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58
#457.
시험하다 (2)
“강진호요?”
“네.”
“복학 안 하지 않았나?”
“네. 그러니까 학교 생활할 때 어땠냐구요.”
“누나, 혼혈이에요? 한국말 엄청 잘하시네?”
“……대답부터 부탁드릴게요.”
“대답 잘해주면 전화번호 주는 거예요? 그럼 저 정말 엄청 잘할 수 있는데.”
죽여 버릴까?
엘레나는 이마에 돋아나는 핏대를 머리카락으로 감추며 생글생글 미소를 지었다.
“대답 잘해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네! 그럼 잘해 드려야죠. 그런데…… 강진호에 대해서 물어보셨죠?”
“네, 그렇죠.”
“생각해 보니 강진호에 대해서는 딱히 말할 게 없는데…….”
“…….”
“엄청 비싼 차를 타고 다녔어요. 그리고 또 엄청 잘생겼지.”
“인기 쩔었잖아.”
옆에 있던 친구가 추임새를 넣었다.
“그지, 그지. 세연이 때문에 다른 애들이 접근을 못해서 그랬지, 진짜 인기 좋았지. 잘생긴 놈이 돈도 많아, 공부도 잘해. 와, 볼 때마다 패배감이……. 나는 애들 전화번호도 제대로 못 받아보고 겨우 받아도 카톡 차단당하고 그랬는데, 강진호는 가만히 있어도 여자애들이 아주…….”
“본인 흑역사는 됐으니까, 강진호에 대해서만 말해주세요.”
“네. 뭐, 그런데 그 외에는 별게 없었어요. 수업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고, 공강 시간에는 지들끼리 피시방 가거나 도서관 가거나 했으니까. 나름 진호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많았는데, 영 뭐랄까…….”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였지.”
“그래, 그런 게 있었어. 사실 얼굴만 봐도 카리스마가 있잖아. 그래서 영 좀 그랬는데.”
“성격은요?”
엘레나의 질문에 두 사람이 고심하는 듯하다 대답했다.
“착했지?”
“어, 그런 거 같았어. 보통 스펙이 그 정도 되면 미쳐 날뛸 만도 한데, 사고 한 번 안 쳤잖아. 그런 건 웬만한 사람은 못하는 거지.”
“착했던 것 같아요.”
“착했다구요?”
“네. 무슨 문제라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전화번호는요?”
“휴대폰 없어요.”
“……그냥 싫다고 하지. 내가 멀쩡한 휴대폰 하나 없앴네.”
시무룩한 목소리가 돌아 나가는 엘레나의 등 뒤에서 흘러나왔다.
* * *
“진호요?”
“네.”
“걔 보살이에요, 보살.”
“보살이 무슨 말이죠?”
“부처라고 해야 하나?”
“고타마 싯다르타?”
“네. 뭐, 대충 그런 거죠.”
강진호의 고등학교 동창을 수소문한 엘레나는 황당하다는 듯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성격이 좋다는 거예요, 아니면 느긋하다는 거예요?”
“둘 다요.”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성격이 좋기도 한데, 느긋하기도 해요. 사실 걔 제일 친한 친구가 박유민이라는 앤데, 박유민 아세요?”
“네, 알죠.”
“지금이야 박유민이 프로 게이머 하면서 워낙 유명해지고 스타일도 좋아진 거지, 학교 다닐 때의 박유민은 뭐라고 해야 하나…… 찐따? 지금 잘나가는 애 과거 들추는 것 같아서 좀 찝찝하기는 한데, 여하튼 그런 타입이었거든요. 옆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사람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그런 애 있잖아요.”
“네.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런데 그런 찐따를 옆에 끼고 다니면서 밥 먹이고, 애랑 놀아주고……. 와, 그거 진짜 못할 짓이었죠. 사실 진호는 뭐라 그래야 할까, 애들 사이에서도 클라스가 있다는 평가라서 좀 잘 노는 애들이나 잘나가는 애들이 같이 놀아보려고 엄청 들이댔는데…… 그런 애들한테는 관심도 하나 안 주는 애가 박유민이랑 같이 피시방 다니고 하던 거 보면……. 그거 아무나 못하는 거거든요.”
“예.”
“그런 면을 생각해 보면 엄청 착한 거죠. 보통은 지랑 급이 맞는 애랑 놀려고 하잖아요. 엄청 잘나가는 애랑 엄청 찐따인 애는 소꿉친구라도 갈라서기 마련인데, 박유민이 그리 답답하게 구는데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맞춰주던 거 생각하면 보살 맞죠.”
엘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성격이면 귀찮게 하는 애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
“아니요. 전혀요.”
남자가 말을 딱 잘랐다.
“애가 엄청 착하기는 한데, 빡 돌면 엄청 무섭다는 소문도 같이 돌았거든요. 그런 사건이 하나 있기도 했고. 그런데 사실 소문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들 그런 걸 좀 느꼈어요. 이놈은 임계점에 도달하면 좀 답이 없는 타입 같다. 뭐, 그런 거?”
“그렇죠. 그래서 그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이 있었나요?”
“딱히 없는 것 같은데?”
“…….”
“그러니까, 음, 도화선 없는 폭탄 같은 놈이었죠. 안전장치가 너무 심하게 걸려서 폭발시키려고 해도 도무지 폭발하지 않는, 그런데 또 포장은 푹신한 털로 해놔서 안고 뒹굴대기 좋은, 그런?”
“……잘 알겠습니다.”
