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90
#389.
훈련하다 (4)
“예를 들어 이런 하키채 같은 건 단단하지.”
강진호가 주먹으로 바닥에 비스듬히 댄 하키채를 두어 번 두드리자, 하키채가 통통 튀어 올랐다.
“보통은 이런 걸 주먹으로 부러뜨릴 수 있을까?”
“못하죠.”
“그런데 그게 돼.”
뚜둑.
강진호가 손가락으로 하키채를 가만히 밀자, 하키채가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났다.
“…….”
싸한 침묵이 체육관 안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저거, 미리 부러뜨려 놨던 거 아닐까? 애초에 농구 코트에 하키채가 있다는 게 더 이상하…….
“이런 건 별로 힘도 줄 필요 없어.”
뚝, 뚜둑, 뚝.
손가락으로 하키채를 동강동강 내버리는 강진호를 보고 있자니, 입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벌어졌다.
나중에는 다들 멍청한 얼굴로 헤에~거리고 있었다.
믿지 못한 아이 중 하나가 강진호가 바닥에 떨어뜨린 조각 하나를 가지고 와 이리저리 훑어보고, 심지어 깨물어보기까지 했지만,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혀, 형! 형, 형!”
한진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왜?”
“이거 하면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뭐, 그리 어렵지는 않아.”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건 최소한의 체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하나 말해볼까? 내가 지금 너희한테 몇 가지를 가르쳐 주면, 지금 상태로라도 너희를 괴롭혔던 애들을 패버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진짜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갈까?”
강진호가 냉정한 눈으로 말했다.
“너희가 그 녀석들에게 반항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 번 싸워서 이겨볼 자신이 없어서냐, 아니면 어설프게 이긴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어서냐?”
“…….”
“한 번은 어찌 되겠지. 하지만 다음에는 더 많은 놈들이 몰려올 거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뒤에서 치겠지. 그럼 달라질 게 없는 거야.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저쪽에서 덤빌 생각도 들지 못해야 돼. 그럼 싸우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게 되지. 그러니까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
“네.”
강진호가 아이들을 다시 굴리는 모습을 본 박유민은 심각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거, 뭔가 잘못됐어.’
물론 강진호는 틀리지 않았다. 강진호가 틀렸다는 것은 박유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기보다는 뭔가 방향이 이상했다.
‘왜 애들이 맞지 않게 해달라 그랬더니 살인 병기를 만들려고 하니, 진호야.’
“그런데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에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박유민이 최연하의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아, 어떻게 된 거냐면요…….”
“예.”
박유민의 설명을 들은 최연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지금 무식하게 얻어맞지 않으려면 패면 된다는 마인드로 이러고 있는 거라는 말이죠?”
“말하자면 그래요.”
“……이게 뭔 짓이래?”
최연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스럽다기보다는 우려스럽다. 그녀가 생각한 강진호스러운 해결책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 사람은 너무 직선적이다.
좋게 말하면 직선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하다고!’
예상하던 바다.
강진호는 왕따가 일어나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왕따를 이해하지 못한다기보다는 왕따가 왜 벌어지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라면 저게 먹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저런 식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면 힘만 센 멍청이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귀찮은데…….’
최연하가 깊이 한숨을 쉬었다.
‘뭐, 여하튼 이건 나중 일이니까.’
“그래서요.”
“네?”
“여기에는 딱히 내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여자애들은 어디에 있죠? 남자들이 무식하게 무슨 방법을 쓰는지 굳이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애들은 지금 보육원에 있을 건데요?”
“흠, 그래요?”
최연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강진호에게 다가갔다.
“강진호 씨.”
“네?”
“키 주세요.”
“키요?”
“네. 강진호 씨 차 키 달라구요. 저는 아무래도 보육원에 가서 여자애들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여기서 이거 보고 있는다고 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구요.”
“아!”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유민이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최연하에게 내밀었다.
“그럼.”
최연하는 열쇠를 받아 들고는 체육관 밖으로 향했다.
“아까랑은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평소 같은데?”
박유민은 강진호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말을 말아야지.’
‘기가 차서 정말.’
최연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액셀을 밟았다. 대체 뭘 하는가 싶어서 따라가 봤더니, 저게 뭐하는 짓인가. 괜히 애들 고생만 시키고.
그녀가 남자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저게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애초에 이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니까.
“힘이 있는 건 중요하지.”
정글 지수로 따지자면 학교는 연예계와는 비교도 안 된다. 심지어 소속사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서로 등급을 나누는 세상이 아닌가.
연예계에서의 힘은 지명도와 인기다.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따라서 두어 사람 아주 매장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재능 있는 아이가 인기 있는 스타의 눈 밖에 나서 업계에서 배척당하는 일도 흔하고, 결국은 그 재능을 힘으로 만들어 자신을 괴롭히던 연예인을 역으로 몰락시키는 일도 흔했다.
아마 사람들이 모르는 연예계의 뒷일을 기록해서 책으로 낸다면, 조선 왕조 오백 년은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대서사시가 나올 것이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은 최연하는 폭력을 힘으로 규정하는 강진호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힘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상대보다 우월한 것. 그리고 상대를 찍어 누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폭력은 1차원적인 힘에 불과하다.
