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68
#467.
부딪히다 (2)
“그럼.”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방진훈도 함께 일어나 배웅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네.”
“과속하지 마시구요.”
“…….”
강진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방진훈이 썩소를 지었다.
“출퇴근하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은데,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래쪽에 원룸촌 있는데, 살기에 나쁘지 않을 겁니다.”
“음…….”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사실 최근 모든 일이 총회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총회가 너무 교외에 있다 보니 출퇴근에 시간을 많이 뺐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생각을 해볼게요. 그런데 부모님이 허락을 해주실지…….”
“……아직 부모 허락을 받아야 하는 처집니까?”
“학생이라…….”
방진훈이 숨이 막힌다는 듯이 입을 닫았다.
‘진짜 괴리감 심하네.’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은 이제 겨우 군대를 전역한 이십 대다. 그 사실과 과거의 수십 년을 살아온 귀환자라는 사실이 충돌을 일으킬 때가 많았다.
‘본인도 그렇겠지.’
나름은 포지션을 잘 잡고 사는 것 같지만,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네.”
강진호가 밖으로 나가자 이현수도 방을 빠져나왔다.
“저, 강진호 씨.”
“음?”
“따로 이야기 좀 하실까요?”
이현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치익.
산을 내려온 강진호와 이현수가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 테이블에 앉았다.
“술은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모양이네요?”
“운전을 해야 하니까요.”
“아, 평소에는 술을 좀 드시는 모양이네요.”
“아뇨. 안 먹어요.”
“…….”
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많은 심력을 필요로 했다. 이현수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보았지만, 이 사람처럼 대화하기 힘든 사람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과거에 그가 상대하기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단연코 김석일이었다. 그는 머리가 잘 돌아갔으며 잔인했다. 그렇기에 한마디, 한마디를 생각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그의 약점을 잡아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달랐다.
이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는 조금 무심한 사람이었다. 이현수가 무슨 말을 늘어놓더라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발언을 조심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의 실수를 가지고 물고 늘어질 사람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심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뭐라고 하는 게 적당할까?
‘턱시도 입은 호랑이 같군.’
정장을 잘 차려입고 사람의 말을 하는 야수와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본능적인 공포감을 어찌할 수 없다.
애초에 이현수는 강진호의 야수성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사람이 아닌가.
“무슨 일이죠?”
“아…….”
퍼뜩 상념에서 벗어난 이현수가 얼굴을 문질렀다. 사람을 앞에 앉혀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평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 이현수이지만, 강진호가 앞에 있으면 평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최근 심경의 변화가 좀 있어 보이십니다.”
“그게 보이나요?”
“저야 사람을 분석하고 정보를 취합하는 게 일인 사람이니까요. 예전의 강진호 씨였다면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가르친다거나 하지 않았겠죠.”
“예.”
“말을 낮춰주십시오.”
“음…….”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그게 잘 안 되네요. 일단은 제가 편한 대로 할게요.”
“그러시다면야.”
굳이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지금의 강진호에게는 저 말투가 더 어울리기도 했고.
“예전의 강진호 씨는 본인이 강하다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사시는 분 같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총회의 역할을 인정하신 모양이더라구요.”
“사람 몸은 열 개가 아니니까요.”
“…….”
“제가 있는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은 반드시 빈 곳이 생기죠. 더구나 이제 커버할 범위가 많아졌으니, 제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길 겁니다.”
전생에서 얻은 경험이었다.
나 홀로 강하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말이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이현수가 환희 웃었다.
“강진호 씨가 그렇게 생각해 주셔야 저희도 할 일이 생기는 거죠.”
“총회의 일은 총회의 일이죠. 저와 관계없더라도 나름의 일을 하셔야 할 텐데요.”
“원칙상으로는 그렇지만, 아무도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
“결국 지금의 총회는 강진호 씨의 존재로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이죠. 강진호 씨가 총회에서 발을 빼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겁니다. 자기의 몫을 챙기려 하는 이사들이 날뛸 것이고, 총회와 영남부의 갈등이 드러나게 되겠죠.”
강진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사요?”
“네. 그들을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뱀 같은 자들이죠. 이중걸과 김석일이 대립하던 시대에 자신들의 지분을 확보한 이들입니다. 지금 총회와 영남회가 통합되어 방진훈 회주 1인 체제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반기지 않는 이들이 바로 그들일 겁니다.”
한 번도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곳도 별다를 것은 없구나.’
과거 마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한 모양이다. 당시에는 청마가 간단하게 죽일 놈은 죽이고, 굴복시킬 놈은 굴복시켜서 해결을 했지만…….
‘그걸 어떻게 했지?’
