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63
#362.
내보이다 (2)
“대가리들 모여.”
방진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파악한 이들의 행동을 재빨랐다.
‘또 시작이네.’
‘아오.’
방진훈이 사람 좋은 거야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총회의 회주라는 자리가 동네 이장도 아니고, 사람 좋다는 이유로 오를 수 있는 자리일 리가 없다.
방진훈의 평소 성격이야 온화한 편이지만, 한 번 꼭지가 돌아버리면 성난 멧돼지가 따로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괜히 열 받은 멧돼지의 성질을 건드려서 피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이 재빠르게 움직여 방진훈을 감쌌다.
“오늘 니들이 제대로 움직여야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 알지?”
“예.”
“조 관리 잘해서 움직여. 어설프게 구는 새끼 있는 조의 조장 새끼는 내가 따로 불러서 면담하게 될 테니까. 내가 오늘 뭔가 실수했다 싶은 새끼는 전투 중에 내가 죽기를 빌어라. 알았어?”
“예!”
“가봐.”
조장중에 하나가 손을 들었다.
“뭐?”
방진훈이 살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조장을 노려보았다. 대체 왜 저렇게 흥분했는지 이해할 수 없고, 저리 열 받은 방진훈과 굳이 말을 섞고 싶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씨발.”
방진훈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뭔가 영문은 모르겠지만, 조장의 말이 방진훈의 짜증나는 부분을 정확하게 찌른 것 같았다.
“일단 가 있어. 금방 다시 소집해서 설명해 줄 테니까. 너희한테 화내는 거 아니니까, 좀 이해하고.”
“예.”
조장들이 물러나자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미치겠네, 진짜.”
전투에 들어갈 이들의 사기를 북돋워주지는 못할망정 이리 감정적으로 화풀이를 하는 것은 우두머리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대처였다.
방진훈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저 또라이 새끼, 진짜.’
방진훈이 이를 갈았다.
그들은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영남회와의 전쟁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는 법이고, 방진훈이 이중걸과의 세력 싸움을 할 때부터 준비해 온 싱크 탱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어떻게 싸워야 피해를 줄이고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을 회주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구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조금 전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가장 핵심적으로 움직여 줘야 할 강진호가 그의 계획을 거부했다. 강진호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든 계획이 무용지물이었다.
그거면 그거대로 이해할 수 있다.
강진호는 그의 아랫사람도 아니고, 그의 말을 반드시 들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그래서 방진훈은 강진호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른 예상 대응을 모두 확립해 두었다.
강진호의 말에 따라서 싸울 수 있는 전력 수십 개를 준비해 둔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입을 연 순간, 방진훈은 그 모든 계획이 날아갔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장 비슷한 계획이 뭐였는지 찾아보고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모든 계획은 그래도 강진호가 상식선에서 움직여 준다는 가정하에 설립된 것이고, 강진호는 그 상식을 거침없이 짓밟아 버렸다.
“제정신이 아니야.”
방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뒤쪽을 슬그머니 돌아보니, 조규민이 얼굴에 ‘나 지금 엄청 열 받아서 제정신 아니니까 건드리지 마라, 이 깡패 새끼들아’라는 얼굴로 담배를 뻑뻑 피워 대고 있었다.
무인들 틈바구니에 낀 일반인이 저리 깽판을 칠 수 있는 패기를 칭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멀쩡하던 일반인을 저리 똘기 넘치게 만들어 버린 강진호를 욕해야 할 것인가.
여하튼 모든 문제가 강진호에게서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들어 버린 당사자는 태연한 얼굴로 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깁니까?”
“……예.”
강진호가 보고 있는 곳으로 불빛들이 보였다.
“저기가 영남회입니다.”
“대놓고 차려놨네요.”
“그게…….”
방진훈이 뭔가 말을 할까 하다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총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위성에서 사진을 찍어 대는 세상인데,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다가 건물을 짓고 숨어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겠네요.”
“적당히 땅값 싼 곳을 사들여서 사유지화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는 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응입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적으로는 위장하구요?”
“예. 총회도 등록은 한국 무도인 총회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전통 무예를 계승하는 이들의 집단인 것처럼 되어 있는 겁니다. 영남회도 똑같죠.”
“아는 사람은 알 것 아니에요?”
“……이 사실이 퍼지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소수의 권력자와 관계자들은 세상에 무인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굳이 그 사실을 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국제 관계도 좀 얽혀 있거든요. 한국에서 그게 밝혀지게 되면 해외에 존재하는 무인들의 존재도 드러나게 되는데……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일본 같은 강대국들은 다들 무인계가 한국보다 크게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삼합회, 야쿠자, 갱?”
“……아뇨. 그들이라기보다는 그들을 조종하는 입장이죠. 여하튼 좀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러네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세상이 어찌 되어 있든 국제 관계가 어떻게 얽혀 있든 간에 그건 강진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지금 그의 신경은 그동안 그를 자극해 왔던 영남회와의 결판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런데…….”
