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54
#453.
생각하다 (3)
“저 인간은 대체 뭐하는 인간이지?”
엘레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동아시아의 움직이는 폭탄. 그런 주제에 평범을 가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 가증스러운 강진호에게 접근하여 그의 호감을 사는 일이었다.
임무 자체를 스탠다드하게 해석했을 때는 007 같은 첩보 영화의 시나리오를 떠올리게 하는 낭만적인 임무였다. 하지만 그녀가 처한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본국에서 승인받지 못한 임무라 지원이 없다는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적당한 위기와 방해는 첩보 영화에서도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고, 성공했을 때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양념과도 같으니까.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말이기는 하지만, 엘레나는 임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온다 해도 굳건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정신으로 반드시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하나 그녀가 직면한 문제는 그녀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니까 강진호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녀가 생각하는 강진호라는 사람은 마왕에 가까웠다.
지금이야 웅크리고…… 아니, 웅크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놓고 한국을 다 먹어버린 사람을 웅크리고 있다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하니까.
본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지른 일과 그 파급력에 비해서 이상할 정도로 화제에서 벗어나 있다고 평가하는 게 올바를 것이다.
하지만 영 표현이 기니까 대충 ‘웅크리고 있다’로 퉁쳐서 다시 설명하자면, 지금은 웅크리고 있지만 곧 동아시아에 폭풍을 몰고 올 사람이었다.
강진호라는 사람을 대면한 시간을 짧디짧기에 정확하게 그를 파악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그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잔학성과 폭력성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순간 보여주었던 존재감은 엘레나의 영혼에 화인처럼 틀어박혔다. 앞으로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일을 겪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분명.
그러니 결론을 내자면…… 강진호라는 놈은 순식간에 한국을 먹어 치운 능력자이자, 어마어마한 잔혹성과 폭력성을 감춘 채 때를 노리는 악마 같은 놈이었다.
“그런데 그게…….”
엘레나가 흔들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임무는 그 마왕 같은 강진호에게 접근하여 어떻게든 그의 호의를 끌어내는 일이다.
저 머리가 굳어버린 원탁 놈들이 강진호를 어찌하려 들지 너무도 빤했으니까.
꼼꼼하지 못하고 창의적이지 못한 것을 ‘바쁘다’와 ‘시간과 인력을 부족하다’는 말로 포장하는 이들에게 뭘 바라겠는가.
보나마나 냉전 시대의 CIA처럼 굴겠지. 일단 암살을 해놓고 ‘이놈을 살려뒀으면 더 큰일이 벌어졌을 건데, 우리가 죽여서 일이 이 정도로 해결이 된 거임’이라 말하면서 말이다.
‘답도 없는 것들.’
원탁이 세계의 평화를 지켜온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활동이 효과가 있었는가 아닌가는 둘째 치더라도 그들이 세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 온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낡았어.’
엘레나는 원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권위와 그들의 노력은 인정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번 강진호 사태가 그러한 일 중 하나였다.
제거한다고?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녀가 강진호에게 무슨 호감이 있다고 그를 보호하려 들겠는가. 할 수 있다면 그녀가 직접 나서서 강진호를 제거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놈만 없어진다면 요동치고 있는 동아시아가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제거?
저 인간을?
이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세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하며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감시해야 할 구역이 늘어났다. 태생적으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원탁은 인력 수급에 문제가 있었고, 설사 인력을 구하더라도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절차와 시스템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떤 인물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시간을 들여 관찰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심지어 임무를 맡은 이가 영혼을 깎아낸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읽지도 않는다.
그러니 결과가 이 꼴이다.
엘레나는 죽어도 강진호 암살이라는 미친 짓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를 했지만, 결론은 전혀 다르게 나올 것이다.
‘와, 암살을 시도해서는 안 될 만큼 위험하다네? 그럼 죽여야지’ 같은 식으로 말이다.
거기까지 가면 다행이지.
일개 폰의 의견 따위는 참고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 원탁이라는 곳이었다. 그들은 지도 위에서 세상을 본다. 개인의 의견이나 인상 따위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원탁의 방식대로라면 지금쯤 강진호를 제거할 암살자들이 동원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실패하겠지.’
엘레나는 확신했다.
원탁은 강진호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강진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못해도 기사단 정도는 동원할 것이다. 하지만 저 머리가 굳어버린 원탁이 그런 결론을 내릴 리는 없고, 아마 적당히 암살할 이들을 동원해 강진호를 죽여 버리려 하겠지.
그럼 결과는 빤하다.
자신을 암살하려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강진호는 더 조심스레 움직이게 될 것이고, 원탁에 적대감을 품게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으로는 지금까지의 성향을 버리고 북조선의 미친놈처럼 날뛰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막아야 해.’
애초에 모든 일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두 가지밖에 없다.
강경책, 아니면 유화책.
원탁이 강경책을 써서 실패할 게 빤하다면 엘레나라도 유화책을 써야 한다. 그게 조국에 대한 그녀의 충성이자 원탁에 대한 그녀의 봉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길이기도 했다.
그리 생각했다.
막상 강진호를 따라다니며 감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물론! 물론!
