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41
#440.
교육하다 (5)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아니! 사람이 그만큼이나 세우라고 방송을 하고 사이렌을 울려 대는데 들은 척도 안 해요?”
“못 들었습니다.”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 과속을 그만큼이나 하면서 노래를 얼마나 크게 틀었으면 바깥소리도 못 들어요? 야, 이 사람아. 벌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 그러다 죽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예.”
“차도 좋은 걸 보니 돈도 많은 사람이구만. 그 돈도 다 못 써보고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으면 억울해서 눈이나 감겠어요?”
“죄송합니다.”
강진호는 태어난 이후로 가장 많은 사과를 하고 있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배에 창이 박혀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적천마존은 지금 무력이 아닌 공권력의 힘 앞에 한없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내가 공무 집행 방해로 확 걸어버리려다가 그래도 알아챈 이후로 급하게 세운 것 같아서 이 정도로 넘어가 주는 거예요. 아니었으면 이렇게 안 넘어갔어. 알아요?”
“감사합니다.”
한때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
세상의 권력을 모두 차지한 황제조차도 감히 그의 앞에서 위엄을 내세우지 못하던 때.
그는 무인의 상징이자 공포의 상징이었고, 마교의 지존이었다.
세상의 모든 공권력은 그를 피해 갔고, 관리와 관군은 그들이 있는 곳에 그가 나타나지 않기만을 빌었다.
“적당히 밟고 다녀요! 알았어요?”
“예.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런 호시절은 이미 지난 후였다.
강진호는 자신을 무섭게 압박해 오는 공권력의 힘 앞에 무기력했다.
“어느 정도로 밟아야지 말이야. 무섭지도 않나?”
“…….”
“그것도 젊은 한때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끼치지 맙시다. 당신이 추월하는 차들은 얼마나 놀랐겠어요.”
“예.”
“조심해요. 알았어요?”
“예. 죄송합니다.”
“쯧.”
과속 딱지를 던져 주고 나서 차에 오르는 경찰을 보며 강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옛날이여.
“그게 뭡니까?”
“…….”
방진훈은 강진호가 손에 들고 들어오는 종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속도위반 딱지요.”
“끅끄끅끅.”
방진훈이 배를 잡고 웃어 젖혔다.
“내가 강진호 씨 생각 없이 밟아 제낄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그러게 살살 좀 다니라고 했잖습니까.”
강진호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거죠.”
“방진훈 회주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조금 이상하네요.”
“에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는 이십 년 무사고 안전 운전자입니다. 흔한 신호 위반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이겁니다. 적어도 운전에 있어서만큼은 제가 강진호 씨보다 우월한 거죠.”
“…….”
“적당히 밟으십시오, 적당히. 강진호 씨, 카메라도 신경 안 쓰고 그냥 지나다니죠?”
“예.”
“그거 요즘 문제 많다고 뉴스에 뜨고 그럽디다. 강남 부유층 자제들이 과속으로 차 몰고 다니면서 그냥 범칙금 내버리고 만다구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위화감을 조성해서야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차만 봐도 위화감 조성되는데.”
“휴우.”
강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리에 앉았다.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지만, 확실하게 그가 잘못한 것이다 보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크흐흐, 제가 강진호 씨 언젠가는 한 번 된통 당할 줄 알았습니다.”
“매우 고소해하시는 것 같은데?”
“아, 그리 보였습니까? 안타까워서 그러죠, 안타까워서.”
“흐음.”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뚱해지자 방진훈이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강진호를 골려 먹는 것은 더없이 신나는 일이지만, 여기서 조금 더 나갔다가는 그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한다고 하셨죠?”
“예.”
“준비는 해뒀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네?”
방진훈이 의아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흐음…….”
방진훈이 심각한 어조로 턱을 주물렀다.
“중국, 일본, 거기에 영국이라……. 아니, 영국이 아니라 유럽이라고 해야겠군요.”
“예.”
강진호의 설명을 모두 들은 방진훈은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동아시아라…….’
생각을 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계는 국경이라는 벽으로 나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긴밀하게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아니, 되레 국경으로 나뉘어 있기에 더욱 서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한국이 이리 요동을 치는데 타국들이 그 상황을 가만히 방관할 리가 없었다.
‘사고의 함정인가.’
그러한 일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것은 커다란 실책이었다. 사고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대체로 타국에 대한 침범이나 영향력의 행사는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일정하게 발생한다. 그렇기에 한국의 변화가 주변의 강국들을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방진훈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거기에 강진호라는 변수가 존재하니 일본이나 중국도 좌시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강진호가 아닌 방진훈이나 김석일이 서로를 쓰러뜨리고 한국을 일통했다면 결코 이렇게까지는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옆 나라들이 움직이는 기미가 있다는 거군요.”
