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38
#437.
교육하다 (2)
강진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흐음.’
기분상으로는 두어 시간 정도를 잔 모양이다.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눈을 뜨기에는 아직 이르디이른 시간이지만, 강진호는 주저 없이 이불을 들추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한 바퀴 기운을 돌려 운공을 마친 강진호가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육체를 가만히 관조했다.
‘나쁘지 않아.’
강해지고 있었다.
조금은 신기할 만큼.
아무리 한 번 밟은 길을 다시 밟아 나간다고는 하나 시행착오가 있을 만한 요소는 수도 없이 많았다.
우선 지금 강진호의 육체는 과거 그가 사용하던 육체가 아니었다. 강진호가 무로서 정점에 오른 육체는 지금 그의 육체와는 전혀 달랐다.
조건으로 따진다면 지금이 그때보다 낫다. 과거 중국에서 태어난 강진호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고 몸도 왜소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육체를 얻었다는 것이 반드시 이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몸이 달라진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거리감이 달라지고, 육체에 흐르는 기운의 통로가 달라진다. 사람은 모두가 같지만, 또한 모두가 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는 처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높은 경지로 향할수록 강진호에게 커다란 위화감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과거와는 같지만 다르게 기를 운용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이 세상이 내공을 모으기에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기운을 모으는 효율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고, 강진호가 예전처럼 온전히 스스로를 단련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측면도 있었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좌우로 꺾었다.
우득우득.
목이 풀리자 양손과 양발을 턴다. 우득거리는 뼈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스트레칭이 끝나자 강진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강해진다.’
한 번 극마에 올라본 경험은 그 모든 핸디캡을 감수하고도 그를 다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이미 한 번 키운 캐릭터를 처음부터 다시 키우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건 시간과 효율을 단축한다는 정도이지만, 지금 강진호는 스스로의 육체를 기초부터 다시 재건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과거에는 극마의 경지에 올랐다 하더라도 수준이 낮은 시절이 있었다. 자연히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무학이라는 것은 건물을 올리는 것과 같아서 한 번 쌓아버린 것을 다시 걷어내고 쌓는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 번 올려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과거에 나름 탄탄하게 쌓았다 생각한 기초공사가 훗날 그가 극마에 올랐을 때는 불만스럽기 짝이 없을 만큼 어설퍼 보였다. 당연한 일이고, 모든 고수가 겪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나 지금의 강진호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당장 올라가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토대를 쌓고 또 쌓는다. 천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거대한 건축물의 지반공사를 하듯이 말이다.
‘활용이나 할 수 있을까?’
기초공사를 너무 과도하게 한 감도 있었다. 과연 이 세계에서 예전에 그가 쌓아 올린 무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도 의문인데, 그 이상을 바라보고 기초공사를 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쓸데없는 정력의 낭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
빠르게 과거의 무위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는 것 역시 중요했다. 어쩌면 닿지 못할 곳을 향한 헛된 꿈인지도 모르지만, 과거에 안주할 생각은 없었다.
육체를 휘도는 마기를 갈무리하며 강진호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정말 한 번 해봤기 때문에 이런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건가?’
이견의 여지는 없었다.
강진호가 지금 과도한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것은 중원에서 극마에 오른 경험 덕이다. 처음부터 무학을 배워야 하는 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강해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못내 찝찝함이 남는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도 쉽게 벽을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말이다. 정신과 육체의 부조화라는 커다란 핸디캡이 있음에도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강해지고 있었다.
‘한 번 시간을 내야겠어.’
살짝 육체를 관조하는 정도로 몸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그 많은 고수들이 주화입마에 걸리거나 스스로의 단점을 모른 채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쌓아 올린 건물의 벽돌 한 장, 한 장에 금이 가지는 않았는지 찬찬히 살필 시간이 필요했다.
강진호는 옷을 걸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헐…….”
밖으로 나온 강진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오빠, 일찍 일어났네?”
“뭐하니?”
“치맥.”
한 손에 닭다리를 쥔 강은영이 다른 손에 캔 맥주를 들고 소파에 앉아 화사하게 웃었다.
“이 시간에?”
“따질 시간이 어딨어. 행사 끝난 시간이 저녁인데.”
“으음…….”
하기야 강은영은 저녁에 집을 나가 새벽에 돌아오는 일이 많으니, 어찌 보면 이 시간이 다른 사람들의 저녁 같은 개념일 것이다.
“은영아.”
“응?”
입 부분에 닭기름을 묻힌 채 고개를 갸웃하는 강은영을 보니 이상하게 한탄이 나온다.
쟤 좋다고 따라다니는 팬들은 쟤가 저러는 걸 알까?
하기야 요즘은 아이돌이 소탈하거나 사차원인 것도 매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니까 뭐…….
“너, 살쪘다?”
“히이이익!”
강진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헐레벌떡 거울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닭다리를 낚아챈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배, 배가!”
“너 얼마 전에 네 몸매 유지하려면 토끼처럼 먹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냐? 치킨에 맥주에 이리 먹어 대니 당연히 살이 찌지.”
“스트레스가 너무 쌓였단 말이야…….”