강진호가 현실에서도 그녀에게 보여준 모습처럼 살아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본 강진호와 두 번째 보았던 강진호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괴리가 있었으니까.
강진호가 자신의 본모습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갈 것이란 건 그리 어려운 추리가 아니었다.
“그것도 정도가 있지.”
엘레나는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강진호를 추적한 지 삼 일째.
그 삼 일 동안 그녀가 본 강진호의 모습은 충격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가 충격적이냐고?
그러니까…….
‘우선…… 하는 일이 없어.’
그러니까 저놈은 막후의 실력자 같은 놈이다. 겉으로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의 무인계를 제멋대로 주무르고 있는 지배자였다.
그것 자체는 딱히 놀라울 것이 없었다. 중국의 삼왕도, 유럽의 원탁도 그런 존재들이니까. 설정만 들으면 삼류 영화 같은 일이지만, 현실은 언제나 창작을 능가하는 법이다.
다만…….
‘아니, 대체 뭘 하냐고!’
원탁은 눈이 돌아갈 만큼 바쁘다.
원탁의 나이트들은 각국을 통제하는 동시에 원탁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타국까지 관리해야 한다. 그 업무량은 가히 살인적이다. 나이트는 임무가 아니라 과로로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작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만한 나라를 관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정말…… 정말 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일과는 매우 단순하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명상을 하는지 뭘 하는지 모르게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침이 되면 밥을 먹는다. 그 후에는 트레이닝복을 대충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와 산책하듯 한 시간 정도 동네를 돌아다니고는 차를 타고 꽤 먼 곳에 있는 보육원으로 간다.
그 보육원에서 잡일을 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고(여기서 아이들이 조금 귀찮아하는 기색을 보였다)는 오후가 되어서 과거 자신이 운영했다는 피자 가게로 간다.
피자 가게에서 바빠 죽으려고 하는 사람을 붙들고 잡담이나 좀 늘어놓다가 눈총을 이기지 못하고 가게를 나선다. 그러고는 박유민인가 하는 친구와 접선을 해 피시방에 가서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가 집으로 간다.
집에 들어가서는 어머니의 눈총을 피해 씻고 방으로 들어가 잠에 드는 것이다.
하루하루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근 3일 동안은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강진호의 일과를 3일이나 따라다닌 엘레나가 내린 결론은 아주 단순했다.
“백수.”
아니면 한량. 동네 노는 형.
저 사람이 ‘그’ 강진호라고 알고 본 게 아니었다면, 그냥 동네 노는 백수의 하루와 다를 것도 없다. 심지어 집에 들어가면 하는 일도 없는 게 놀러 다니고 밤까지 피시방 간다고 어머니에게 구박받는 것까지 똑같았다.
‘세상에, 구박이라니…….’
대한민국 무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세상을 주무르던 중국과 일본을 긴장 상태로 밀어 넣은 폭풍의 핵이 엄마한테 혼나서 방으로 도망가는 모습은 평생 다시는 못 볼 진귀한 광경이었다.
이 일을 위해 큰마음 먹고 구입한 망원렌즈가 그토록 고마운 적이 없었다.
뭐,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저놈이 말도 안 되게 치밀한 놈이라서 일상을 완벽하게 위장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평소에도 자신을 위장하는, 그야말로 소름 돋는 놈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고, 여기까지 이걸 다 밀어주고. 많이 힘들지?”
“아닙니다.”
“내가 지금 마땅히 줄 게 없어서. 아, 이거. 이거라도 먹어.”
“괜찮습니다.”
“내가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 이거라도 받아. 응?”
“네. 그럼 받겠습니다.”
엘레나의 얼굴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는 허리가 굽어진 할머니에게서 요구르트를 받아 드는 강진호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저 미친놈이!’
스포츠카를 몰고 길을 나선 것까지는 좋았다. 요리조리 차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빠르게 움직이는 스포츠카를 보았을 때만 해도 오늘은 뭔가 벌어질 것 같았으니까.
그 스포츠카가 갑자기 급제동을 하며 길가에 주차되었을 때는 쾌재를 불렀다. 강진호가 스포츠카에서 급하게 내릴 때도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난리를 쳐가며 차를 세우고 나온 놈이 한 일을 보는 순간, 엘레나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빠른 속도로 달려간 강진호가 끙끙대며 비탈길을 오르는 할머니의 손수레를 밀기 시작한 것이다. 숫제 손수레를 빼앗아 들다시피 한 강진호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수레를 세우더니, 할머니를 수레에 태우고는 마치 평지를 걷는 듯한 속도로 수레를 끌고 갔다.
할머니가 연신 괜찮다고 하는데도 비탈을 모두 오르고 나서야 수레에서 손을 뗀다.
비탈을 터덜터덜 내려오며 요구르트를 쭉쭉 빨아 먹는 강진호를 보며 엘레나는 멍하니 입을 열었다.
동아시아의 폭탄.
세상을 혼란으로 몰고 갈 마왕.
그 다채로운 평가를 받는 인간 강진호를 삼 일 동안 관찰한 결과는 아주 간단했다.
“……저거, 좋은 놈인가?”
엘레나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