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18
#417.
구조하다 (2)
“그러니까! 지금 다 빼라고 했잖습니까!”
조규민의 목소리는 강압적이었다. 살짝 톤이 올라간 그 목소리는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 그걸 저희 마음대로…….]“그럼 그걸 누구 마음대로 합니까?”
[상부의 지시가 있어야 합니다.]“당신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조규민이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이 병신 같은 것들이 지금 거기서 사상자가 한 명이라도 나면 당신 회사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당신이 상부 지시 무시하고 사람들 빼내서 받게 될 문책과, 그 안에서 사상자가 났을 때 받게 될 문책 중에 어느 게 더 심할 것 같은데?”
[그, 그야 물론…….]“잘 들어요.”
조규민이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는 재경의 이름으로 현장 상황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전달해 드렸어요. 만약 이번 일에 있어서 대피가 늦어서 사상자가 나오는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재경의 이름으로 지금 이 통화 내역을 녹음한 것과 상황에 대한 것을 모두 언론에 까발릴 겁니다.”
[잠시만요, 실장님.]“지금 제가 하는 말이 제 개인적인 말 같습니까? 제가 뭔 권한이 있다고 지금 그쪽에다 전화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겠어요. 그룹 차원에서 도와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일반인이 신고해도 당장 조사하고 대피 진행시켜야 할 텐데, 지금 재경의 이름으로 들어간 말을 못 믿겠다는 겁니까? 그게 그쪽 대답이죠?”
[실장님, 일단 진정하십시오. 이런 경우가 처음이다 보니 저도 대체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습니다.]조규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저 놀이공원을 운용하고 있는 기업이 대한민국에서도 사내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기로는 최고인 곳이었다. 기업 문화로서는 도저히 대기업이라고 할 수 없는 곳이고, 일만 생기면 직원들에게 책임을 묻기로 유명해서 자체적으로 능동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잘 들으세요.”
[네.]“이번 일로 사상자가 생기면 당신 목 날아가는 걸로는 안 끝납니다. 언론에서 미친 듯이 까대기 시작할 거고, 지금 그쪽 잡아먹으려고 입맛만 다시고 있는 기업 쪽이나 정부 쪽에서 죽어라고 물어뜯을 거예요. 그럼 회사 차원에서 어떻게 나올 것 같아요? 모든 책임을 당신에게 떠넘긴 후에 발 빼려고 발악을 할 겁니다.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아요?”
[예. 맞습니다. 그럴 겁니다.]“그럼 뭘 해야 하는지 더 설명 안 해도 되겠죠? 어차피 징계 맞을 거면 최소로 가자구요, 최소로.”
[……지금 당장 대피 명령 내리겠습니다.]“예, 부탁드립니다.”
조규민이 전화기를 끄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또라이 새끼들.”
현장에서 사건이 나면 가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처가 일어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였다.
기업 입장에서 입장객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 버리고 놀이공원을 폐쇄해 버린다면 어마어마한 손실이 벌어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람을 살리는 게 맞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 그건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제는 기업에서 자회사를 통해 운용하는 놀이공원의 경우, 사장은 있지만 그 사장에게 놀이공원을 폐쇄할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자의적인 판단으로 놀이공원을 폐쇄할 경우에는 곧장 책임론에 시달리게 된다.
엿 같은 사내 정치에 눈이 먼 이들이 죽도록 물어뜯는다.
그럼 사람부터 살려야지 그 와중에 돈 생각을 하겠냐는 반론은 통하지 않는다.
‘그럼 왜 시설이 그리 노후화돼서 사고가 날 때까지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느냐’라는 절대명제에 걸려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차피 이래도 책임을 져야 하고, 저래도 책임을 져야 하는 외통수에 몰린 이들은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부터 모색하게 된다. 그게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썩을 놈들.”
주둥아리로는 사람을 찾아대지만, 막상 필요할 때는 돈만 찾아대는 기업들의 행태에는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조규민은 한숨을 푹푹 쉬며 전화를 다시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대피 명령은 떨어질 것이고, 이제는 관련 당국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많은 구조대와 소방관이 투입되어야 좀 더 많은 이들의 안전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보고를 받은 황정후가 묻지도 따지지 도 않고 권한 위임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뭐, 비서가 아닌 것 같아.’
정권의 비서실장은 실세 중의 실세이지만, 기업의 비서실장은 이름만 있는 자리이지 권력이랄 게 딱히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요즘 조규민은 마치 자신이 황정후를 대표로 한 정부의 비서실장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편하지만, 그만큼이나 책임이 커졌다.
“다른 생각 할 때가 아냐.”
요란하게 울리는 신호 연결음을 들으며 조규민이 이를 꽉 깨물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럼 남은 것은 그 사람이 해줄 테니까.
* * *
“저, 저거, 뭐하는 짓이야?”
“어어어?”
“사, 사람 아냐?”
대피하던 이들의 고개가 천장을 향해 돌아갔다. 아까부터 슬금슬금 떨어지기 시작하는 돌가루와 언제라도 바닥에 처박힐지 모른다는 듯 휘청이는 기구들 때문에 불안해서라도 위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내 머리 위에 뭐가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앞만 보고 나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불안함에 자꾸 위를 힐끔힐끔 돌아보던 이들의 눈에 레일을 타고 돌진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저거, 지금 잡고 움직이는 거야?”
