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71
#370.
증명하다 (5)
쇄애애액!
‘강전?’
한 뼘 정도 되는 짧은 화살들이 새파란 내기를 싣고 강진호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매우 합리적인 공격이다.
개방되어 있는 공간에서라면 몰라도, 몸을 피할 곳이 그리 마땅치 않은 이곳에서는 저런 공격이 빛을 발한다.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카카카캉!
강진호가 청루와 적루를 벼락처럼 휘둘렀다.
강전이 사납게 날아들었지만, 강진호는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날아드는 강전을 청루와 적으로 일일이 하나하나 튕겨내는 것으로 모조리 날려 버린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속도를 높였다.
쾅! 쾅! 쾅!
한 발, 한 발이 바닥을 찧을 때마다 바닥이 움푹움푹 꺼지면서 커다란 발자국을 만들어낸다.
내공이 잔뜩 실린 다리가 건물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확실했다. 한 번 바닥을 찰 때마다 거의 5미터씩 전진한 강진호는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로 앞으로, 또 앞으로 돌진했다.
“흡!”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달려든 강진호에 놀랐는지,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파아아앙!
양손에 강전을 들고 있던 이가 급격하게 자신의 앞에 나타나 버린 강진호를 보고는 기겁을 하여 양손을 떨쳤다.
쇄액!
바로 앞에서 얼굴로 쏘아진 강전.
강진호가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핏.
얕은 파공음과 함께 강진호의 볼이 길게 갈린다.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전은 강진호의 피부를 아주 간단하게 갈라 버렸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고개만을 꺾어 공격을 피해낸 강진호가 적루로 사내의 목을 그대로 그어버렸다.
“꺼어억!”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과 함께 사내가 목을 움켜잡는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
강진호가 다리를 들어 사내의 무릎을 그대로 짓밟았다.
우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무릎이 거꾸로 꺾인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사내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하지만 그게 끝일 리가 없었다.
쾅! 쾅! 쾅!
세 번에 발차기.
그리고 세 번의 폭음.
첫 번째 발차기는 골반뼈를 으스러뜨렸고, 두 번째 발차기는 내장을 모두 터뜨려 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 발차기는 오른쪽 어깨를 짓이겨 버렸다.
사내의 입이 딱 벌어진다.
너무도 큰 고통 앞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사내의 목으로 피가 솟구쳤다.
강진호는 사내와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내 몸에 상처를 낸 것을 칭찬하는 의미로…… 살려주지.”
“끄으으윽.”
사내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살려준다고?
이 꼴로?
무릎이 꺾이고, 골반뼈가 박살 나고, 내장이 모두 터졌다. 거기에 기도가 잘려 숨을 쉬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무인이기에 살아 있는 것이지, 일반인이라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악마.’
숨통을 끊어주는 것이 차라리 자비다. 그럼 고통이라도 덜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비릿한 웃음을 남긴 채 사내를 두고 걸어가 버렸다.
복도에 남겨진 그는 지나가는 동료라도 자신의 숨통을 끊어주기를 기다렸지만, 다급한 얼굴의 동료들마저 그를 남겨두고 강진호의 뒤를 쫓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내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끄으으윽!:”
“아아악!”
비명은 울려 퍼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그것이 텅텅 비어버린 건물 안이라면 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넓게 퍼져 나가고 만다.
김석일은 새삼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총회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옥상으로 올라간 그가 본 것은 마치 악귀와 같은 모습으로 그의 수하들을 학살하는 강진호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김석일은 부하들이 강진호를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성적으로는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몇 천이나 되는 영남회를 모두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그 광경을 본 이들은 계산이고 나발이고 모두 날려 버리고 당장 달아날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김석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광경을 본 그가 한 것은 친위대를 건물 곳곳에 배치하고 나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회장실에 틀어박히는 일이었다.
절반의 확률.
그가 손수 키워낸 친위대라면 설사 자신이 직접 상대한다고 해도 1할의 승률을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이런 어두운 건물 안처럼 좁고 음습한 곳이라면, 승률은 다시 반 이상 깎여 나갈 것이다.
그러니 안심해야 했다.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끄아아아아악!”
조용한 침묵이 가득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끔찍한 남자의 비명 소리는 듣는 이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비명이 점점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린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미쳐 버렸을 것이다.
김석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필사적으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몇 개비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나서야 겨우 담배를 입에 문 김석일이 힘겹게 불을 붙였다.
어쩌면 이 담배가…….
“제길!”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한 상상을 애써 떨쳐 낸 김석일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버린 걸까?
아무리 복기를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어디선가 일이 크게 틀어졌는데, 그게 어딘지를 도통 체크할 수가 없다.
이현수의 배신을 예상하지 못한 것?
이현수에게 너무 과도한 권한을 준 것?
총회에 세운 계략이 수포로 돌아간 것?
그게 아니라면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총회와 대립을 시작한 것?
아니, 아니다.
