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70
#369.
증명하다 (4)
“저…… 회주님?”
“왜?”
“쟤들을 어떻게 제압합니까?”
“응?”
“……쟤들을 어떻게 제압해서 구석에 몰아넣느냐구요. 한 대씩 패서 기절시킬 수도 없고.”
“아!”
그제야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한 방진훈이 조금은 떨떠름한 시선으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영남회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냥 저리로 가라고 해.”
“그걸로 괜찮겠습니까? 저놈들이 일시에 반항이라도 한다면 난리가 날 텐데요.”
“그럼 뭐 방법 있냐?”
“……방법은 없죠.”
“그리고 네 눈에는 쟤들이 반항할 것으로 보이냐?”
“아뇨.”
“그런데 뭘 물어봐, 이 새끼야!”
성질을 부리는 방진훈의 모습에 찔끔해 돌아서는 놈이 ‘그래도 보고는 해야지, 씨발’이라고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확연하게 들려왔지만, 방진훈은 그를 잡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잡을 힘도 없었다.
‘이게…… 씨발.’
방진훈은 자꾸만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머릿속에서 해석이 되지 않았다.
장내는 여전히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박살이 나버린 영남회도, 그 모습을 지켜본 총회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정작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강진호이건만, 강진호는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고, 남아 있는 이들만이 강진호의 잔재가 잔존해 있는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거참, 미치겠네.”
대승이다.
아니, 이건 대승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랐다. 전쟁으로 따지자면, 돌격하던 장수가 돌부리에 걸려 쓰러져 죽어버리고 남은 이들이 그냥 항복을 해버린 상황이었다.
이만한 전력을 상대로 작은 피해 하나 없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저 시체들은…….”
“아니! 좀 알아서 하자! 알아서! 나 지금 너희가 한 거 하나하나 가지고 꼬투리 잡아서 개아리 칠 만큼 정신 있는 상태 아니니까, 알아서 기지 말고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하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방진훈이 노화를 뿜어내자 찔끔한 이들이 그의 주변에서 슬금슬금 멀어졌다.
괜한 짜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방진훈이 왜 저리 화를 내는지 이해 못할 사람은 없었다.
그들 역시 찝찝함이 가시지를 않는데 방진훈은 오죽하겠는가.
방진훈은 혼자서 한참이나 씩씩거렸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지는 그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다만, 오늘 강진호가 날뛰는 모습을 보고 나자 후유증처럼 답답함이 밀려왔다.
‘정신 차려야지.’
답답함은 답답함이고, 그는 한 세력을 책임지는 회주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대충은 지시를 내려놓았다 생각한 방진훈은 지금 가장 시급하다 싶은 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정문.
이제는 바스라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그 정문 바로 앞에 한 사내가 주저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함이 사무치게 밀려왔다.
“야, 이명환이.”
이명환의 고개가 방진훈 쪽을 향했다.
넋이 나간 듯한 그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무슨 짓을 해버린 건가’ 하는 후회가 든다.
“미안하다, 야.”
아마 오늘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자신이 아니라 이명환일 것이다. 강진호가 날뛰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을 테니까.
“정신 차려, 인마.”
곱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화가 자꾸 그의 입을 험하게 만들고 있었다. 몇 번 입맛을 다신 방진훈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이명환이 힘없이 입을 열었다.
“……보셨어요?”
“봤지.”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요?”
“그러게 말이다.”
방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명환은 아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완전히 혼이 빠져 버렸다.
“나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갈 줄은 몰랐다.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너를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네?”
이명환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여하튼 미안하다.”
“아뇨, 회주님이 미안하실 건 없죠. 저야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데.”
“고마워?”
이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누가 이런 걸 옆에서 보겠어요.”
“……그건 그렇지.”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아요. 진짜…… 와, 그건 진짜…….”
이명환의 눈이 몽롱해졌다.
그 모습을 보던 방진훈이 이명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무슨 말인지는 알았으니까, 저쪽으로 가라. 애들한테 따뜻한 거 좀 준비하라고 했으니까 가서 마시고 나서 쉬면 좀 나을 거다.”
“……예, 회주님.”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명환이 비틀거리며 걷다가 고개를 돌려 방진훈을 불렀다.
“회주님.”
“왜?”
“앞으로도 저는 강진호 씨 옆에 붙어 있는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다. 왜? 빼주랴?”
“아뇨.”
이명환의 눈에 결연한 의지가 피어났다.
“죽어도 붙어 있고 싶습니다.”
“변태 같은 새끼.”
“꼭 제가 보필하게 해주세요. 저 진짜 잘할 수 있습니다.”
“알았으니 꺼져, 새끼야!”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돌리는 이명환을 보며 방진훈이 혀를 찼다.
‘저 간신배 같은 새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대응이다. 오늘 강진호의 모습을 본 이라면 누구라도 강진호가 앞으로 총회와 영남회를 발아래 둘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그 얼굴을 익히는 자리와 그동안의 고심이 무슨 의미였던가를 고뇌하게 될 정도로 강진호는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만으로 모두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감을 그보다 더 강렬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박아 넣었다.
