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57
#456.
시험하다 (1)
“야, 이거…… 분위기가 좀 기묘하지 않냐?”
공영길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자 이명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인간은 안 끼는 데가 없냐, 진짜.’
막상 조금만 힘든 훈련이 시작되면 엄살이란 엄살은 다 부리고 포기할 놈이 굳이 여기까지 끼어드는 걸 보니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이나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였다. 강진호가 대놓고 협박을 했음에도 겁을 전혀 집어먹지 않은 놈들이 있다는 거다.
‘미친놈들.’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강진호가 그렇게까지 말했음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같은 어설픈 각오로 지원을 한 놈들이 있었다. 눈앞에 있는 공영길이 완벽한 예시 아닌가.
‘거기에 총회의 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방금 순번을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인데, 총회 쪽 지원자가 영남부 지원자의 두 배를 넘었다. 젊은 무인들의 수는 오히려 영남부가 더 많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총회에서 얼마나 많은 지원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번에 최진영의 말을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영남부 쪽에서 생각하는 강진호와 총회에서 생각하는 강진호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강진호의 등 뒤에서 보호를 받으며 그의 활약을 지켜본 이들과 강진호의 검날 아래에 단 한 번이라도 노출이 되어본 이들은 그 반응이나 각오도 전혀 달았다.
이미 최진영에게서 그런 점을 충분히 느끼지 않았는가. 결국 이명환은 자신더러 지껄여 대는 철부지라 평한 최진영에게 아무런 항변을 할 수 없었다,
그놈의 말을 듣고 나서는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이놈들도 다 떨어져 나가겠지.’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강진호는 반드시 사람을 선별하려고 할 것이다. 체를 쳐서 쭉정이를 골라내듯 말이다.
그가 보기에도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강진호 한 명에게 배운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최소한 반은 잘라내야 해.’
그래야 효율이…….
“아오, 집에 갈 걸 그랬나? 그냥 기다리려다 보니 엄청 심심한데.”
이명환이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효율이고 개뿔이고, 이런 병신 놈부터 잘라내야지.’
물론 공영길은 그의 친구다.
하지만 친구라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실드를 쳐줄 수는 없는 법이다. 사적이라면 얼마든지 그를 옹호해 주겠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실드가 불가능한 사람이 바로 공영길이란 녀석이었다.
“그런데 명환아.”
“……왜?”
“저기로 들어간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거냐?”
“응?”
“그렇잖아. 여기로 다시 안 돌아오잖아. 그럼 그냥 강진호 씨 한번 보고 퇴근하는 건가?”
그 말을 들은 이명환이 미간을 좁혔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강진호가 그에게 부탁한 것은 사람을 나눠서 한 명씩 들여보내라는 것뿐이었다. 그곳으로 들어간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벌써 오십 명에 가까운 이들이 들어갔는데, 이쪽으로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바로 내보내는 건가?’
이명환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게 면접의 의미를 가진다면 볼일이 끝난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명환은 미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단 한 명도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강진호가 의도적으로 면접이 끝난 이들을 이쪽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아서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진짜 무슨 회사 면접 같은데…….’
이명환은 살짝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추리가 맞다면 지금 저 안에서 강진호는 그들에게 특정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정답을 맞추는 이들은 통과하는 것이고, 정답을 맞추지 못하는 이들은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면접을 본 이들이 통제된다는 것은 그 질문이란 게 미리 들었을 경우에는 해답을 찾아낼 수 있는 종류라는 뜻인데…….
‘복잡하군.’
대충 질문을 특정하기는 했지만,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 이런 식으로는 질문이 뭔지 알 수가 없다. 하기야 강진호가 어떤 사람인데 질문을 미리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겠는가.
“우리 얼마나 남았어?”
“……한두어 시간?”
“아, 씨, 돌아갔다 오기도 애매하네.”
“나가서 밥이라도 처먹고 와.”
“그럴까? 너는 같이 안 가고?”
이명환이 피식 웃었다. 이 와중에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 저 무신경함은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중압감이 심해지고 있었으니까.
“그럼 나는 바람이라도 좀 쐬고 올게. 여기 안에 있으니까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러든가.”
“어.”
밖으로 나가는 공영길을 보며 이명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명환은 조금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줄어든다는 압박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생각을 잘못했어.’
순서가 그에게 맡겨진 만큼 스스로의 순서를 정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명환은 자신의 순서를 오늘의 마지막 순번으로 정했다.
강진호와 독대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품고 잠을 잘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다짜고짜 빠른 순번으로 강진호를 만날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순번을 정할 때는 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멍청한 짓이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지나고, 압박은 압박대로 다 받았다.
그의 앞에 있던 이들이 모두 사라질 때쯤이 되자 얼마나 압박을 받았는지 관절이 덜컥거리고 몸이 너덜너덜해졌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다 끝났다.