돌이켜 보면 볼수록 청마의 위엄만을 재발견하게 되는 강진호였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 일을 청마는 앉은 자리에서 모두 해결했다. 그리고 그 강진호를 이끌고 마교를 간단하게 통합했다.
‘그리고 그놈이 배신하게 만든 나도 대단하지.’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청마가 배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강진호가 아닌가. 당시에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청마가 그를 독살하겠답시고 독이 든 차를 내밀어도 두말없이 원 샷을 해야 할 판이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온갖 어그로는 다 끌고 팀을 나락으로 끌고 들어가는 트롤을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가며 캐리하던 이가 바로 청마였다.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방진훈에게는 무리인 일이었다. 그는 굳이 따지자면 덕장. 스스로는 패기가 넘친다고는 하지만, 강진호가 보기에는 이런 일에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일은 따로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강진호는 이현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어떤 대답이 나오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갈릴 것이다.
이현수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하지만 그 대답은 강진호가 예상하고 있던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무시하시는 겁니다.”
“…….”
강진호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시?”
“예. 지금은 그들을 정리할 때가 아닙니다.”
“이유는?”
“명분이 없고,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그럴 마음을 품었다는 것만으로 세력을 정리해 나간다는 건 반발을 부르게 됩니다.”
‘불합격.’
강진호의 눈이 조금 차가워졌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시기와 명분을 따지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일을 할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강진호의 성향을 웬만큼은 안다고 할 수 있는 이현수가 저런 말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명분 따위에 집착하다 보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 악명 따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강진호였다.
“다만, 그 이유가 전부가 아닙니다.”
강진호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이현수가 미소와 함께 설명을 계속했다.
“현재 저희의 정보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으나, 제 예상대로라면 일본은 이미 움직였습니다. 분명히.”
“일본?”
“예. 거기에 제 모든 것을 걸어도 좋습니다. 그놈들은 절대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닙니다. 분명 지금 강진호 씨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제가 예상하는 이상으로 가까이 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흠.”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일본의 도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내분을 만드는 것은 좋은 수가 아닙니다. 거기에…… 제 생각이 맞다면, 이번 일을 이용하여 명분을 쌓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최상의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보류.’
강진호는 자신의 평가를 수정했다.
청마만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이자의 말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다.
일단은 들어볼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뭡니까?”
“강진호 씨, 지금까지 당해오기만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공격을 당하고, 그것에 대한 보복을 한다. 그게 강진호 씨의 기본적인 행동 패턴이었죠. 총회도, 영남회도 비슷하게 강진호 씨와 얽힌 것으로 압니다. 그럼 저쪽도 아마 비슷하게 생각할 겁니다. 분명 강진호 씨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구요.”
“으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죠. 적이 확실하고, 그들과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지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겠죠.”
“먼저 친다?”
“예.”
이현수가 가볍게 웃었다.
“변수를 이쪽에서 만든다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절 믿고 한 번 움직여 볼 생각이 있으십니까?”
단호하게 묻는 이현수를 보며 강진호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미있겠군.’
어쩌면 이 사내 덕분에 많은 것이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강진호는 손을 내밀었다. 이현수가 손을 뻗어 강진호의 손을 맞잡았다.
* * *
“…….”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오늘 저녁을 무엇을 먹느냐부터, 잠은 언제 잘 것인지도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박유민은 그보다 더 심각하고 극심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 왔어? 바쁠 텐데.”
“안 바빠.”
“응. 안 바쁘구나.”
바빴으면 좋았을 텐데.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왔다.”
“으응, 그랬구나.”
너만 안 왔으면 참 잘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박유민은 이런 마음을 먹는 자신을 반성했다. 그의 인생을 바꿔준 친구가 와줬는데 이리 귀찮아한다는 것은 예전의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이할까?”
“으응.”
피시방.
대한민국 젊은이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박유민은 한창 테스트 준비에 열중하는 도중이었다. 이제 곧 새 시즌이 시작될 것이고, 새 시즌 전에는 인력 보충이 이루어진다. 이름 있는 랭커들에게 프로 구단들이 연락을 해 테스트를 받으라 요청하는 것이다.
박유민은 다음 주만 해도 두 개의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지금 한창 날이 서도록 마우스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걱정해서 찾아주는 건 고마운데, 진호야…… 너, 브론즈야.’
나는 챌린저고…….
너랑 내가 듀오를 돌리면 세계가 파멸한단다.
왜?
왜 갤럭시를 하던 그 실력이 여기에서는 안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임이라는 게 하나하나 다 다르다고는 하나, 나름의 클라스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시작 안 해?”
“응…… 해야지.”
박유민이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 앉자 강진호가 빙긋 웃으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