그러니 누구도 감히 강진호에게 대항하지 못할 것이고, 모두가 자연스레 그의 영향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굳이 지위와 자리를 마련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한국 무인계의 지배자 자리를 굳혀 버린 강진호였다.
‘그리고 거기엔 내가 굽실대는 모습도 영향을 주겠지.’
총회의 회주라는 그가 강진호가 부르자마자 사단장 만난 이등병처럼 부동자세를 취해 버렸으니,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강진호와 방진훈 사이의 상하 관계가 어찌 되는지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의아해하지 않고, 누구도 방진훈에게 사정을 물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의 강진호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무런 지위도 없이 방진훈의 상위 포지션을 손에 넣고 있던 강진호가 제 손으로 박살을 내버린 영남회의 소유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누가 반발할 수 있겠는가.
방진훈은 고개를 돌려 영남회의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넋이 빠진 얼굴이 된 이들이 풀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 총회의 무인들이 이끄는 대로 비척비척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껏 익힌 무학은 다 뭐였던 거지?’
같은 무학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 나니 회의감이 몰려온다.
‘이대로는 안 돼.’
한국의 무인계가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일본도, 중국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압력을 이겨내려면 이런 오합지졸들로는 무리였다.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강진호와 대책을 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진훈이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남겨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 강진호는 곧 김석일을 찾아낼 것이다.
이제 강진호를 만나게 될 김석일을 생각하며, 방진훈은 가만히 눈을 감고 김석일의 명복을 빌었다.
* * *
강진호는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조금 과했군.’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기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열기가 가라앉고 나자 급격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예전의 하던 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니 그게 문제였다.
여기는 그가 있던 중원이 아니다.
이곳은 21세기의 대한민국이고, 아무리 무인계의 무인들이 일반인에 비해서는 폭력에 면역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한참 초월한 폭력의 세례가 쏟아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건 강진호가 여전히 적천마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부족해.’
강진호는 갈증을 느꼈다.
무를 억제하는 것은 그만뒀다. 그리고 그가 무를 받아들이겠다고 작정하자, 지금껏 억눌려 있던 것들이 폭발하듯 육체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외기를 받아들여 내기로 전환하고, 근육의 질을 바꾼다.
뼈는 더 단단해지고, 육체는 더없이 무학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해 갔다.
과거의 이들이 환골탈태라 부르던 것.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을 새로이 바꾸는 환골탈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미약하나마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예전의 무위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이 세계에서는 과도하다고 할 만한 힘이 모였고, 덕분에 간만에 제멋대로 날뛸 수 있었다.
“후우우웁.”
하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진정하지 않고 있었다.
더 필요하다.
피가, 폭력이, 그리고 분노가…….
‘부족해.’
이 갈증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다. 이 세계로 돌아와 본성을 억누른 반작용 때문인지 나날이 갈증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이 앞에 있으니까.
그의 갈증을 풀어줄 피가 말이다.
다른 이의 피로는 안 된다. 그들은 강진호와 김석일의 사이에 휘말려 버린 가여운 존재에 불과하니까.
감히 그를 노리고 그의 가족을 노리고, 그의 인생을 흙발로 짓밟으려 한 이가 이 안에 있다.
강진호는 가만히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의 것이 아닌 타인의 피에서 비릿한 쇠 향이 났다. 익숙하되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피를 느끼며 강진호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었다.
스르르릉.
그러면서 적루가 뽑혀 나온다.
적루와 청루를 모두 뽑아 손에 든 강진호가 앞으로 전진했다.
쿠릉!
그 순간,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희뿌연 흙먼지 사이로 한 사내가 기다란 쇠꼬챙이로 강진호를 찔러왔다.
파아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강진호를 노리던 이가 반쪽으로 갈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무표정한 얼굴의 강진호가 걸음을 옮겼다.
복도 앞쪽.
그리고 뒤쪽.
천장 위까지.
피부가 따끔따끔해 온다.
이 세계로 돌아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살기였다.
“그래야지.”
강진호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사실 조금 싱거웠잖아?
그게 전부는 아니었겠지?
뱀 같은 놈이 그런 평범한 이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길 리가 없지.
김석일 같은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강진호였다. 그런 인간들은 결코 드러난 전력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킬 전력은 꽁꽁 숨겨둘 놈이었다.
그래. 외도(外道)처럼 말이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살기 사이로 은은한 마기의 향(香)을 느낀 강진호가 기껍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부족해.’
아직은 부족하다.
피도, 죽음도 아직 그는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그럼 이들은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바닥에 구멍이 난 물통처럼 채워질 만하면 꺼져 버리는, 그의 끝없는 갈증을 말이다.
“자, 시작해 보자.”
강진호가 두 눈으로 붉은 안광을 줄기줄기 흘려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건물 안에서 마존이 포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