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25
#424.
응징하다 (4)
최연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봐.’
생각해 보면 강진호와 여러 일에 얽히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화가 난 강진호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느낌은 뭐라고 해야 할까.
‘무서워…….’
조금 전의 그 괴인과는 달랐다.
괴인이 주는 느낌은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안 된다는 것과 괴인의 정신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불안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영혼이 얼어붙어 버릴 것 같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최연하는 괴인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강진호라는 사람이 자신의 기준으로 인간을 나누고 안에 있는 이들과 밖에 있는 이들에게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고나 할까.
적어도 그녀에게는 이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평소 웃고 떠들던 사람의 안에 저런 모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커다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라고 비유해야 할까.
잘 가지고 놀았던 모형 총이 알고 보니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 총이고, 그 안에 실탄까지 장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섬뜩함?
아마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 총을 예전처럼 편히 대하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아…….”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강진호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최연하가 입을 벌리고 신음을 흘렸다.
우뚝.
그리고 그 낮게 흘러나온 소리에 강진호가 멈춰 섰다.
최연하는 떨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린 강진호의 눈에서 방금 저 괴인 같은 눈빛이 보일까 봐 겁이 나고 두려웠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리기까지 그 잠깐의 시간이 마치 억겁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최연하는 다시 한 번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르지 않다.
조금은 사나워 보이는 눈매이기는 하지만, 돌아선 강진호의 눈빛은 지금까지 그녀가 알던 강진호의 눈과 같았다. 그리고 조금 전 그녀의 심장을 옥죄던 이상한 공포도 사라져 있었다.
낮게 한숨을 쉬는 것 같던 강진호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최연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고생했어요.”
살짝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최연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왜일까.
이제는 괜찮다는 안도감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다리에 너무 힘을 주고 있던 반작용이라는 시시한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연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알고 있었다.
이 무뚝뚝한 남자가 그렇게나 화가 난 와중에서도 그녀를 걱정해서 돌아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것이다.
‘다르지 않아.’
그녀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었다. 조금 전 이제까지 볼 수 없던 모습을 보았음에도, 그래도 강진호는 여전히 강진호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슴을 내리누르는 안도감을 느낀 최연하는 눈가에 뿌옇게 차오르는 눈물을 훔치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
“늦었잖아요, 이 무능한 인간아!”
“…….”
“뒈질 뻔했잖아.”
강진호의 몸이 살짝 휘청하는 것 같았다.
악담을 퍼붓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겠는지, 강진호의 다리를 몇 번 걷어찬 최연하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씨…… 주름 생기겠네.”
“……괜찮습니까?”
“나는 괜찮은데, 애가 경기 일으킬 뻔했잖아요! 저 미친놈은 뭐예요?”
“글쎄, 그건 저도 잘…….”
“하기야 미친놈이 미친놈이지, 다른 게 뭐가 있겠어.”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서 연신 육두문자를 내뱉는 최연하를 보며 강진호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이 여자는 정말 예측이 안 된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일어날 수야 있죠……. 힘들어서 그렇지.”
최연하가 은근 부축을 해주지 않으면 걷기가 어렵다는 기색을 내보였지만, 강진호는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민지 데리고 밖으로 나가세요.”
“우리끼리요?”
“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인간을…….”
“위험하니 나가 있어요. 저는 마저 처리할 것만 처리하고 갈게요.”
최연하가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지만, 지금 강진호에게서는 뭔가 거부할 수 없는 묵직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본 모습이 지금의 모습에 겹쳐지자 최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 이상 강진호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조금 전 같은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무섭다는 게 그녀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제가 데리고 나갈게요.”
“부탁드립니다.”
“……대신에 이 빚은 확실하게 받을 거예요.”
“예.”
“약속했어요!”
“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연하가 만족했다는 듯이 웃고는 어느새 그녀와 같이 주저앉아 있는 오민지를 부축해 세웠다.
“민지야, 일어나자. 이 무심한 양반이 우리끼리 빨리 나가란다. 박복한 인간 옆에 있다가는 괜히 벼락 맞는다. 얼른 가자.”
얼떨떨해하는 오민지를 일으켜 세운 최연하가 강진호에게 눈을 한 번 흘기고는 입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복도까지 따라 나와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진호가 얼굴을 굳혔다.
“나와.”
순식간에 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와, 지금 당장.”
지독한 분노가 강진호에게서 흘러나왔다. 심약한 사람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잔인한 얼굴을 한 강진호의 앞으로 괴인이 그림자 속에서 흘러나오듯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인 모습이지만, 괴인은 나름 여유가 있는 얼굴이었다.
“휘유.”
괴인이 살짝 너스레를 떨었다.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군. 한국의 무인계를 손에 넣으신 위대하신 분이 화를 내니 내가…….”