조금 전 그의 앞 순번이 강당을 나섰다. 남은 것은 그 하나뿐인 것이다. 적막한 강당에 홀로 남아 있자니 느낌이 묘하다.
‘이제 내 차례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예방주사 맞을 차례를 기다리는 초등학생이 된 심경이었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지만,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조금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이 기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겠지만, 이명환에게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명환.”
“예.”
호명에 대답하며 이명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대차게 뛰어서 그를 괴롭히던 가슴이 거짓말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 위기에는 조금 강한 타입일지도.’
막상 이제 강진호를 만난다고 생각하자 조금 냉정해지는 기분이었다. 강진호가 무엇을 물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답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니까.
결과야 하늘에 맡기는 거고,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이명환은 복도를 걸었다.
강진호가 있는 방 앞에서 낮게 한숨을 내쉰 이명환이 이를 꽉 깨물었다.
‘죽이기야 하겠어?’
똑똑.
지체 없이 노크를 한다. 그러자 안쪽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이명환은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금 전 그를 괴롭히던 긴장감이 돌아올 것이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강진호를 대면하는 쪽이 나았다.
“어…….”
“앉으세요.”
강진호가 건너편을 가리켰지만, 이명환은 선뜻 자리에 앉지 못했다.
우선 첫 번째로 사무실 안의 광경이 그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회사의 면접과 비슷한 일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가 본 사무실 내부는 면접실이라기보다는 취조실에 가까웠다.
어두운 실내, 위에서 늘어뜨려진 조명, 그리고 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란 책상,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되어 있는 의자.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이라면…….
‘피 냄새?’
등 뒤가 서늘해진다.
‘아니, 착각인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렴풋하게 피 냄새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이명환은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긴장이 뭐 어쩌고 저째?’
새삼 실감이 난다.
그의 모든 긴장은 이 사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이 사내를 보는 순간, 긴장과 공포는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오는 게 정상임을 말이다.
“앉으세요.”
“아…… 예.”
순간,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이명환이 퍼뜩 놀라 자리에 앉았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강진호의 얼굴이 조금은 부드러워 보인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 기묘한 분위기의 사무실에 강진호마저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면 그는 이어질 훈련이나 면접이 아니라 심장마비를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이명환 씨 맞죠?”
“예.”
“다른 사람들이야 조금 과정이 더 있었지만 이명환 씨는 나름 안면이 있는 분이니까 시간만 끄는 쓸데없는 과정은 스킵하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찰칵.
강진호가 다짜고짜 담배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느릿하게 뿜어낸 강진호가 살짝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이명환 씨.”
“네.”
“정말 목숨을 걸고서라도 강해질 각오가 있습니까?”
이명환이 심호흡을 했다.
‘결국 이거네.’
그래, 이거일 것 같았다. 그가 강진호라고 해도 이걸 물었을 것이다. 어차피 딱히 친분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물을 말이라고는 이것 외에는 없으니까.
이명환은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질문은 예측했지만, 대답은 만들어놓지 않았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대답할 뿐이다.
“물론입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좋아요.”
강진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강해진다는 게 당신에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까?”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명환이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나쁘지 않았어.’
대답은 투박하지만, 그 대답 안에 진정성이 실린 것 같았다. 온갖 미사여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진심을 내보이는 것이다. 이명환은 자신의 진심이 강진호에게 전달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의 어조는 그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웃기는군.”
낮은 목소리.
분명 낮음에도 커다란 철판을 긁어내는 것처럼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명환이 지금 자신이 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가 황당해 하려는 찰나, 강진호가 손을 뻗어 이명환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끅!”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런 이명환의 정신을 현실로 끌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고통이었다.
“끄으으윽!”
손가락이 얼굴로 파고드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 이명환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의 몸은 강진호의 손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곳 놈들은 하나같이 웃긴단 말이야.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나 알고 지껄여 대는 건지 모르겠군.”
이명환의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피 냄새.
이곳에 들어왔을 때 그가 느낀 피 냄새는 착각이 아니었다.
그 말을 거꾸로 해석하자면…….
이제 그가 이곳에서 피를 흘리게 될 거라는 뜻이었다.
“죽어도 괜찮다고?”
그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강진호의 손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이명환은 그 사실을 다행이라 여겼다. 지금 이 손 뒤에서 악마처럼 웃고 있을 강진호를 본다면 그는 모든 것을 놓아버릴 테니까.
낮은, 그리고 기묘한.
마귀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어디 보자고, 네가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고도 과연 그 말을 다시 할 수 있는지.”
축 늘어진 손을 강진호가 잡아오는 것을 느끼며 이명환은 끈질기게 현실을 붙들고 있는 자신의 의식을 원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