방진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진짜 하실 겁니까?”
방진훈의 목소리는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할 거냐고 묻고 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저의는 지금이라도 좋으니 제발 생각을 돌리라는 것이었다. 그 의미를 모를 강진호가 아니었다.
“네.”
“제가 강진호 씨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있죠.”
“지금 강진호 씨가 하려는 건 그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아시죠?”
“그건 아니죠.”
“하…….”
방진훈이 떨떠름한 얼굴로 바라보자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그리 걱정하실 것 없어요. 처음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처음이 아니라구요?”
“그러니 시킨 일만 잘하시면 됩니다.”
방진훈은 입을 닫아버렸다.
‘말해봐야 소용도 없네.’
고개를 돌려보니 조규민이 ‘그 망할 놈이 한 번 결심한 건 돌릴 방법이 없으니, 설치다 뒈지든 말든 그냥 냅 둬라’라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동안 강진호를 보필하면서 조규민이 받았을 스트레스가 온전히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고생 많았수다.’
“에이, 빌어먹을.”
바닥에다 꽁초를 던진 조규민이 입을 열었다.
“말만 하고 있으면 뭐합니까. 이왕 결정 난 것, 빨리 움직이죠.”
“그래야죠.”
방진훈이 옆에 있는 이사를 불러 말했다.
“계획 알려주고 애들 준비시켜.”
“진짜 그렇게 갑니까?”
“……그래.”
“회주님, 이건 좀…….”
“알아! 아는데, 다른 수가 없으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무척이나 떨떠름하다는 얼굴로 이사가 조장들을 모으기 시작하자 방진훈이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강진호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긴 별이 있네.’
강진호가 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별이 가득한 하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안정을 주는 하늘은 이런 모습이 아니라 매연이 가득해 별빛조차 존재을 드러내지 못하는 검은 하늘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이것도 좋다.
아니, 이걸로 좋다.
이 밤하늘은 그에게 떠올리게 하니까.
그때의 밤을.
그가 적천마존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그 시절의 밤을 말이다.
* * *
“……앞쪽에 도착했습니다.”
“빠르네.”
이현수는 문을 열고 들어온 이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은 아직 모르는 기색입니다.”
“이쪽으로 정보 파악을 다 맡겼는데, 자체적으로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제 혼자 굴리는 정보 조직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놈들이 능력 있으면 우리가 그 고생을 했겠어?”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애들 모아서 아래쪽에 가 있어. 무슨 소리가 들리든 간에 밖으로 나올 생각 하지 말고. 너희 안전은 내가 어떻게든 확보할 테니까.”
“부장님.”
“됐어.”
이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캡슐 커피 메이커 안으로 캡슐을 넣었다.
곧 메이커가 커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방 안으로 진한 커피향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줄을 잘못 서는 것도 죄야.”
“그래도…….”
“아무리 아니라고 한들 저쪽에서 보기에는 내가 이쪽의 핵심으로 보이겠지. 그리고 그게 사실이지. 돌아섰다고는 해도 지금까지 김석일을 도와서 상황을 여기까지 몰고 온 것도 나니까.”
안타까운 시선이 이현수를 향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달리하실 수 없습니까?”
“생각?”
“부장님이 나서주시면 막아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미 저쪽에서 쳐들어올 거라는 걸 다 알고 계셨잖습니까. 대응을 생각하셨을 텐데요. 지금이라도 생각을 돌리시면…….”
“상처밖에 안 남은 영남회를 붙들고 일본 놈들에게 목 잘리는 결말밖에 안 남겠지.”
“…….”
이현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내 목 귀한 줄은 아는 사람이야. 일부러 죽겠다고 설칠 놈이 어딨겠어.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면 발악을 했겠지. 나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정의나 대의 같은 걸로 내 목을 걸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냐. 그런 스타일을 좀 혐오하기도 하고.”
“그렇죠.”
“내가 하는 선택은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더 나은 죽음에 대한 거야.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제 외통수에 몰렸어. 더 이상은 살아날 방법이 없지. 그럼 적어도 상황을 좀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은 거지. 거기에다…….”
이현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김석일 좋은 일은 해주고 싶지 않아. 이미 충분히 해줬으니까.”
“예.”
“그러니까 애들 데리고 피해 있어. 내가 너희는 살려볼 테니까. 안 되도 원망하지 마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원망 안 합니다.”
“가, 이제. 징징대지 말고.”
“……보중하십시오.”
문이 닫히자 이현수가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쯧.”
그의 심정도 딱히 편한 것은 아니었다. 방진훈을 위시로 한 총회의 상류층은 그의 존재를 아주 잘 알고 있고, 이 전쟁이 그들의 승리로 돌아가게 된다면 결코 그를 살려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죽는 것밖에는 남지 않았다.
‘살아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수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그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그 자신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유서나 써볼까 할 때였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이 요동쳤다. 이현수가 기겁을 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야?”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