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22
#421.
응징하다 (1)
“개판이군.”
조규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거리를 바라보았다. 밀려 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차량이 조금도 이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일 게 빤해서 자신이 이곳에 온다고 해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앉아서 시간을 때우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일단은 아이들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행히 안에 있는 이들은 별문제 없이 빠져나온 것 같지만,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기세와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건물 외부에서 2차 피해가 벌어진다고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으니까.
조규민은 적당한 곳에다 차를 대고는 서둘러 내렸다.
차도로 사람들이 마구 몰려나오고 있어서 그 이상 차로 전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터져 버린 파이프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이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조규민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면서 사람들의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근처에서 통화가 너무 많이 걸리고 있어서인지 먹통이 되어버린 전화기가 겨우 신호음을 내기 시작했다.
“어디냐?”
[여, 여기요?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조규민은 한진성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평생 이런 곳에는 와보지 않은 아이들인데,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아니어도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주변이 모두 사람으로 뒤덮여 버렸으니 그게 쉽겠는가.
“아, 속 터지네.”
조규민이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좋은 일 하려 하면 꼭 일이 터진다니까.’
운도 없지.
자기가 놀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고, 애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온 놀이공원에서 하필이면 이런 일이 터지다니 말이다.
아마도 지금쯤 강진호도 속이 뒤집혀 있을 것이다. 조규민은 강진호의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안쪽으로 달려갔다.
“옆에 봐봐. 건물 안이야, 밖이야?”
[아직은 안이에요.]“애들 같이 모여 있어?”
[예. 지금 나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갈 수가 없어요. 저 혼자면 어떻게 뚫고 나가보겠는데, 애들이 힘이 약해서 자꾸 밀려나요.]“건물이 붕괴될 일은 없으니까, 억지로 나오려고 하지 말고 자리 지켜. 내가 지금 들어갈 테니까 말이야.”
[예. 그런데 애들이 너무 무서워해서…….]“알았어. 금방 갈게. 주변에 뭐가 보인다고?”
한진성의 설명에 대략의 위치를 파악한 조규민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저 안쪽이네.’
저기라…….
바늘 하나 밀어 넣은 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밀려 나오고 있는 사람들을 본 조규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거기, 뭐하는 거예요?”
역주행을 하는 조규민 때문에 빠져나오는 이들이 정체된다 싶자, 통제를 하던 경찰들이 조규민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조규민은 이를 악물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따라붙는 경찰들을 따돌리며 조규민이 사람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좌우로 밀려 들어오는 압력에 몸이 찌부러지는 느낌이 났지만, 조규민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앞으로 파고들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참 다양한 일을 겪는다 싶은 조규민이었다.
* * *
‘어디지?’
최연하는 정신없이 건물 안을 누비고 있었다.
전화가 먹통이 돼서 아이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전화를 계속 걸어보고는 있지만, 도무지 전화가 걸리지가 않는다.
‘침착하자.’
달리고 또 달리던 최연하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깊게 숨을 내쉬었다.
무작정 달려서 확인하기에 이곳은 너무 넓었다. 그녀 혼자 뒤지려 한다면 일주일이 걸려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그만한 시간이 없었다.
‘초등학생이 이런 상황에서 언니들과 떨어진다면 제일 먼저 어디로 갈까?’
상식적으로 본다면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려 하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니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최연하가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러고 있다가 안전 요원들에게 들키면 그녀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민지를 찾아내야 한다.
“아우! 선녀 나셨네!”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왜 여기서 애를 찾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녀의 팬들이 그녀가 이런 위험한 곳에서 아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이다.
물론 아무 상처 없이 곱게 살아 나갈 수 있다면 미담이 되겠지만…….
‘미담은 얼어 죽을.’
기사화가 되어야 미담이지, 이걸 누가 기사로 써준다고 미담이란 말인가.
막상 기사화가 된다면 최연하부터 기겁을 해서 기사를 막으려고 애쓸 건데.
이미지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고생만 죽도록 하는 이런 일 따위…… 예전이었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최연하였으니까.
‘내가 미쳤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는 그녀도 잘 알 수 없었다. 원래 그녀에게 이런 성향이 있던 것인지, 아니면 강진호를 만나고 보육원 아이들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변한 것인지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나중에 하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공포에 떨고 있을지 모르는 아이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후, 안전하게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후우우우우.”
깊게 심호흡을 한 최연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솔직히 좀 무서워.’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 머리 위에서 뭐가 떨어져 내릴지 모른다는 것은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터널에 갇혔을 때의 그 공포스러운 경험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가 느낀 그 짙고 깊은 절망에 비한다면, 지금의 두려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이 안에 민지가 홀로 방치되어 있다면, 그 아이는 과거 최연하가 느낀 공포를 그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최연하에게는 강진호라도 있었지만, 오민지에게는 아무도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 꼴을 어떻게 봐.’
