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7
#36.
도움 받다 (5)
“이 자식들이!”
어느새 달려온 학생주임이 몽둥이를 들고 교실 문을 후려쳤다.
쾅쾅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지만, 복도 밖으로 목을 빼꼼 내민 아이들을 모두 집어넣기는 무리였다.
이미 다른 반 학생들까지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던 것이다.
“고개 안 집어넣어?”
학생주임 공익현이 소리를 버럭 질러 댔지만,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되레 이제야 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아챈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기까지 했다.
“이놈들이!”
공익현은 당황했지만, 이사장은 침착했다.
“그 일은 그 일이다. 이번 일은 다른 일이지. 성적 조작을 넘어가는 학교가 어디 있느냐?”
“듣고 보니 성적 조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해 보입니다. 그리고 성적 조작이라 하더라도 진호의 잘못이 커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일로 학생을 퇴학시키는 학교는 어디 있습니까?”
박유민의 대답에 이사장이 박유민을 노려보았다.
“너, 내 말을 잊은 모양인데…….”
박유민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말 잘 들어봤자 도와줄 생각도 없잖아요.”
“…….”
“그럴 바에 할 말이라도 하고 당하겠습니다. 그럼 덜 억울할 테니까요.”
아이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그중 한세연도 있었다.
“안 들어가!”
공익현이 위협적으로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한세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희 교문 밖에서 시위할 겁니다?”
한세연의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호응이 터져 나왔다.
“맞아!”
“해도 너무하네!”
교장과 학생주임이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진호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가볍게 웃었다.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만은 볼 수 없다.
박유민과 정인규, 한세연은 분명 그를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학교에 쌓아왔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명분이 있고, 분위기를 탔다.
그럼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은 무섭게 달아오르기 마련이었다.
“들어가.”
학생주임이 낮게 말했다.
“선생님도…….”
쾅!
학생주임의 방망이가 거칠게 교실 벽을 때렸다.
“목 내밀고 있는 놈들, 밖에 나와 있는 놈들, 휴대폰 들고 있는 놈들……. 지금부터 3초 준다. 어디 한 번 3초 뒤에도 그러고 있는지 보자.”
학생들이 떨떠름한 눈으로 학생주임 피걸레를 바라보았다.
무시하기에는 그가 쌓아올린 악명이 너무 컸다.
“하나.”
몇몇 학생들이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둘.”
기세를 올렸던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셋.”
마지막에 남아 있는 것은 결국 강진호와 박유민뿐이었다.
한세연은 교실 문에 몸을 반쯤 걸친 채 강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사장은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너, 이름이 뭐지?”
“박유민입니다.”
“그래, 박유민이라고 했지.”
이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피식 웃었다.
“해봐.”
“……예?”
“네가 말한 대로 해보라고. 제소할 일 있으면 제소하고, 언론에 퍼뜨릴 거면 퍼뜨려 봐.”
박유민의 얼굴이 굳었다.
“어린놈이 세상을 너무 쉽게 보는군. 내가 지금까지 이 재단을 굴리면서 그 정도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네가 그러면 뭐가 바뀔 것 같아?”
“…….”
“어린놈이 이사장을 협박해? 교장, 이놈도 처벌해.”
“예, 알겠습니다.”
강진호는 이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 짧은 소요로 무언가가 바뀔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쉽게 들끓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제약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저항하기에 이사장 최명길이 쌓아 올린 입지가 너무 거대했다.
세상의 단맛, 쓴맛을 다 본, 노회한 여우를 토끼들이 뭉친다고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언론이나 교육청 제소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이 정도 사건은 화제가 되기도 어려웠다. 설령 화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최명길이 손을 써 묻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기사화시켰을 때의 이득과 최명길이 주는 돈을 받았을 때의 이득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 쪽이 나을지는 자명했다.
참 언론이라는 게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강진호가 보아온 바에 의하면 언론은 이득을 추구하는 곳이지, 결코 정보를 알리는 것에 의의를 두는 곳이 아니었다.
“못할 것 같으신가요?”
강진호는 박유민을 잡았다.
“됐어.”
“진호야?”
박유민이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만하고 들어가.”
“싫다.”
“들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
박유민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강진호는 이사장 최명길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이제 가봐도 됩니까?”
이사장이 교장을 바라보았다.
“자퇴라면 자퇴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퇴학이면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일단 어느 쪽이든 보호자가 와야…….”
이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호자를 부르면 되겠네.”
“지금 일하는 중입니다.”
최명길이 웃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곧 일이 없어질 테니까.”
강진호가 이사장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최명길은 유들유들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의 눈이 서서히 살기가 실렸다.
“헉!”
이사장이 헛바람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무슨 눈이…….’
이사장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눈을 돌려 버렸다.
‘참아야 해.’
눈이 많다.
과거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강진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올라왔다.
참아내지 않았다면 그도 모르게 이사장을 공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강진호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몸을 돌렸다.
