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40
#439.
교육하다 (4)
그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
딱히 목소리를 긁어서 섬뜩한 목소리를 낸다거나, 위협을 가득 담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는 세상 그 무엇보다 잔인하고 괴기롭게 들렸다.
엘레나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왜?’
전신이 전율하는 것 같은 공포감이 지난 자리에 떠오른 것은 의문이었다.
왜 이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는 걸까?
“후우우우.”
강진호가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깊게 뿜어내고는 담배를 비벼 껐다. 꽁초를 재떨이에 집어 던진 강진호가 몸을 일으켰다.
“예의는 중요하지.”
“…….”
“기억해. 오늘 네게 예의가 발랐다는 것 때문에 내가 그냥 가는 거야.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보내주지는 않았을 거야.”
엘레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들은 강진호와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강진호. 너무도 이질적이던 두 강진호의 어긋난 싱크가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게 이 사람의 본모습인가?’
납득을 할 수가 없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조금 전처럼 부드러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이중인격자.’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
지금의 강진호는 마치 트리거라도 들어간 마냥 조금 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제안은 잘 받았다. 대답은 굳이 필요하지 않겠지. 꺼져라. 그리고 내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강진호는 그 말을 남기고 걸어갔다.
엘레나가 가슴에 손을 모으고 몸을 웅크렸다.
무섭다.
두렵다.
대체 왜 이렇게 떨어야 하는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이게 정말 강진호 때문에 느끼는 공포인 건지, 아니면 공황장애라도 온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커헉.”
몇 번 거친 숨을 토해낸 엘레나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무섭다.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이대로 강진호를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직 그녀는 왜 강진호가 자신의 제안을 거부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지금 이대로 강진호를 보내 버린다면 조직은 강진호의 제거를 획책할 것이고, 그리되면 저자가 그녀의 적이 되는 것이다.
적.
저자와 적이라고?
‘농담하지 마!’
이런 압박감은 원탁의 기사들에게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을 적으로 돌린다는 건 최악의 수였다.
“잠깐만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를 잡고 싶지 않았다. 다시 저 사람을 불러 대면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모공이 쭈뼛하게 서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의무감과 책임감이 그녀의 입을 열게 했다.
지금 그녀는 그녀의 안녕보다 더 큰 것을 봐야 했다.
“잠시만…… 잠시만 저와 이야기를 더 나눠주세요.”
“…….”
“부탁드립니다. 제발.”
엘레나가 잘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떼 강진호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강진호는 무심한 눈으로 그런 엘레나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떼를 쓰면 들어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군.”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아쉽게도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엘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간절함이 어렸다.
“하지만 궁금하기는 하군.”
“네?”
“무엇이 너를 이리 절박하게 만드는지 말이야.”
“아, 저는…….”
“일어서.”
엘레나가 떨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일어서. 대화는 눈높이를 맞추고 하는 것이지. 대화를 하겠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너 같은 부하를 둔 적 없으니, 네게 보고 받을 일은 없어.”
엘레나가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라고 한들, 지금은 한여름이다. 오한이 들 리가 없음에도 오한이 들고 있었다.
“말해봐,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들어는 주지.”
“어째서…….”
강진호가 원하는 말이 이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어째서 저희의 제안을 거절하시는 거죠? 이건 당신에게 있어서도 결코 나쁜 제안이 아닐 텐데요. 중국과 일본의 위협에서 당신이 자생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정보가 반드시 필요해요. 아시잖아요.”
“두 가지가 틀렸어.”
강진호는 엘레나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첫째, 나는 너희의 정보 따위는 필요 없어. 자생이고 뭐고 그건 내 문제야. 나는 내 문제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아. 그리고 두 번째로…….”
강진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말은 바로 해야지. 나는 너희가 필요하지 않아. 오히려 너희가 나를 이용하고 싶은 거겠지.”
“…….”
“정보를 준다는 미명하게 너희 의도대로 나를 움직이려는 것 아닌가?”
이 순간, 엘레나는 강진호에 대한 정보 한 가지를 더 얻을 수 있었다.
‘이 사람, 그냥 무인이 아니야.’
들은 것에 너무 집착했다.
그녀가 들은 강진호라는 사람은 무식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계책을 무시하고, 오로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타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사람의 머리는 과할 정도로 비상하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그리고 그녀가 속한 조직의 의도를 모두 파악한 것이다.
“나를 이용하려 한 그 배짱은 높이 사주지. 이런 대접을 받아본 건 생전 처음이거든. 이상하게도 나는 나를 이용하려 드는 이들을 만나본 적이 없어.”
