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14
#413.
소집하다 (3)
“강진호 씨!”
강진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기겁을 한 표정으로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누, 누구?”
커다란 챙모자를 쓰고 누가 봐도 과도하게 큰 선글라스와 마스크, 거기에 스카프까지 두른 여자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저예요.”
“최연하 씨?”
“쉿.”
최연하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조용히. 사람들이 들어요.”
“……피부병이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최연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너, 이게 무슨 짓이야?”
“후후후후.”
“생각 없이 이런 짓 저지르면 안 되는 것 몰라?”
“후후후후후.”
“웃어?”
“후후후후후.”
최연하는 느물거리며 웃는 한진성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이 애늙은이 같은 게 진짜.’
어릴 적부터 고생을 해서 일찍부터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놈은 과도하게 능글맞다. 천성이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처 맞을래?”
“……아니요.”
그래도 아직 강진호급으로 공격이 안 통하지는 않았다.
“왜 사고를 치니! 왜!”
“누나가 데이트거리 한 번 만들어보라면서요.”
“그럼 나하고 상의를 했어야지!”
“에이.”
한진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누나도 알잖아요, 저 형.”
“…….”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맞춰서 진행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니까요. 일단 저질러서라도 움직이게 만들고, 우리가 거기에 맞춰야 해요.”
최연하의 볼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래서 내놓은 답이 이거라고?”
“그렇죠.”
최연하가 지옥의 악귀 같은 얼굴로 말했다.
“너,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최연하 누나요.”
“너, 저번에 보육원에서 나보고 체면을 지키라고 했지?”
“예.”
“그래서 니가 내놓은 답이 이거야? 사람들 이리 많은 데서 나더러 저 사람이랑 데이트를 하라고?”
“아…….”
한진성이 그건 생각 못했다는 듯이 멍하게 입을 벌렸다.
“와, 그런 맹점이.”
“답도 없다, 진짜.”
최연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강진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멀쩡하게 생겨서 나사가 하나씩은 기본으로 빠져 있었다. 그것도 작은 나사가 아니라 제일 중요한 곳에서 커다란 나사가 빠져서 덜커덕덜커덕대는 느낌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됐다. 너한테 내가 뭘 바라겠니.”
“그래도 선의로 한 건데, 말씀이 좀 심하신…….”
“너 진짜 좀 처 맞을래?”
“죄송합니다.”
“에이!”
최연하가 역정을 내고는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
그 광경을 본 한진성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 * *
“설명하자면 좀 길어질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 주세요. 사람들이 워낙 많은 곳이라 얼굴 드러내 놓고 다니면 난리가 날 수 있어서요.”
강진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그였다면 굳이 저렇게까지 오버할 것이 있을까 생각했겠지만, 이미 극성팬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는지를 충분히 경험한 그가 아니던가.
더구나 그가 받은 관심이란 것은 최연하에 비한다면 쥐꼬리만 한 명성에 불과하다. 만약 최연하가 여기에서 저 변장을 푼다면 놀이공원은 일시에 마비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안 더우세요?”
“…….”
이 푹푹 찌는 날씨에 온 얼굴을 마스크와 선글라스, 거기에 스카프까지 감싸고 머리에는 모자까지 썼으니, 열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을 텐데?
“괘,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정말 괜찮아요.”
“……네. 뭐, 그러시다면야.”
강진호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최연하는 꿋꿋한 얼굴을 했다. 물론 그 표정이 보일 리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강진호의 말에 최연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 해결해 놨다더니!’
그냥 자리만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 한 꼴이 아닌가.
아서라, 누굴 탓하겠는가. 한진성이 하는 일이 다 그런 거지. 그런 꼬맹이가 뭘 알아서 하겠는가.
“애들 오늘 놀이공원 온다기에 같이 놀아주면 좋겠다 싶어서 왔어요.”
“아!”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른은 한 명이라도 많은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아이들이 최연하를 특히 잘 따르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헤헤, 이제 걱정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당당하게 말하는 최연하를 멀리서 지켜보며 한진성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나만 믿으라니까.”
하지만 일은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것은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비명 소리 같았다.
살아온 인생의 특성상 수많은 비명 소리를 들어온 강진호마저도 움찔할 정도의 처절하디처절한 비명 소리였다.
“지, 진정…….”
“으아아아아아아앙! 엄마! 엄마! 살려줘어어어! 엄마아아아아아아아!”
‘틀렸어.’
강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저건 말로 해서 어떻게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최연하는 이성을 놓은 듯 마구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어깨를 꽉 누르고 있는 안전 바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최연하의 마스크가 왠지 촉촉이 젖어드는 것을 발견한 강진호는 차마 그 광경을 마저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게 안 타도 된다니까.’
롤러코스터란 것은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하품이 나오는 탈것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머리끝이 쭈뼛 서는 놀이 기구다. 그리고 최연하에게는 아마도 지옥으로 가는 특급열차쯤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저러다 사람이 심장마비로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불러일으키며 최연하가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꺄아아아아악!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오오오오오!”
이제는 어딘가에 필사적으로 사과까지 하는 최연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강진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믿으라는 겁니까, 뭘.’
