골짜기다 보니 사람을 통제하기가 어렵고, 그 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눈에 띄게 되거든요.”
“그도 그렇겠지만, 총회에서 동원할 인원은 몇이나 됩니까?”
“최대로 하면 이천까지 동원할 수 있습니다.”
“이천이나요?”
방진훈이 왜 놀라냐는 듯이 되물었다.
“총회는 한국 최대의 무인 단체입니다. 총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무인의 사 할은 될 거예요. 오천만 대한민국민 중에서 무인이 만 명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와, 많네요. 그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모르고 살았지?”
“그게…….”
방진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동원할 수 있는 애들은 이천인데, 그중에 한 천 명은 양아치랑 별다를 것도 없어요.”
“양아치요?”
“네. 뭐, 나름 무공을 익히기는 했는데, 재수 없으면 이종격투기 익힌 일반인에게도 털리는 정도라고 해야 하나?”
“네? 그게 무슨 무인이에요.”
“내공을 쓰는 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이게 뭐랄까, 무공이라는 게 내공을 쓰는 것을 전제로 만든 것이다 보니, 내공이 없는 무공은 격투기만도 못해요. 걔들 입장에서 보면 거의 춤사위쯤으로 보일걸요?”
“태극권이나 그런 것처럼요?”
“바로 그렇죠.”
뭔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음, 그럼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조규민이 한숨을 푹 쉬고는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응?”
매우 떨떠름해 있는 강진호의 얼굴을 본 조규민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조규민 씨.”
“네?”
“일처리를 좀 깔끔하게 합시다.”
“……네?”
“성질 같아서는 진짜.”
“…….”
영문도 모른 채 시무룩해진 조규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