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94
#393.
활용하다 (3)
강진호는 조금 아연한 눈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들은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제가 애들을 맡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구요?”
“네.”
“그래요.”
조규민과 최연하가 당연하다는 듯 가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헐?”
강진호가 의아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자신이 시작한 일인데, 자신이 빠져야 한다니.
“어째서요?”
“능력치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섭니다. 강진호 씨가 끼어버리면 내기가 안 되잖아요?”
강진호가 황당한 얼굴로 조규민을 보고 말했다.
“농담이시죠?”
“네.”
“…….”
“농담입니다. 애들을 위한 일인데, 내기가 중요할 리가 없죠. 강진호 씨가 빠져야 한다고 한 이유는, 강진호 씨가 애들을 너무 과격하게 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진호야, 남자애들 다 죽어가.”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근성이 너무 없는 거야.”
“그거, 근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냐. 진짜 애들 이러다가 다 쓰러질 거야.”
“한계를 한 번 넘으면…….”
최연하가 상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거 봐요.”
“…….”
“애들은 덜 힘들고 싶어서 도와달라고 하는 건데, 죽을 만큼 힘들고 나면 안 힘들어진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강진호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힘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힘을 들인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지켜본 바로는 강진호 씨가 하고 있는 것은 학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학대요?”
엄청 살살한 건데?
‘이 세계의 기준은 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거지?’
강진호는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박유민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진호야, 네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아닌데…… 내 생각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게 좀, 음…….”
박유민이 머리를 긁었다.
“애들한테는 조금 과하다고 할까?”
“과한 게 아니라 태릉에서도 사람을 그런 식으로 운동시키지는 않을 거예요. 골병 안 들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 운동시켜 본 적 있어요?”
“있죠.”
“결과는요?”
“결과야…….”
좋았지.
그의 친위대인 마염(魔炎)은 그가 직접 가르치고 훈련시킨 이들로 이루어진 강호 최대의 살귀 집단이었으니까.
마염의 마인들은 그 한 명, 한 명만으로도 마교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했고, 단체가 모이면 전 강호가 그 위엄 앞에 떨었다.
이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마염이 그와 함께했다면 청마도 감히 그를 도모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종의 임무에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청마의 말에 순순히 그들을 내준 것이 실수였다.
다만, 뭐랄까…….
‘생존율이 십 프로였던가?’
열 명을 수련시키기 시작하면 보통 다섯 명은 죽고, 네 명은 폐인이 되었다. 겨우 한 명이 살아남으면 그 한 명은 다시없는 고수가 되었다.
‘물론 내가 그리 정신 빠진 인간은 아니니까.’
그 마염에 시킨 것과 동일한 훈련을 시킬 강진호가 아니었다. 충분히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서 너프에 너프를 거듭했는데, 그래도 과한 모양이다.
“흐음…….”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세상과 그 세상은 다르고, 아직은 개념의 적응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강도를 조금 낮추죠.”
“아, 아뇨.”
조규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낮추는 게 아니라 극단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네?”
“강진호 씨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뭐라고 해야 할까, 결국은 사람은 만만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데 폭력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은 말로는 못해도 속으로는 다 인정하는 바일 겁니다.”
최연하가 코웃음을 쳤다.
“무슨 무식한 소리예요? 요즘 폭력 쓰는 사람이 어딨다고?”
“교통사고가 났는데, 건너편 차에서 전신에 문신한 깍두기 형님이 내리는 경험을 해보면 그런 말 못할 겁니다. 사람들은 이제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 폭력이라는 것은 때때로 법의 제약을 무시한 채 가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위협이 안 된다고는 할 수 없죠.”
“흠…….”
최연하가 영 찝찝하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녀도 완전히 반박할 수는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럼 뭘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강진호의 말에 조규민이 미소를 지었다.
“강진호 씨는 전체적인 관리를 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이런 일에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판단하고 조절을 해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지요.”
뭔가 어물쩍 뒷방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부들부들대던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말을 듣는 게 낫겠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을 제외한다면 그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한목소리로 ‘제발 좀 빠져 있으라’라고 한다면, 그 말이 맞다는 소리였다.
이 일은 그의 자존심을 세우거나, 그의 만족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아이들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것에 그가 방해가 된다면 당연히 뒤로 물러나야 한다.
다만…….
“아니, 그럼 훈련은 중지하는 겁니까?”
“아니죠.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습니까. 강진호 씨의 말 역시 맞다구요.”
“네? 그럼 훈련은 한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조규민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는 씨익 웃었다.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죠.”
* * *
“죽겟네, 진짜.”
