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26
#425.
응징하다 (5)
강진호가 가만히 손을 뻗어 괴인을 움켜잡았다.
그의 멱살을 잡아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긴 강진호가 비릿하게 웃었다.
“재미있을 거야. 무척이나 말이야.”
막 손을 쓰려고 하는 강진호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별로 재미가 없는데요?”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조규민이 서 있었다.
“…….”
강진호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본 조규민이 몸을 움찔했다.
지금까지 조규민은 딱히 강진호의 살기에 정면으로 노출된 적이 없었다. 강진호가 일을 벌일 때 조규민은 언제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먼 거리를 두고 지켜보거나,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이런 기분이구나.’
때로 느낀 적이 있었다.
강진호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과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을.
특히나 방진훈 계열의 뒷세계 사람들은 그와 전혀 다른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조규민이 강진호를 생각할 때 가장 우선되는 감정이 친애와 신뢰라면, 방진훈들이 강진호를 바라볼 때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우선되었다.
때때로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던 조규민이지만, 지금 강진호의 눈빛을 보자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예전의 나도 그랬지.’
한때는 강진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밀려오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조규민은 그 과거의 기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가만히 조규민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쟁이라도 났나 보죠?”
조규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감정이 극에 달할 정도로 흥분한 강진호이지만, 그에게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다. 다가온 사람이 조규민이라는 것을 파악한 강진호는 재빠르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걸 본래의 모습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본래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증오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강진호의 모습이 ‘본래’ 그의 모습에 더욱 들어맞을 것이다.
“……전쟁보다 더했죠.”
머리는 까치집을 해서 옷 여기저기가 찢겨 나간 조규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흥분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인파를 뚫고 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을 발견해서 밖으로 빼내는 것에 성공한 조규민이 아직 안에 있는 강진호와 최연하를 찾으러 다시 돌입을 강행한 것이었다.
그 대가는 지금 조규민의 모습이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남은 걱정돼서 이 안까지 들어왔는데,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계시네요.”
“적당히 응징해 줄 필요가 있는 놈이라서요.”
조규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의 놀이를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 구조대와 경찰들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는 것도 좋지만, 그놈을 여기서 처리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군요.”
“오래 걸리지 않을겁니다.”
“뒷처리도 시간이 걸리겠죠.”
“어려울 것 없는 일이죠.”
강진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조규민이 낮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씀드리죠. 이 말을 듣고도 강진호 씨가 그놈을 당장 어떻게 안 하면 못 견디겠다 싶으시면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강진호가 조금 짜증이 어린 눈으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강진호가 이런 눈으로 조규민을 바라본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생각하는 조규민은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가 막으려 한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아마 그 이유는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진호가 조규민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덤벼드는 이는 어떻게 해서든 응징한다. 결코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게 강진호의 1원칙이었다. 그런데 지금 조규민이 그런 강진호의 원칙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중원의 있을 당시의 강진호라면 조규민 역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성과 계획을 내세우던 청마가 강진호의 앞을 막아서다가 응징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살짝 눈을 찌푸린 강진호가 가만히 조규민의 말을 기다렸다.
일단은 하는 말을 들어주는 것이 조규민에 대한 그의 마지막 배려였다.
“큰 사고를 당해서 애들이 혼란스럽고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조금 전 이놈에게 큰일을 당할 뻔한 민지 양과 연하 씨 표정이 많이 안 좋습니다.”
“…….”
“사고를 당한 아이들이 강진호 씨가 나오지 않아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보다 그 쓰레기를 짓밟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가보겠습니다.”
조규민은 가보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되레 대답을 기다리겠다는 듯이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진호는 그런 조규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멱살을 움켜쥔 괴인을 쭉 끌어당겼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괴인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딱히 생각할 문제도 아니네요.”
“…….”
강진호가 손에 든 괴인을 주먹으로 두어 번 후려치더니, 벽으로 집어 던졌다.
쿠우웅!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며 괴인이 축 늘어져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나가죠.”
조규민이 그런 강진호를 보며 환희 웃었다.
강진호는 강진호다.
아무리 분노에 차 있다고 하더라도 강진호는 결국 강진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놈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동안은 깨어나지 못할 거예요. 방진훈 씨에게 연락해서 경찰에게 인계받으라고 해놓죠.”
“좋은 선택이십니다.”
조규민이 빙긋 웃자 강진호가 조금은 떨떠름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거,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것 같아서 좀 껄쩍지근한데…….”
“생각대로 움직이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그 생각이라는 것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흐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입니다.”
