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89
#388.
훈련하다 (3)
박유민은 강진호를 더없이 신뢰했다.
‘강진호가 모든 면에서 옳지는 않겠지만, 강진호와 내 의견이 다르다면 대부분의 경우 강진호의 말이 맞다. 그리고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우도 비슷하다’라는 것이 박유민의 지론이었다.
주영기는 그런 박유민을 강진호교 신도 같다면서 비웃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박유민은 강진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느낀 건데, 그의 친구는 때로는 브레이크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진호야…….”
“두 바퀴 더 뛰어.”
“진호야?”
“평소에 얼마나 운동을 안 했으면 이 정도 가지고 헥헥대겠어? 너희는 조금 더 뛸 필요가 있는 거야.”
“……아니, 진호야. 일단 내 말 좀 듣고…….”
“응?”
강진호가 의아한 눈으로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왜?”
“……일단 좀 진정해라, 진호야. 애들 다 죽는다.”
“왜?”
왜라니!
지금 애들이 거품을 물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건가?
“자, 잠깐만, 진호야. 네 생각은 알겠는데, 내가 알겠는데…… 그런데 얘들은 지금껏 운동이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시작은 좀 살살 하는 게 어떨까? 지금 오십 바퀴가 넘었어.”
“중간중간 다른 거 하고 돈 건데?”
“그래도 오십 바퀴잖아. 애들 다 죽어!”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 죽을 텐데?”
물론 죽지야 않지, 죽지야!
박유민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박유민이 강진호를 커버 치는 동안 아이들은 다들 바닥에 드러누워 숨만 할딱이고 있었다.
‘와, 미치겠다.’
한진성은 하늘이 노랗다는 말이 그냥 표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지금 천장이 노랗게 보인다.
‘내가 지금 왜 이걸 하고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무슨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여기 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계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애저녁에 넘었다. 만약 학교에서 체육 선생이 이런 걸 시켰다면 지금쯤 그는 교실로 돌아가 가방을 싸고 보육원으로 돌아와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강진호가 말을 하면 안 하겠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쌍욕이 다 튀어 나오는데, 몸은 군말 없이 따르고 있었다.
‘미쳤지, 미쳤어.’
왜 이걸 순순히 따르고 있는지는 한진성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면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홀려서 그 말을 따르게 된다.
‘내가 뭔 약 먹었나?’
숨이 너무 가쁘고 몸이 덜덜 떨려서 제대로 생각을 하기도 힘들었다.
“힘들어?”
“…….”
대답만 할 수 있다면 ‘그럼 편해 보이냐’라는 말을 던졌을 텐데, 지금은 대답을 할 기운도 없었다.
“세상은 좀 단순한 곳이야.”
강진호는 그들이 듣거나 말거나 태연하게 말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등하다. 만약 너희가 다른 이들에 비해서 뭔가 부족하다면, 그건 너희가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이들은 다들 너희가 놀 때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서 있는 거야. 그러니 너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한진성이 이를 악물었다.
저런 빤한 소리를 들으려 여기에 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충분히 알고…….
“……라는 건 다 개소리야.”
“에?”
한진성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능력이 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노력을 해도 그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그리고 심지어는 같은 능력과 같은 실력을 갖추고도 태어난 곳이 다르고 환경이 달라서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 뭔 말을 하는 거지?
“현실은 현실이다. 부정한다고 달라지지 않아. 쓸데없는 희망 같은 건 품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봐야지. 노력이 모든 것을 바꿔주지는 않아.”
강진호는 이미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현실이 힘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노력하면 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경험을 해본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노력해서 그만한 결과를 내지 못할 때 그 모든 것이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지. 사실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한진성은 강진호가 이리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한진성이 힘겹게 묻자 강진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노력해야지.”
“……아, 뭔 개소리야!”
짜증이 치민 한진성이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지만, 강진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너희가 해야 할 건 그것뿐이야.”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방향도, 효과도 내가 만들어준다. 너희는 그저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노력이란 것은 연료 같은 거야. 엔진이 망가져 있으면 아무리 연료를 가득 채운다고 해도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지. 그 엔진을 바꾸고 핸들을 돌리는 건 내가 해줄 테니까, 너희는 그저 연료가 떨어지지 않게만 하면 된다.”
‘그게 제일 힘들다고!’
“진호야, 애들 죽는다. 조금만 쉬었다 하자.”
강진호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지만, 박유민이 이렇게까지 사정을 하는데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안 했는데…….”
“제발 좀!”
“알았다. 좀 쉬었다 하자. 물 마시고.”
박유민이 쩔뚝이는 걸음으로 물을 들고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괜찮냐, 얘들아?”
“형, 나 죽을 거 같아.”
“저 형, 왜 저래?”
“……그러게나 말이다.”
물을 마시는 아이들을 보며 박유민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첫날이고 애들 체력부터 키워야 한다기에 어느 정도 빡빡하게 굴릴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게 뭔 일인가.
“진호가 아무 생각 없이 너희를 굴리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아보자.”
“알긴 하는데…….”