“가출할까?”
“……그냥 운동 안 한다고 하면 그만이지, 가출은 뭔 놈의 가출이야? 우리가 보육원 나가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요즘은 어린놈들을 짜장면 배달로도 안 써줘.”
“‘짜장면 배달로도’라니. 요즘 배달원이 얼마나 돈 많이 버는 직업인데.”
“여하튼 간에.”
한진성이 깊이 한숨을 쉬었다.
하면 할수록 익숙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강진호의 방식은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슬슬 몸이 적응한다 싶으면 강진호는 강도를 높였다. 익숙하고 편한 운동을 해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실제로 나날이 강도가 높아져만 가는 운동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울고 싶은 말이었다.
‘못해 먹겠다니까.’
이쯤 되면 진지하게 강진호에게 이런저런 설득을 시도해 볼 만도 하겠지만…….
“말이 안 나와.”
“형도 그래?”
“……죽겠다.”
이상하게도 강진호 앞에 서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특별히 무섭거나 뭔가 큰 보복이 기다린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분명 말을 하면 강진호는 이해는 하지 못해도 배려를 해줄 거라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아마 그거겠지.”
“뭐가?”
“그 눈 때문이야.”
“무슨 눈?”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지? ‘이 정도야 너희가 당연히 할 수 있겠지’라는 눈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성공할 것이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눈.”
“…….”
“원장 수녀님이 살아 계실 때 이후로는 그런 눈을 본 적이 없거든. 생각하는 마음이야 유민이 형이 훨씬 큰 것 같지만, 유민이 형은 언제나 우리를 불안해하잖아.”
“그렇지.”
한진성은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받은 적이 잘 없는 그들이라 기대를 배신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한계야.’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밤에 집에 돌아가면 죽은 듯이 자기 바빴다. 덕분에 아침에는 박유민이 그들을 깨우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지?’
한진성은 결심을 했다.
이건 아니다.
오늘은 그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가 이 정도로 힘든데 다른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이러다가 정말 사고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문이 열리고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결심을 굳힌 한진성이 이를 악물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못하겠어.’
한진성이 울상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저 얼굴을 보고 있으면 못한다는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강진호가 그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쏟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없다.
박유민과 달리 강진호는 그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어느 날 갑자기 보육원에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큰형처럼 자리를 잡아버렸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이들에게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를 잘 아는 한진성은 강진호가 자신들에게 준 관심과 애정을 배신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음…….”
평소와 다르게 뭔가 머뭇대는 듯하던 강진호가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은 조금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은데…….”
“네?”
한진성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안 좋은 소식이요?”
“너희 입장에서는 이게 좋은 소식인지 안 좋은 소식인지 모르겠다.”
한진성의 눈에 불안이 어렸다.
강진호의 얼굴이 떨떠름하다. 한진성에게는 그 눈빛이 마치 그들에게 느낀 실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안 돼.’
한진성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리저리 상의를 해본 결과, 내가 지금까지 너희에게 하던 훈련이라는 게 과하기 짝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
‘그걸 상의를 해봐야 아는 건가?’
황당함이 다급함마저 억누른다.
저 사람은 대체 뭘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지?
“그래서 음…… 일단은 내가 너희의 운동에 손을 떼기로 했다.”
아이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나이스!’
‘됐어!’
강진호가 조금 실망한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한 아이들이 눈빛으로나마 환호했다. 결코 그런 기색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 그럼 이제 형이 저희 안 봐주시는 거예요?”
한진성만이 그 말이 강진호가 자신들을 포기한다는 말이 될까 봐 우려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의견에 따라서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어.”
“전문가요?”
“그래. 유민이도 그쪽이 낫겠다고 하더라고. 그럼 그 말이 맞는 거겠지. 일단은 앞으로 나도 이쪽은 지금 오시는 분에게 일임할 생각이다.”
“아…….”
한진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야. 형이 우리를 포기하는 게 아니었어.’
그저 운동을 시키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그럼 이건 쾌거였다. 세상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강진호처럼 무식하게 사람을 잡아대지는 않을 테니까.
‘이제 좀 살겠네.’
그리고 그 순간,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저기 오시네.”
강진호를 따라 시선을 돌린 아이들의 몸이 순간 돌처럼 굳었다.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다른 사람의 두 배쯤 되는 어깨를 가지고 있는…….
‘조폭?’
‘깍두기?’
‘인간 흉기?’
“소개한다. 앞으로 너희의 훈련을 맡아주실 한국 무도 총회의 회주이신 방진훈 회주님이시다.”
농담이죠?
형?
혀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