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44
#443.
설파하다 (3)
“왜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엘레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바닥을 몇 번이고 걷어찼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그런 엘레나의 반응에도 별다른 미동이 없었다.
되레 흥분하는 엘레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래서 너를 한국으로 보내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너는 감정적이고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한 능력이 없다.”
“아니! 아빠!”
“나이트 위긴스다.”
“그럼 당신의 딸이 아니라 원탁의 요원인 엘레나로서 건의드립니다.”
“그것부터가 틀렸다.”
화면 건너편의 위긴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드러나는 것은 입매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그가 지금 매우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개 폰(Pawn) 주제에 내게 건의를 하는 것 역시 월권이다. 내 누누이 말을 하고 있건만, 너는 네 위치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구나. 그래서 내가 네가 원탁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엘레나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나이트 위긴스의 딸이라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축복받은 위치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저주나 다름없었다.
무슨 일을 해도 아버지의 위상을 등에 업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그녀가 위긴스의 딸이라는 것을 철저히 숨기고 원탁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금세 퍼졌다. 이전까지는 그녀를 인정하던 이들도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지금까지와 다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란 작자도 저런 식으로 그녀를 인정하지 않으니 엘레나의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네가 해야 하는 것은 보고다. 의견은 필요치 않아. 이건 소꿉장난이 아니다.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지. 그런 중차대한 일에 너의 의견이 필요하리라고 보는 것이냐?”
주먹을 너무 꽉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갔다.
“임무의 엄정함을 알지 못하는 이는 원탁의 이름을 들먹일 자격이 없다. 만약 다른 적임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너를 귀환시켰을 것이다.”
“그 일개 폰을 얼마나 신경 써주시는지 황공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잘도 비꼬는구나.”
“비꼬는 건 당신이에요!”
“그만.”
화면 너머의 위긴스가 손가락을 저었다.
“거기까지. 어리광을 받아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폰 엘레나.”
“네.”
“보고해라, 네가 본 모든 것을.”
엘레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이미 명령이 떨어진 바, 여기서 더 반항한다면 정말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는 꼴이 된다. 지금은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할 때였다.
“제가 본 강진호라는 자는…….”
설명이 모두 끝나자 나이트 위긴스가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는 건가?”
“예. 모두 사실입니다.”
“생각보다 더 위험한 자로군.”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엘레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원탁의 기조 자체가 잘못되었어요. 그는 이용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야생동물을 길들일 수는 없어요. 그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낫습니다. 차라리 대화가 통하는 타국을 진정시키는 것이…….”
“네 생각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을 텐데?”
엘레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입을 꾹 다문 그녀의 눈빛이 일렁였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구나.”
커다란 의자에 깊게 몸을 묻은 위긴스가 조금은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인간은 언제나 야생동물을 길들여 왔지. 나이트의 상징인 말도 처음에는 야생동물이었다. 지금 네가 어여뻐 하는 개조차도 원래는 늑대나 다름없었지.”
“그건 이것과 다릅니다. 호랑이를 길들이는 방법 따위는 없어요.”
“서커스장에 가보지 못한 모양이구나. 내가 어린 너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지 못한 것이 네 사고를 가로막는 것 같아 안타깝군.”
“이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신 건 본인 아니십니까, 나이트 위긴스?”
“인정하지. 사과한다.”
허리를 세운 나이트 위긴스가 엄정한 어조로 말했다.
“강진호에 대한 위험성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가 대화가 통하지 않을 상대라는 것 역시 이해했다. 네 말 중에 하나 맞는 것은 있지. 위험한 야생동물은 길들이는 것보다 사살하는 것이 더 손쉬운 일이다.”
엘레나의 눈이 떨렸다.
“대체 뭘 들으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위험해요. 위험하다구요. 저는 마스터에게조차 그런 위압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는…….”
“어리석은 녀석!”
위긴스의 목소리가 냉혹하게 들려왔다.
“네 수준으로 감히 마스터를 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너는 마스터의 그림자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 네가 감히 마스터의 위엄을 논한단 말이냐? 냇물도 겨우 넘는 녀석이 바다를 논하고 있구나.”
엘레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사람은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원탁에서 그녀를 가장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이트 위긴스일지도 모른다.
위긴스는 엘레나가 자신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능력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커다란 개보다 집 밖에서 이를 드러낸 작은 개가 무서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까짓 놈이 위협을 좀 했다고 감히 마스터의 위엄에 그딴 놈을 가져다 댄다는 말이냐?”
“저도 원탁의 일원입니다!”