지금은 낮이다. 낮은 그의 시간이 아니다.
밤이 오고 나서 지금의 울분은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아내면 된다.
이사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교장을 바라보았다.
“뭐해! 전화하지 않고!”
“예? 예!”
강진호가 그들을 만류했다.
“내가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만두세요.”
“전화해!”
“그만두라니까요!”
이사장의 득의한 표정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야기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러고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속삭였다.
“이건 시작이야. 여기서 끝날 것 같은가?”
강진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참을 것이다. 참아야만 한다.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 건가.
그때였다.
“교, 교장 선생님!”
복도 끝에서 누군가 전력으로 달려왔다.
교장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나, 나와보셔야겠습니다.”
“지금 바쁜 것 안 보이나?”
“급한 일입니다.”
“급하다니?”
“바, 바깥을 보세요! 운동장을 보시라구요.”
교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창가로 다가가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저, 저게 뭐야?”
학교 본관 앞에 검은색 세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냥 세단도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최고급인 세단이 운동장에 줄지어 서 있었다.
최명길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가 온 거야? 감사라도 나왔어? 아니, 감사 차량이 저럴 리는 없고.”
“화, 황정후 회장님이 오셨습니다.”
“뭐?”
“재경 그룹 회장님이 오셨다는 말입니다!”
이사장이 기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사람이 여길 왜!”
그때, 복도 끝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내 손주 보러 오는 것도 허락 맡고 와야 하는 건가?”
뚜벅뚜벅.
구둣발이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
황정후 회장을 필두로 경호원과 비서진들이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이사장은 기겁한 얼굴로 달려 나갔다.
“회장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정후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곁에 있는 백영기에게 말했다.
“내가 이 작자를 본 적이 있었나?”
백영기는 황정후를 바라볼 때와 전혀 다를 눈으로 최명길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무리 이사들 사이에서 무시 받았다고는 하나 그 역시 재경 그룹의 이사. 한낱 재단의 이사장과는 그 급이 다른 사람이었다.
“재단 이사장 모임에 몇 번 나가셨지 않습니까? 기억 못하실 만도 하지만요.”
“그래?”
황정후는 이사장 최명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 손자분이 저희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언질이라도 주시지그러셨습니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몇 학년 몇 반입니까?‘
“그럴 것 없네.”
“예?”
“저기 나와 있구만.”
최명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나와 있다고?
지금 복도에 나와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강진호.
황정후는 강진호를 보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었구나.”
황정후는 이사장을 무시하고 강진호에게 다가갔다.
강진호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만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곤란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와봤네. 그리고 학교로 가져다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강진호는 황정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럼 그것만 처리하고 갈 것이지, 손자는 무슨 놈의 손자란 말인가.
강진호의 팔 대 조상까지 찾아 올라가도 황정후와는 일 푼의 관계도 없었다.
황정후는 갑자기 껄껄 웃더니 강진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래,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고?”
“예.”
강진호는 일단 이 우스운 연극에 동참해 주기로 했다.
여기서 발을 빼버리기에는 황정후가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
“이사장.”
“예? 예! 회장님.”
황정후는 웃음기 띤 얼굴로 최명길을 바라보았다.
“듣자하니 우리 손자가 신세를 좀 졌다던데…….”
“아니, 그게…….”
“이 황정후의 손자를 그리 귀하게 대접해 주셨다는데, 내가 어찌 보답을 안 할 수 있겠어?”
이사장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그는 권력과 재력으로 다른 이들을 누르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권력과 재력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힘 따위는 황정후와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태양 앞의 반딧불에 불과했다.
그가 언론에 돈을 주어 입막음을 시켜야 한다면, 황정후는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언론이 그의 눈치를 보는 수준인 것이다.
황정후가 마음먹는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다.
“최명길이라고 했나?”
“……예, 회장님.”
“그 쥐톨만 한 힘을 믿고 제멋대로 살아왔더군. 그 나이가 되어서도 눈이 썩어 있으면 할 말 다 한 거지. 이제 대가를 치러야지.”
“회, 회장님, 살려주십시오!”
“누가 죽인다고 했나? 난 그런 사람이 아냐. 조규민.”
“예, 회장님.”
“관련 자료는?”
“검찰에 넘겼습니다.”
“교육청이 아니라?”
“아무리 감사팀이 관련 사안을 조사한다고는 하지만, 범죄는 경찰이나 검찰이 맡아야 하는 법이지요. 검찰에 넘기며 회장님이 주시하시는 사건이니 특별히 자세히 조사해 주길 바란다고 말해두었습니다.”
“그래?”
황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군.”
“회, 회장님!”
최명길은 필사적으로 황정후를 찾았다.
사람들의 눈이 있든 말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기세였다.
하지만 황정후는 너무도 차가운 눈으로 최명길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천둥 같은 호통이 떨어져 내렸다.
“감히 네가 내 손자를 건드리고도 무사하길 바라?”
최명길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