그렇겠지.
당연히 그렇겠지.
그 사람들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봤을 테니까.
엘레나도 강진호를 먼저 만났더라면 감히 그에게 이런 말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강진호가 낮게 웃었다.
“생소한 기분이군.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어쩌면 조금 유쾌할지 모르겠군. 다만…….”
강진호가 으르렁대듯 말했다.
“가서 전해.”
“…….”
“장난으로 웃고 넘어가 주는 건 이번뿐이야.”
엘레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계속 고개를 끄덕이는 엘레나.
그런 그녀의 모습을 납득했는지 강진호가 가볍게 주억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 말도 전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강진호가 말했다.
“나를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을 거야. 균형이 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가 아니라 다른 쪽을 막으라고 해.”
“저, 저기…….”
엘레나가 한 번 더 강진호를 붙잡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한 말이 조직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면, 지금 그녀의 물음은 순수한 그녀 스스로의 의문이었다.
“만약, 만약 그들이 당신을 노린다면, 그럼 어떻게 할 건가요? 그때는?”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고개만 돌려 엘레나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유난히도 날카롭게 드러난 그의 이를 보는 순간, 엘레나는 그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엘레나를 남겨두고 강진호가 차를 몰아 휴게소를 빠져나갔다.
털썩.
강진호를 태운 붉은 스포츠카가 멀어지자 엘레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무서웠어.”
다른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하지 못할 말이겠지만, 다행히 이곳에는 그녀를 지켜보는 이가 없었다.
“……이건, 이건 잘못됐어.”
모두가 잘못 알고 있다.
원탁은 저 사람을 화약고에 던져진 뇌관이라 파악하고 있다. 강진호라는 사람이 한국에 나타났기 때문에 주변이 격동하고 흔들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전후 관계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는 뇌관 같은 게 아니었다.
폭탄, 그 자체다. 저 사람은 동아시아를 격동시킨 이가 아니라, 동아시아 자체를 잡고 뒤흔드는 사람이었다.
‘보고해야 해.’
어서 원탁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말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들의 대응이 잘못되게 되면 동아시아라는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될 것이다.
엘레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이크를 향해 뛰어갔다.
붉은 스포츠카가 거침없이 도로를 질주했다. 시원시원하도록 뻗어 나가는 차 안에서 강진호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럽이라…….’
강진호는 심기가 불편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엘레나의 등장은 강진호에게 있어서는 조금 의외의 일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무는 인간과 함께 발전해 왔다. 그리고 과학과 함께 쇠퇴했다.
과거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현대인일 때라면 몰라도, 중원에서 무학이라는 게 실존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서양에도 중원의 무학과 같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해야 했다.
‘무학이라…….’
다르다.
정확하게 집어낼 수는 없지만, 자신의 그것과는 달랐다.
“마법이겠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세상에 존재한 것은 어떻게든 그 흔적을 남긴다. 무학이 실존했다는 것을 알기 이전부터 그는 무공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고, 마법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에서, 만화에서, 소설에서.
상상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는 구전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강진호의 세상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곳이 전부가 아니다.
강진호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이 세계에는 강진호가 예상하지 못하는 고수들이 수없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중원에만 머무르던 그 시대보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가 더더욱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강진호는 자꾸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있다.
또 다른 것들이 있다.
그에게 있어 무학은 다시 밟아 나가는 과정이었다. 아무리 강대한 적을 만난다고 한들 그건 이미 경험해 본 것.
하지만 저들은 다르다.
강진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무학을 발전시켜 온 이들이 있다. 그들의 무학이 어떤 수준이고, 어떤 방법일지 궁금해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강진호가 가만히 입술을 핥았다.
엘레나가 그의 경고를 받아들인다면 한동안 충돌은 없겠지만, 만약 헛된 생각을 하게 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저들이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강진호는 자신의 마음을 재단할 수가 없었다. 번잡한 것 없이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무학에 대한 궁금증이 충돌하고 있었다.
강진호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그는 이미 저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 의사를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수작질을 부려오는가는 온전히 저들의 선택이다.
강진호가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부아아아아아앙!
엔진이 폭발적으로 요동치며 차가 앞으로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만약.
그들이 강진호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그래서 강진호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럼 나도 보여주어야겠지.”
그가 누군지 말이다.
강진호가 누구인지, 그리고 강진호의 무학이 어떤 것인지.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 수업료는 결코 저렴하지 않을 것이다.
“큭큭큭큭.”
비틀린 웃음을 지은 강진호가 액셀을 더욱 힘차게 밟았다. 차가 빠르게,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