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45
#444.
설파하다 (4)
제거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왔다.
“정보원으로서 엘레나의 말을 신뢰한다면, 그를 제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흠.”
위긴스가 침음을 냈다. 확실히 엘레나는 사고를 칠 확률이 높아 선호되지 않는 인재이지만, 그녀가 모아온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판단력은 몰라도 그녀의 눈만큼은 인정하는 위긴스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엘레나가 한국으로 향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본국으로 소환했을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만큼이나 중차대한 일이었으니까.
“쉽지 않겠지. 그래, 아무리 어리고 철없는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하나 마스터에 견주어진다는 것만으로도 강진호라는 놈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위긴스가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제거에는 망설임이 없어야 하는 걸세.”
“타국을 조율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위긴스가 신경질적으로 가면을 눌렀다.
“그게 가능하다면 미쳤다고 이런 짓을 하고 있겠는가? 일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의 삼왕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들은 인세에 존재하는 진짜 왕들이니까. 왕이 셋이나 된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왕이 하나였다면 이미 세계는 왕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왕이 둘이었다면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대전쟁이 벌어졌을 테니까.”
퍼비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이들이지만, 중국의 왕들은 그들의 자부심을 비껴 나가는 존재였다.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재앙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강진호 본인은 강할지 모르지만, 한국은 나약하지. 아무리 강진호가 강하다고 한들 그 지형과 형세에서 한국을 이끌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존재 자체로 자극이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걸세. 우리는 지금 사자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야. 앞에서 앵앵거리며 잠든 사자를 자극하는 벌 한 마리를 쫓아내야 하는 거지. 벌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살충제를 뿌려야 하지 않겠나?”
“엘레나는 벌이 아니라 독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네.”
위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제거해야 해. 사자와 늑대가 날뛰게 되는 건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니까.”
“다른 나이트들께서도 그리 생각하시겠습니까?”
“이봐, 퍼비스.”
위긴스가 조금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래 봬도 나도 부정이 있는 사람이란 말일세. 딸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야.”
“예. 그러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딸보다 중요한 게 세계의 정세 아니겠는가. 원탁이 왜 존재하는가. 이단과 마귀들이 날뛰는 세상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삶의 이유일세. 나와 나이트들은 최선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거야.”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퍼비스는 가슴 한쪽을 짓누르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진호라…….’
그는 엘레나를 신뢰했다.
그녀가 아무 이유 없이 강진호를 그리 고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보다 위험한 상대다’가 아니라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라든가, ‘화약고의 심지가 아니라 강진호가 폭탄이다’라는 발언이 나왔다는 것만 해도 엘레나의 강진호의 대한 공포심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딱히 강진호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대립각을 세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저만한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그녀가 본 강진호가 정말 상식을 초월한 괴물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자는 건드리는 게 아니지.’
그의 오랜 경험으로 보면 건드리면 반드시 탈이 나는 자들이 있다. 평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숨죽여 살아가지만, 누군가 자신을 자극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된 듯 미쳐 날뛰는 이들이 있다.
만약 강진호가 그런 부류라면 원탁은 지금 엄청난 악수를 두는 건지도 모른다.
퍼비스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과한 생각이야.’
만약 강진호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지금 활동하는 곳이 한국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생각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한국인이고, 그는 한국의 무인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한국의 무인계는 굳이 고려 대상에 넣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나약했다. 아무리 강진호가 강하다고 하나 그런 이들을 이끌고 원탁에 대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이 생기면 몰라도 말이다.
‘그러니 괜찮겠지.’
혼자 날뛰는 독불장군은 결국에는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소집원은 보내놓았으니, 오늘 저녁이면 영상으로나마 회의를 할 수 있겠지. 결과는 금방 나올 걸세.”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지.”
퍼비스가 밖으로 나가자 위긴스가 가면을 벗고 얼굴을 문질렀다.
‘두통이 가시지를 않는군.’
탁자에 놓인 아스피린을 입에 털어 넣고 거칠게 씹은 위긴스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결코 엘레나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강경하게 주장해야겠어.’
요구된다 싶은 전력의 두 배를 투입해야 한다. 한 치의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그로 인해 들어야 할 비난과 비웃음은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었다.
“이 일도 할 짓이 아니라니까.”
그저 강하고 주변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 죽어야 할 이가 되어버린 강진호란 자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이 보는 것은 세계이지, 인간이 아니었다. 대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해야 한다면 서슴없이 희생시키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니까.
위긴스는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동아시아의 지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 * *
“어떻게 하지?”
공영길의 말에 이명환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평소라면 무슨 말이든 일단 대답을 하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도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말이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어야 나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고, 그 안에서 뭔가가 정리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목숨이 위험할 정도일까?”
이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어…….”
