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87
#386.
훈련하다 (1)
‘저 남자라고?’
한은솔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그가 예상하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게 뭐라고 내가 자존심이 상하지?’
한은솔이 아무리 최연하에게 심심하면 데굴데굴 굴려진다고 해도 그는 엄연히 최연하의 매니저다.
매니저에게 있어서 자신이 담당하는 연예인은 자신의 명함이나 다름없다. 명함이고, 분신이고, 모든 것이다.
최연하가 어떤 위상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의 위상도 달라지는 것이고, 최연하가 어떤 대접을 받느냐에 따라 그의 대접도 달라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한은솔은 적어도 최연하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여자가 되기를 바랐고, 최고의 주가를 올리기를 바랐다.
그럼 그런 최연하의 남자가 되려면 어때야 하는가.
적어도 세가지는 충족해야 한다.
돈, 명예, 외모.
이건 기본 베이스고, 거기에 추가로 스타일이 좋아야 하고, 성격도 좋아야 하며, 유머 감각도 있으면 좋다. 거기에 넓은 이해심은 기본이다.
‘아, 이게 그런거구나.’
뜬금없이 보육원 입구에서 시어머니가 왜 며느리들을 항상 못마땅해하는가를 깨닫게 된 한은솔이 두 눈을 부릅뜨고 사내의 모습을 다시 훑었다.
“저 사람이라고요?”
“응. 왜?”
“아니, 그게…….”
한은솔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나, 뭐 직거래 나오셨어요? 중고 거래?”
“뭔 소리야?”
“아니, 대체 무슨 약속인데…….”
저러고 나오냐고! 저러고!
어느 미친놈이 최연하를 만나러 나오는 자리에 목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입고 닳아 빠진 운동화를 신고 나오냐는 말이다! 대체!
“와, 진짜…….”
이건 그의 연예인에 대한 무시였다. 이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센스가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성의가 없는 것 아닌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차 대.”
“네?”
“늦었어. 얼른 내려야 돼. 차 대고 빠져. 나중에 내가 연락할 테니까.”
“아, 아니죠, 누나.”
한은솔이 조금 당황했다.
“제가 이대로 빠지면 안 돼요. 그럼 누나가 개인 일정 보는데 매니저 대동하고 나온, 개념 없는 여자로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 그래?”
그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게 좋아요. 나오기는 나왔는데, 내가 너한테 시간을 좀 내주는 거다. 나는 원래 좀 바쁜 사람이다.”
“안 돼. 바쁘면 가라고 한다고.”
“…….”
이거 실화냐?
대체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한은솔이 더듬거리며 다음 계획을 내놓았다.
“그, 그럼 스케줄 하다가 이리로 바로 퇴근했다고 해요.”
“아까 늦잠 잤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뭔가 외통수에 몰린 한은솔을 보더니, 최연하가 혀를 찼다.
“그럼 내려서 그냥 인사하고 가.”
“왜, 왜 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라구요?”
“그런 거 안 물어봐.”
“네? 안 물어요?”
“그래. 너한테 관심 없어. 나한테도 관심이 없는데, 너한테 무슨 관심이 있겠냐.”
“헐…….”
저 새끼는 외계인인가?
왜 최연하한테 관심이 없지?
물론 사람이라는 것은 선호하는 타입이 있고, 나름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는 법이다. 수많은 미녀 연예인들 중 최연하가 제일 예쁘다고 믿는 한은솔이지만, 최연하 같은 타입이 본인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사람도 있겠지. 물론!
하지만 그건 그냥 TV에서 볼 때 이야기고.
실제로 자기 눈앞에서 최연하를 보면 스타일이고 개뿔이고 닥치고 최연하를 외치게 된다.
이만큼이나 그를 고생시키는 성격 막장녀에게서 버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그냥 얼굴만 봐도 정화되기 때문이라는 걸 부정하지 못하는 한은솔이 아닌가.
“빨리 세워!”
“아, 예!”
한은솔이 차를 대자 최연하가 조금은 느릿하게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엄청나게 초조해하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그리 바쁘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는 손동작이었다.
‘과연 우리 누나.’
연기 짬밥 십 년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일상에서도 자연히 묻어나는 저 연기력을 보라.
최연하가 내리는 것을 확인한 한은솔도 재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어디 한 번 이 요망한 놈의 얼굴 한 번 보자.
강진호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최연하가 다가오자 고개를 슬쩍 들었다.
‘헐?’
뭐야, 저거?
광채가 나는 거 같은데?
뭐야? 사람이 왜 저리 생겼어?
물론, 물론…….
강진호의 얼굴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잘생겼다,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워낙에 잘생긴 얼굴에다가 풀메이크업을 해서 그냥 보기만 해도 어이없는 남자들이 떼로 굴러다니는 곳이 연예계 아닌가.
그런데 저건 뭐라고 해야 할까…….
‘원판이 뭐 저래?’
쟤는 안 꾸몄다고.
메이크업도 안 했고, 왁싱도 안 되어 있고, 뭔가 관리라고는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 얼굴인데, 저 얼굴로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라는 소리다.
‘아, 잠깐만?’
저 인간, 어디서…….
“강진호?”
한은솔이 입을 쩌억 벌렸다.
‘저, 저거, 저번에 드라마 나온 그 양반이잖아. 누나 상대역으로 나와서 발칵 뒤집어놨던.’
강한 임팩트만큼이나 빠르게 잊혀지긴 했지만, 당시의 임팩트는 한은솔마저도 강렬하게 기억에 새겨져 있었다.
최연하가 저 인간을 영입해서 배우로 굴려야 한다고 회사를 반쯤 뒤집어놓은 일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그런데 왜 저 사람이 여기에 있지?
