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
#3.
마존, 돌아오다 (2)
밤이 되었다.
강진호는 자신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수십 년 만에 보는 어머니.
다시 어머니를 보게 되면 벅찬 감동에 눈물을 줄줄 흘리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자 당황스러운 감정과 어색함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가 수십 년의 시간을 떠도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이 시간에 머물러 있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가 상상해 오던 어머니는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했을 테니, 실제 어머니와의 괴리가 있었겠지.
그리고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보다 조금 늦게 병원에 도착한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강진호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 입을 열었다.
“조심했어야지.”
수십 년 만에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다.
강진호는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가슴 절절히 흐르고 있지만, 그것을 살갑게 표현할 수 없어 무뚝뚝한 말을 해버리는 아버지의 심정이 이제는 절로 느껴진다.
강진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른팔에 꽂혀 있는 링거 바늘이 거슬리자 서슴없이 바늘을 뽑아버렸다.
왜 링거를 뽑았냐고 잔소리해 댈 간호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대충 자다 보니 뽑혔다고 둘러대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강진호는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걸어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간호사 데스크를 피해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향했다.
옆구리에서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 정도야 고통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가자 차가운 밤공기가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강진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하나 없는 하늘.
어둠만이 내려앉은 밤하늘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돌아왔어.’
강진호는 마침내 그가 현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하늘은 과거 그가 항상 보던 현대의 하늘이었다.
‘다 꿈이었을까?’
어떻게 돌아온 걸까?
아니, 어쩌면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이 꿈은 아니었을까?
강진호는 가볍게 웃었다.
꿈?
그런 꿈은 있을 수 없다.
강진호는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잡았다.
손끝으로 대기를 타고 흐르는 기운들이 느껴진다. 만약 그 모든 것이 꿈이었다면 강진호는 결코 이러한 것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서른다섯이 되던 해에 죽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나이는 열여덟.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역행하여 과거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다행이겠지만…….’
스물이 넘은 뒤 강진호는 단 한 번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유일하게 찬란했던 십 대가 지나자마자 끔찍한 교통사고로 가족은 모두 죽고 강진호 홀로 살아남았다.
그것도 하반신 마비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 말이다.
그렇게 강진호는 장애인으로 십오 년이라는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았고, 서른다섯이 되던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중원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깨어났다.
중원에서의 삶은 현대에서의 삶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마치 운명이 그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처럼 끝도 없는 고난이 그에게 밀려 들어왔다. 그 고통에 저항하고 고난에 저항하다 보니 어느새 마교의 교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현대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강진호는 이 꿈같은 현실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잠을 자면서 자신을 노릴 칼날을 경계할 필요도 없고, 사람이 이득을 위해 다른 이를 죽이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야만의 시대를 감내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도 평화로웠던 이 시대를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강진호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다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평범하게…….’
다른 이들처럼.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화내고, 때로는 싸우며.
그렇게 행복을 좇으며 살고 싶었다.
평범하게.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하하…….”
강진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색했지만, 그래도 웃음이 멈추지가 않았다.
“하하하하하하하!”
강진호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밤하늘로 퍼져 나갔다.
배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은 강진호는 배가 아픈 이유가 웃음이 아니라 벌어져 버린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혈도를 짚어 상처 부위를 지혈했다.
‘하늘…….’
강진호는 밤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별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밤하늘.
누구나 벗어나기를 바라는 오염된 하늘이 그곳에 보인다.
하지만 강진호는 바로 그 하늘에 위안을 느꼈다.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제 식사하셔도 되요.”
강진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밥이요?”
“일단은 유동식이 나올 거예요. 그 외에 간단한 음료 정도는 드셔도 돼요.”
“음료입니까?”
“뭐가 잘못됐나요?”
“아뇨.”
강진호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렇군. 음료…….”
간호사는 자꾸 음료란 말은 되뇌는 강진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가 버렸다.
강진호는 고개를 돌려 침대 옆에 있는 환자용 수납장을 강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음료.”
분명 저 서랍에는 어머니가 필요할 때 쓰라고 넣어둔 돈이 있었다. 강진호는 침대에서 내려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 만 원짜리 지폐가 보였다.
까마득한 시간 만에 세종대왕님을 만나 뵈니 마음에 절로 감흥이 일었다.
강진호는 지폐를 집어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강진호는 다른 사람들이 타기 시작하자 어색한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부웅 뜨는 기이한 감각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침착하게 1층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강진호는 비장한 얼굴을 한 채 목표로 삼은 곳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휴게실 앞에 설치되어 있는 자판기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색의 철로 되어 있는 물체!
“……콜라.”
콜라!
현대 문명의 정화!
강진호의 눈이 강렬하게 콜라에 박혀 들었다.
중원이라고 해도 풀이 나고 짐승이 자라는 곳. 현대와 먹는 것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십오 년의 자취 경험이 있는 강진호는 웬만한 요리는 할 줄 알았기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해 먹을 수 있었다.