강은영이 혼이 빠진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 돼. 이러다가 똥배 직촬이 뜨고 말 거야. 팬들이 무너지고, 무대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질 거야.”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강은영의 몸은 강진호가 이미 손을 봐두어서 웬만해서는 몸매가 무너질 일은 없었다. 강진호의 기운이 최상의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군살을 제거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저리 배가 볼록 나왔다는 것은…….
‘뭘 얼마나 먹었기에…….’
요즘 볼 때마다 뭔가 우물댄다 싶더니, 아무리 무학이 있다고 해도 자연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강진호였다.
“오라비!”
“또 왜?”
“나…… 나 살 좀 빼줘!”
“…….”
“오라비! 부탁해! 나 오늘 밤에도 행사 뛰어야 한단 말이야.”
“옷을 두껍게 입어.”
“이 여름에 두껍게 옷 입고 행사 뛰다 동생 쓰러져서 황천 건너면 오라비가 책임질 거야?”
“잘 가려보자.”
“그러지 말고. 응? 오빠는 할 수 있잖아. 마사지 좀 해줘! 저번에도 쏙 빼줬잖아.”
“귀찮아.”
“엄마 깨울 거야?”
“…….”
엄마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움찔하는 강진호였다.
“흐흐흐, 엄마가 이 새벽부터 오빠가 나가는 걸 보면 뭐라고 하실까? 아마도 잔소리 폭탄을 먹어야 할걸?”
“치사하게.”
“치사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거지. 자, 내가 엄마를 깨우기 전에 어서 내 뱃살을…….”
“나 깨워서 뭐하게?”
하지만 강은영의 협박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는지, 백현정이 하품을 하며 문을 열고 나왔다.
“너희는 잠도 없니? 이 새벽에……. 진호, 너 어디 가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볼 데가 있어요.”
“이 새벽에?”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조금 늦게 나가면 차가 막히니까 빨리 가버리려구요.”
“어디 가는데?”
강진호가 콧잔등을 긁었다.
이거, 설명 잘 해야 하는데…….
“한국 무인 총회라고…….”
“응? 한국 뭐?”
“무인 총회요.”
“뭔 사이비 집단 같은 이름이구나. 거기 뭐하는 덴데?”
“체육관 같은 데예요, 체육관.”
역사와 전통으로 대한민국의 뒷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 무인 총회가 순식간에 사이비 체육관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방진훈이 알면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강진호는 도저히 백현정에게 한국 무인 총회가 가지는 위상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 체육관 같은 데는 왜 나가는 건데?”
“운동 좀 하려구요.”
“운동?”
“예. 한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몸이 좀 처지는 것 같고, 같이 운동할 후배들도 그쪽에 있고 해서.”
“음, 그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저거 거짓말이야.”
“응? 왜?”
“저 아저씨한테 후배가 어딨어?”
백현정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후, 후배 정도는 있어요. 거기서 알게 된 애들이라 그렇지.”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니겠지?”
신뢰도가 바닥을 쳐서 그런지, 예전에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간단히 운동하고 그쪽 일만 좀 도와주고 올 거예요.”
“음…….”
백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집에서 노느니 운동이라도 하는 게 낫겠지.”
“…….”
“그리고 진호야.”
“네.”
백현정이 조금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한테 내가 좀 혼났다.”
“네?”
“그동안 바쁘게 살던 아들내미 이제 고작 며칠 쉬었다고 거기다가 잔소리하느냐고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났더라.”
“그, 그래요?”
강진호는 오랜만에 당황했다.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으셨는데, 왜 그러셨지? 그런 걸 원해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듣고 보니 네 아버지 말이 맞더라고.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
“아니에요, 어머니.”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자식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굳이 강진호에게 사과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엄마가 조금 불안했나 봐.”
“불안이요?”
백현정이 슬쩍 강은영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애 앞에서 할 말은 아니고.”
“내가 왜 애야!”
“시끄러워!”
어머니의 포스 앞에서 단숨에 찌그러진 강은영이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그래, 진호야. 엄마는 항상 우리 진호 믿으니까. 진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엄마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예, 어머니.”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그러니까 자꾸 집 밖으로 돌지 말고…….”
“…….”
“새벽부터 자꾸 나가려고 하지 말고…….”
“…….”
“니가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왜 자꾸 집 밖으로 돌려고 하니? 왜?”
할 말이 없어진 강진호가 눈을 꿈뻑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강진호가 서둘러 밖으로 향하자 강은영이 강진호의 등에 대고 소리를 빽! 질렀다.
“내 뱃살 빼주고 가라니까!”
“이리 와! 이 기집애야! 니 뱃살을 왜 오빠한테 빼달라고 해! 그러니 밤만 되면 치킨이니 족발이니! 엄마가 작작 퍼먹으라 그랬지!”
“치킨을 버리느니 삶을 버리겠다!”
“오냐,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이리 와!”
“오빠! 오빠! 아, 안 돼! 나 굴욕 사진 뜬다고! 오라비이이이!”
“어서 가라, 진호야. 내가 이 기집애 맡을 테니.”
“……예.”
문을 닫고 나온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밖보다 집이 더 전쟁터 같아.’
편안함과 안락함이 가득해야 할 집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