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17
#416.
구조하다 (1)
강진호는 짐승처럼 내달렸다.
머리로 생각하고 한 일이 아니다. 생각이 채 정리되기 전에 그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사람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뛰어넘으며 벽 쪽을 향해 달려간 강진호가 단숨에 건물을 타오르기 시작했다.
‘제길!’
위기라는 것을 자각하자 전신이 민감해지며 머리가 재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벽에 매달린 자세 그대로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 신호음이 울릴 때 삼층으로 올라간 강진호가 두 번째 신호음이 울렸을 때는 사층으로 뛰어올랐다.
[여보세요? 강진호 씨, 놀이공원 투어는 즐거우십니까?]“천장 무너집니다!”
[예?]“지금 여기 천장이 무너지고 있다구요!”
[그, 그게 뭔 소립니까?]“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 당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 당장 다 밖으로 빼내세요. 어떻게든!”
[…….]잠깐의 침묵이 돌아왔다.
하지만 강진호는 조규민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조규민이라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여 패닉에 빠질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의 침묵은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강진호는 조규민의 침묵을 의심하지 않고, 조규민은 강진호의 말에서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단단하게 쌓인 신뢰 관계는 최적의 대응을 절로 찾아냈다.
[지금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은 필요합니다. 일단 그 안에 있는 아이들부터 바로 밖으로 내보내세요. 지금 당장요.]“최연하 씨에게 지시해 뒀어요.”
[최연하, 최연하……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강진호 씨는?]“……애들이 기구에 타고 있어요.”
[빌어먹을.]진심이 실린 욕이 흘러나왔다.
뭔가 걷어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규민의 목소리가 높아져 돌아왔다.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 애들은 강진호 씨가 반드시 구해내십시오. 반드시!]“당연하죠!”
[건승을!]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가 끊어졌다. 그만큼이나 조규민도 다급하다는 뜻이겠지.
강진호는 한 점 의심이나 미련도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재경을 등에 업은 조규민의 전화 한 통이 발휘할 수 있는 파급력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다른 것은 다 조규민에게 맡기고, 그가 해야 할 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단숨에 기구 타는 곳까지 올라간 강진호가 눈을 치켜뜨고 상황을 살폈다.
“으…….”
천장이 붕괴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 정도의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정확한 상황은 천장에 설치된 레일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 맞다.
심지어 아이들이 타고 있는 기구 위쪽의 레일은 이미 천장에서 떨어져 나와 있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실밥이 풀리는 것처럼 레일이 쭈욱 떨어져 나가며 기구가 추락하거나, 레일이 끊어지며 기구가 추락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물러나세요!”
안전 요원들이 강진호 쪽으로 달려와 그를 밀어내려 했다.
“전원 끊을 수 있습니까?”
“일단 물러나…….”
“저기!”
강진호의 목소리가 호랑이처럼 으르렁대자 그를 밀어내려던 안전 요원들이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저기 내 동생들이 타고 있습니다.”
“……가족분이십니까?”
“대답부터 해요. 전원은? 전원 끊을 수 있냐구요.”
“그게…….”
안전 요원이 식은땀을 흘렸다.
“전원은 통합으로 관리가 되고 있어서 기구의 전원만을 분리해서 끊는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지금 단체로 전원을 내려 버리게 되면 이 한 면이 완전 마비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해했습니다.”
그럼 대피에 문제가 생기겠지. 지금 놀이 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방치가 될 것이고.
일단은 지금 돌아가고 있는 놀이 기구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까지만이라도 전원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기구가 계속 움직이면 레일에 충격이 더 갈 겁니다.”
“걱정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러시면 구조에 방해가 됩니다. 지금 구급대원들과 구조대가 오고 있으니, 걱정되시더라도 통제에 따라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가 반드시 가족분들을 구하겠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고, 최선의 대응일 것이다.
강진호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했다. 단지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구조대론 늦겠지.’
어림도 없다.
구조대가 오면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현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중앙 도로를 통해 사다리차를 진입시킨다든가, 아니면 돔형 천장을 밖으로부터 타고 올라서 안쪽으로 로프를 늘어뜨린다거나.
그래, 방법은 많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강진호가 보기에는 그 시간이 부족했다.
“예.”
강진호는 미련 없이 뒤로 돌아섰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어.’
너희 말을 듣는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강진호는 뒤로 물러나 살짝 눈을 감았다.
‘침착하자.’
감정을 앞세우지 말자.
이건 전투가 아니라 구조다. 그러니 냉정해야 한다. 흥분의 결과가 그의 죽음이 아니라 아이들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할까?’
단숨에 뛰어오르기는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아이들을 완벽하게 구해내고 싶다면 이곳이 아니라 기구의 밑에서 대기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가 기구로 접근하는 동안 아이들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안 돼.’
강진호는 결심을 굳혔다.
위에 매달려 있다고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방지해야 할 상황은 저곳에서 누군가 떨어지거나, 기구가 통째로 바닥에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가 아래에 있다면 그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받아낼 수 있다.