“말도 안 돼. 레일에 뭐 걸었겠지!”
“뭔 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도 저런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저거? 그리고 저거, 저리로 가도 되는 거야? 무게가 더 실리면 레일이 더 뜯어질 텐데?”
“……안전 요원이겠지.”
“안전 요원은 무슨! 요즘 안전 요원들은 목숨 내놓고 일하나? 직원 옷도 아니구만!”
사람들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말이 천장이지, 저기서 떨어진 사람이 살아날 확률은 벼락 맞은 사람이 살아날 확률보다 더 적을 것이다. 그리고 벼락을 맞은 사람은 살아날 경우, 의외로 크게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는 것에 비해 저기서 떨어진다면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끔찍한 꼴을 당할 것이 빤했다.
“대, 대단하다. 저거 봐.”
“엄청 빠른데?”
그러는 사이, 위를 보고 대화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밀어젖히는 이들이 생겨났다.
“아, 씨발. 뭐하는 거야! 뭘 처 보고 있어! 빨리 가라고!”
“이러다가 붕괴 시작되면 다 죽는 거 몰라? 지옥 가서 본 거 자랑할 일 있어?”
“비켜! 나오라고!”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그나마 침착성을 유지하던 사람들이 위를 보는 이들 때문에 줄이 살짝 정체되자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언제 머리 위의 것들이 무너져서 그들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죽어라 억누르며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 아닌가.
그런 이들의 눈에 태평스럽게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대화를 하느라 줄을 정체시키고 있던 이들이 보이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를 수밖에.
“왜 안 나가냐고! 다 뭐하는 거야! 이러다가 우리 죽으면 책임 질 거야?”
“고, 고객님, 진정하시고.”
“비켜, 이 새끼야!”
사람들의 눈에서 이성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줄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공포와 불안이 인내심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놀이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밖으로 대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다가 정말 큰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앞사람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가! 가라고! 안 갈 거면 비켜, 이 새끼들아!”
“나와!”
안전 요원들이 필사적으로 그런 이들을 말렸다.
“고객님, 줄을 유지해 주셔야 합니다! 이러시면 사고 납니다!”
“밀지 마세요! 앞쪽 밀지 마세요!”
“거기! 내려오세요! 그쪽으로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 거기 길 없어요. 내려오세요!”
사람들이 등 뒤에서 슬슬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자 앞쪽의 사람들도 슬금슬금 앞쪽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싼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시야를 확보할 수 없다. 그러니 등 뒤의 사람들이 갑자기 급해지는 것이 왠지 뒤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다.
“비, 비켜봐요!”
“왜 안 가는 거야! 야! 안전 요원, 이 새끼들아! 다른 데 사람들 다 빠져나가고 우리는 처 죽어도 된다는 거야?”
“나갑시다! 앞쪽 사람들한테 나가라고 해봐요! 앞으로 가라고 하라구요!”
순식간에 패닉이 사람들을 덮쳤다.
뒤쪽의 사람들이 앞사람을 타 넘으려 붙잡고 늘어졌다. 곳곳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고, 주먹질이 오가는 현상까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안전 요원들이 상황을 통제해 보려 애를 쓰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을 막아내기에는 그들의 수가 너무 부족했다.
“씨발, 이러다 죽으면 개죽음이잖아! 나는 나가야겠어!”
“지하로 내려가면 일단은 안전하지 않을까? 여기서 이러느니, 차라리 지하로 가자고!”
사람들이 점점 난폭하게 변해가자 그동안 나름 체계를 유지하고 있던 대열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보안 요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결정타가 떨어졌다.
끼이이이잉!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위로 올라갔다. 그동안 그래도 나름 현상을 유지하고 있던 레일이 뒤틀리며 나는 소리였다. 머리 위에서 하얀 가루와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본 사람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죽는다.’
이대로 있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질서를 유지해서 다들 잘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겠지만…… 지금 이러다가는 앞쪽에 빠져나간 사람들만 좋은 일 시켜주고 자신들이 몰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와! 나오라고! 이 새끼들아, 나와!”
“비켜! 당장 안 비켜!”
앞쪽을 파고들고, 앞사람을 밟고 올라선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시면!”
“야, 이 미친놈아! 너도 죽고 싶어?”
“예?”
“여기 있다가 사고 나면 우리만 죽을 것 같아? 너희도 죽는 거야. 얌전히 질서 지키다가 차례로 다 죽을래?”
“…….”
보안 요원들의 얼굴도 서서히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저 레일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저 레일이 떨어지는 정도라면 큰 피해가 벌어지지 않겠지만, 저 천장이 멀쩡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나, 나갈래.”
“야! 미쳤어?”
“아, 씨발. 몇 푼 받아보겠다고 알바하는 처진데, 내가 씨발, 뭐 그리 대단한 일 한다고 여기서 끝까지 남아서 목숨 내놓겠어! 난 됐어.”
옷과 모자를 집어 던진 청년이 대오에 합류해서 소리쳤다.
“아! 비키라고! 나갈 거라고! 씨발, 앞에 줄 못 밀어낼 거면 비켜! 내가 할 테니까!”
상황이 점점 달아올랐다.
“언니! 언니!”
“이리로 와! 이리로!”
최연하가 손을 뻗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아이들을 끌어당겼다.
‘위험해.’
사람들이 너무 격앙됐다. 이러다가 정말 큰 사고가 날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