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13
#412.
소집하다 (2)
‘이, 이렇게나?’
마공을 익혀 민감해진 감각은 복도가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곳은 아마도 지하일 것이다.
‘이런 곳이 존재했던가?’
도시 지하에 이만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거대한 축구장을 몇 개는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왕위안이 놀란 것은 겨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놀란 것은 거대한 공간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그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마인.
마공을 익혔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서 박해받는 이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보이지 않던 이들이 이만큼이나 모인 것이다.
동료라면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 있다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될 만도 하지만, 왕위안은 되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이 받은 연락은 그가 받은 연락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말에 모인 이들이 이리도 많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 뜬구름이라도 잡아야 할 만큼 간절하다는 뜻이었다.
‘패배자들의 모임이로군.’
왕위안은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들을 이만큼이나 모아두면 당연히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을 텐데, 공동 안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음울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는 이들과 눈을 감고 가만히 무언가가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이들.
축 처진 어깨와 불만이 가득한 표정.
당에서 이 꼴을 본다면 사회 불만 세력의 집회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잡아넣으려고 할 것이다. 정말 서글픈 것은 왕위안 역시 저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왕위안은 조용히 그들의 뒤로 가서 섰다.
‘무언가가 벌어지는가.’
이만한 이들이 이리 모였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그들을 소집한 적이 없던 지도부가 나섰다는 것만 봐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묘한 기대감 덕분인지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공동이 기이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약속한 시간이 한 시간쯤 지나 인내력이 바닥나려는 순간, 뒤쪽의 복도에서 들어온 이가 소리쳤다.
“문을 닫았습니다!”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연단 위로 검은 흑의를 입은 이들이 올라서기 시작했다.
“다들 잘 모여주었소.”
“…….”
대답은 없었다.
빨리 시작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시선으로 줄 뿐이다. 가만히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 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형제들이여.”
목소리가 공동 안에 우렁우렁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인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수없이 박해받아 왔소.”
왕위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따위 말을 듣기 위해 이곳까지 귀한 시간을 내서 온 것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이었다.
“우리는 마공을 익혔다는 이유로 그 어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살해당했고, 마공을 익혔다는 이유로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해왔소.”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왕위안은 휴대폰을 들었다.
저따위 말에 동조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 많은 인원을 모아두고 발언해야 하는 자에게는 필수적인 과정일지 모르겠지만, 그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적당히 듣는 척하다가 저러다 말 것 같으면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하지만 이제 기회가 왔소이다!”
기회?
왕위안의 고개가 들렸다.
“그 긴나긴 시간 동안 고난과 박해를 받아온 우리를 지탱해 주던 것은 단 하나의 말이었소! 언젠가는 이 땅에 마존이 강림하시여 우리를 이끌 것이라는 그 말!”
왕위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리도 모르는가, 저리도.’
그 고리타분한 말을 누군가 믿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그의 아비가 그를 앉혀두고 하던 말이다. 언젠가는 이 땅에 마존께서 돌아오시어 고통받는 마인들을 새로운 땅으로 이끌 것이라는 그 말.
박해받는 민족이라면, 박해받는 종교라면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선지자의 강림.
고단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래에 언젠가 구원이 도래할 것이라는 달콤한 자기 위안.
그 저열한 자기 위안에 동조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시간 낭비를 했군.’
왕위안과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이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대열에서 이탈해 입구 쪽으로 향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아마도 새로이 조직을 정비하고 뭔가를 해보려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모이면 위험한 이들이었다.
전 중원에 퍼져 있어 박멸한 생각도 못하던 바퀴벌레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면 무인들이 어찌 나올지는 너무도 빤한 노릇 아닌가.
그렇게 기대를 접고 몸을 돌리려던 왕위안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말이 날아들었다.
“마존의 땅을 지키시던 장민 노사께서 여러분을 모으셨소이다.”
‘장민?’
마존이란 이름은 허황되지만, 장민이란 이름은 결코 허황되지 않았다.
뒤쪽으로 빠져나가려던 이들이 일제히 발을 멈추고는 몸을 돌렸다.
‘살아 계셨다는 건가?’
과거 마인들이 가장 박해받던 시절, 그 누구보다 앞에 서서 마인들을 지키고 싸웠다던 장민의 이름을 모르는 마인은 없었다. 장민이라는 이름이 그들의 발을 붙잡았다.
이내 연단 위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올라온다.
“아…….”
왕위안은 입을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느껴진다.
순수하리만큼 강렬한 마기.
주변의 마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저열하고 조잡한 마기가 아니라 그저 느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새어 나올 것 같은 마기가 노인의 몸에 가득 담겨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저 사람이 장민이다.