“기다리셨죠?”
“아뇨.”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빨리 오셨네요.”
“아니에요. 늦었죠.”
“네, 그럼.”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눈을 찌푸렸다.
“차 안 몰고 오셨어요?”
“네? 아, 스케줄이……. 진호 씨 차는요?”
“어…….”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영기가 타고 갔는데.”
“강진호 씨 차를 왜 주영기 씨가 타고 가요?”
“애들 트레이닝 좀 시키려는데, 여기는 장소가 좀 협소해서 멀리 갔거든요. 그런데 버스가 없어서 이 차, 저 차 다 동원하다 보니…….”
“아, 그러셨구나. 그래서 제 차 타고 가려고 했던 거예요?”
“……네, 그랬는데…….”
분위기가 약간 미묘해졌다.
‘망했다.’
한은솔은 최연하가 슬쩍 자신을 돌아보는 찰나에 꽂힌 칼날과도 같은 눈빛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냥 원래대로 차를 타고 왔으면 강진호와 오붓하게 둘이 갈 수 있었는데, 한은솔이 괜한 소리를 했다가 상황이 이상해진 것이다.
“그럼 어쩌지?”
“택시타면 되죠.”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한은솔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제,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네? 택시 타도 되는데?”
“안 됩니다. 최연하 씨가 남자와 택시를 타고 어디로 이동했다는 목격담만 나와도 신문 1면입니다. 택시에는 블랙박스도 있다구요. 빼박입니다.”
“음…… 그건 제가 생각을 못했네요.”
강진호가 한은솔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한은솔이 긴장하며 차에 올랐다.
한은솔이 차에 타자 강진호가 뒷자리로 들어갔다. 그러자 최연하도 당연하다는 듯이 뒷자리에 탔다.
“앞에 안 타세요?”
“저 보조석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 방금 보조석 타고 왔잖아!
이게 밴이면 내가 이해라도 한다. 그런데 이거 내 차라고. 내가 무슨 기사도 아니고! 아니, 기사 맞나?
뭔가 울컥함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한은솔이 가만히 액셀을 밟았다. 차가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머리가 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강진호였다고?’
강진호는 나름 소속사에서는 유명인이었다. 한동안 최연하가 난리를 치면서 강진호를 영입해야 한다고 설쳐 대기도 했고, 스케줄 끝나면 부리나케 강진호의 피자 가게로 달려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둘이 정분이 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게 당연하지.’
그가 보기에 강진호가 먹힐 만한 부분은 잘생긴 얼굴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최연하는 얼굴 면역 스탯을 모두 채운 사람이다. 잘생긴 사람이야 주변에 널려 있다 못해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최연하가 강진호의 얼굴에 매달릴 리는 없다.
‘그럼 대체 뭐냐고!’
한은솔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얼굴을 빼면 강진호의 매력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한은솔이었다.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요, 유머러스한 것도 아니요.
돈? 돈이 많은지 적은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돈이 있어도 돈을 많이 쓸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돈에 관심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돈은 누나도 많다고!’
CF 한 번 찍을 때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구경도 못해보는 돈이 통장으로 일시금으로 꽂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돈 보고 사람을 사귀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모르겠네.’
슬쩍 룸미러를 바라보자 태연하게 의자에 기대 있는 강진호와 그 옆에 다소곳…… 진짜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최연하가 보였다.
‘누나, 제발 안절부절 좀 하지 마세요.’
누가 보면 뒷좌석에 쥐가 기어 다니는 줄 알겠다.
‘역할 고정이 안 되었구나.’
최연하는 프로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최연하는 자신이 연기하고자 마음먹은 캐릭터를 100% 구현해 낼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은솔이 보기에 지금 최연하는 대체 어떤 캐릭으로 밀고 나가야 할 것인지 가닥이 서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니 자꾸 우왕좌왕할 수밖에.
어색함을 참지 못한 최연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트레이닝이요?”
“네.”
강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거기까지 갈 일은 아니네요. 최연하 씨는 이거하고는 관련이 없으니까요. 차 돌릴까요?”
“아, 아뇨. 궁금하니까 일단 같이 가볼게요. 제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음, 그럴 수도 있네요.”
“네, 그런 거죠.”
최연하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번 보다는 좀 편해 보이시네요?”
“할 일이 정해졌으니까요.”
강진호는 담담해 보였다.
“일은 언제든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어떤 일이 터졌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죠. 저번에는 그 가닥이 서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해졌어요. 그러니 문제될 게 없죠.”
“아…….”
서로 알겠다는 듯 말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한은솔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뭐라는지 1도 모르겠다!’
말은 알아먹으라고 하는 게 말이다. 왜 말을 저리 꼬아서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걸 무슨 대단한 말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최연하는 또 뭔가.
이곳은 혼돈과 혼란이 가득했다. 카오스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겠지.
“저쪽입니다.”
“네? 여기는 체육관밖에 없는데.”
“네, 맞아요.”
“여기를 간다구요? 여기 프로 구단 실내 연습장인데?”
“네.”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빌렸어요.”
“…….”
“비, 빌려요? 프로 구단 연습장을요?”
“네.”
“아는 분이라도 있으세요? 어떻게?”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빌렸는데요.”
“그러니까 어떻게…….”
“돈 주고요.”
“프로 구단 연습장을 돈 주고 빌렸다구요? 안 빌려주려고 할 텐데?”
“많이 줬어요.”
“…….”
태연하게 대답하는 강진호를 보며 한은솔은 마음속으로 내린 강진호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했다.
‘돈은 많네.’
그것도 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