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1
#40.
부자 되다 (2)
다음 날.
강진호는 참담한 얼굴로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가볍게 굴려 왔는데도 페달이 부러졌다.
도대체 이 시대의 자전거는 뭘로 만드는 것인지 가볍게 굴리기만 해도 부러져 댄다. 이런 불량 제품을 잘도 돈을 받고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튼튼한 자전거가 필요해.”
일반인은 일억 번을 굴려도 부러지지 않을 페달이지만, 강진호가 마음먹고 두어 번을 굴려 버리면 페달이 버티지를 못했다.
체인은 끊어지기 일쑤였고, 무사히 타고 나서도 다음 날이면 탈이 났다.
강진호는 한숨을 쉬고는 교실로 향했다.
학교는 난리가 나 있었다.
이사장은 오늘부로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새로운 이사장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놀라운 소식이지만, 이미 어제 일의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태라 누구도 놀라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놀라운 것은 강진호가 황정후 회장의 손자라는 사실이었다.
“강진호가 재경 그룹 황정후 회장의 손자라고?”
“그렇다니까!”
“야, 강진호는 강 씨고, 황정후 회장은 황 씨인데?”
“외가 쪽이겠지.”
“그렇네?”
그런 식으로 간단히 납득해 버렸다.
말로 들었으면 믿지 않았겠지만, 황정후 회장이 직접 학교로 찾아와 자기 입으로 이야기해 버린 이상 도무지 믿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재경 그룹이면 국내 5대기업 아냐?”
“황정후 회장 자산이 1조가 넘는데.”
“손자면 얼마나 받게 되는 거냐?”
“재산이 문제냐? 재경 그룹을 물려받을 수도 있지.”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나중에는 강진호, 황정후 후계자설까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강진호가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강진호는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따갑군.’
교실 안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이전보다 몇 배는 강렬해졌다.
“음…….”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느낌에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신기한가?’
어차피 재벌이라고 해도 사람이었다.
신분이 다르거나 종족이 다른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걸까?
‘게다가 나는 황 회장의 손자도 아닌데.’
나중에는 부인할 수 있겠지만, 지금 아니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애매했다.
이사장이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이 상황에 굳이 그가 산통을 깰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강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교실로 들어갔다.
“왔어?”
정인규가 득달같이 강진호에게로 달려들었다.
“너 왜 숨겼어?”
“뭘?”
“너 황정후 회장님 손자라며!”
“…….”
어제 해결했어야 할 문제다.
뒤숭숭한 분위기 정도는 얼마든지 넘길 수 있었지만, 그가 수업을 끝마칠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황 회장의 존재 때문에 선생들이 그를 찾아와 사정을 했다.
덕분에 강진호는 강제적으로 조퇴를 당했고, 어제의 일련의 사태에 대해 해명을 하지 못했다.
“친손자는 아냐.”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손자는 손자지?”
“그렇게…… 되겠지.”
강진호는 속으로 ‘손자는 얼어 죽을’이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야, 너 진짜 감쪽같다.”
“뭐가?”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티를 안 내고 있었냐?”
“무슨 티를 내야 하는 건데?”
“원래 돈 많은 놈들은 티가 나잖아. 입고 있는 옷이라든가, 타고 오는 차라든가.”
“면허 없다.”
“네 아버지 차 말이야!”
“그걸 꼭 티를 내야 하냐?”
“솔직히 말해봐. 그런 거 아냐? 서민의 생활을 체험하라는 할아버지의 지시라든가.”
강진호가 멍한 표정으로 정인규를 바라보았다.
이놈의 머리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걸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군.”
정인규만이 아니었다.
평소 그다지 친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그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강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군.’
부자가 되는 건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자지 마라.”
유일하게 태도에 변화가 없는 사람은 김성주 선생님이었다.
황정후 회장의 난입으로 싸그리 정리가 끝난 상황에 김성주 선생님의 퇴직은 자연히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김성주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어디, 또 자봐.”
“언제나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노력으로 해결 안 되면 기술을 써야지.”
“어떻게 말입니까?”
“내가 오늘 보여줄게. 보기 싫으며 자지 마.”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언제나 결심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법이었다.
강진호는 오늘도 꾸벅꾸벅 졸다가 김성주 선생님이 가져온 끈에 머리와 의자가 이어지는 참사를 당했다.
하지만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도 졸아대는 강진호를 보고는 김성주 선생님이 되레 절망에 빠져 버렸다.
점심 시간.
강진호는 굳은 얼굴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매번 있던 교실인데 오늘따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수군대는 것을 모른 척하기도 지쳤다.
강진호는 수군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쉴 곳이 없군.’
학교란 공간은 교실을 제외하면 마땅히 쉴 수 있는 곳도 없었다.
“휴…….”
“왜 한숨을 쉬냐?”
강진호는 등 뒤에서 다가온 한세연을 보았다.
“넌 복도에서 사냐?”
“응?”
“나올 때마다 있는 것 같네.”
“난 쉬는 시간에는 교실에 잘 안 있어.”
“왜?”
“운동 삼아 걷는 거지. 살도 빠지고 좋잖아.”
“운동장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
“안 돼. 얼굴 타잖아.”
무척이나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이유다.
하지만 뭔가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너 황정후 회장님 손자라며?”
“……친손자는 아냐.”
“그래도 손자는 손자지.”
오늘 이 말을 대체 몇 번 하는지 셀 수도 없었다.
강진호는 이제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다.
“그래.”
“야, 이제 보니 부잣집 아들내미였네.”
“부잣집 아냐.”
