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56
#355.
몰아치다 (5)
이명환은 애초에 강진호라는 놈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강진호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퍼지고 있는 소문은 과장이 되었거나 반쯤은 허위 사실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말이야.’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놈에게 이중걸과 방진훈이라는 두 거물이 고개를 숙였다는 일은 차라리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드래곤이 출현해서 크게 울부짖었다는 것과 그리 다를 것도 없을 만큼 현실성이 떨어졌다.
혹자는 귀환자니까 그게 가능하지 않겠냐고 되묻기도 하겠지만, 귀환자라고 해서 다들 그만큼 강하다면 이미 세계의 무인계는 귀환자들로 일통되었을 것이다.
귀환자들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현실로 돌아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를 겪었다는 것이 반드시 강함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
되레 여러 삶을 살았다는 것 때문에 삶의 의욕이 없는 케이스도 많다고 들었다.
‘그럴 만도 하지.’
헬조선 리퀘스트를 대략 세 번쯤 하고 나면 나중에는 노력해서 살아야겠다는 마인드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노력이라는 게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납득해 버릴 테니까.
헬조선이 어쩌고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이 과거의 어떤 나라에 비해서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 지옥 같은 삶을 몇 번이나 경험한 이들의 정신상태가 온전할 리가 없다.
“저기 나온다.”
“오?”
이명환이 고개를 쭉 뺐다.
그의 눈에 차에서 내리는 방진훈과 다른 한 사람이 보였다.
‘뭐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온 사내를 본 이명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없는데?”
“그러게.”
소문으로 듣던 강진호에 대한 평가가 사실이라면 괴물 같은 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들의 눈에 보이는 사내는 딱히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되레 무인이라기에는 좀 호리호리하고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대흉근으로 캔도 찌그러뜨릴 놈들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널려 있는 총회가 아닌가.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의 눈에 방진훈과 같이 내린 사내는 이쪽과는 그리 연관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저자가 강진호가 아니든가, 아니면 강진호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어 있든가.
“보면 알겠지.”
현관 쪽으로 향하는 방진훈과 사내를 보며 이명환이 몸을 돌렸다. 곧 이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문으로 쏠렸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대훈련장이었다.
이름은 훈련장이었다. 이곳이 태릉 같은 훈련소였다면 훈련장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설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에 있는 이들은 모두 무인이고, 이들이 여기에서 훈련을 하게 된다면 건물이 남아날 리가 없기에 그저 이름만 훈련장으로 남아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강당과 비슷하게 쓰이는 곳이었다.
끼익.
철제 의자가 뒤틀리는 소리가 난다. 일단 같이 오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회주인 방진훈이 오고 있기에 자세를 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명환도 일단 자세를 바로잡았다.
문이 열리고 방진훈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방진훈의 뒤를 따라 말쑥한 용모의 청년이 걸어 들어왔다.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저절로 시선이 간다는 것이었다.
잘생겨서?
아니면 사내의 분위기가 독특해서?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내에게 시선이 간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느낀 감정은 위화감이었다.
어째서?
사내에게 위화감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사내의 행동은 자연스러우니까. 이상함을 일부러 찾아내려 해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사내는 마치 이곳을 여러 번 들락날락거리던 것처럼…….
‘아!’
위화감의 정체를 발견한 이명환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연스러워.’
자연스럽다는 게 위화감의 정체였다.
이명환이 강진호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생전 처음 찾아온 총회라는 장소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니 비정상적인 어깨 넓이를 갖춘 인상 험악한 놈들이 도열하고 있다.
일단 지금 여기에 모인 수만 해도 이백이 넘는다. 이백이 넘는 조폭 귀싸대기 퍼 올릴 남자들의 앞으로 나서면서 자연스럽다?
‘어렵지.’
보통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려서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저 사내는 그런 이들이 돌멩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 제집처럼 자연스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계집애처럼 생겼구만.”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인상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별게 아니라고?’
적어도 이명환 자신은 저리 당당하게 들어올 자신이 없었다. 그가 저 입장이었다면 지금쯤 바싹 얼어 있을 것이다. 저놈이 소문처럼 그렇게 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무척이나 간이 큰 놈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 모여 있었군.”
방진훈이 강단 위쪽으로 올라서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이중걸이 회주로 있을 당시에는 꽤나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중걸이 안으로 들어오면 모두가 기립해야 했고, 이중걸이 말을 하면 다들 조용히 그 말을 들어야 했다.
현 시대와 영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았지만, 운동선수들 이상으로 군기가 빡센 무인계에서 그런 말이 밖으로 돌 리가 없지 않은가.
확실히 방진훈이 회주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로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었다. 방진훈을 보는 이들의 반응만 봐도 그랬다.
이건 나름 긍정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 방진훈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원래는 금방 올 일이었는데, 중간에 문제가 좀 생겨서 말이야. 삼십 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아서 기다리라고 한 건데 오래 기다리게 됐네. 일단 이건 내가 잘못한 거니 다들 이해 좀 해다오.”