장류가 없어 맛을 내기는 힘들지만, 구이류와 볶음은 적당히 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도무지 재현할 수가 없었다.
콜라.
아무리 현대의 지식과 무공을 동시에 갖춘 강진호라도 이산화탄소를 설탕물에 녹이는 것만은 시도조차 할 수 없던 것이다.
햄버거도, 프라이드치킨도 그를 괴롭히지는 못했지만, 오로지 하나! 콜라만은 그의 향수를 자극했다.
강진호는 자판기로 다가갔다.
기억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현대에서 생활을 다시 시작하자 어렴풋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판기 정도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강진호는 자판기의 지폐 투입구에 돈을 밀어 넣었다.
지이이잉!
하지만 자판기는 강진호가 주는 돈 따위는 받지 않겠다는 듯 지폐를 빨아들였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돈을 잘 펴 다시 밀어 넣어도 봤지만, 자판기는 도도한 아가씨처럼 매번 강진호의 돈을 퇴짜 놓았다.
“……?”
하지만 강진호는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였다.
지이이잉!
“…….”
지이이잉!
“…….”
지이이잉!
강진호의 손이 천천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만 원짜리 안 들어가요.”
“응?”
강진호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딜 봐요!”
“음?”
강진호의 고개가 아래로 조금 내려갔다.
그곳에는 이제 갓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작은 꼬마가 강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 원짜리는 안 들어가?”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외계인이에요, 아니면 시골에서 지금 올라왔어요?”
“둘 다 아니다.”
“여하튼 만 원짜리는 안 들어가요. 천 원짜리를 넣어야죠. 잔돈을 넣든지.”
“그렇구나.”
강진호는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가진 돈은 만 원짜리 한 장뿐이다. 이 돈을 어디 가서 바꿔야 한다는 말인가. 보통은 이런 곳에 매점이나 편의점이 있던 것 같았는데…….
“음…….”
강진호는 곤란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잔돈 없어요?”
“그렇다.”
“오늘 편의점 쉬는 날인데?”
“그래?”
편의점이라는 건 24시간 연중무휴 아니었나?
쉬는 날이 정해져 있는 편의점이라니, 내 기억이 온전치 못한 건가?
강진호는 아쉬운 듯 자판기를 한 번 쳐다보고는 몸을 돌렸다. 아쉽긴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 곧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였다.
철컹!
쇳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요.”
“…….”
강진호는 자신에게 콜라를 내미는 꼬마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불쌍해서요. 내가 사 줄게요.”
“난 이유 없는 호의는 받지 않는다.”
“불쌍해서 그런다니까요. 이유 있어요.”
“난 불쌍하지 않다.”
“많이 불쌍해 보여요.”
“…….”
강진호는 조금 멍해졌다.
불쌍하다니…….
마지막으로 들어본 적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말이다. 무공을 익힌 이후로 자신에게 감히 불쌍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작은 꼬마가 불쌍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이 아이가 말하는 ‘불쌍하다’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정이 아니라 순수한 호의라고 해야 할까?
“안 받을 거예요?”
“난 이유 없는 호의는…….”
“그럼 관둬요. 버리죠, 뭐. 난 콜라 안 먹으니까.”
“버린다고?”
“네.”
“아까운데…….”
“안 먹을 건데 아까울 게 뭐 있어요?”
“…….”
“버려요?”
아이가 콜라를 쓰레기통 위로 가져가고는 물었다.
강진호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받을게.”
“힛.”
아이가 씩 웃고는 강진호에게 콜라를 내밀었다. 그사이에 살짝 서리가 맺힌 콜라를 받아 들자 차가운 쇠의 감촉이 느껴졌다.
철그렁.
아이는 자신의 주스를 뽑아 들더니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안 돼요. 병원 복도에서는 음식물 섭취 금지라구요. 휴게실에 가서 먹어요.”
“아…….”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룰이 그렇다면 따라야지.
하지만 아이는 강진호에게 한 말과는 다르게 휴게실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넌 어디로 가는데?”
“전 휴게실 싫어요. 나가서 마실 거예요.”
“나간다고?”
“병원 앞 벤치에서 먹으려구요.”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확실히 휴게실보다는 정원이 있는 병원 벤치가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정자도 있는 것 같았고.
강진호는 아이의 뒤를 따랐다.
조금 뒤뚱거리는 듯한 걸음걸이로 걷는 아이의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반갑다. 중원과는 다른 느낌.
당돌하지만 건방지지 않은 아이.
이 아이는 어디가 아픈 것일까?
궁금했지만 강진호는 굳이 아이에게 물어보려 하지는 않았다. 아픈 곳을 호기심 삼아 물어보는 이들의 질문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그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아이는 병원 앞에 잘 조경되어 있는 정원으로 들어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