“강진호라는 사람이 그런 걸로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 솔직히…… 그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걸로 구라까지 쳐가며 겁을 주겠냐? 지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인데.”
“그렇겠지?”
공영길도 영 복잡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도 다 똑같은 얼굴로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강진호는 이미 오래전에 자리를 비워 내일 이 시간까지만 답을 달라고 했지만, 남은 이들은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들도 다들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렇겠지.’
이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강해지는 대신에 목숨을 걸라니.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가능이나 한 일인가.
보통 목숨을 건다는 건 수사적으로나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수사를 현실에 적용하라니.
“……그냥 겁주는 거 아닐까?”
공영길의 말에 이명환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 말 뭘로 들었냐? 그런 말로 사람 겁줄 필요가 없는 양반이라고. 씨발, 이미 겁을 먹고 있는데, 거기서 겁 더 줘서 뭐하게? 강진호 씨가 헛기침만 해도 오줌 쌀 새끼들이!”
“그만큼 각오를 다지고 시작하란 소리일 수도 있잖아.”
“소년 만화 보냐, 새끼야?”
“…….”
“니도 니 눈으로 봤을 거 아냐. 그 사람은 사람이 죽는 걸 우리만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 자리에서 몇 백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인데, 그런 양반이 죽는다는 걸 우리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 같으냐?”
“아니겠지.”
“그런데 뭔 씨발 겁을 줘? 그냥 진짜 죽이면 그만인 사람인데.”
공영길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를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생각해. 존나 간단하게 말해줬잖아. 반은 죽고, 반은 살아남고…… 오십 프로 확률로 죽거나 강해진다고.”
말을 뱉고 보니 이게 얼마나 끔찍한 소리인지 새삼 실감이 갔다. 절반의 확률로 죽음이라니.
실린더에 세 발을 채워 넣은 리볼버를 머리에 대고 당기라는 뜻이다.
절반의 확률로 머리가 날아가는 도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할 수 있는 놈도 있겠지. 세상에는 미친놈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하지만 이명환은 스스로 멀쩡한 인간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미친놈들이나 할 수 있는 도박으로 자신의 배짱을 증명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관둘란다.”
이명환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자 공영길의 눈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인마. 너, 강진호 씨한테 엄청 배우고 싶어 했잖아.”
“그것도 살아 있을 때 이야기지. 씨발, 배우다가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강해지고 싶다며?”
“죽고 싶지는 않아.”
이명환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으면 무조건 도전해 봤을 거야. 그런데 저 사람은 강진호란 말이야. 저 사람이 반은 죽는다고 했으면, 정말 반은 죽어. 그런데…… 그런데 씨발, 무슨 배짱으로 그런 도박을 하란 말이냐.”
이명환이 흘린 넋두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지금 내가 뭘 그렇게 약해 빠져서 고통을 받는다고 강해지는 데 목숨까지 걸어야 하냐. 나는 안 할 거야. 안 해.”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나왔다.
강진호의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이들은 스스로의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었다.
“진짜 안 할 거냐?”
“그래. 안 한다고, 씨발!”
이명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 뭐, 씨발, 석기시대냐? 21세기 아냐. 말이야 바른말이지, 사람이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는 시대에 주먹질 좀 잘해보겠다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 됐어. 나는 그냥 약하고 편하게 살 거야.”
이명환이 신경질적으로 밖으로 걸어 나가자 강당 안의 분위기가 조금 더 우울해졌다.
“……어디 가?”
일어나는 이를 붙잡는 목소리가 들렸다.
“집에 가려고.”
“집에?”
“어차피 내일 이 시간까지만 다시 오면 되잖아. 여기서 생각하다가는 머리가 깨지겠다. 분위기도 엿 같아서 나까지 전염되잖아. 집에 가서 생각할 거야.”
“……그래.”
사람들이 뿔뿔이 일어나 강당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공영길이 당황한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홀로 이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공영길 같은 이들은 차마 강당을 떠나지 못했다.
각자 여러 가지 생각을 머리에 담은 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이 사태를 만들어낸 이는 회주실 창문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이나 조용한 곳으로 가기 위해 총회를 나서는 이들을 보며 강진호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저, 방진훈 회주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타니 영 이상한데, 믹스 한 잔 타 주시면 안 됩니까?”
“……확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릴까 보다 진짜.”
방진훈이 투덜거리면서도 믹스를 타러 가자 강진호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총회를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결코 웃지 않았다.
나약해 빠진 이들은 강해질 자격도 없는 법이다.
저들에게 오늘 밤은 지금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긴 밤이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강진호가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다.
“성격 진짜 변태 같다니까.”
“…….”
변명할 거리를 찾지 못한 강진호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커피를 홀짝였다.
저 멀리 해가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