물론 불만이 있는 사람이 더러 존재하겠지만,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이들은 없었다.
“일단 오늘 기다리라고 한 이유는……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방진훈이 옆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강진호라고 한다. 앞으로 너희와 같이 행동할 일이 많을 거다. 강진호 씨?”
“예.”
강진호가 방진훈의 말을 듣고 앞쪽으로 한 발 나서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강진호입니다.”
이명환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게 단가?’
뭔가 소개라든가, 지금 굳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소개를 해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없는가?
다른 이들도 비슷한 감상을 느끼는 건지 딱히 반응이 없었다.
“앞으로 같이 활동할 일이 많을 테니, 미리 얼굴 좀 익히라고 다들 불렀다. 에……”
방진훈은 더 할 말이 없는 듯 이명환과 강진호를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직 정식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이사진으로 합류하실 예정이니, 잘 따라주길 바란다.”
“이사진요?”
이명환이 자신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싸한 분위기 때문인지 강당 안은 조용했고, 덕분에 이명환의 말이 너무도 생생하게 들렸다.
“무슨 문제라도?”
방진훈이 되묻자 이명환이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려 있었다. 그 시선 안에서 느껴지는 열망을 알아챈 이명환이 한숨을 쉬었다.
그냥 물러나기에 애매해져 버렸다.
“아뇨. 오늘 처음 보시는 분인데 이사로 오신다니까 좀 이상해서요. 이사님이시면 앞으로 저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명령을 들으라는 게 좀……. 지금이 보통 상황도 아니고, 곧 있으면 영남회와 붙는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좀 껄끄럽습니다.”
이명환은 슬쩍 방진훈의 눈치를 보았다.
옛날의 이중걸 같았으면 평회원에 불과한 그가 이런 불만을 늘어놓으면 바로 사단이 났을 것이다. 아직 방진훈의 성향을 모두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말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음, 그래?”
하지만 방진훈은 그저 난처하다는 듯이 어물거렸다.
‘된다.’
방진훈의 반응으로 그가 이명환이 이런 말을 한 것에 딱히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한 이명환이 살짝 수위를 높였다.
“동료 의식도 없는 사람의 말을 들으라는 게 좀 그렇잖습니까.”
이명환은 호응해 달라는 의미로 뒤쪽을 살짝 돌아보았다. 그러자 다들 한마디씩을 주변과 주고받느라 강당 안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웅성거림이 계속되자 방진훈이 한숨을 쉬었다.
‘좀 상황이 애매해졌네.’
제때 바로 왔다면 이렇게까지 반감이 커지지는 않았겠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방진훈이 저들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이만큼을 기다려서 보게 된 사람에게 좋은 감정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원론적으로는 이명환의 말이 틀린 것도 없었다.
영남회와의 충돌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무인과 무인이 싸운다는 것은 목숨을 내놔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피해를 줄인다고 하더라도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그것도 꽤나 큰 단위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일의 명령권자가 본 적도 없는 어린놈이라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이곳은 군대가 아니다. 계급을 통해서 명령권이 확보되는 곳이 아니다.
다들 나름의 유파가 있고, 그 유파들 간의 협의를 통해서 나름의 명령권을 만들어놓은 것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난 놈이 내 머리 위로 올라간다고 하면 좋은 감정이 들 수가 없었다.
“에…….”
뭔가 말을 하려던 방진훈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할까요?”
조심스레 묻자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얼굴이나 보려고 온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도…….”
“딱히 명령할 생각도 없고, 제 말을 들어달라고 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사라는 것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괜한 소리를 하셨네요.”
“……좀 먹힐 줄 알았는데.”
방진훈이 입맛을 다셨다.
강진호야 얼굴만 익히면 그만이라지만, 방진훈의 입장은 그게 아니었다. 방진훈과의 인연을 통해 어설프게 엮여 있는 총회와 강진호의 관계를 좀 더 돈독하게 얽어놓을 필요가 있던 것이다.
‘무리수였나.’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진행했으면 될 일이지만, 영남회와의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방진훈을 조급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이리된 이상 한발 물러서서…….
“그리고 이사진은 실력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자리 아닙니까? 검증도 안 된 사람을 이사진에 들이는 건 좀 그런 것 같습니다.”
방진훈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저 새끼, 이름이 뭐였지?’
공영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가 너무 어린 것 같은데, 이사에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다른 분들이 기분 나빠 할 것 같은데요. 실력이 검증이 되어야 하잖습니까.”
꼭 있다.
세상에는 꼭 있기 마련이다.
적당한 곳에서 멈추지 못하고 한발 더 나가 버리는 인간이 말이다.
방진훈은 살짝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억눌렀다.
“그러니까…… 강진호 씨가 실력이 없어 보여서 인정을 못하겠다?”
“예. 그냥 봐도 비리비리해 보이는데요.”
“그래?”
방진훈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한 번 붙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