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58
#357.
시작하다 (2)
“저, 저를요?”
“그럼?”
되묻는 이명환을 비서가 무뚝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너를 오라고 한 게 뭐가 잘못되었는가’ 하는 눈빛이었다.
‘왜? 나를 오라고 하는 거지?’
덜컥 겁이 났다.
‘좀 과했나.’
순간, 나대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방진훈이면 그런 걸 나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가 방진훈에 대해서 알면 뭘 안다고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저, 저도요?”
공영길도 사색이 된 얼굴로 되물었다.
“뭐라는 거야. 빨리 안 와?”
비서가 짜증을 부렸지만, 공영길도, 이명환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처리반이 해준 이야기가 그들의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처리반 녀석들이 주변과 뭔가를 수군대기 시작하더니, 그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안쓰럽다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보는 눈이 저렇지 않을까?
거의 반쯤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은 눈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한국에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일본의 무인들이라면, 그 실력은 이명환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격차는 그만큼이나 컸으니까.
드러난 세계에서도 국력 차가 배는 나지만, 뒷세계의 차이는 그보다 더 났다. 열 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해도 딱히 반박하기 힘들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무인들을 하나도 아니고, 스물이나 처참하게 죽인 이가 이명환과 공영길이 실력이 어쩌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입장을 바꿔 이명환이 강진호의 상황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이명환을 패 죽여 버렸을 것이다. 적어도 며칠은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었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겁이 덜컥 났다.
‘가, 가면 죽는 거 아닌가?’
방금 전 스물을 죽이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둘쯤 추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말이 스물이지, 사람을 스물이나 죽였으면 그건 인간도 아니다.
거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악마라고 봐야 했다.
“……어, 어디로 가야 합니까?”
“회주실이지. 이 새끼들, 빨리 안 움직여?”
비서가 대놓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강당 안의 상황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명령만 받고 온 그는 이명환과 공영길이 왜 우물쭈물대는지 이해를 못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으면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겠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조차도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탓하고 말고 할 여유도 없었다.
이명환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공영길이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느냐는 눈빛.
‘저 개새끼.’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왜 일을 이렇게 키운단 말인가.
자신이 시작하기는 했지만, 공영길이 막 나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새삼 공영길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공영길을 죽여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명환은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비틀어 버렸을 것이다.
“……가자.”
“가, 가자고?”
“그럼 뭐 어쩌자고?”
“아니, 나는…….”
공영길이 우물쭈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이명환이 한숨을 쉬었다.
‘죽이기야 하겠어?’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괜히 불러 죽이지는 않겠지. 그건 스스로의 위상을 깎아먹는 짓이니까.
‘그런데 스물 죽인 놈이 그걸 신경이나 쓸까?’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상대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욱 이명환을 갑갑하게 만드는 것은, 조금 전까지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놈들이 하나같이 멍멍한 시선으로 그들을 그저 보고만 있다는 것이다.
별일 없을 거라는 입에 발린 위로조차 나오지 않았다. 처리반이 해준 이야기가 그들에게 이 일이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만든 것이다.
‘개새끼들, 좋다고 떠들 때는 언제고.’
그가 반대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저들과 똑같았겠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자 눈이 마주친 이들이 그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씨발.”
대놓고 욕을 입에 담았지만,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들 눈에는 이미 이명환이 반쯤 시체로 보일 텐데, 시체와 말싸움을 할 필요는 없겠지.
이명환이 문을 향해 걸어가자 공영길이 떨떠름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같이 안 가십니까?”
“회주실 몰라?”
“……알죠.”
“내가 너희 길 안내까지 해줘야 돼?”
“아닙니다.”
까칠한 비서의 반응을 겪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오늘 그의 반응이 유달리 껄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명환의 마음이 그만큼 혼란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이명환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야, 이거 어떻게 하냐?”
공영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자 이명환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서 씨발, 입조심 좀 하라고 내가 몇 번을 이야기했냐. 왜 나서서 일을 키워!”
“나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지. 솔직히 좀 만만해 보였잖아.”
“아가리 닥쳐, 찢어버리기 전에.”
“……미안하다.”
공영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빌어먹을.’
화풀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공영길이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자신도 비슷하게 대처를 했을지 모른다.
잘못이야 잘못이지만 공영길은 원래 그런 놈이고, 이명환도 원래 그런 놈이었다. 이렇게 입 털다가 된통 당할 날이 한 번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하필 오늘인 것뿐이다.
‘그리고 그 상대가 하필 그놈인 것뿐이고.’
오늘따라 복도가 더 길게 느껴졌다.
지옥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처럼 말이다.
평소 조명을 많이 밝혀두지 않아 어둑어둑한 복도이다 보니 분위기가 더욱 스산해지는 것 같았다.
“진짤까?”
“뭐가?”
