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54
#353.
몰아치다 (3)
그 말이 시작이었다.
검고 붉은 기운이 강진호의 몸에서 화악― 하고 피어오른다 싶더니, 강진호가 료지에게 달려들었다.
‘아…….’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일반적으로 누군가 자신에게 달려든다면 피하려 하거나 막으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료지는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붉고 검은 기운을 마치 휘날리는 망토처럼 두른 강진호의 모습은 일순간 육체를 석상처럼 굳게 만들 만큼 비현실적인 동시에 위협적이었다.
지금까지 무표정하기만 하던 강진호의 얼굴이 광기와 살기로 일그러지는 광경 또한 료지의 심장을 멎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악마들이 존재한다.
드러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살면서 료지 역시 수많은 악마들을 만나보았다. 그중 일부의 악마들과는 그 역시 깊이 엮여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다르다.
‘악마 같은’이라는 말로 수식하는 그런 놈들과는 다르다. 이놈은 그 근원부터 뭔가 달랐다.
위악으로 가장하고 자신의 악함을 상대에 대한 위협의 수단이자 삶의 편의를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이들과는 완벽하리만큼 달랐다.
이놈은 정말 뱃속부터 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주던 모습이 너무도 정상적이었다는 것이 소름 돋을 만큼 말이다.
미리 알아야 했다.
자신들이 노리고 있는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는 사실을 말이다.
‘너무 늦었어.’
지금까지 강진호의 손에 죽어간 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후회, 그리고 안타까움.
그리고 조금의 안도감…….
자신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당하게 될 이들이 말이다. 아마 자신들이 전멸하게 되면 구미는 새로운 이들을 파견하게 될 것이다.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들도 다들 강진호에게 달려들게 될 것이다.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겠지.’
그리고 하나같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강진호에게 희생되고 말 것이다. 본토에 있는 수뇌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 차라리 깔끔하게…….’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강진호는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은 웬만해서는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가 방금 한 말을 뒤집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도 그는 결코 편히 죽을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우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몸의 어디를 어떻게 한다고 저런 소리가 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뀐 것은 강진호의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를 본 뒤였다.
그건 무척이나 기묘한 광경이었다.
갈고리처럼 구부러져 있는 강진호의 손에 뭔가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 들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한 붉음.
검붉은 피를 뿜어내고 있는 그것은 말 그대로 고깃덩어리였다.
강진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자신의 뜯겨 나간 옆구리라는 것을 알아버린 료지는 밀려오는 극통에 입을 쩌억 벌렸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손에 들린 그의 육체를 마치 쓰레기처럼 바닥에 처박아 버린 강진호가 다시 그에게 달려든다. 입가에는 재미있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아이 같은 웃음을 머금고 말이다.
공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이 마비되어 버린 듯, 마치 지독한 감기에 걸려 세상과 자신의 사이에 막이 하나 쳐진 듯 기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료지는 그저 멍하니 자신에게 달려드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반응은 그가 아니라 그의 뒤에서 나왔다.
“으아아아아악!”
그건 고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명이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기 위해서 달려들 듯이 그의 수하들이 강진호를 향해 달려든다.
‘그만…….’
멈추라고 하고 싶었다. 그만두라고 하고 싶다.
이놈에게 달려든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모를 사람이 이곳에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쾅!
가장 앞에서 달려들던 스즈키가 천둥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포탄처럼 뒤로 튕겨 나온다.
허공을 날아 튕겨 나가는 스즈키가 뿌리는 피분수가 너무도 생생하게 료지의 눈에 들어왔다. 다른 이들 역시 그리 다른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반 정도 희생되면 잡아낼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
애초에 저 괴물 같은 놈을 적으로 돌린 것이 잘못이었다. 그들의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진호를 잡으려면 구미에서도 손꼽히는 최강자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잠시 혼미해졌던 정신이 맑게 돌아온다 싶더니, 지독한 통증과 함께 현실이 밀려들었다.
어느새 그 외에는 아무도 서 있지 못했다.
“…….”
료지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전신에 피 칠갑을 한 강진호의 육체에서 붉지 않은 부분은 단 두 곳뿐이었다.
유달리 새하얗게 보이는 눈.
그리고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 드러난 이였다.
‘짐승 같은 놈.’
아니, 인간적이라고 해야지.
세상의 어떤 짐승도 동족을 죽이면서 저런 얼굴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짐승은 그저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저 악마처럼 단순히 재미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강진호가 가만히 그에게 다가왔다.
바로 앞.
서로 숨소리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강진호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료지를 바라보았다.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에 천천히 열렸다.
“억울하다는 얼굴이군.”
“…….”
“흔히 보던 표정이야.”
강진호의 표정이 조금은 심드렁해졌다.
“항상 그랬지. 나를 죽이겠답시고 달려들던 놈들이 막상 자기들이 당하게 되면 나를 악마 보듯이 하더군. 애초에 내가 이기지 못했다면 바닥에 쓰러져 피를 뿜고 있을 사람이 나였을 거란 사실은 까맣게 잊은 듯 말이야.”
료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변명하지 않아도 돼.”