비록 그 몰골은 추레하기 짝이 없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어찌 저런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지 경이롭기까지 한 마인이 저곳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왕위안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저 사람이 앞에 나서준다면 그들은 더 이상 음지로 숨어들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중원을 지배하고 있는 삼왕의 이름 아래 수많은 무인들이 모여들 듯이, 장민이라는 이름이 마인들이 모여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말이었다.
“나는…….”
장민이 주변을 가만히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분의 강림을 보았노라.”
“…….”
그분?
그분이라니?
저 사람의 입에서 그분이라는 말이 어찌 나올 수 있는가.
현존하는 그 어떤 마인도…….
“서, 설마…….”
왕위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조금 전 들은 말과 장민의 말이 겹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나는 이 두 눈으로 보고, 이 두 귀로 들었으며, 이 몸으로 느꼈다.”
장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마인들의 몸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전설.
그저 전설과 신화로만 내려오던 이야기.
너무도 황당하고 현실성이 없어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해 온 그 말이 지금 장민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존께서 현세에 강림하셨도다.”
왕위안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건 감동이라기보다는 충격이었다.
“그분께서 그대들을 모으라 하셨다. 그분께서 그대들을 필요로 한다 하셨다. 신검을 손에 들어 그 주인임을 증명하신 그분께서 그대들을 딱히 여기시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신다.”
왕위안은 눈가가 뿌옇게 흐려오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이건 감동 같은 게 아니다.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것뿐이다.
“고난의 세월은 끝났다. 전설이 현실로 이루어진 이상, 우리는 그분의 이름 아래 모여 마교 천하를 재건할 것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 말을 어찌 믿을 수 있다는 말이오!”
“의심하지 마라!”
장민이 단호히 소리쳤다.
“그분이 비동을 여시는 모습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마존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열 수 없는 곳이 비동이 아닌가! 그분은 나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용서하셨다.”
공동 안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마존이라니…….’
왕위안이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전설로 전해들은 마존께서는 천하를 그 발아래에 두셨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비동이 열렸다는 것은 그가 마존임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비동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실전되었으니까. 그 말은 이미 실전된 마교의 무학을 익힌 이가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한 왕위안의 몸이 격동으로 떨렸다.
“의심하지 마라!”
장민이 소리쳤다.
“마존께서는 자비롭지 않으시다! 마존께서는 너희에게 완전한 복종을 원하신다. 그분의 분노를 사는 이는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죽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분은 만마를 지배하시는 분. 마의 지배자이시고, 너희의 지배자이시다.”
왕위안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마기가 극한에 달한 이는 인성이 거세된다. 그리고 비할 바 없이 잔인하고 과격해지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마인들조차 그럴진대, 마존이라 불리는 이는 얼마나 잔인하고 거칠 것인가.
환희와 두려움이 동시에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우, 우리는 뭘 해야 합니까?”
“마존께서는 너희를 모으라 하셨다. 너희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저열한 마공이 아니라 진정한 마공을 너희에게 보여주리라 선언하셨다.”
“그, 그분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분께서는…….”
왕위안은 헛웃음을 흘렸다.
어디에 있는가가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저 장민이 마존이 강림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만마의 지배자인 마존이라면, 그 어디에 있더라도 피와 죽음이 함께 할 것이다.
분명히.
* * *
“꺄하하하하하하하!”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선영아.”
“아?”
“……오빠 머리는 잡아 뜯으면 안 돼.”
“꺄하하하하하!”
강진호는 목마를 탄 채 자신의 머리를 잡고 몸을 흔드는 선영이의 다리를 꼭 잡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나 저거! 저거!”
“……뭐?”
“솜사탕! 나 솜사탕!”
“아까 먹었잖아.”
“솜사타아아아아아! 솜사타아아아아아아앙!”
“사 줄게…… 가자.”
“빨리! 빨리!”
강진호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라도 올 것이지.’
이곳은 지옥이었다.
놀이공원이라는 곳은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 틀림없다. 그 악명 높던 마교의 감옥도 이처럼 인간을 괴롭게 만들지는 않았다.
“떨어지면 안 된다니까! 길 잃어버린다고!”
“꺄하하하하하!”
이성을 잃고 이리저리 달음박질하는 아이들을 쫓아가 중앙으로 몰아넣으며 강진호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앙!”
그 와중에 넘어진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울고 싶은 건 나다.’
평소에도 아이들을 감당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놀이공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활동력과 기분이 두 배로 상승한 것 같았다.
빼애액! 소리를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을 단속하며 강진호가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강진호 씨!”
강진호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