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91
#390.
훈련하다 (5)
콜밴을 두어 대 불러서 아이들을 모조리 태운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여하튼 진짜 주변머리 없다니까.’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리도 많은데 아직도 아날로그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동 픽업에 자동 운전으로 오로지 보조석에 앉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연하조차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 강진호 크루는 얼마나 능력치가 떨어지기에 애들 몇 명 옮기는 것도 제대로 못해서 난리란 말인가.
‘누굴 탓하겠어.’
그런 사람들이 좋다고 이러고 있는 최연하가 문제겠지.
“자, 금방 도착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얘들아.”
“네.”
아이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최연하가 상큼하게 웃었다.
‘이게 클라스 차이지.’
지옥같이 구르고 있는 남자애들에게 애도를 구하며 최연하가 차를 출발시켰다.
“웬 애들이에요? 최연하 씨?”
박민서 실장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 마녀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최연하가 등장함과 동시에 미용실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요즘 비활동 기간이라 미용실에 잘 안 들러줘서 한결 살 것 같았는데, 오늘은 또 왜 행차를 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줄줄이 혹을 달고 말이다.
“오면 안 돼요?”
“호호호호, 그렇게 들렸나 봐. 우리는 최연하 씨 와주시기만 기다리는 사람인데, 그럴 리가 있나.”
겉과 속을 달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이 반쯤은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최연하가 다닌다고 소문이 난 미용실은 매출이 단숨에 몇 배로 뛴다. 다른 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가격을 내밀어도 좋다고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이게 바로 연예인 효과 아니겠는가.
그중에서도 최연하는 특별했다.
그저 예쁜 게 다가 아니다. 예쁘고도 스타일도 좋아야 한다. 그리고 남자가 보는 스타일과 여자가 보는 스타일은 다르다. 최연하는 그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몇 안 되는 ‘진짜’였다.
‘성격도 진짜지.’
최연하가 퉁명스레 물었다.
“예약했다던 애들은?”
“응. 취소했다니까.”
행사 준비 때문에 머리를 하러 온다던 걸 그룹 아이들이 최연하가 예약 빼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예약을 취소시켜 버렸다. 심지어 불만도 없었다.
‘가여운 것들.’
익숙하지 않은 다른 미용실에서 하루 관리를 받는 것과 최연하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비교하면, 선택은 빤했다. 최연하는 자신의 힘을 아주 잘 알았고, 그 힘을 아주 효율적으로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얘들 머리부터 좀 만져 줘요. 애들이니까, 음, 좀 뭐라고 할까…… 풋풋한 감은 있는데, 풋풋하지만은 않고 세련되면서 조금 우아하다고 할까? 거기에 청순발랄함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말은 알지, 물론.
말은 아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지.
“얘들을요?”
“응. 뭐 잘못됐나?”
최연하가 데리고 온 아이들을 슬쩍 둘러본 박 실장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관리가 전혀 안 됐는데, 좀 어렵지 않을까요?”
“응. 어렵구나.”
최연하가 몸을 돌렸다.
“얘들아, 가자.”
영문도 모른 채 최연하를 바라보는 아이들. 그 광경을 본 박 실장이 기겁을 하여 최연하의 팔을 잡았다.
“아, 아니, 어디 가세요?”
“이것도 못하는 미용실에 머리를 어떻게 맡겨요? 수소문해 봐야지, 할 수 있는 곳 있나.”
“누가 못한다고 했어요? 호호, 할 수 있지. 당연히 할 수 있지. 그것도 못하면 최연하 씨 머리 만질 자격 없는 거지. 그지?”
“잘 아시네.”
“네. 이쪽으로, 다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상황을 지켜보던 디자이너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어렸다. 숍의 매출은 곧 그들의 월급과 직결된다. 최연하가 빠져나가 버리면 이 숍의 매출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것이고, 그럼 지금 그들이 받고 있는 월급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을 소파 쪽으로 밀어 넣은 박 실장이 비장한 얼굴로 디자이너들을 모으고는 말했다.
“안 되면 되게 해.”
“실장님…….”
“사정 굳이 일일이 설명 안 해도 알지? 오늘 이거 이후로 손님 안 받으니까, 시간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무조건 애들 최상급으로 바꿔놔. 알겠어?”
“……네.”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디자이너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박 실장이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최연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녀야, 마녀.’
멀쩡한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던진다든가, 그리고 그걸 해내지 못하면 어마어마한 대가가 따른다는 측면에서 마녀라는 말이 가장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돈을 벌어주는 마녀지.’
“언니, 커피 줄까?”
최연하에게 쪼르르 달려가면서 박 실장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최연하는 거울 앞에 쫘악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볼을 톡톡, 두드렸다.
‘일단은 머리 하고, 피부 관리시키고, 거기에 적당히 운동시켜서 몸매에 볼륨 좀 주고, 그리고…….’
외모 관리는 그 정도면 될 것이다. 얘들이 무슨 데뷔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너희, 옷은 어떻게 사니?”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묻자, 아이들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주머니들이 사 주시거나, 기부 들어오는 옷 입어요. 아니면 저희끼리 용돈 모아서 사러 나가거나요.”
“용돈은 얼만데?”
아이들이 용돈의 액수를 말하자 최연하가 눈을 찌푸렸다.