그렇다면 자신이 오민지의 강진호가 되어주어야 한다. 조금 무섭고 겁이 난다고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 봐. 내가 초등학생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마라. 애들은 본능에 좀 더 충실하다. 이성…….
“화장실!”
최연하가 눈을 번쩍 떴다.
예전에 그녀도 공공장소에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 화장실로 찾아들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했다. 이 드넓은 곳에서 온전히 혼자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소는 그곳 하나뿐이니까.
문제는 이곳에 화장실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많은 화장실을 모두 뒤지려면 시간이…….
그 순간, 최연하의 전화가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반색한 최연하가 전화를 들었다.
오민지.
액정에 뜬 이름을 본 최연하가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민지야! 너 어디니!”
최연하의 가슴이 마구 뛰었다.
드디어 민지와 연락이 되었다는 안도감도 한몫했지만, 이 다급한 와중에 그 아이가 전화를 걸어준 사람이 다른 이가 아닌 최연하 자신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벅차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그 아이의 전화기에 최연하의 이름으로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떴을 게 자명하다지만, 정말 그녀를 믿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전화가 끊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먼저 전화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 언니…….]“잠시만!”
최연하가 심호흡을 했다.
다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녀도 이미 겪어보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판단력이 마비된다. 최연하가 다급하게 굴수록 오민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까지 판단한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연기야 이쪽의 주특기니까.
“그래그래, 민지야. 많이 무서웠지? 언니가 지금 찾고 있으니까, 거기가 어딘지 말해볼래?”
목소리가 떨려 나오지 않게, 급박하게 보이지 않게.
속은 타들어 간다고 하더라도 이럴 때는 신뢰감을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이 의미가 있었는지, 오민지의 목소리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여, 여기 화장실인데…….]최연하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정말 화장실이야?’
이거, 진로를 잘못 택한 거 아닐까? 어쩌면 배우보다 탐정이 좀 더 적성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래, 화장실. 응. 그래, 잘했어.”
일단은 오민지를 한 번 더 진정시킨 최연하가 결코 재촉하지 않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그런데 화장실이 너무 많아서 언니가 찾아가기가 힘들거든? 어디쯤 있던 화장실인지 민지가 말해줄 수 있을까?”
[여기…….]“그래. 급할 것 없으니까, 천천히 설명하면 돼.”
[2층인데…….]순간, 최연하의 눈이 빛났다.
“그래. 2층 어디쯤?”
목소리는 느긋하지만 2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다리는 전력으로 계단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이 3층이니 한 층만 내려가면 된다.
[잘 모르겠어, 언니.]“들어오기 전에 뭔가 본 게 없을까?”
[밖으로 나가는 길을 본 것 같은데…….]“밖? 출입구 말하는 거니?”
[아니. 성 같은 거 있는 데.]빙고!
대충 위치를 짐작한 최연하가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호수가 있는 쪽으로 나가는 통로. 머릿속으로 지도를 떠올린 최연하의 발이 좀 더 빨라졌다.
“그래, 민지…….”
전화기에서 들리는 지직거리는 소리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최연하는 통화가 끊기는 소리에 욕을 내뱉었다.
“이 빌어먹을 통신사 새끼들, 내가 다시는 광고해 주나 봐라!”
작년에 이 통신사 광고를 찍었다는 사실이 순간 흑역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서비스고 개뿔이고, 일단 통화부터 잘되게 해야 할 것 아닌가. 통화량 좀 많아진다고 전화가 안 되면 어떡하자는 건가.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최연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이 근처에…….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혹시 사람이 남아 있는지 점검하던 안전 요원이 최연하를 발견하고는 득달같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당장 나가세요! 당장!”
“잠시만요.”
“잠시고 나발이고…… 최연하 씨?”
안전 요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연하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이 근처에 화장실이 어디 있죠?”
“지금 위험해서 건물 내부의 화장실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이 안에 우리 애가 있는데! 걔가 지금 화장실에 있대요. 애가 패닉이라 화장실 안에서 못 나오고 있단 말이에요.”
“애, 애요?”
순간, 표정이 복잡해지는 안전 요원을 보며 최연하가 이를 갈았다.
“무슨 병신 짓을 하는 거예요! 지금 여기 사람이 남아 있다구요! 초등학생이!”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안전 요원이 얼굴을 굳혔다.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죠?”
순간, 갈등하던 안전 요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이쪽으로!”
최연하가 안전 요원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언니가 금방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최연하의 눈에 간절함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