한진성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형, 나야 어떻게 참아본다지만, 애들은…… 내가 이렇게 힘든데 애들은 오죽하겠냐고. 그런데 이걸 계속한다고? 건강해지기 전에 애들이 먼저 골병들 거야.”
“형이 이야기를 한 번 해볼게.”
물을 나눠 마시는 아이들을 보며 박유민이 결심을 한 듯 강진호를 향해 걸었다.
강진호의 곁으로 다가간 박유민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호야.”
“응?”
“강도를 좀 낮춰야 하는 거 아닐까? 애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데?”
강진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안 힘들면 운동이 아닌 것 아냐?”
“……어? 그러네?”
그것참 맞는 말이네. 정말 맞는 말이야.
“그래도 힘든 것도 정도가 있는 거잖아. 지금 진성이도 힘들어서 죽으려고 하는데, 애들은 오죽하겠냐고.”
“괜찮아.”
강진호는 태연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내가 다 생각하고 하는 거야. 이 정도는 괜찮아.”
“애들은 네가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이 정도로 하는 거지.”
강진호가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쉽게 할 수 있지. 편하게 할 수 있어. 네가 말하는 대로 애들에게 맞춰주고도 강도를 조절해서 나중에는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오게 할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2년은 걸릴 텐데, 그 2년 동안 계속 애들에게 무시받으면서 버티라고 말할 수 있겠어?”
박유민이 입을 다물었다.
그건 못할 짓이다.
이미 그도 괴롭힘을 당해보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먹이로 잡히는 순간, 그 괴롭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도가 심해지는지 박유민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그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다지만, 왕따라는 것은 그렇다. 애초에 시작된 상태라면 더 심해지면 더 심해지지 나아지는 경우는 잘 없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여기에 있는 아이들도 언젠가 과거의 박유민이 겪은 일을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독해져야 하는데…….’
그리 생각하면 아이들이 고생을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맞겠지만, 막상 눈앞에서 아이들이 헐떡이고 있는 광경을 보니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애들이 힘든 게 걱정돼?”
“……응.”
“힘든 게 걱정이 되면 더 말리지 말아야지. 여기서 뛰는 게 힘든 수준이면, 그까짓 거 참으라고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 그만두지 못하는 거잖아.”
“…….”
“몸이 힘든 건 잠시 쉬면 회복되고, 자고 나면 나아져. 그런데 마음이 아픈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안 그래?”
박유민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럼 그냥 일단은 맡겨둬. 나중에 보다가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말려. 그런데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니야. 나도 다 상황을 보고 조절하고 있는 거니까.”
‘이게?’
박유민이 가만히 돌이켜 보았다.
벌써 코트 주변만 오십 바퀴는 돈 것 같고, 그 사이사이 스쿼트에, 팔굽혀펴기에…… 거의 사람 죽일 정도로 운동을 시켜 대고 있는 것 같은데?
박유민이 뭐라고 생각하든 강진호는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대가 약해.’
인간의 육체는 과거에 비해 비할 수 없이 성장했다. 과거 중원에 있을 당시는 150㎝를 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녀석들이 비실비실하기 짝이 없어 보여도, 막상 과거의 중원에 가져다 놓으면 피지컬 괴물에 거인 소리 들을 놈들도 하나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피죽도 못 먹던 당시의 장정들이 가진 운동 능력에 비하면 지금 이 녀석들은 속이 빈 강정 같은 수준이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과학이 발전하고 체계적인 운동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개척한 영역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과거 일반인이 100m를 9초 대를 달린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게 맞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기에 현대식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강진호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마교식으로 한 달만 돌리면 학교 정도는 혼자서 뒤집어놓을 수 있을 텐데.’
삼분지 일을 죽어나겠지만 말이다.
머릿속에 자꾸만 드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다 쉬었으면 일어나자.”
아이들이 미적미적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흐음…….’
잠시 쉬었다고 그새 눈에 반항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래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굴려야 하는 건데. 여기서 더 굴려서 저 반항심을 빼버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지금 강진호는 부하를 만드려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당근을 줘야겠지.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지?”
“……네.”
“이걸 한다고 뭐가 그리 달라질까 싶지?”
“솔직히요.”
한진성이 대표로 대답을 하자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해서 좋네. 그럼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보여줘야지.”
강진호가 구석으로 가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창고를 뒤적거리던 강진호가 긴 하키채를 들고 나왔다.
“응?”
두어 번 허공으로 슬슬 휘두른 강진호가 양 손으로 하키채를 붙잡더니 아래로 부웅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며 섬뜩한 소리를 내는 하키채를 보니, 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설마…… 아니겠지?
강진호가 목을 좌우로 두 번 꺾더니, 섬뜩한 어조로 말했다.
“엎드려.”
“……형?”
“농담이야.”
그 표정으로 농담하지 말라고!
그 얼굴로 농담하지 말란 말이다! 농담이 농담으로 안 느껴지니까!
“그러니까, 이런 거다. 잘 봐라.”
강진호가 하키채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모두의 시선이 강진호에게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