“그걸 모아 옷을 산다고?”
“네…….”
“이건 뭐, 미션 임파서블인가? 그걸로 옷 사면 간식은?”
“거의 못 먹죠.”
“그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비만인 애들은 없어서 몸매 관리는 크게 시간 안 걸리겠다 싶었는데, 이게 좋은 일이 아니구나.”
최연하가 이마를 꾹 눌렀다.
‘아이고, 골치야.’
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다.
“아냐. 꼭 나쁘게 생각할 일만은 아냐.”
최연하다 투지를 불태웠다. 이런 일일수록 해결하고 난 후가 보람차다는 것은 이미 수없이 경험한 일이 아니던가.
그 험난한 연예계에서 바닥부터 기어오른 최연하의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다 해놓고 나면 보람은 쩔겠는데? 이런 데서 능력치 증명 안 하면 어디서 능력치를 증명하겠어? 후후, 제대로 내가 한 번 보여줘야겠지. 호호호호.”
혼자 웃는 최연하를 보며 아이들의 눈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이 언니…… 무서워.’
‘장난 아니다, 진짜.’
아이들이 서서히 최연하의 포스에 짓눌리고 있었다. 남자아이들이 강진호를 껄끄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 * *
삐, 삐, 삐, 삐.
그 소리는 아주 낮았다. 그리고 규칙적이었다.
규칙적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특히나 그 규칙적인 소리가 환자 감시 장치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무척이나 안정이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세상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지금 이 소리의 주인이 듣기에 저 소리는 악마의 속삭임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의 몸이 안정되어 있어서 한동안은 죽을 일이 없고, 앞으로 꽤나 오랜 시간 동안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악마…….’
그리고 그것은 악마나 할 수 있는 짓이었다.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언제일까?
지옥의 밑바닥에 던져졌을 때?
아니면 더없는 절망 속에 빠졌을 때?
아니다.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가진 것을 빼앗겼을 때다.
특히나 그 가진 것이라는 게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이었을 때는 더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예를 들면 시력.
그리고 청력.
혹은 미각이라든가, 아니면 수족.
그중 하나만 사라진다고 해도 인간이 겪어야 할 고통을 무지막지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소리를 듣고 있는 이는 그중 하나만을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멀었고, 그의 사지는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달려는 있다.
팔도 달려 있고, 다리도 달려 있다. 하지만 그 팔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감각 없이 달려 있기만 한 팔다리는 없는 것보다 더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차라리 이 팔다리가 없다면 그의 몸은 좀 더 가벼웠을 것이고, 움직이는 것도 조금은 더 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지가 붙은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은 무거운 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흐흐흐흐흐.”
김석일은 낮게 흐느꼈다.
“흐흐흐흐흐흐, 흐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이 개 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세상의 모든 울분을 모아놓은 것 같은 저주의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어떻게든 뒤틀기 위해 악을 쓴다.
기계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간호사 병동의 간호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또 발작이에요!”
“진정제! 빨리 진정제 준비해요. 어서!”
“이 개 같은 년들! 내 몸에서 손 떼!”
김석일이 고함을 질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전신이 마비되어 버린 그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비명을 지르고 악을 썼지만, 이내 허탈함이 마구 밀려들었다.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또 진정제가 놓아진 모양이었다.
“휴우.”
“진짜 왜 이러신데요?”
“……말 조심해. 너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화가 안 나겠어?”
“……그래도 너무 심하시니까.”
“됐어. 자리 비워 드려. 쉬셔야 하니까.”
온정이 담긴 말조차 분노스러울 뿐이다. 김석일은 보이지도 않는 천장으로 시선을 준 채 눈물을 흘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는 꿈에 도전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것까지였다면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강진호는 그에게 죽음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강진호가 그에게 내린 벌은 살아남는 것.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몸으로 그저 살아남는 것.
보이지도 않는 암흑 속에서 그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가 그럼 왜 귀는 남겨두느냐고 물었을 때, 강진호가 한 대답은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
“귀까지 멀어버리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지 않겠어? 이곳이 현실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악마.’
그는 악마였다.
아니, 악마라기에도 부족하다.
그 어떤 악마도 이리 잔혹한 벌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인간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흐흐흐흐.”
눈물이 흘러내린다.
건물을 뛰어넘고 하늘로 솟구치던 그의 육체는 이제는 숨만 붙어 있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세상을 호령하던 그는 이제 인간이되,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몰골이 되어 그저 살아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지은 죄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죄가 이런 형벌까지 받아야 할 정도였나?
“죽……여줘…….”
스스로는 죽을 수도 없다. 목숨을 끊을 자유마저 박탈당한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 무력했다.
“제발…….”
이대로 숨이 끊어지길 하루에도 수천 번씩 기도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점점 안정되어 가는 심장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면 결국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죽고 싶은 모양이로군, 김석일.”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석일이 움찔했다.
익숙한 목소리. 분명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누구……?”
대답은 즉각 돌아왔다.
“악마. 하지만 네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르는 자이지.”
“크흐흐흐흐.”
김석일은 웃어버렸다.
죽을 수 있다면 좋다. 죽을 수만 있다면 저자가 누구든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 순간, 김석일의 귀에 그의 영혼을 떨리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진호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