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46
#445.
설파하다 (5)
밤이 깊었건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총회를 떠나지 못했다. 불이 환히 밝혀져 있는 강당을 보며 방진훈은 나직하게 혀를 찼다.
“진짜 성격 나쁘시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허어, 거참.”
태연하게 대답하는 강진호를 보며 방진훈이 눈을 부라렸다. 강진호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방진훈을 시선을 살짝 외면했다.
“진짜 죽이실 겁니까?”
“글쎄요.”
“그냥 위협만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글쎄요.”
방진훈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농담 삼아 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저놈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요. 쫄아서 아무도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애초에 강진호 씨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게 문제라구요.”
“인식이요?”
“예, 인식요. 제가 보는 강진호 씨와 저놈들이 바라보는 강진호 씨는 다릅니다. 아마도 저놈들의 눈에는 강진호 씨가 거의 삼두육비의 괴물쯤으로 보일 겁니다.”
“그럼 괜찮네요.”
“네?”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들이 방진훈이 말한 대로 보는 정도면 괜찮다. 과거 그가 마교에 있을 당시에는 괴물 수준이 아니라 아수라의 현신이라 불렸으니까.
잔혹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어서 천하의 지탄과 공포를 동시에 받던 그 마교에서 공포의 대상이 됐을 정도로 강진호는 독랄했다.
돌이켜 보면 그도 손 뻗을 곳 하나 없는 그 중원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자연히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현대인이었던 강진호의 상식으로 보기에 그곳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비상식적이고 야만적이었으니까.
도둑질을 하다 걸렸다고 팔을 자르고, 대로변에 당당하게 인육을 파는 세상에서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곳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세상이었다.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현대와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 부질없는 변명이지만 말이야.’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변명일 뿐이다.
그곳에서도 현대인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고, 스스로의 존엄을 생명보다 중요시 여기는 절개가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럴 만한 강단이 없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보다 더 잔인해지는 길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닙니다.”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옛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애들이 너무 많이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만?”
“괜찮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너무 떨어져 나가는 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재능이 넘치는 애들은 어떻게든 회유를 하는 게…….”
깊게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강진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능이요?”
헛웃음이 나온다.
“예. 아무래도 가르쳐도 답이 없는 놈들보다는 그래도 똑똑한 애들을 가르치는 게…….”
“아뇨.”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재능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의지죠.”
“의지요?”
“예.”
창밖으로 재를 털어낸 강진호가 말을 이으려고 하자 방진훈이 가만히 그쪽으로 다가와 창틀에 재떨이를 올렸다.
“매너 좀.”
“……죄송.”
어색한 얼굴로 재떨이에 재를 턴 강진호가 말을 이었다.
“재능의 중요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세상은 노력이 우선된다는 말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죠. 대부분의 경우 재능은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그러니까요.”
“그런데…….”
강진호가 방진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차피 여기 모인 이들의 재능은 일정 이상 검증된 거 아닙니까?”
방진훈이 입을 꾹 닫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무인들이 제자를 받아들일 때는 무학에 재능이 있는지부터 알아보기 마련이니까. 이미 거르고 걸러서 재능을 검증한 이들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들어오는 곳이 총회였다.
“세상에는 압도적인 재능이란 게 있죠. 신이 내린 것 같은 사람 말입니다. 같은 것을 배워도 홀로 다른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껴도 그 안에서 더 위의 것을 찾아내는 사람. 네, 있습니다.”
중원에도 있었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보통 떡잎부터 다르다고 불리며 제 문파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들이. 그 넓은 중원 땅에 그런 이들이 한둘일 리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모조리 강진호의 손에 죽었다.
“하지만 일정 영역을 넘어가 버리면 재능이라는 것은 그저 시간을 줄여주는 이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뒤부터는 다른 게 작용하죠.”
“노력 말입니까?”
“아뇨.”
강진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의지입니다.”
“의지?”
“네. 다른 말로는 목표라고 하죠.”
“흐음…….”
방진훈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노력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강진호가 가만히 웃고는 방진훈을 위해 부연해 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노력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노력은 현실과 재능의 차이마저 극복할 수 있다고 하죠. 그건 반은 맞는 말이지만, 반은 틀린 말입니다.”
“반이나 맞다구요? 이분이 헬조선이 뭔지 모르시네.”
“……실제 경험한 것이니까요.”
“노력으로 재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구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합니다.”
“솔직히 그거 그냥 듣기 좋으라고…….”
“노력이 뭔지 모르니까요.”
“네?”
방진훈이 어리둥절해하든 말든 강진호는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였다.
최근에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는 이 담배 한 모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실감이 난다.