조규민이 앞장서서 앞으로 걸어가자 강진호는 고개를 살짝 돌려 기절해 있는 괴인을 일별하고는 조규민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중원에서의 그였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덤벼든 이를 응징하지 않은 채 돌아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지옥이란 게 뭔지를 알려주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적천마존이 아니었다.
조금 찝찝하기는 하지만, 그의 가슴이 확실하게 말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라고.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안심시켜 주라고 말이다.
‘달라진 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확실하게 자신의 변화를 느끼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 같았다.
‘나쁘지는 않군.’
강진호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돌이켜 보면 중원에서 그가 한 일은 부수고 없애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어떤 것도 포용하지 못했다.
이번 생은 실패하더라도 그때처럼 외롭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대부분은 다 빠져나간 모양이네요.”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섰다.
“왜 안 나와!”
“……진정 좀 해요, 누나.”
“한참 지났잖아!”
“그 말 한 지 5분도 안 됐어요.”
한진성은 달달대고 있는 최연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체통 좀 지키세요, 우주 대배우님.’
한진성이 딱히 연예인이라는 사람들에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가 연예인에 관심이 있어서 최연하를 알고, 혹여 그녀의 팬이기라도 했다면, 지금 이 광경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뭐, 다행이기도 한 거지.’
팬이 아니기 때문에 최연하의 행동을 사심 없이 바라볼 수 있었고, 덕분에 최연하를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좋아할 수 있었다.
다만, 뭐랄까…….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일에 프로페셔널하고 사생활도 깨끗한 것으로 유명한 최연하였다. 성격도 착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물론 게시판 곳곳에 최연하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근거 없는 악소문…… 아니, 진실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무릇 연예인이라면 그 정도 안티는 다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지금까지 한진성이 지켜본 최연하는 뭐라고 해야 할까, 무척이나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때로는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어떻게 연예인이 되었나 싶기도 하고, 때로는 대체 어떻게 이런 개차반인 성격을 지금까지 잘 숨겨가며 이미지를 유지했나 싶기도 한, 그런 사람이었다.
“안 나온다고!”
“아, 좀 기다려요! 저 건물 무너져도 진호 형은 안 죽어요.”
“너는 피도 눈물도 없어? 네 형이 저 안에 있는데, 어떻게 그런 태연한 말을 할 수가 있어? 냉정한 새끼!”
최연하의 말과 동시에 아이들의 비난 어린 눈이 한진성에게 꽂히기 시작했다.
“아, 아니! 내 말은!”
한진성이 서둘러 항변하려 했지만, 아이들은 여지도 주지 않았다.
“배은망덕한 인간.”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자식새끼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더니.”
마지막 말은 여기서 나올 말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여기서 자칫 입을 뗐다가는 더 심한 비난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한진성은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감정적이 되어 있는 애들 앞에서 논리를 들이대 봐야 논리충이라는 욕밖에 더 먹겠는가.
‘죽을 사람이 따로 있지.’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꺼져도, 쓰나미가 밀려와도 강진호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저기 나오는 것 같은데?”
“응?”
한진성이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폴리스 라인으로 통제가 되고 있던 입구 쪽으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하나는 조규민이고, 하나는 강진호였다.
“거 봐, 별일 없다니…….”
한진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연하가 건물 밖으로 나오는 강진호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한진성이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 누나가 미쳤나?’
지금 주변에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리도 시선을 끈다는 말인가. 아무리 선글라스에 모자를 다시 썼다지만,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도 꽤 되는 것 같던데…….
한진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연하는 위험하다고 그녀를 제지하는 경찰의 만류마저 뿌리치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강진호에게 달려들었다.
“허얼?”
그러고는 폴짝 뛰어올라 강진호에게 그대로 안겨들었다.
“꺄아악!”
“어머! 어떻게 해!”
지켜보던 여자아이들이 몸을 배배 꼬며 탄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너희 방금 죽을 뻔했어, 이 미친것들아.’
한진성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강진호에게 안겨든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참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그림은 나오네.”
최연하를 안아 든 채 등을 두드려 주고 있는 강진호를 보며 한진성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놀이공원 다시는 안 올 거야.”
“나도.”
“절대로.”
“누가 처음에 놀이공원 오자고 했어?”
아이들의 시선이 한진성에게로 쏠렸다. 그 살기 어린 시선을 받으며 한진성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다 내 잘못이지. 죽여라, 죽여.”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며 성심 보육원의 놀이공원 기행기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