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68
#367.
증명하다 (2)
“아오, 피곤하다.”
“피곤할 만도 하지. 한 놈이 빠졌는데.”
차에 오르며 앓는 소리를 내는 박유민을 보며 주영기가 틱틱거렸다.
“거참, 그거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 거냐?”
“사장이란 놈이 가게 팽개치고 놀러 다니는데,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게 생겼냐?”
“빤히 놀러 다니는 거 아닌 줄 알면서.”
“끄응.”
주영기가 신경질적으로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리고는 액셀을 밟았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앞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살살 좀 밟아.”
“내 운전 실력 못 믿어?”
“네 운전 실력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차를 못 믿어. 애가 아파서 아주 우는소리를 내는데?”
“……그건 그래.”
컴컴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백미러로 자욱한 매연이 피어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차 좀 바꿔.”
“냅 둬. 아직 잘 굴러가.”
“그러다가 사고 난다.”
“……사고는 무슨.”
주영기가 툴툴대자 박유민이 피식 웃고 말았다.
‘자존심만 세 가지고는.’
나쁜 놈은 아니다.
되레 잔정이 많다는 점을 따져 보면 착한 쪽에 속했다. 은근히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다른 사람이 자기 때문에 상처 입을까를 걱정하는 타입이었다.
살아온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성격 때문이지 그러한 점을 잘 어필하지 못하고 거친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속정은 깊은 녀석이었다.
‘그 속정이 친한 사람들에게만 발휘된다는 게 문제이지만…….’
박유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그러고 보면 다 그러네.’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박유민 자신도 그런 면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있겠지만, 강진호의 주변 사람들은 특히나 그런 경향이 심했다.
이기주의자라기보다는 공동체주의자라고 해야 할까?
나의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신뢰와 정을 보이지만, 그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는 철저하리만큼 무심하고 무감각하다.
강진호의 주변에 그런 이들이 모이는 것인지, 아니면 강진호 때문에 그렇게 동화된 것인지는 조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뭐, 그리 화낼 일도 아니잖아.”
“화내는 거 아냐.”
“그럼?”
“그냥 그런 거 아냐.”
박유민이 가만히 운전을 하고 있는 주영기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삐쳤냐?”
주영기가 순간적으로 핸들을 틀었다.
“우와아아아아!”
“야! 뭐하냐! 야! 으아!”
차가 좌우로 크게 요동을 친다. 테일링이 발생하며 차가 좌로 우로 큰 폭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하냐고!”
“야! 이 미친놈아! 놀랬잖아!”
소리를 빽! 내지른 주영기가 겨우 차체를 안정시키고는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았다.
“와, 십년감수했네. 여기가 차 많은 데였으면 어쩔 뻔했어.”
“……제발 차 좀 바꿔.”
“이건 차 문제가 아냐. 삐치기는 뭘 삐쳐?”
박유민은 확신했다.
‘이놈, 삐쳤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큰일을 겪었을 게 빤한 강진호가 나타나자마자 다시 잠수를 타버린 것 때문에 속이 단단히 상한 모양이었다.
“사람이 좀 대범할 줄도 알아야지.”
“무슨 소리야? 내가 별명이 주대범이다.”
“주소심이 아니라?”
“……너, 걸어서 올래? 내릴래?”
“남자가 쪼잔하게.”
“그런 거 아니라니까!”
소리를 버럭 지른 주영기가 씩씩대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그런 게 아냐, 인마.”
“응?”
주영기가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을 하자, 박유민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영기를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라…… 그 새끼가 보나마나 위험한 일 하고 있을까 봐 그러는 거다.”
“위험한 일?”
“……그래, 인마.”
박유민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주영기를 보았다.
‘말해줘도 모르겠지.’
주영기는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주영기의 입장에서 박유민은 꽤나 신기한 존재였다. 고아로 자라서 나름 세상의 험한 면을 많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강진호에게 어두운 면이 있을 것이라고는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농담으로 광신도라고 하긴 했지만, 요즘은 어쩌면 일부분은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만큼 말이다.
군대에서 겪은 사건 탓에 강진호가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면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영기는 박유민처럼 일방적인 신뢰로 강진호를 믿을 수 없었다.
강진호가 나쁜 놈일까 의심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강진호가 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진호가 위험한 일을 할 게 뭐 있어?”
“없지.”
“그런데 왜 그런 걱정을 해?”
“……그러게나 말이다.”
주영기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말해 뭐하겠어.’
걱정을 할 거면 그 혼자 하면 된다. 괜히 박유민에게 이러쿵저러쿵 떠들어서 걱정을 나눌 필요는 없었다. 걱정이란 것은 나누면 되레 커지는 것이니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음?”
“설사 진호가 위험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응?”
“진호는 안 그래 보여도 엄청 똑똑하거든.”
“……안 그래 보이냐?”
“똑똑하게 생긴 얼굴은 아니잖아.”
“그, 그래.”
이상한 데서 냉정한 면이 있다니까, 이놈.