“노력을 하라는 말은 사실 별 의미가 없는 주장입니다. 노력이라는 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겁니다. 방향성이 없는 노력이란 것만큼 허무한 것이 없죠.”
“음…….”
“말이 잘못된 겁니다. ‘노력해라’가 아니죠. 목숨이라도 걸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목표가 필요한 겁니다. 그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노력 같은 건 알아서 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통은 일단 노력하라고 하죠. 뭔지도 모르는 목표를 대충이라도 이루려면 말이죠.”
방진훈이 영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강진호도 굳이 방진훈을 납득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건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필사적이라는 건 무서운 거지.’
강진호 역시 그랬다.
스승과 헤어지고 홀로 강호에 나선 그에게 세상이란 굶주린 아귀와도 같았다. 현대인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에게 세상은 지옥과도 같고, 사람들은 지옥의 파수꾼들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 세상이 그를 죽이기 위해서 달려들고 있었다.
노력?
웃기는 소리.
강진호가 그때 할 수 있던 것은 ‘생존’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목표를 만들고 거기에 매진하는 것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 했다. 다른 이들이 노력이라 부르는 것은 강진호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전쟁터에 끌려간 이가 살아남기 위해서 칼을 갈고 누군가의 목에 날을 틀어박는 일련의 과정을 노력이라 할 수 있겠는가.
몸에 화살이 틀어박히고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누구든 힘들다는 이유로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목표에 매진하는 치열한 삶 앞에서 ‘노력’이라는 말은 너무도 낭만적인 단어에 불과하다.
“그걸 가질 수 있다면 강해지겠죠. 그렇지 않다면 불가능할 거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방진훈이 강진호의 말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중걸과 싸울 때, 밤잠을 줄여가며 세력을 키우고 애들을 가르치고 스스로를 단련했겠죠.”
“그야 그렇죠.”
“그걸 노력이라 하실 겁니까?”
“…….”
그 말을 듣자 어렴풋이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노력이라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지금 강진호는 총회의 젊은이들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듯이 무에 모든 것을 매진하길 바라는 것이다.
“이정표를 만들려는 거군요.”
“비슷합니다.”
“……쉽지 않겠네요.”
방진훈은 조금 회의적이었다.
‘시대가 너무 달라졌어.’
강진호가 말하는 게 뭔지는 알 것 같다.
그래, 있었다. 과거에는 강진호가 말하는 것처럼 강해지는 것에 모든 것을 건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강해지지 않아도 현대는 조금의 무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넘쳐 난다. 그리고 그 이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쾌락도 넘쳐 났다.
이런 환경에서 무엇을 위해 그리 강해지려 해야 한단 말인가.
“무인혼이라는 건 참 좋은 단어지만. 솔직히 조금 시대착오적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죠. 그런데…… 저도 딱히 그런 걸 바란 적은 없어요. 저부터가 그런 게 없거든요.”
“예?”
방진훈이 도무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럼 대체 동력이 뭐란 말인가.
“무인혼이란 건 거창한 말이죠. 사실 무인의 근본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요?”
“거꾸로 묻죠. 방 회주께서는 무인의 근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무를 통한 자연과의 합일이죠. 혹은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미소의 의미가 비웃음이라는 걸 알아챈 방진훈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아닙니까?”
“거창하네요. 물론 그렇게 말하면 멋은 있겠지만, 저는 솔직히 무라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방진훈이 기대를 품고 입을 열었다. 그가 아는 강진호는 지금까지 만나온 이들 중 가장 강한 무인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가 본 한반도의 무인 중에 강진호보다 강한 이는 없었다.
그런 이의 무학관은 분명 방진훈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강진호 씨가 생각하는 무학의 근본은 뭡니까?”
찰칵.
강진호가 꽁초를 비벼 끄고는 다시 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깊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 직설적인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배운 무학이나 제가 생각한 무학은 그런 것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 새끼한테만은 절대 지지 않겠다.”
“…….”
방진훈의 얼굴이 좀 멍해졌다.
“아, 물론 제 무학관은 조금 다릅니다. 이건 전체적인 거죠.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자면…….”
“……네.”
“‘저 새끼는 내가 반드시 쳐 죽인다’가 맞겠네요.”
“…….”
강진호가 세상 다시없을 만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패고 처 죽이고, 내가 가장 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죠. 자연과의 합일이니 수행이니 그런 말을 하려면 절간에 들어가면 되지, 미쳤다고 무술을 익힌답니까? 무학이란 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패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죠.”
방진훈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렀다.
이 인간은 글러 먹었어.
‘애들아, 그냥 포기해라.’
이 인간 밑에서 수련을 받았다가는 정상적인 놈들도 망가질 것이다.
방진훈이 불안한 눈빛으로 창밖 너머 보이는 불빛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