“또또, 내가 안 나서면 제대로 하는 게 없다니까.”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를 외치면 또 거기에 호응해 주는 것이 예의겠지.
과격하게 액셀을 밟아 보육원 안으로 밀고 들어간 최연하가 차에서 내리고는 보육원 안으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들어섰다.
‘흐응.’
일요일이라 그런지, 안쪽에 아이 몇 명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주목.”
“응?”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현관에 서 있는 최연하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최, 최연…….”
“됐고.”
최연하는 아이들의 말을 간단히 끊어버리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언니가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여자애들 좀 다들 모아줄래?”
“최연하?”
도대체 최연하가 왜 여기에 있냐는 의문이 한바탕 휩쓸고 갔지만, 아이들을 모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을 해주는 사람들까지 모두 내보내고 큰방에 여자아이들을 모두 모은 최연하가 주변을 한 번 쓱 훑고는 혀를 찼다.
“너희, 인기 없지?”
울컥하는 얼굴들이 몇몇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은근슬쩍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기가 약한 아이들이다 보니 최연하에게 직접적으로 반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봐봐, 봐봐. 언니 잘 봐봐.”
최연하가 자신을 슬쩍 가리키고는 상큼하게 웃었다.
“언니가 인생 사는 데 힘들거나 불편한 게 있을 것 같니?”
“……아니요.”
“너희도 여자니까 잘 알지? 여자는 이쁜 게 무기야. 그런데 지금 너희는 뭐라고 해야 할까, 흠…….”
최연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아냐. 이래서는 안 돼. 너희가 아무리 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은 이리 살면 안 되는 거야. 너희도 알고 있잖아? 같은 교복을 입혀놔도 이쁜 애들이 있고, 태가 안 나는 애들이 있는 거야. 그리고 진짜 스타일 좋은 애들은 성격이 아무리 이상해도 함부로 못 건드려. 알지?”
몇몇이 동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지. 여자는 말이야, 뭐든 간에 이뻐지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야. 왜일까? 왜? 왜 이뻐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
누군가 손을 번쩍 들자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
“……못생긴 게 설친다 소리 나오니까요?”
“정답!”
최연하가 상큼하게 웃었다.
“혹시 깔놈깔이라는 소리 들어봤어?”
“모르겠는데요?”
“무슨 짓을 해도 깔려고 마음먹고 있는 놈들은 깔 구실을 만들어낸다는 거야. 너희가 성적이 잘 나오면 뭐라고 할까? 못생긴 년이 열심히 공부했나 보네? 그래, 공부라도 잘해야지. 그럼 돈이 많으면 뭐라고 할까? 그 돈으로 얼굴이나 고치지. 저 얼굴로 돈 많으면 뭐할까.”
아이들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건 신랄하다 못해 아주 칼을 쑤셔 박는 수준이었다.
그녀들이 브라운관에서 본 최연하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쩐다.’
‘걸크러쉬네.’
하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최연하의 모습이…… 뭔가 빛나 보였다. 예쁘고 여리여리하고 귀엽고 그런 여자들은 남자에게는 인기 좋겠지만, 여자에게는 아니다. 차라리 이런 모습이 확실하게 먹혔다.
“알고 있기 때문이야. 우리끼리 있는 자리니까 솔직하게 말하자. 막말로 여자에게 예쁜 건 무기야.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한 무기지. 너희 공부 잘할래, 예쁠래?”
“예쁠래요.”
“그래, 그거라니까.”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그거부터 시작하자. 일단은 예뻐지는 거야.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다 안 되겠지만, 그건 또 내가 따로 AS해 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언니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저, 그런데…….”
“응?”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언니는 원래 예쁘니까 그게 된다고 쳐도, 저희는 그게 안 되잖아요. 저희는 원판이…….”
“노노!”
최연하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니, 아니야. 너희는 못생기지 않았어. 그리고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애들도 걱정할 것 없어. 관리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거야. 너희는 관리가 전혀 안 되어 있잖아. 언니가 마음먹고 너희 한 바퀴 쫘악 돌리면 일반인 중에서는 시선 잡아끄는 수준까지는 쉽게 갈 수 있으니 걱정 말아.”
“……그래요.”
최연하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언니 못 믿어?”
순간, 아이들의 눈이 광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신뢰감 쩐다.’
‘얼굴이 증거잖아.’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으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 있는 사람은 최연하였다. 최연하가 직접 이리 말하는데 누가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 그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할 거지?”
“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연하가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응, 박 실장님. 나야.”
최연하가 고개를 두어 번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열일곱 명. 나이 대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준비해 줘요. 어설픈 애들이 만지겠다고 나대면 나 실망할 거야. 응? 모자라? 왜?”
최연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걔들 취소시켜요.”
건너편에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최연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걔들한테 나한테 전화 한 통 하라고 해요. 그럼 내가 취소시킬 테니까. 어차피 행사나 가는 애들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자리 차지를 한데? 내가 지금 전화할까?”
가만히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 씨익 웃은 최연하가 전화를 끊었다.
“자, 그럼 갈까?”
성격 나쁜 것도 때로는 쓸모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