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95
#394.
활용하다 (4)
안으로 들어온 방진훈이 주변을 쭈욱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다. 한국 무도 총회의 방진훈이라고 한다. 너희가 그…… 좆만 한 애새끼들이 깝치는 거 하나도 감당 못해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그놈들이구나.”
“…….”
한진성은 문득 거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 자신의 얼굴색이 어떤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의 생각이 맞다면, 지금 그의 얼굴은 새하얀 도화지 같을 것이다.
방진훈이 가만히 손을 들어 올리더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냥 쓰고 계세요.’
보통 선글라스라는 것은 저런 사람들이 썼을 때 남성미를 강조해 주는 효과가 있다. 좋은 말로 하자면 인상이 강해지는 것이고, 나쁜 말로 하자면 인상을 더럽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진훈은 차라리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것이 훨씬 나았다. 저 번들대는 눈빛을 가리는 것이 인상에는 백배, 천배 나은 것이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때는 ‘애새끼들이 깝치면 옆에 있는 의자로 내려쳐 버리면 된다’라는 말을 해맑게 할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선글라스를 벗고 나자 말없이 손에 회칼을 쥐어 줄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음, 그래. 다들 자세는 바르고 좋구나.”
바를 수밖에.
고양이 앞의 쥐가 이런 꼴일 것이다.
한진성은 왜 개들이 개장수를 보면 오금을 저리고 기를 못 펴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이런 경우를 꽤나 많이 겪어본 티가 난다.
이종 격투기 선수와 개장수를 싸움 붙여놓으면 개장수에 대한 학대겠지만, 개들의 입장에서는 그들 중 누가 더 강한가는 중요치 않은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보름, 딱 보름이면 된다. 내가 보름 만에 너희를 인간 병기로 만들어주지.”
아니, 거기까지는 필요 없는데요.
저희는 그런 거 안 바라는데요?
“좋아, 좋아. 눈빛에 파이팅이 넘치네. 아주 좋아.”
거기에 눈도 나쁘다.
이건 답도 없었다.
‘형, 아니지? 형?’
한진성이 간절함을 담아서 바라보았지만, 강진호는 슬며시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이건 아니잖아, 형. 이건.’
아무리 그들이 강진호의 지도를 따라가지 못했다지만, 다짜고짜 이렇게 호랑이 굴로 던져 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한진성은 차마 말로도 다 할 수 없는 애처로움과 간절함을 두 눈에 담고 강진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크흐흐흠.”
강진호가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나는 잠깐 나가볼 테니까, 앞으로의 교육은 방진훈 씨와 상의하면 된다.”
상의?
상의요?
그게 서로 말을 나누어서 방향을 맞춰 나간다는 뜻의 그 상의 맞죠, 형?
지금 저 사람과 상의를 하라는 거죠, 형?
한진성의 처절한 마음의 외침이 닿지 않았는지, 강진호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자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훤칠한 청년이 강진호를 보고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고 지나쳐 가자 사내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쟤는 또 뭐야?’
쟤는 또 왜 저리 싸가지 없게 생겼지? 여기 무슨 천하제일 인상 대회인가?
“자, 그럼 어디 몸이 어디까지 만들어져 있는지 볼까?”
방진훈이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걱정할 것 없다. 나는 전문가니까. 내가 사람 키우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다. 저 양반과는 다른 방법으로 확실하게 굴릴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 말만 들으면 된다. 자, 그럼.”
방진훈이 씨익 웃었다.
“체력 테스트부터 시작해 볼까?”
모골이 송연해져 왔다.
* * *
“잘하셨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조규민이 환희 웃는 얼굴로 강진호를 맞았다.
“잘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잘하신 겁니다.”
“흐음…….”
강진호가 영 불만이라는 얼굴을 하자 조규민이 씨익 웃으며 담배를 내밀었다. 담배를 받아 든 강진호가 입에 물고는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였다.
“아무래도 불안한데…….”
“불안하신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불안함을 불안으로 느끼지 않는 게 강진호 씨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죠.”
조규민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사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강진호 씨가 아이들의 한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리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강진호 씨가 하는 방식대로라면 아이들은 조금 힘들지언정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럼 왜 막으신 건가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조규민이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가 그의 입에서 뿜어졌다.
“그럴 필요가 없다구요?”
“네.”
조규민이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
“강진호 씨는 지금 본인의 위치에 대해 자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강진호 씨가 그 일을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일이라면,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됩니다.”
“대체…….”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물론 방진훈이 자신 이상으로 잘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에 관한 한은 그 누구보다도 정통하다 자부하는 강진호였으니까.
하지만 저런 무에 문외한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는 그나 방진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방진훈 씨도 사람을 데리고 온 모양이더군요.”
“예.”
천태훈이라고 했던가?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방진훈 회주님이 판단하기에도 이 일은 자기가 직접 할 필요도 없는 거라는 소립니다. 적당히 기본만 잡아주고는 그 사람에게 일임하겠죠. 그 말이 무슨 뜻이냐면…….”
조규민이 낮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강진호 씨는 방진훈 회주의 부하가 하면 적당할 만한 일을 직접 하고 있었다는 거죠. 이건 심각한 낭비이고,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위에 서는 사람은 일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조규민이 빙그레 웃었다.
“저희 회장님이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예. 압니다.”