“그래?”
“최근에 알게 됐어. 부모님도 모르셨어.”
“그런 경우가 있어?”
“나도 잘 몰라. 복잡하니까 자세한 건 묻지 마.”
“흐응…….”
한세연은 강진호를 위아래로 바라보다가 슬쩍 웃었다.
“뭐, 그래도 강진호는 강진호니까.”
“무슨 뜻이야?”
“그런 게 있어. 그럼 난 간다.”
“뭐야, 뜬금없이?”
한세연이 강진호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렇게 눈치가 없을까?
“안 보여?”
“응?”
“나 여기 더 있다가는 눈빛에 찢겨 죽을 거야.”
강진호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교실 안에서 칼날 같은 눈빛들이 한세연에게 가 꽂히고 있었다.
“뭐지?”
“안 그래도 요즘 너 잘생겼다고 인기 좋은데, 이제 배경까지 빵빵해졌으니까 뭐. 아이고, 나는 인기인하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용기가 없네요. 나중에 봐.”
“그래라.”
한세연은 손을 흔들고는 뒤로 걸어갔다.
강진호는 칼날 같던 눈빛들이 부드럽게 변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끼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절하겠군.’
학교란 곳은 아무리 다녀도 적응이 되지 않는 곳이다.
그때였다.
“여기 계셨군요.”
강진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를 보았다.
‘조규민이라 했었나?’
황정후가 자신에게 붙여준 사람이었다.
비서 같이 생각하라고는 했지만, 정확하게는 강진호의 감시역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보고요?”
“이사장, 아니, 최명길 말입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불법으로 축적한 이사장의 자금은 모두 회수될 겁니다. 관련 기관에 의뢰했죠. 그 돈이 빠져나가고 나면 부채를 감당할 수 없어서 파산하게 될 겁니다.”
“부채?”
“부자들은 많든 적든 어느 정도의 빚을 지고 있죠.”
“돈이 있어도요?”
“돈이 없어서 빚을 지는 게 아니라,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빚을 지는 겁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돈이 있는데 왜 빚을 진단 말인가.
“예를 들어 강진호 씨의 연봉이 1억이라 칩시다.”
“예.”
“그런데 10억짜리 건물이 있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5억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5년 동안 모으면 되겠네요.”
“아뇨. 현금 5억과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내 건물을 삽니다. 이자보다 건물 임대료가 높게 나오기 때문에 5년이 되기 전에 빚은 다 갚고, 5년 뒤 현금으로 건물을 매입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음…….”
“간단한 예시입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죠. 여하튼 그런 식으로 최명길도 여러 곳에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부채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폭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결론은요?”
“내일 중으로 최명길은 파산할 겁니다.”
“이렇게 빨리요?”
“회장님이 삼 일을 명하셨으니까요.”
강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삼 일이라고 했다지만, 정말 삼 일만에 모든 일이 끝나 버릴지는 몰랐다.
실제로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친다면 절대로 삼 일 내에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황정후의 권력이 아니라면 삼 일 동안 그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었다.
강진호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정후 덕분에 다른 이들의 일이 뒤로 미뤄지기도 했을 것이고,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일을 하는 이들도 생겨났을 것이다.
그 대가는 무엇으로 지불될까?
이래서 강진호는 권력이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깔끔한 것은 분명했다.
이미 진행된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도 구차한 일이고, 황정후가 하는 일에 강진호가 입을 뗀다는 것도 모양이 이상했다.
그와 황정후의 관계는 아직 명확하게 ‘이것이다’ 정의하기 힘든 관계니까.
“알겠어요.”
“그리고 교장과 학생주임은 파면되었습니다. 그들이 부당하게 쌓아 올린 재산은 모두 환수될 것이고,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객관적인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겁니까?”
“객관적으로 보자면, 현대의 사법은 조금 무른 감이 있죠. 조금의 사심이 개입된다고 해도 형평성에 어긋나지는 않을 겁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조규민이 따로 손을 쓰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힘들겠지.
강진호는 그들에게 신경을 꺼버렸다.
어차피 조무래기. 그가 관심을 둘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강진호는 조규민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학교 안에 이렇게 마음대로 들어와도 됩니까?”
“무슨 문제라도?”
“외부인 출입 금지일 텐데요.”
조규민은 씨익 웃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외부인이 아니거든요.”
“외부인이 아니라뇨?”
“정확한 직책은 이사장 대리입니다.”
“예?”
“최명길이 파산했으니, 학교를 운영할 사람이 있어야죠. 재경 재단에서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겁니까?”
“회장님이 하시겠다는데 누가 딴지를 걸겠습니까? 사소한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없습니다.”
“권력이란 게 꽤 좋은 거군요.”
“이 경우에는 재력이라고 하셔야죠.”
재력이 권력을 불러온 경우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이사장 대리시라구요?”
“회장님이 명목상 이사장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사소한 업무까지 보기에는 너무 바쁜 분이시지요.”
“그리 바빠 보이지는 않던데…….”
“보기에만 그런 겁니다. 실제로는 재경 그룹의 굵직한 일에는 모두 관여하고 계시거든요. 너무 뛰어난 나머지 본인이 희생되는, 이상한 경우죠.”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왕정을 처음 만들었던 루이 14세의 경우 나라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보고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지만, 덕분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황정후 역시 비슷한 경우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쓰러지시기 전에 비하면 업무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많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중이죠.”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제 상관이시니까요.”
“상관이라…….”
탐탁지 않은 듯 혀를 차는 강진호를 바라보며 조규민은 어제 있은 황정후와의 대화를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