신경질적으로 튀어나온 엘레나의 목소리에 위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이 보기에는 하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이미 수많은 임무를 수행했어요. 집에서 놀고먹는 철부지가 아니라구요. 제 경험과 제 능력으로 온전히 파악한 일입니다. 그래요, 당신이 말한 대로 마스터와 비교한 것은 실수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봐온 어떤 이들보다 그자가 더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리고 네 감정과 안목이 원탁에서 고려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겠지.”
“…….”
엘레나는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떤 말과 어떤 증거를 들이댄다고 하더라도 이자를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그자에 대한 일은 이제 원탁에서 결정할 것이다.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저 그자를 지켜보고 특이 사항이 있으면 보고하면 된다.”
“제 말은…….”
“경고하건대…….”
위긴스가 엘레나의 말을 끊었다.
“허튼짓하지 마라. 내가 너를 알기에 하는 말이다. 그저 지켜보기만 해라. 혹시라도 원탁의 지시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나는 한국의 공백을 감수하고서라도 너를 소환하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 개인의 그 어떤 독단도 용납하지 않겠다. 내 말, 무슨 소린지 알겠느냐?”
“……예.”
“그럼 수고하도록.”
매정하게 끊어진 화면을 보며 엘레나가 이를 꽉 깨물었다. 꽉 쥔 그녀의 주먹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무시받는다는 모멸감이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지금 그녀가 진정으로 화가 나는 것은 나이트 위긴스가 그녀의 경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막아야 해.’
이건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아니었다. 지금 원탁은 강진호라는 자에 대해서 완벽하게 오판하고 있었다. 그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다. 위긴스가 판단한 것처럼 길들이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간단하게 사살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어설프게 그를 건드린다면 동아시아라는 화약고가 그대로 터져 나갈 것이다. 그런 후에 그 여파는 전 세계를 뒤덮겠지.
“후우우우…….”
깊게 심호흡을 한 엘레나가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저리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야.’
되레 엘레나의 말만을 믿고 원탁의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엘레나는 일개 정보원에 불과하고, 원탁의 지시는 원탁을 구성하는 나이트들의 고심 끝에 나온 결과물이니까. 엘레나가 아닌 다른 정보원이 똑같은 보고를 했다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 엘레나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원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강진호를 어찌 대처할지는 모르겠지만, 위긴스의 반응을 전제로 판단했을 때 결코 우호적인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끝장이다.
엘레나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떻게든 벌어지는 관계를 봉합해야 해.’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저 강진호라는 자가 원탁과 적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엘레나가 코웃음을 쳤다.
원탁에서 배제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끝까지 저 남자는 자신의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원탁에 속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세상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원탁에 들어간 것이다.
선후가 반대다.
원탁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세상을 위한 길이라면 엘레나는 서슴없이 그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금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아버지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실수를 수습하는 것은 자식의 일이지.”
몸을 돌린 엘레나가 뚜벅뚜벅 걸어 밖으로 나갔다.
“고마워하라고, 망할 아버지. 내가 그 빌어먹을 일을 담당해 줄 테니까.”
일단은 강진호를 다시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저 인간들이 사고를 치기 전에 말이다.
* * *
“골치 아프군.”
위긴스가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왜 하필 저 녀석이 저 중요한 곳에 갔다는 말인가. 인원 관리가 너무 안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퍼비스?”
퍼비스가 낮게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나이트께서는 엘레나를 너무 무시하고 계십니다.”
“……내가?”
“예.”
퍼비스가 살짝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녀는 우수한 요원입니다. 맡은 일은 모두 성공적으로 해냈고, 가진바 능력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나 전 세계를 상대로 움직여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 그녀의 언어 능력은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여러 나라를 동시에 돌 수 있으면서 능력을 갖춘 이는 쉽게 가지기 힘든 인재지요.”
“물론 나 역시 그건 인정하네.”
위긴스가 가면을 살짝 고쳐 썼다.
“개인의 힘을 키우면서 다른 부분까지 신경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 지금도 나만 강해지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 부분은 인정하고말고. 어릴 적부터 강조했지. 무력은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쓸 수 있는 인재가 되는 것이라고. 하나!”
위긴스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녀석은 너무 자기중심적이야. 스스로 영웅이 되려 하는 기질이 너무 강하단 말이야. 조직에서는 결코 바라지 않는 인재지.”
“그걸 감안해도 그녀는 우수합니다.”
“우리는 우수한 인재를 바라지 않아!”
위긴스가 눈에서 불을 뿜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우수한 인재가 아니라 적절한 인재네. 살얼음판을 타면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인재 말이야. 녀석은 너무 벗어나 있어. 언젠가는 크게 사고를 칠 거야.”
그 말에 퍼비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가혹하시군.’
자신의 딸이기 때문에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강진호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위긴스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제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