“그런데 그 황정후 회장님이 현장에 나가서 안전모를 쓰시고 건물을 세우는 일에 현장감독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카오스겠지.
모두가 난리가 날 것이다.
원래 일을 해야 하는 현장감독들은 목에 칼이 들어온 기분일 것이고, 그 지휘를 받는 이들은 실수 한 번 하면 목이 잘려 나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떨 것이다. 과잉 충성을 하려는 이도 나올 것이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얻는 것 없이 잃는 것만 많은 최악의 한 수였다.
“좋지 않을 것 같네요.”
“지금 강진호 씨가 하고 계신 일도 비슷합니다. 강진호 씨는 위에 선 사람입니다. 이제 스스로의 자리를 자각하셔야죠.”
자각이라…….
강진호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높은 곳에 있을 때도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던 일을 지금 고민해야 한다니. 힘들어도 단순하던 그 때와 지금 그가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방식은 너무도 달랐다.
“그리고 또 하나.”
“예.”
“이제는 사람을 부리는 법도 익히셔야죠.”
“…….”
“누누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강진호 씨는 이런 일에 일일이 나서실 필요가 없다니까요.”
“이런 일이 아니죠.”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하자 조규민이 한숨을 쉬었다.
“물론 보육원 아이들에게 강진호 씨가 가지는 각별한 감정은 이해합니다. 다만,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강진호 씨가 직접 나서서 훈련을 시키나 다른 사람들이 훈련을 시키나 별 차이가 없어요.”
한진성이 들었더라면 절대 아니라고 기겁을 하고 소리칠 말을 태연하게 내뱉는 조규민이었다.
“강진호 씨는 결과를 만들어주시면 되는 겁니다. 굳이 그 과정까지 함께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강진호 씨의 자기만족을 위한 겁니다.”
“…….”
강진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자기만족이라고?
“불안하신 건 이해합니다. 강진호 씨가 보시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일처리가 확실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합니다. 이번에는 저희를 믿어주세요.”
“믿고…….”
“네.”
조규민이 씨익 웃으며 결정타를 날렸다.
“저 못 믿으십니까?”
“…….”
“저 조규민입니다.”
“믿습니다.”
뭔가 부흥회 같은 발언이 오가고 말았지만, 강진호는 정말 조규민이라는 사람을 신뢰했다. 무에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그 스스로가 하는 것보다 조규민이 하는 것이 열 배는 더 믿음직하다고 생각할 만큼 말이다.
“자자, 한 대 더 피우시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규민이 강진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는 불을 붙였다.
“그런데 최연하 씨와는 언제 그렇게 친해지신 겁니까? 국수 먹을 기세던데.”
“푸우우우웃!”
담배를 마치 미사일처럼 뿜어버린 강진호가 크게 뜬 눈으로 조규민을 돌아보았다.
‘이것 봐라?’
조규민이 피식 웃었다.
강진호에게서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반응이다. 예전의 강진호였다면 ‘그런 거 아닙니다’라는 짧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런 격렬한 반응을 보이다니.
사람이 좀 부드러워지고, 리액션이 생긴 것인가?
그게 아니면…….
“나쁘지 않죠, 나쁘지 않아. 강진호 씨에게는 좀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저만한 사람을 구하기도 힘드니까요.”
“무슨 말씀을?”
“정보를 좀 받아보니 남자 관계는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깨끗한데다 지저분하게 얽혀 있는 것도 없습니다. 연예계에 얼마 안 되는 자수성가 타입이더라구요. 거기에 근성도 있고, 나름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의가 있어서 평가도 좋더라구요.”
“뒷조사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조규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강진호 씨가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압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냥 이걸 본 거죠.”
“이거요?”
조규민이 강진호에게 휴대폰을 꺼내 내밀었다.
빼곡하게 쓰여져 있는 워드 파일 안에 최연하에 대한 내용이 빡빡하게 쓰여 있었다.
“뭡니까, 이거?”
“얼마 전에 재경 건설에서 최연하 씨를 모델로 쓴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그쪽에서 넘겨받고, 이쪽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
“이런 걸 해도 됩니까?”
“당연한 겁니다. 수십억이 오가는 광고비가 괜히 지불된다고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모델로 썼는데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손해배상만으로는 감당도 할 수 없는 이미지 하락이 초래됩니다. 당연히 선조사해야 하는 거죠. 저쪽도 아는 겁니다. 서로 아는 조사라고 해야 하니, 뒷조사는 아니죠.”
이거, 미묘한데?
“다만, 성격이…… 음, 모델이야 성격이 드러나는 일이 아니니 성격은 별 상관이 없지만, 강진호 씨의 여자 친구로서는 중요한…….”
“그런 거 아닙니다.”
“과연. 이제야 제가 아는 강진호 씨 같네요.”
“그런데…….”
“네.”
“그럼 저는 뭘 하면 됩니까?”
조규민이 피식 웃었다.
“강진호 씨가 가장 잘하시는 걸 하셔야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강진호 씨는 강진호 씨다운 일을 하시면 되는 거죠.”
“그게 뭔지를 모르겠는데요?”
“간단하죠.”
조규민이 손가락을 튕겨 딱, 하는 소리를 내고는 씨익 웃었다.
“돈지랄요.”
“……네?”
강진호의 얼굴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