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3
#42.
부자 되다 (4)
주인 아저씨는 가만히 강진호와 자전거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인승?”
“예.”
“이걸 둘이 타겠다고?”
“예.”
“…….”
“안 되나요?”
안 되냐고 물은 건가, 지금?
아저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넌 이 자전거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이 자전거는 오로지 도로에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차체를 경량화하고, 안정성을 높이고,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를 하는 등 온갖 자전거 관련 기술이 집약된 스포츠카 같은 거란 말이다! 아니, F1 머신이라고 해야겠지! 그런데 그 자전거를 뭐라고? 둘이? 둘이 탄다고?”
강진호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것도 뒷바퀴 위에 흉물스런 짐받이를 달아서 미관을 해치겠다는 말이냐?”
“예.”
주인은 이제 거의 거품을 물 기세였다.
“난 못한다! 내 손으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어!”
“그래요?”
강진호는 태연하게 몸을 돌렸다.
자전거 가게가 여기뿐인 것도 아니고, 안 해주면 그만이지.
“다른 데로 가자.”
“자, 잠깐!”
“네?”
“정말 달 거냐?”
“그렇다니까요.”
“정말?”
강진호가 말없이 자전거를 끌고 가려 하자 주인 아저씨가 팔을 움켜잡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차피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조금 기다려라.”
가게 주인은 안으로 들어가서 짐받이용 안장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어두운 얼굴로 자전거 뒤에 짐받이 안장을 달았다.
박유민은 나사 조이는 소리가 그리 슬프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주인 아저씨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다 됐다.”
“얼마예요?”
대답 없이 가만히 비앙키의 뒷바퀴 위에 달린 짐받이를 본 주인 아저씨의 어깨가 추욱 늘어진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 광경을.
최고급 스포츠카의 뒤에 털털대는 티어드롭 트레일러가 달린 느낌이 이러할까?
……아니, 최고급 스포츠카에 리어카가 연결되어 있는 걸 보는 심정이 이렇겠지.
“그냥 가라.”
“예?”
“이런 몹쓸 짓을 하고도 돈을 받으려니, 내가 심장이 찢어져서 안 되겠다.”
“그래도 돈은…….”
“됐다. 괜히 이상한 데 갔다가 프레임에 스크래치라도 날까 봐 해준 거니까. 최대한 기스 안 나게 달았으니까 조심해서 타야 한다!”
그 외에도 ‘윤활유는 직접 치지 말고 꼭 여기 와서 쳐야 한다느니’부터 시작해서 자전거를 관리하는 법을 줄줄 늘어놓는 주인 아저씨였다
강진호는 실소를 터뜨렸다.
뭔가 조금 과하긴 하지만, 정말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예, 알겠어요.”
자전거를 끌고 돌아서는 강진호를 보며 주인 아저씨는 피눈물을 삼켰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런 명기를 저런 무식한 인간에게 쥐어 주다니!
이건 자전거에 대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강진호는 빠른 걸음으로 주인 아저씨의 눈에서 사라졌다.
골목을 돌아 나간 강진호는 박유민을 불렀다.
“타야지.”
“응? 나 때문에 단 거야?”
“그럼?”
“주인 아저씨한테 괜히 미안해지는데.”
“그러게.”
이런 걸로 상처 받으면 앞으로도 상처 받을 일이 많을 텐데.
강진호는 박유민을 태우고 보육원으로 향했다.
다만, 강진호가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아무리 좋은 자전거라고 하더라도 페달은 그리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조규민이 비앙키에 달려 있던 로드 레이서용 클릿을 제거하고 일반 페달을 달아 가져온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언덕에 올라 힘을 준 순간 페달은 힘없이 부러져 나갔고, 강진호는 머리를 감싸 쥐어야 했다.
다음 날, 강진호의 ‘돈 처발라도 별로 다를 것도 없구만!’이라는 직설적인 대사에 상처를 입은 조규민은 그 즉시 절대 부러지지 않는 페달을 주문 제작했다.
강진호를 서포팅하는 일은 멀고도 험했다.
* * *
“아파트가 나아요!”
“무슨 소리야! 정원 있는 가정집이 낫지!”
“그럼 그 정원은 누가 관리하구요?”
“내가 하면 되잖아.”
“허이고, 잘도 하겠다, 잘도! 한다고 말한 것치고 당신이 한 게 뭐가 있다고 정원 관리 하겠다는 말이 나와요!”
“이번에는 한다니까!”
“시끄러워요! 관리 편한 아파트로 가요!”
백현정의 단호한 반응!
평소였다면 강유환도 못 이기는 척 백현정의 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당신은 잔디밭에 대한 로망이 없는 거야? 앞마당 넓은 곳에 잔디도 깔고, 그 잔디 위에서 세차도 하고…….”
“잔디 위에 차 들어오면 잔디 죽어서 안 돼요.”
“……현실적인 여자.”
“칭찬이죠?”
“……그럼.”
강진호는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는 사소한 부부 싸움을 뒤로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진호야, 넌 어디가 나으냐!”
점점 패색이 짙어지던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강진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강진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두 분이 정하는 대로 갈게요.”
“매정한 놈, 네 어머니의 피를 제대로 이어받았구나.”
“칭찬이죠?”
“……그럼.”
강진호는 씨익 웃고는 문을 닫았다.
그의 자전거 금동이가 강진호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좋긴 한데…….”
실내에 보관해야 한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강진호는 그냥 밖에다 보관하려 했는데, 나름 안목이 있던 아버지가 기겁을 하더니 자전거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흙 묻은 걸 집 안으로 들인다고 소리치던 어머니도 자전거 가격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아무 말 없이 위치를 정해주었다.