따지자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중국의 자본을 받아들인 대가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쿠웅!
밖에서 들려온 커다란 소음에 김석일의 몸이 반쯤 튀어올랐다.
“으…….”
그 커다란 소음은 건너편 벽에서 울렸다.
그렇다면…….
와 있다.
이미 거의 도착한 것이다.
강진호라는 이름을 가진 사신이 이미 그를 향해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이다.
김석일은 눈을 감았다.
‘난 영남회의 회주다.’
이미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추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석일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천천히 열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활짝 열리고, 그 안으로 시커먼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자가 아니었다.
피가 말라 붙다 못해 바디 페인팅처럼 굳어 전신이 검게 변해 버린 모습으로 그가 걸어 들어왔다.
‘형이상학적이군.’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사신의 모습은 다 다르겠지만, 이런 형태의 사신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저 모습은 사신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폭력적이고, 야만스러웠다.
신(神)이라는 글자가 가진 신성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
그야말로 야만의 집합체였다.
“후우우우…….”
낮은 숨소리가 사신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 모습만은 너무도 완벽했다.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신의 모습을 표현한다면 그 이상의 모습은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붉은 눈.
마치 어둠 속에서 불빛을 켠 듯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이 김석일을 쫓았다. 그런 후에 드러나는 새하얀 이.
그저 바라보고 웃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이리 떨리게 만들 수 있는 이는 온 세상을 다 뒤져 봐도 저 사람뿐일 것이다.
“오랜만이군.”
“……그렇지.”
강진호라는 이름을 가진 사신이 건네는 인사에 김석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구면인 사이다.
“흠…….”
강진호가 주머니로 손을 넣어 담뱃갑을 꺼냈다. 하지만 담뱃갑을 연 강진호의 눈이 찌푸려졌다. 피로 완전히 젖어 도저히 피울 수 없는 몰골이 되어버린 담배가 그 안에 있었다.
“한 대 하겠나?”
김석일이 자신의 담배를 내밀자, 강진호가 가만히 담배를 바라보다 받아 들었다.
“고맙군.”
“별말씀을.”
강진호는 담배를 입에 물고는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김석일의 건너편에 앉아 자연스레 등을 기댔다.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는 강진호를 보며 김석일이 입을 열었다.
“모두 죽었나?”
“안에 있는 놈들은.”
“밖에는?”
“대부분 살았지.”
김석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줘서 고맙다고 해야겠군.”
“아니.”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딱히 고마워하지도 않는 놈에게 공치사를 듣고 싶지는 않아.”
“큭큭큭, 예리하군.”
김석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있는 수하들이 살았든 죽었든 그건 김석일과는 딱히 관계가 없었다. 그는 밖에 있는 모두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 하나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스타일이니까.
“하나 물어도 될까?”
“그러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강진호가 가만히 김석일을 바라보았다.
김석일은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영남회야! 영남회란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너 혼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거지?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는 말이야!”
마지막 김석일의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내가 평생을 키워낸 단체가 어떻게 너 하나에게 무너질 수가 있는 거지? 차라리 총회가 함께 공격했다면 납득하겠다.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대한민국 최대의 단체인 영남회가 어떻게 너 하나를 당하지 못해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거지? 어떻게!”
비명과도 가까운 김석일의 울부짖음에도 강진호는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담배를 빨고 연기를 내뿜은 강진호가 되레 물었다.
“왜 이해를 못하겠다는 거지?”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는 건가?”
김석일의 얼굴을 본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 쪽이야.”
“……뭐?”
“영남회가 뭐 그리 대단한 곳이라고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거지?”
“…….”
김석일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유는 간단해. 내가 강하고, 너희가 약하기 때문이지.”
김석일의 얼굴이 허탈함으로 물들었다.
그래.
그 이상의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진짜 이유는 하나뿐이니까.
강진호가 영남회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강했다.
그게 유일한 이유였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영혼이 빠져 버린 듯한 김석일의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강진호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더니,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고 있잖아?”
그의 얼굴에 어린 비웃음이 김석일을 서글프게 만들었다.
이자는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영남회도, 그가 영남회라는 단체를 이렇게 키워왔다는 자부심도.
그리고 이제는 그의 목숨마저 앗아갈 것이다.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강진호가 테이블을 넘어 김석일에게 다가와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거대한 중장비가 목을 조여오는 것 같은 충격에 김석일이 눈을 부릅떴다.
김석일의 목을 잡아 들어 올린 강진호가 가만히 끌어당겨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날 건드렸을 때부터 네 운명은 이미 결정 난 거야.”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모든 이유는 명확하고 간결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를 가진 이가 김석일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나를 건드린 대가는 커. 그리고 내 가족을 건드린 대가는 더 크지.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너는 결코 쉽게 죽지 못할 테니까.”
마귀의 손이 뻗어오는 것을 보며 김석일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을 수밖에 없다. 그게 김석일의 불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