강진호가 료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어.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더군. 사냥감이 얌전히 당해주지 않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것 같단 말이지. 적당한 반항은 사냥에 흥미를 돋워주지만, 자신이 되레 당하게 되면 화를 내지.”
강진호의 이가 드러났다.
“그래서 인간은 재밌다는 거야. 말로는 언제든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죽음을 언제나 믿지 못하거든. 그래서…… 너는 이제 죽음을 믿을 각오가 되었나?”
“……후회하게 될 거다.”
“흠…….”
료지의 반응에 강진호가 흥미를 보였다.
“너, 너는 건드려선 안 될 곳을 건드렸다. 나는…… 나는 그저 조무래기에 불과해. 곧 너를 처리하러 그들이 올 것이다. 너는 그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서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군.”
“……뭐?”
“나와 너 중에 누가 더 후회하게 될지 말이야.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너는 빌지 않은 걸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라고 말이야.”
료지의 눈이 부릅떠졌다.
“네 부하들은 어떨까? 지금 후회하고 있을까?”
강진호의 말에 료지의 고개가 급격히 돌아갔다.
‘사, 살아 있어.’
처참하게 날아간 몰골과는 다르게 그의 부하들은 다들 조금씩 꿈틀대고 있었다.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료지는 그 사실에 안도할 수가 없었다. 되레 더 큰 절망이 그를 찾아오고 있었다. 저런 몰골로 쓰러진 이들이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야산에 방치된다면 긴 시간 동안 고통받다가 숨이 끊기고 말 것이다. 천천히 죽음을 만끽하며 말이다.
그런 죽음을 누가 원하겠는가.
그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하나는 약속하지.”
강진호의 이가 드러났다.
“너는 저들처럼 편히 죽지는 못 할거야.”
으득거리는 뼈 소리와 함께 강진호가 천천히 료지를 향해 다가갔다.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강진호를 보며 방진훈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까지 잔인할 필요는 없지 않나?’
물론 저들이 먼저 달려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이들 역시 힘 들이지 않고 제압할 실력을 갖추고 있다. 강진호의 성향을 감안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든 이들을 죽이지 않고 보내주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렇다 해도 저리 고통받으면서 죽어가게 방치한다는 것은 조금 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좀 제발…….’
그만큼 실력이 있으면 튀는 피를 피하려고 하는 의지가 조금은 있었으면 좋겠다. 전신에 피 칠갑을 한 강진호를 차에 태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머리가 지끈거린다.
중간에 검문이라도 받는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오늘은 유치장에서 단잠을 자야 할 판이었다.
저벅저벅.
가만히 그를 향해 걸어오는 강진호.
이미 강진호의 많은 교감을 나누었고, 덕분에 결코 강진호에게 적으로 분류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을 가지고 있는 방진훈조차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드는 비주얼이었다.
“씻을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걸 씻어서 뺀다구요?”
방진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건 세탁소에 가져가도 고개를 저을 만한 빨랫감들이었다. 피에 젖은 옷의 세탁이 얼마나 힘든데…… 약품을 때려 박아야 한다.
“제가 해봐서 아는데, 그거 못 뺍니다. 버리세요.”
“옷이야 그렇다 치고, 세수는 좀 해야죠.”
“끙.”
방진훈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우나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 꼴로 사우나에 들어가면 바로 형사 기동대가 출동할 것이다.
“……적당히 씻고 옷 갈아입으시죠. 기다리시면 제가 금방 옷 구해오겠습니다.”
“아뇨.”
강진호가 한쪽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가리켰다.
“적당히 입죠 뭐.”
“…….”
강진호가 가리킨 곳을 보니 처음에 강진호가 목을 꺾어 죽인 놈이었다.
‘설마…… 이럴 거 생각하고 미리 죽인 건 아니겠지?’
다른 놈들에 비해 곱게 죽었으니 옷 좀 빼앗아 입는다고 해도 당사자가 억울해하지는 않겠지만, 죽은 이의 옷을 입는다는 게 영 찝찝한 방진훈이었다.
“휴…….”
방진훈이 고개를 저었다.
“멀지 않으니 애들한테 옷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대충 생수 몇 통 실어 오라고 하면 씻을 물도 확보될 테니까요.”
“그럼 그러세요.”
“평상복으로 준비할까요?”
“음…….”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오늘 처음 보는 건데, 트레이닝복 질질 끌고 가기는 좀 그럴 것 같은데…….”
“네?”
강진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방진훈의 반응에 되레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총회에 가는 것 아니었습니까?”
물론 그렇지.
그래서 여기까지 오긴 했지. 하지만…….
‘사람을 스물이나 저 꼴로 만들며 피 칠갑을 한 사람이 태연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건가?’
방진훈은 이럴 때면 한 번씩 강진호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해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장으로 가져오라고 할게요.”
“예.”
“그리고…….”
방진훈이 슬쩍 뒤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솔직히 숨통을 끊어주는 게 자비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강진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두어 시간이면 끝날 거예요.”
“예?”
“대기하다가 상황 끝나면 정리하라고 하세요.”
“…….”
방진훈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든 적이 불쌍해 보일 줄이야.
‘어쩌면 저게 독이 될지도 모르지.’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