“오빠, 나도 같이 가!”
강은영이 뛰다시피 나왔다.
“너 왜 벌써 가?”
“오늘은 좀 일찍 가야 해.”
“그래?”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달린 안장을 가리켰다.
“탈래?”
가만히 자전거를 바라보던 강은영이 결심을 한 듯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장함이 어쩐지 껄끄러운 강진호였다.
자신의 자전거가 무슨 폭주 기관차도 아니고.
“살살 몰아.”
“알았어.”
“저번처럼 몰면 머리 다 쥐어뜯어 버릴 거야.”
“알았다니까.”
예전에 호기심 삼아 강진호의 뒷자리에 앉아본 강은영은 자전거의 미친 속도에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자전거를 멈춘 강은영이 바닥에 주저앉아 울며 외치던 저주의 말들이 아직 귓가에 생생했다.
그래도 나름 대견스러운 것이, 그 꼴을 당하고도 다시 자전거를 타겠다고 덤비고 있지 않은가.
강진호는 동생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천천히 자전거를 몰았다.
물론 그 천천히는 강진호의 기준이었다.
덥썩.
뭔가가 뒷머리를 움켜잡았다.
“내가 천천히 가라고 했지.”
“대단히…… 천천히…… 가고 있습니다만?”
“속도 더 줄여.”
“분부대로.”
강진호는 기어가는 듯한 속도로 자전거를 몰았다.
‘이쯤 되면 다른 자전거보다 더 느린 듯싶은데…….’
무시하고 갔어야 하는데, 입이 방정이었다.
강진호는 하품이 나올 듯한 속도로 겨우 동명 중학교에 도착했다.
“수고했어, 강 기사.”
“차비는?”
“꺼져.”
“예. 가다 넘어지세요.”
강진호는 자전거를 돌리고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몰고 갔다.
강은영의 친구들이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너희 오빠, 진짜 잘생겼다.”
“너 눈이 굉장히 저렴하구나?”
“저 정도면 잘생겼지.”
“어딜 봐서?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달리면 잘생긴 거냐?”
강은영의 친구가 꺄르르 웃었다.
“웃긴다. 니 눈이 이상한 거지. 야, 너희 오빠 소개 좀 시켜주면 안 돼?”
“안 돼.”
“왜!”
“니가 너무 아까워서 안 돼. 우리 오빠는 상종 못할 사람이야. 성격이 얼마나 이상한데.”
“야,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까 소개 좀 해줘!”
“안 된다니까! 야, 저리가!”
“왜 성질내고 그래!”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강은영은 소리를 빽! 지르고는 몸을 돌렸다.
‘곱등이 같이 생긴 게 어디 남의 오빠를 탐내?’
강은영은 슬쩍 고개를 돌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는 모습이나 쭉 뻗은 다리하며, 동생인 그녀가 봐도 그림이 좀 된다.
‘요즘 들어 용 되기는 했지.’
오라비가 잘생겨지면서 슬금슬금 벌레들이 꼬이고 있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돼!’
강은영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강진호는 자전거를 끌고 이사장실로 향했다.
‘이 짓을 그만할 수는 없나?’
귀찮기도 하고 유별스럽기도 해서 자전거 보관소에 자전거를 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수업을 마치고 내려오자 그 자전거는 귀신과도 같이 이사장실로 옮겨져 있었다. 그 이후로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고생시키느니 자기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강진호였다.
강진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장실 안에는 조규민이 한창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준비해 뒀습니다.”
“웬 커피입니까?”
“아침에는 역시 모닝커피죠.”
“운동하고 온 사람한테 뜨거운 커피를 먹으라구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준비해 뒀습니다.”
“빈틈이 없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강진호는 금동이를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조규민이 내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었다.
처음에는 학생 신분으로 이사장실을 자꾸 들락거리는 것이 영 부담스러웠지만, 몇 번 하다 보니 그것도 자연스러워져 갔다.
강진호는 단숨에 커피를 입안에 들이부었다.
“커피는 향을 음미하시면서…….”
“잘 먹었습니다.”
조규민은 밖으로 나가는 강진호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참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교실로 향하던 강진호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을 보았다.
“강진호.”
한세연이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은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사람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한마디를 안 져요.”
“무슨 일인데?”
한세연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모의고사.”
“내기하자.”
강진호는 가만히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내기?”
“너, 나 이길 수 있다며? 이번에 내기하는 거야. 어때?”
“내기라…….”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상황이든 걸어온 승부는 거절하지 않는 것이 강진호의 방식이었다.
“그러지.”
“내기면 조건을 걸어야지. 넌 뭐 걸래?”
“글쎄?”
“내가 이기면 내 소원 하나 들어줘.”
“무리한 거 아냐?”
“들어줄 수 있는 소원만 들어달라고 할 거야. 정 어렵다 싶으면 싫다고 해.”
“알았다.”
“너는 뭐?”
“같은 걸로 하지.”
“알았어! 잊지 마! 소원 들어주기야!”
한세연은 그 말을 남기고 걸어갔다.
“흐음…….”
강진호는 미소를 지으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과거의 강진호로 본다면 큰코다칠 터였다.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강진호는 최근에는 공부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과거보다 몇 배나 활성화된 강진호의 뇌로 시간을 내 공부했으니 그 효과는 확실할 터였다.
‘너무 잘하는 것도 문제지만, 원래 성적 정도는 내줘야지.’
강진호는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다.
시험이 시작되고 강진호는 가볍게 펜을 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