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35
#434.
대면하다 (4)
태연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는 강진호를 보며 방진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아무런 대책이 없는 건가?’
방진훈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강진호의 얼굴을 보며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강진호는 의뭉스러운 사람이었다. 일을 진행하면 시원시원하게 뒷일이고 뭐고 고려하지 않고 다 뒤집어 버리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그 ‘일’을 시작하는 계기가 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발사되면 주변을 다 쓸어버리는 기관총의 방아쇠가 어디 달려 있는지 몰라 차마 건드리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백 프로 믿을 수는 없어.’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분명 다른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같은 상황은 불가능하니까.’
이리 보고 있으면 잊어버리게 된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말이다.
강하니까?
아니다.
단순히 강하기 때문에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강진호가 무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일 년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만으로도 강진호는 무인계를 깔끔하게 일통하고 대한민국의 뒷세계를 장악한 것이다.
이 상황이 그저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그저 강진호가 강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까?
‘아니, 절대로!’
돌이켜 보면 강진호는 절묘하게 그 상황마다의 최선을 밟아 나갔다. 당시에는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일들도 돌이켜 보면 그때 당연히 해야 할 최선의 선택이었다.
강진호가 최선을 밟아 나가는데 그의 능력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항상 최선만의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통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마련인데…….’
인간은 누구나 허세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능력이 있는 이는 자신의 능력을 더욱 포장하여 내세우고 싶어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가지고 있는 능력조차도 감추고 숨기려 드는 것이다.
어쩌면 강진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던 것은 그런 성향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럼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네?”
“저는 일본 문제 때문에 상의할 게 있어서 오신 줄 알았는데, 그럼 왜?”
답변을 요구하는 방진훈의 얼굴을 보며 강진호는 미묘하게 고개를 꺾었다.
“……그냥 왔는데요?”
“네?”
“그냥 왔다구요.”
강진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방진훈이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움찔한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쫓겨나셨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무슨 죄를 지으셨다든가?”
“그런 것도 아니구요.”
“솔직하게 말씀해 보시죠. 제가 뭐, 강진호 씨보다 나이가 더 먹어서 말씀을 들어드릴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혼자 생각하고 계시는 것보다야…….”
“그런 고민 같은 건 아닙니다. 그냥 조금 사소한 문제예요.”
“사소한 문제요?”
“예. 그게…….”
강진호의 설명을 듣고 난 방진훈이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집에서 일도 안 하며 뒹굴대고 논다고 구박을 한다구요?”
“……좀 조용히.”
강진호가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내자, 방진훈은 몇 번 헛웃음을 짓다가 담배를 꺼내 건넸다.
“피우시죠.”
“감사합니다.”
강진호가 담배를 받아 입에 물자 방진훈이 불을 붙여주었다.
‘이걸 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방진훈은 황당함을 가득 담아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이 몸을 살짝 웅크리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니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이해할 수가 없는 수준이군.’
뭐, 그렇기는 하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눈앞의 청년이 그냥 평범한 20대로 보인다.
‘신기한 일이지.’
원래 부모는 이길 수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건 그냥 하는 말일 뿐이었다. 아이가 성장을 하여 경제력을 손에 넣는 순간부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주도권이 자식에게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특히나 자식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 순간을 빨리 닥쳐오기 마련이다.
강진호 정도면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잘난 자식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부모에게 잔소리를 듣고, 그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갈 곳도 없는데 집을 나왔다가 여기까지 왔다는 말 아닌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
적을 몰아칠 때의 강진호는 아군에게도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수류탄이라는 것이 안전핀을 뽑지 않으면 결코 폭발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품 안에 수류탄이 들어가 있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듯이, 강진호가 결코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 강진호였다.
그 공포와 압도적인 존재감을 바탕으로 지금 강진호가 총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별다른 직책이나 권위 없이 그저 그 스스로의 존재감만으로 한국 최대의 세력을 집어삼키고 있는 게 지금의 강진호였다.
그리고 그런 강진호에게 방진훈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알바라도 해보시지 그래요?”
“…….”
거꾸로 생각을 해보면 납득이 가니까.
강진호가 아무리 무인계를 먹었다고 한들 어머님께 ‘제가 한국의 뒷세계를 장악했습니다’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아무리 강진호가 재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들 ‘알고 보면 제가 재경을 거의 먹었습니다’라고도 할 수는 없으니까.
정상적인 부모라면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식의 손을 붙들고 신경정신과를 찾을 것이다. 그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거 좀 개그 같은데…….’