“여하튼 진호는 똑똑하고 자기한테 피해가 오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녀석이라서 위험한 일은 해도 정말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 거야. 그럴 것 같으면 일 자체를 안 해버리겠지.”
“흐음…….”
나름 일리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주영기도 강진호가 손해를 보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군에서도 그렇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렇고.
그럼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것에 주목한 주영기가 색다른 결론을 찾아냈다.
“아무래도 그게 문제가 아닌갑다.”
“그럼?”
“위험한 일이든 뭐든 나를 빼놓고 뭘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그건 솔직히 나도 좀 그래.”
“아무래도 이번에 그 새끼 돌아오면 잡아놓고 진지하게 이야기 한 번 해야겠다.”
“뭘?”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우리가 친구라면 무슨 일이든 같이하고, 같이 알고 싶다고 말이야. 혼자서 쏙 빠져나가서 뭔가 하고 다니는 꼴을 보니, 배알 뒤틀린다고 말이야.”
“……너 대단하다.”
“왜?”
박유민이 씨익 웃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그걸 진호한테 말할 생각은 못해봤거든. 이건 거의 집착의 영역 아니냐?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한테 할 말 같은데?”
“원래 사나이의 의리는 사랑도 뛰어넘는 거야, 새끼야.”
“……존경한다.”
낄낄대며 웃는 주영기를 보며 박유민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좀 풀린 것 같네.’
박유민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오늘따라 운치 있었다.
‘별일 없는 거지?’
주영기는 자신이 아무 생각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박유민이라고 강진호의 어두운 면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묻지 않는다.
안다고 해서 그들의 관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아야 우정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박유민이 생각하는 우정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때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괜찮은 거지?’
박유민이 달을 바라보며 강진호에게 물었다.
강진호가 있는 곳에도 같은 달이 떠 있을 테니까.
* * *
“……소름 돋네, 진짜.”
방진훈이 벽을 움켜잡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이 콘크리트 벽을 파고들었다. 조금 더 힘이 들어가자 그가 움켜쥔 콘크리트가 뜯겨 나왔다.
“으음…….”
뜯겨 나온 콘크리트를 바닥으로 집어 던진 방진훈이 떨리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이걸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건가.’
처음 강진호가 이 계획을 설명했을 때, 그는 강진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설사 미치지는 않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정신 상태가 아니고서는 결코 저지를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을 승인한 것은 그가 강진호를 막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호가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그때까지 버틸 정도로는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방진훈은 자신의 모든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강진호는 버틸 정도로 충분히 강한 것이 아니라, 혼자서 말 그대로 영남회를 뒤집어엎어 버리고 있었다.
촤아아아악!
피 분수가 뿜어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온다.
‘빌어먹을.’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얼마나 끔찍하냐면, 분명 강진호가 아군이고 영남회가 적군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진호가 악마처럼 보이고 있었다.
영남회와 총회의 뿌리 깊은 반목 탓에 영남회 건물에 폭격이 떨어져 저놈들이 싸그리 죽는다고 해도 박수를 쳐줄 수 있는 방진훈이지만, 지금만큼은 영남회를 동장할 수밖에 없었다.
강진호는 말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양손에 든 검을 쉬지 않고 휘두르며 달려드는 이, 달아나는 이, 엎드려 비는 이, 전의를 상실한 이를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베어 넘기고 있었다.
도망가려는 이는 등이 베였고, 맞서 싸우려 달려드는 이는 두 쪽이 나 바닥을 뒹굴었다.
‘죽이려면 곱게나 좀 죽이든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데 방식의 차이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이 자리로 끌고 와 강진호가 사람을 베어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검으로 사람을 벤다고 하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 긴 붉은 상처가 생기고 입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만 생각하는 이에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 자리에서 삼 일 전에 먹은 것까지 게워내고 말 것이다.
강진호는 마치 과도로 과일을 자르듯이 사람을 잘라내고 있었다.
하늘로 솟구친 피 분수가 바닥을 얼마나 적셨는지, 군데군데 피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바닥이 붉다 못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미쳤어.”
방진훈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미쳤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면에…….
방진훈은 격동하는 심장을 억누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은 단순히 잔인한 광경만은 아니었다.
인간.
무인.
일개 무인이 대한민국 전력의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남회를 홀로 몰아치고 있는 모습이다.
꿈에서조차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처음 무학을 배울 때, 아직 세상을 알고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기 전까지 그려온 훗날의 그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달려들든 결단코 물러서지 않는 무인.
그리고 수를 뛰어넘어 그 자신만으로 모든 것을 관철시켜 버리는 강함.
무인이라면 이 광경에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가 끓는군.’
방진훈이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강진호가 저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곳에서 도망가는 놈들이나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 새삼 처량하게 느껴졌다.
“제길!”
막 그가 바닥으로 뛰어내리려는 찰나, 그의 어깨를 붙잡는 손이 있었다.
“뭐야?”
고개를 돌려보니 조규민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왜요?”
“기다리세요.”
“……예?”
조규민이 가라앉은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다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날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사람 아닙니다. 기다리세요. 곧 끝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