“진호 이야기를 왜 듣고 싶어 하시는 건지 몰라도…… 그놈, 좋은 놈이에요. 그건 다 인정해요.”
“네.”
엘레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하네, 진짜.’
원탁의 지시를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국가에서 수많은 신분으로 위장한 경험이 있는 그녀였다. 나름 자신을 숨기는 데는 자신이 있는 타입이지만, 강진호를 보니 그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인들에게마저 자신을 이리 철저히 숨길 수 있을까?
그것도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 동안?
이 정도로 자신을 숨겨왔다면 이건 본성이 그렇다고 인정해야 한다. 살인마의 본성을 지닌 이가 수십 년 동안 봉사를 하고 주변인들에게 잘해주며 살인의 기회를 노리다가 급사했다면 그를 악인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선인이라고 해야 하는가.
강진호가 그 속에 괴물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 괴물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은 선인이라고 봐야 한다.
‘선인?’
엘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선인, 선인이라…….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거지?
‘웃기고 있네.’
그 사람이 선인이면 세상에 착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바로 앞에서 그의 본성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엘레나의 의견에 동조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몇 없어서 문제지.’
엘레나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그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 * *
‘미친 새끼.’
이명환의 몸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 벌벌 떨기 시작했다.
‘미쳤어. 이 새끼는 미쳤다고!’
동경?
할 수만 있다면 이명환은 시간을 되돌려 자신도 강진호처럼 되고 싶다 지껄이던 자신의 입을 난도질해 버리고 싶었다.
그가 아는 강진호는 진짜 강진호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사람을 고깃덩어리처럼 썰어 제끼는 강진호의 모습도 공포스럽지만, 그건 이 사람을 반의반도 표현하지 못하는 말이었다.
이명환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의 진정한 두려움을 말이다.
그저 얼굴을 붙들렸을 뿐인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완벽하게 육체를 제압당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에게 적의를 잔뜩 품은 이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껏 그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 공포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명환은 차라리 강진호가 뭔가를 서둘러 해주기를 바랐다. 그게 설령 그의 목을 옥죄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채 이대로 떨고만 있는 일이 백배는 더 힘들었으니까.
“죽음이란 건 말이야…….”
목소리가 들려온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나직하게 울리는 저음이 그의 심장을 갉아먹는다. 한마디, 한마디가 들려올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평소의 조금 나른한 듯한 강진호에게서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마치 마귀가 자신을 쥐어짜 만들어내는 소리 같았다.
“겪어볼 수 없는 일이지.”
강진호가 가만히 웃었다.
인간은 죽음을 겪을 수 없다. 죽음을 겪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강진호 같은 예외가 아니라면.
“그래서 이상하게도 사람은 죽음이라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아. 죽음은 모든 것의 종언인데도 말이지. 어째서일까?”
강진호의 목소리는 확실하게 이명환에게 들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지금 패닉에 빠져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강진호의 말이 어렵기 때문인지는 지금의 이명환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했나?”
“…….”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 뭘 묻는단 말인가.
답변을 들을 생각이 없는 질문은 허공에 소리치는 비명처럼 공허할 뿐이었다.
“그럼 육체 따위 조금 잃어도 괜찮겠지. 죽음은 모든 것을 잃는 거지만, 육체는 모든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납득하나?”
“으읍…….”
이명환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버둥거린다는 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고, 실제 그의 몸은 미미한 진동만을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명환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뒤틀고 있었다.
이제 이해했다.
강진호가 이제 뭘 하려는지.
완벽하게 말이다.
“납득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이명환의 손가락을 잡은 강진호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결코 서두르지 않지만, 더없이 확실하게.
우드드득.
선명한 뼈 부러지는 소리.
자신의 손에서 났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소리였다. 하지만 이명환은 곧 그 소리가 자신의 손에서 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참을 수 없는 격통이 그의 손끝에서 밀려오기 시작했으니까.
우득.
우드득.
하지만 이명환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 강진호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이명환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꺾어낼 뿐이었다. 기계처럼 무감각하게 말이다.
“아픈가?”
“…….”
“큭큭큭큭.”
강진호가 낮게 웃었다. 이 상황이 더없이 즐겁다는 듯 말이다.
“고통을 이해하고 있나?”
강진호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자신의 팔을 움켜잡은 강진호의 손을 느낀 순간, 이명환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그러더군. 고통이라는 것은 육체의 경고라고, 이대로 있으면 죽을지도 모르니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라는 경고라고.”
웃음기.
이명환은 실감했다.
이놈은 지금 웃고 있다.
사람의 뼈를 부수고 고문하면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강진호처럼 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아무리 강해진다 해도 결코 이런 짓을 할 수 없다. 이건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힘을 가진 미친놈보다 무서운 게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은 고통도 무시하겠다는 뜻이겠지. 그렇지 않나?”
“으읍…….”
이명환의 얼굴을 움켜잡은 강진호의 손이 점점 더 조여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안면의 뼈가 모조리 으스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명환의 입에서 흘러내린 침과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강진호의 손을 질척하게 적신다.
“그러니 한 번 알아보고 싶은 거야.”
귓가로 들려온다.
마귀의 웃음소리가.
“네가 얼마나 죽음을 각오했는지 말이야. 걱정하지 마.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절대.”
그 말이 죽음으로 이 상황을 도피할 수 없을 거란 뜻임을 알아챘을 때,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이명환의 팔이 부러져 나갔다.
“끄으으으윽!”
뒤틀린 신음 소리를 토해내는 이명환을 보며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마귀처럼.
먹잇감을 발견한 마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