때때로 뒷세계의 인물들 중 꽤나 악명을 떨치는 이들이 집에서는 효자이고, 부모도 당신들의 자식이 매우 착한 사람인 줄 아는 경우가 있다던데, 그게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솔직하게 말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부모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복학하라는데요.”
“크흐흡.”
방진훈이 흐느끼듯 웃었다.
웃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웃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복학이라니.
이 사람에게 학력이나 간판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복학을 하란 말인가.
“생각은 있으십니까?”
“일단은.”
강진호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입을 열었다.
“단순히 부모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제가 좀 붕 뜬 것 같은 느낌은 있어요. 지금까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걸 하는 게 기본적인 패턴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할 일이 없어졌거든요.”
“음…….”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강진호는 얼마 전까지 평범한 학생이었고, 학생인 신분에서 군대를 갔다. 그러다 전역을 하자마자 무인계에 얽혀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제야 여유라는 것이 생긴 시점인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본인도 조금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방진훈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강진호에게 해야 할 말은 이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건 충고라기보다는 조언입니다만…….”
“예?”
“좀 쉬시죠.”
“……네?”
방진훈이 빙그레 웃었다.
“사람들은 곧잘 착각하고는 하는데, 내가 프레셔를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이 내게 프레셔가 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걸 얼마나 받아낼 수 있느냐의 문제지요.”
“음…….”
“강진호 씨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강진호 씨가 지금까지 받은 압박이라는 것은 상상 이상입니다. 본인은 잘 못 느껴서 개의치 않겠지만, 거기에서 받은 압박은 강진호 씨의 몸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겁니다.”
“딱히 그렇게는……. 몸은 여전히 최상입니다.”
방진훈이 고개를 저었다.
“압박이 쌓이면 육체적인 문제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정신이 흐려지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죠.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말입니다.”
강진호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돌이켜 보면 이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모두를 적으로 돌릴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어쩌면 이어진 압박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것 때문일 수도 있었다.
지금 과거로 돌아간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는 의문이지만, 지금의 그라면 좀 더 충격이 적은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고, 다른 이들과 상의하려 들었을 것이다.
‘단순히 믿을 이가 없어서’, ‘그러고 싶어서’라고 하기에는 과도하게 극단적이던 것이 사실이었다.
“참고하겠습니다.”
“때로는 아무 생각 하지 않고 푹 쉬시는 것도 더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 됩니다.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천천히 본인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걸 추천드리죠.”
“예.”
“되도록이면 빨리요.”
“네?”
방진훈이 한숨을 쉬었다.
“이런 말을 해놓고 초를 치기는 뭐하지만, 강진호 씨는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이 강진호 씨를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일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도 산적해 있습니다.”
“으음…….”
“그러니 쉴 수 있을 때 쉬어두세요. 그런 기회 흔히 오는 게 아니니까요.”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강진호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인 것 같아 뿌듯해진 방진훈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 오늘은 당구나…….”
“안 그래도 하나 생각한 게 있는데…….”
“네?”
강진호가 고개를 들고 방진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부터 일을 하나 하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기도 미묘하고 굳이 꼭 해야 하는 일일까 싶어서 내버려 두기는 했는데, 딱 시간이 났으니 한 번 해볼까 하구요.”
방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쉬시라고 방금 말씀을 드렸는데, 그새 일을 찾으십니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요. 이 정도는 딱히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멘탈적인 압박이 있는 일도 아니고.”
“……무슨 일인데요?”
강진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일본 쪽과 얽히면서 느낀 건데…….”
“네?”
갑자기 뜬금없이 왜 일본 이야기가 나온단 말인가.
“한국의 무인들과 일본의 무인들은 수준 차이가 좀 나는 것 같더라구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죠.”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을 하자면 할 게 있다. 한국 무인계의 수준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보면 강한 축에 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옆에는 일본이 있고, 위에는 중국이 있다. 세계 최강대국인 그들 사이에서 지금 한국 정도의 전력으로는 목소리도 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좀 바꿔볼까 하구요.”
“네?”
“조금만 손보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손본다구요?”
“네.”
“애들을요?”
“네.”
에, 그러니까…….
이게 총회에 소속되어 있는 무인 애들을 가르쳐 보겠다는 뜻이지?
머릿속으로 얼마 전 강진호가 보육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떠올린 방진훈이 빙그레 웃었다.
“거절해도 됩니까?”
강진호도 빙그레 웃었다.
“안 됩니다.”
“…….”
방진훈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미안하다, 애들아.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