“……스무 명.”
이명환의 가슴이 새삼 답답해져 왔다.
“걔들이 굳이 우리한테 거짓말할 필요가 있냐?”
“없겠지.”
“그렇게 피를 철철 묻히고 와서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오늘 할로윈이냐? 아니면 만우절이야?”
“아니.”
“제발 좀!”
이명환이 고개를 돌려 사납게 노려보자, 공영길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휴…….”
깊게 한숨을 내쉰 이명환이 주먹을 꽉 쥐었다.
‘오버하지 말자.’
별것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아까 전에 밑에 애들 이야기도 취합해서 들려 달라고 했으니, 그런 일환으로 자신과 공영길을 부른 건지도 모른다. 그중에서 의견을 낸 사람은 둘뿐이었으니까.
행복 회로를 최대한 가동하면 그리 결론을 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믿다가 그게 아니었을 때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다 왔네.”
계단을 올라 최상층에 도착하자 회주실로 통하는 커다란 문이 보였다.
평소에는 호기심이 일부러라도 기웃대던 곳인데, 오늘은 저 문이 마치 지옥문처럼 느껴졌다. 짙은 고동색의 나무 문이 사람을 이렇게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이명환이었다.
이명환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문 앞에 멈춰 섰다.
이제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공영길도 사색이 된 얼굴로 서 있을 뿐, 차마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하자.’
이명환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의 뇌리에 강진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상 자체는 조금 차가운 편이지만, 웃으면서 대응하던 강진호가 딱히 감정이 있어서 자신을 불렀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씨발, 사람을 스물이나 처 죽이고 와서 실실 웃고 있던 미친놈이 뭔 짓을 못하겠어.’
그전에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를 생각해 보니,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처리반 말대로라면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을 피떡으로 만들어 죽인 놈이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와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가.
‘빌어먹을.’
손이 덜덜 떨린다.
몸이 통제를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심호흡을 몇 번이나 반복한 이명환이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안쪽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으면 들어와.”
“후우…….”
이명환이 숨을 내뿜었다.
‘죽이기야 하겠냐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라는 느낌으로 문을 확 열었다. 문이 열리자 중앙에 위치한 소파에 앉아 있는 방진훈과 강진호가 보였다.
열려 있는 재떨이와 그 안에 보이는 두 개비의 꽁초.
‘안 좋아.’
아마도 회주실에 도착하고 사이좋게 담배 한 대씩을 피운 모양이었다. 그 말인즉, 저 두 사람이 담배도 같이 피울 만큼 사이가 괜찮다는 뜻이다. 저만한 나이를 무시하고 말이다.
그런 사실이 이명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리가 없었다. 상황이 점점 꼬여간다는 생각을 떠올린 이명환이 머뭇대자 방진훈이 눈을 찌푸렸다.
“왔으면 들어오지, 뭐하고 있어?”
“예? 아…… 예!”
이명환이 떠듬떠듬 대답을 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에 서 있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저기에 앉아야 하는 건가.
평소라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일이 하나하나 다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 방 안에서 그가 취해야 할 정확한 포지션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앉아.”
“……예.”
방진훈이 가리킨 곳에 앉으니 건너편에 강진호가 있었다.
‘왜 또 여기야.’
소리라도 한 번 꽥! 지르고 싶었다. 그만큼이나 가슴에 뭔가가 들어차 꾹 누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커피 한잔할래?”
“예?”
“커피 먹느냐고.”
“아, 아닙니다.”
“거, 뭔 도살장 끌려왔어? 내가 나름 권위주의 타파한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회주실 한 번 들어온다고 이런 식으로 긴장하면 내가 어찌 보이겠어?”
“예?”
이명환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자 방진훈이 한숨을 쉬고는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평소 하는 거 나오는 거죠.”
“와…… 아니라니까요, 진짜. 이 새끼들, 저를 다 만만돌이쯤으로 생각한다니까요. 아까도 보셨잖아요.”
“아는 사람은 아는 거죠.”
“와, 돌아버리겠네. 진짜.”
방진훈이 갑갑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더니, 도끼눈을 뜨고 이명환과 공영길을 노려보았다.
방진훈 나름은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 장난일지 모르겠지만, 막상 그 눈빛을 받는 이명환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이 강진호를 쫓는다.
건너편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겉모습만 보면 막 퇴근한 잘생긴 직장인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먹으면서 여유를 만끽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 사람이 방금 전에 사람을 죽이고 왔다고?’
이제는 누구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혼란스러워하는 이명환의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진훈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부탁할 일이 있어서다.”
“……부탁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아까 보니까 너희가 제일 겁대가리가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말도 싸가지 없게 잘하고, 사람 기분 나쁘게 툭툭 내뱉는 게 아주 인상 깊더라고.”
이명환이 눈을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