“말투를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으음…….”
머리가 지끈거린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 방진훈이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생각해 보면 북한까지 있는데…….”
“그렇죠.”
“한국 무인계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그런 생각까지는 해보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한다고 뭐 달라질 게 있던 것도 아니겠지만요.”
일본이 강진호를 노릴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건 단순히 원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들이 한국이라는 땅을 이토록이나 흥미를 가지고 지켜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왜냐면 그동안 한국은 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나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는데도 단 한 번도 손을 뻗어오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 그랬으니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방진훈이 양손을 들고 항복 자세를 취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건 제 능력을 벗어난 일입니다. 대체 뭘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지금 당장 제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합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니까요.”
“사실 저는 이중걸 전 회주와 권력 싸움을 벌일 때만 해도 제 스스로 그릇이 크다고 자부했는데, 최근에는 그게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너무 자책하실 건 없어요.”
“휴, 모르겠네요.”
방진훈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보고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정말 죄송스러운 일인데…….”
“네?”
방진훈이 우물쭈물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성휘가 탈출했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강진호가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데…….”
“네.”
“이성휘가 누구죠?”
“…….”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진호와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어 버린 방진훈이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잘 관리해야 하는 놈인데.”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을 뿐.”
“그래도…….”
강진호가 손을 뻗어 식어버린 커피 잔을 들어 살짝 들이켰다.
“딱히 흥미가 가는 놈은 아닙니다. 다른 놈들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그놈은 김석일의 행방을 알고 있는 놈입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마찬가지죠.”
방진훈은 고개를 살짝 들어 강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강진호가 하는 말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진짠 것 같은데.’
이 인간은 지나 버린 일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김석일이나 이성휘나 이미 지나 버린 일 속에 나오는 과거의 등장인물들이었다. 지금 그의 인생에 딱히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흥미조차 가지지 않는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따라가기 힘든 사고방식이었다.
“놈은, 특히나 김석일은 집요합니다. 탈출한 이상 어떻게든 강진호 씨에게 보복을 하려 들 겁니다.”
“그럼 그날이 그놈들이 죽는 날이겠죠.”
“…….”
태연하게 말하는 강진호를 보고 있으려니 소름이 돋았다.
‘한 번씩 잊는다니까.’
과속 단속에 걸려서 교통 딱지를 들고 온다든가,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듣는다든가 하는 일화들을 듣다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잔인한 자인지 잊게 된다. 그러고는 새삼스레 혼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혹시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예, 그러죠.”
“그럼 일단 저는 이중걸 이사를 만나봐야겠네요.”
“이중걸 이사요?”
“예. 그분이 아무래도 타국에 대한 정보는 저보다 정통하니까요.”
“예.”
“강진호 씨는?”
강진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럼 만나볼 사람들을 만나봐야겠죠.”
방진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살살 좀 해주십시오.”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네?”
강진호의 얼굴이 조금 더 진중해졌다.
“만약 일본과 중국이 한국을 노리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저 하나만을 노리고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제대로 무인계를 말살하고 자신들의 영토에 넣으려 하겠죠.”
그게 중원의 방식이니까.
“그럼 이곳에 있는 이들도 그 표적이 되는 겁니다. 지금 한국의 무인계는 총회의 다른 이름이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대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그렇겠죠.”
“혹여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겁니다. 그런 후에 기다리고 있던 또 하나의 나라에게 온전히 헌납하게 되겠죠. 그러니 대비가 필요합니다.”
방진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었다.
“그럼 그 대비라는 게…….”
“강해져야겠죠.”
강진호의 눈이 더없이 진중해졌다.
“저도, 그리고 다른 이들도.”
방진훈의 입술이 달싹였다.
묻고 싶었다.
아무 말 없이 강진호를 따라가도 되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다.
그건 그저 의문이라기보다는 방진훈이라는 무인의, 그리고 한국무도총회라는 단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예?”
“따라가면 됩니까?”
“…….”
“강진호 씨를 따르면 우리도 강진호 씨처럼 강해질 수 있냐고 묻는 겁니다.”
웃음기를 싹 빼고 묻는 방진훈을 보며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섬뜩한 그 미소를 보며 방진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다.
이게 그가 원하는 모습이다.
천 마디 말보다 저 웃음 하나가 더 확실하게 방진훈의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고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다만, 한 가지 확신드릴 수 있는 건…….”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내게 배우고 나를 따르는 이들이 약하다는 것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강하게 될 수 있느냐고 물으셨나요?”
방진훈의 눈에 격동이 차올랐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 드리죠.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