‘내려간다.’
입술을 질끈 깨문 강진호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 그의 전화가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강진호가 아차 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병신같이.’
아이들에게 전화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평소에는 완벽하다시피 문명인으로 돌아온 강진호이지만, 이런 위기 상황만 되면 자신이 어느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잊어버린다.
강진호가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오빠! 오빠아아!]“그래그래. 미혜야! 괜찮아?”
[오빠. 오빠 여기! 오빠, 여기 기구!]“알아, 알고 있어. 오빠가 보고 있어.”
강진호는 최대한 다급하지 않게 말했다. 그까지 다급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의 불안이 좀 더 심해질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금방 구해줄 거야. 오빠가 밑에서 별일이 없도록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만 있으면 돼. 알았지?”
[응……. 그런데…… 그런데 오빠.]“그래그래, 미혜야.”
[도연이가…… 도연이가 상태가 너무 안 좋아.]“뭐?”
강진호의 눈이 커졌다.
[아까 한 번 흔들릴 때 벽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래선지, 아니면 불안해선지 애가…… 애가 숨을 잘 못 쉬어, 오빠. 오빠……. 오빠, 어떻게 해?]울음 섞인 조미혜의 목소리를 듣는 강진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그…….”
[아냐. 아냐, 오빠. 우리 그냥 잘 기다릴게. 여기에 잘 있을게. 괜히 무리하지 말고. 우리…… 우리 여기서 잘 버틸 수 있으니까…… 구해 달라는 거 아냐. 그냥 너무, 너무 불안해서…… 오빠 목소리 듣고 싶어서 그랬어, 오빠.]“…….”
강진호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래, 그렇게 버티면 돼?
도연이는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오…….]뚝.
전화가 끊겼다.
아마도 배터리가 다된 모양이다.
강진호는 가만히 전화를 내려다보다가 미련 없이 전화를 뒷주머니에 꽂았다.
다른 아이의 전화기로 전화를 걸면 되겠지만,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화하면서 위로하고 힘을 주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가 아닌 누구라도.
지금 그가 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왜애애애애앵!
놀이공원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미 처음 기구가 뒤틀리고 레일이 유격되는 순간, 상황을 알아차린 이들이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남아 있었다.
사이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뛰쳐나와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내려가셔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4층에는 직원들과 그만이 남아 있었다.
“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으로.”
직원들이 안내하는 대로 저벅저벅 걸어가면서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현대인 다 됐네.’
이 상황에서 뭐가 옳은지를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일을 벌였을 때, 무수한 카메라에 찍혀 세상을 떠돌게 될 그의 모습이 어떤 파급력을 낳을지 두려웠으니까.
조용히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니까.
툭. 툭. 툭.
강진호가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고객님?”
쫘악.
벗다 못해 찢어낸 셔츠를 양손에 친친 감아 핑거 글러브처럼 만든 강진호가 심호흡을 했다.
‘똑똑하고도 피곤한 일이지.’
현대인으로 산다는 건 말이야.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대신에 피해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누가 그따위로 살고 싶다 그랬나?”
강진호의 몸이 뒤로 돌았다.
“고객…….”
혹시 몰라 그의 뒤에 바짝 붙어 있던 안전 요원들을 가볍게 밀어낸 강진호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막아!”
“저 사람 잡아!”
기구를 타는 곳을 향해 뛰며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
안다고.
현명하려면 아래서 기다리면 된다.
똑똑하고 싶다면 무사히 구조될지도 모르는 아이들 몇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뭐?
누가 똑똑하고 싶다고 했나?
그를 정말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섭고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상황에서도 혹시나 그가 무모한 짓을 벌일까 봐 괜찮다고 되레 그를 위로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막아! 막으라고!”
강진호는 자신의 앞으로 몸을 던지는 안전 요원들을 뛰어넘으며 단숨에 레일이 있는 곳까지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난간을 걷어차며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뭐, 뭐야, 저거?”
“세상에…….”
강진호가 곳곳에 솟아올라 있는 건물들의 지붕을 타넘고 뛰어오르더니, 이내 벽에 도달했다. 벽 쪽에 설치되어 있는 기구들의 대기 장소까지 도달한 강진호가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레일을 양손으로 움켜잡고는 빠른 속도로 레일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떨어지면 죽는다고!”
안전 요원들이 기겁을 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강진호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마치 달리는 듯한 속도로 레일에 매달려 이동하는 강진호를 보는 이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크크크크.”
어둠 속.
무척이나 깊은 어둠 속.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그의 눈은 붉은색으로 빛났다.
“눈물겹군, 눈물겨워.”
강진호의 약점은 너무 빤하다.
쓸데없이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
그게 가족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붉은 눈을 한 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자,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재미가 있을까?
“조금 더 즐겨보자고, 강진호.”
사내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으로 다시 천천히 잠겨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