되레 아이들이 최연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신나는 놀이 기구를 타는 즐거운 시간, 예능 같아야 할 순간을 최연하가 다큐로 바꿔놓고 있었다.
“음, 최연하 씨.”
“네? 네네?”
“눈 감아요.”
“네에에에?”
강진호의 말에 되레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바라본 최연하는 360도 회전 코스를 보고는 안전 바를 부러질 듯 움켜잡았다.
“이거 누가 만들었……. 으아아아앙! 이 개…… 아아악! 죽여…….”
강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굴을 가린 게 다행이었다.
“언니, 괜찮아요?”
“……어?”
“어, 언니, 여기 물 좀 드시고 정신 좀 차리세요.”
“……어?”
“오, 오빠, 언니가 맛이 갔어.”
그 언니는 원래 제정신이 아니었단다. 이제 와 새삼 맛이 갔다고 할 일이 아니지.
강진호는 꿈틀거리는 속내를 내리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볼 테니까…… 너희는 가서 놀아.”
“그래도 돼?”
“그래. 기껏 놀이공원 왔는데,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돌아가면 안 되지. 애들 기다리니까 얼른 가서 마저 타.”
“안 돼!”
그 순간 넋이 나가 있던 최연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사나운 기세에 천하의 강진호마저도 움찔할 정도였다.
“왜, 왜요?”
“……저도 탈 거예요.”
“아니, 잠시만요, 최연하 씨.”
“타야죠.”
최연하의 눈이 이글거렸다.
“애들이 놀러 온 건데, 짐이 될 수는 없어요. 같이 놀아줘야죠.”
강진호의 눈에 살짝 감동이 어렸다.
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 눈물겹지만…….
“침 흘러요.”
츄릅.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최연하 씨가 빠져 주는 게 애들이 더 편하게 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강진호 씨는……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네?”
최연하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었다.
“쟤들이 얼마나 착한데. 같이 온 언니가 아파서 앓아누웠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들끼리만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아요?”
“…….”
최연하가 허리를 쭉 폈다.
“왜 이래, 나 최연하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한창 액션 영화 찍을 때, 와이어도 탔던 사람이라고.”
그 와이어가 사람을 360도로 돌리지는 않았겠지.
“한 번 일을 맡았으면 죽어도 해야 하는 거예요! 따라와요!”
강진호는 앞서서 걸어 나가는 최연하를 보며 감탄했다.
아마 그녀를 지금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린 것은 저 외모보다 저 근성의 지분이 더 클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애들이 노는 데 결코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저 의지만은 분명 인정해 줄 만하다.
어떤 일이든 근성이 있으면 대부분은 해결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강진호가 정말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었다.
다만, 한 가지.
‘그냥 안 왔으면 만사형통이었는데.’
긁어 부스럼도 아니고, 이게 뭔…….
강진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최연하의 뒤를 따랐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물론 롤러코스터는 무섭다.
하지만 롤러코스터에 그만한 자극을 받는 사람이라면 비교적 덜 무서운 놀이 기구를 탄다고 해서 딱히 다를 것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왜 이거 안 끝나아아아아아아! 야, 이 개 같…… 꺄아아아악!”
최연하는 조종실을 향해 양손을 마구 휘저었다.
당장 이 빌어먹을 놀이 기구를 세우라는 뜻이었지만,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그 화끈하고 과장된 동작을 본 조종수가 마이크를 움켜잡았다.
“네! 한 번 더 올라갑니다! 재미있게!”
“너 죽일 거다! 내가 꼭 죽일 거야!”
다시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바이킹의 끝자리에서 최연하가 눈물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그 옆자리에 앉은 강진호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살려줘요, 진호 씨! 나 좀 살려줘요!”
“……고개나 숙여요. 안 보면 좀 덜 무섭겠지.”
“으아아아! 나 죽을 것 같다니까!”
강진호는 아무 말 없이 모자를 눌러 그녀의 눈을 가려주었다.
아이들의 고함 소리와 최연하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강진호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좋구나.’
날이 참 맑았다.
“어, 언니, 이제 그만둬요.”
“우리가 잘못했어요.”
“언니, 죽지 마! 으아아아아앙!”
최연하는 모든 것을 불태운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색이 조금 바란 것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생기가 빠져나간 모습이었다. 처음 봤을 때에 비하면 사람이 살짝 탈색되었다고 해야 하나?
뭔가 명도가 좀 옅어진 모습이었다.
“난 괜찮아, 얘들아.”
최연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언니, 정신 차려요.”
“언니 캐릭터가 이상해졌어요! 언니!”
최연하가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자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진 아이들이었다.
‘아니, 평소에 얼마나 악랄했으면.’
점수를 따러 와서 오히려 잃기만 하는 최연하였다.
“아까 누가 롤러코스터 한 번 더 타자고 하지 않았어? 타러 가자. 재미……있겠지.”
“어떤 년이야?”
“어떤 년이 그딴 소리를 했어? 나와!”
표독스러운 얼굴로 망발(?)의 근원지를 찾는 아이들을 보며 강진호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개판이네.’
개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