콰앙!
괴인이 말을 하다 말고 뒤로 튕겨 나갔다.
“끄으으윽.”
일격에 코가 부러지고 앞니가 모조리 날아간 괴인이 얼굴을 움켜쥐고 몸을 뒤틀었다. 마기로 가득 찬 그의 뇌라고 해도 이 끔찍한 고통을 온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이익!”
순간적인 고통이 가시자 분노가 찾아온다.
강진호! 강진호!
저 증오스러운 강진호가 눈앞에 있다.
괴인은 포효하듯 소리쳤다.
“강진호오오오오오오!”
하지만 강진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갈 뿐이었다.
“궁금하겠지.”
“…….”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말이야. 큭큭큭큭.”
괴인이 소리쳤다.
“나는…….”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강진호가 말을 하려는 그의 입을 그대로 틀어잡아 버린 것이다.
그가 아무리 용을 빼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금방이라도 이가 부러져 나갈 것 같은 압력으로 얼굴을 잡히고도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귓가로 뿌득뿌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는 없다. 죽는 것이 두려웠다면 애당초 강진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강진호를 조금만 지켜본 사람이라도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주변 사람들을 건드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뿌드드득, 뿌득.
얼굴뼈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유격되는 듯한 소리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들려온다. 고막으로 지금 전달되는 소리는 그의 얼굴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이 기괴한 상황 앞에서 평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드득.
버티지 못한 어금니가 부러졌는지 뽑혀 나갔는지, 입안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며 피가 역류하기 시작한다.
“끄윽…… 끄으윽.”
하지만 괴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신음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간간이 힘을 모아 그를 들어 올린 강진호의 다리 어림을 걷어차 보기도 했지만, 강진호의 다리는 마치 강철과도 같았다. 내력을 잔뜩 실어 걷어찬 그의 발이 오히려 아파올 정도였다.
지금 괴인을 사로잡고 있는 건 공포나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당혹.
당혹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강진호와 조우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그리고 또 그렸다. 하지만 그가 예측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입도 제대로 열어보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궁금해야 하니까.
사람이라면!
그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네가 누군지…….”
“…….”
“그리고 왜 이런 짓을 했는지…….”
강지호의 입가기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걸 왜 내가 궁금해해야 하지?”
강진호가 가만히 속삭였다.
“안다고 달라질 게 있나? 어차피 나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일 텐데 말이야. 네가 어떤 놈이고, 어떤 이유에서 이런 짓을 했는지 알면 내 행동이 달라지기라도 하나?”
말랑하다.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이 시대의 인간들은 중원의 인간들에 비해서 비할 바 없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말랑하기 짝이 없다.
공격을 해온 이를 죽이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 이유를 알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결국 남는 것은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과…….
강진호가 괴인의 얼굴을 잡은 채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찧었다.
쿠우웅!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거대한 폭음과 진동이 주위를 휘몰아쳤다.
“꺼어억…….”
머리로 바닥을 부숴 버린 괴인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재미있는 말을 하더군.”
강진호가 나직하게 웃었다.
너무나도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한 가지에 있어서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군. 인간이란 자신의 몸에 직접 고통이 가해지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매우 대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사람의 민낯을 보고 싶다면 그 사람이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면 되는 거야. 그렇지?”
괴인의 몸이 학질에라도 걸린 듯이 덜덜 떨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할 정도로 이해했다. 조금 전 그가 최연하를 위협했던 그대로 그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이었다.
“다만, 방식의 차이는 있겠군. 내가 있던 곳은 그런 식으로 양팔이 잘려 나가고 나서야 일찍 말을 하는 것이 이득이었다는 것을 알아채는 멍청이들밖에 없던 곳이라 말이야. 그러니 나는 좀 더 즉각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
강진호가 머리로 콘크리트 바닥에 구멍을 뚫어버린 괴인의 멱살을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어때 보이나?”
괴인의 감긴 눈이 떠졌다.
무엇을 묻는 건가.
이 미친놈은 대체 자신에게 뭘 묻고 있다는 말인가.
“내 표정이 어때 보이냐고 묻고 있잖아.”
“…….”
괴인의 몸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참을 수가 없다.
마기에 절어서 폭력과 쾌락만을 갈구하게 되어버린 그이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강진호의 얼굴만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강진호의 얼굴은 끔찍하거나 섬뜩하지 않았다.
되레 너무도 즐거워 보였다.
너무도 가지고 싶어 하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말이다.
강진호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사실…… 평범한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지. 조금만 건드려도 쇼크로 죽어버리니까 말이야. 상대를 괴롭혀야 하는 와중에 상대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건 꽤나 스트레스거든,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가 환희 웃었다.
“이건 정말 좋은 만남이 될 거야.”
괴인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